비운의 여배우 장진영과 ‘청연(靑燕)’
조금 전 37세의 한창 아리따울 여배우 장진영의 부음이 날아왔다. 아깝다. 죽음은 누구의 것이든 슬프고 아깝고 안타깝지만 아직 앞날이 창창한, 촉망받는 미모의 여배우가 병마로 스러져가는 것은 우리 모두를 슬프게 한다. 채 피지도 못한 꽃봉오리가 낙화해버린 듯한...애처롭다.
평소 만난 적은 없지만 그녀가 주연한 ‘청연’이라는 영화를 개봉 첫날 혼자 본 기억이 나서 숙연한 기분이 든다. ‘위암’으로 별세한 그녀는 미스코리아 출신으로 얼굴도 예쁘지만 연기력도 뛰어났던 여배우다. 물론 아래 소개할 ‘청연’에 대한 그 당시 나의 ‘영화평’은 뛰어난 영화라는 평을 하진 않았다.
주인공 여배우가 엄청나게 고생한 영화로 기억한다. 암은 스트레스 탓에 발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데 아마 그녀는 이 영화에서 너무 고생해 병을 얻었을지도 모르겠다.
하루 10시간 씩 360도 회전하는 비행훈련을 몇 달 했다니 얼마나 힘이 들었을지 이젠 세상 사람이 아닌 그녀가 안쓰럽다. 더구나 그 때 ‘청연’은 100억원 이상의 제작비를 투입했지만 흥행성적은 신통치 않았기에 주연여배우로서 심적 부담이 꽤 컸을 것이다.
“결국 이렇게 또 혼자 떠나나보다.” - 영화 '청연'에서 주인공 박경원은 이런 독백을 한다. 어쩌면 그녀의 운명을 예견한 대사 같다. 물론 누구나 언젠가는 이런 대사를 독백하는 것이 인생이겠지만...
장진영은 1993년 미스코리아 충남 진으로 데뷔, 상명대학교에서 의상학을 전공, 평소 세련되고 지적인 이미지로 '젊은 감각'의 신선함을 끊임없이 보여왔다.
SBS 시트콤 '순풍산부인과'에 출연, 브라운관에서 조금씩 얼굴을 알렸다. 하지만 그녀는 2007년 출연작인 SBS '로비스트' 외 브라운관에서는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영화 '자귀모'(1999) '싸이렌'(2000) '반칙왕'(2000) 등에 출연하며 주조연으로 연기력을 쌓아가던 그녀는 2001년 '소름'을 통해 본격적으로 주연배우 신고식을 마쳤다.
이후 '오버더레인보우'(2002)','국화꽃향기'(2003), '싱글즈'(2003), 청연'(2005) 등 영화에서 열연, 두 번의 청룡영화상 주연상과 한 차례 대한민국 영화대상을 수상했다. 2006년 김승우와 함께 한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고인의 마지막 작품이 됐다.
그녀의 다른 출연작품은 미처 보지 못했지만 무슨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고 눈물을 흘리며 수상소감을 말하던 그녀의 청초한 표정은 기억에 새롭다. 아무리 미인 박명이라지만, 너무 아까운 나이다.
*이 자리를 빌어 삼가 장진영의 명복을 빕니다.*
<청연을 보고>-
오늘 개봉한 한국영화 ‘청연(靑燕)’을 동네 극장에 가서 봤습니다. 예전엔 마음에 드는 영화가 개봉하면 첫날· 첫회에 보러가는 ‘열성파 영화팬’이었습니다.
그러다 세월과 함께 ‘영화 보는 일’에 시들해져 몇 백만 명이 들었다는 소문이 돌거나 그럴싸한 영화평 기사가 나오면 ‘마지못해’가곤 했습니다.
하지만 몇 백만 명이 들었다는 영화들도 보고나면 ‘실망스러워’ 다시는 그런 ‘소문’에 휘둘리지 말아야겠다는 다짐까지 하곤 했습니다. 영화평이 좋은 영화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특히 한국영화는 요즘 ‘한류 붐’으로 각광받고 있고 예전에 비해 수준이 월등히 높아졌다는 평도 있지만 거기에 쉽게 동의하기는 쉽지 않아서 될수록 영화를 안 봐야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연말이고, 요 한 달 사이 ‘황우석 사태’로 온 국민이 너무 시달려온 탓인지 국민의 한 사람인 저도 왠지 ‘지친 기분’이 들어 ‘간만에 ‘영화’가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더군요.
뭐랄까요, ‘위로받고 싶은 심정’이 들 때는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에 잠시 가 있고 싶다는 기분이 들죠. 그럴 땐 영화를 보면서 다른 세계에 ‘몰두’하고 나면 개운해지곤 하죠.
우선 지난 주 개봉했다는 장동건 주연의 ‘태풍’을 볼까 했습니다. 워낙 미남배우인 장동건이 나온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 영화는 볼만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 그렇지만 스토리 때문에 영 개운치 않았습니다.
장동건이 탈북자출신으로 ‘천신만고’ 끝에 복수하고 어쩌고 한다는 얘기에 아무래도 볼 자신이 없었습니다. 워낙 ‘눈물샘’이 약한 터라 그 영화는 아마 처음부터 끝까지 울다 나올 것 같았거든요.
몇 달 전인가요, 텔레비전 뉴스에서 북한주민들이 베이징에서 외국 영사관으로 피신하려다 붙들리는 장면을 보고 엉엉 운 일이 있었습니다. 그 밖에도 신문에 심심찮게 나오는 탈북자 관련 뉴스만 보면 저는 어김없이 눈물을 흘린답니다. 실향민 출신 부모님 밑에서 자랐고, 아직도 북쪽에 친척들이 살고 있는 저로서는 ‘남의 일’이 아니어서 그런가봅니다.
이런 이유로 ‘태풍’은 ‘관람 후보작’에서 탈락했습니다. ‘청연’을 보러가기로 한 것은 우선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였습니다. 아마도 ‘푸른 제비’라는 뜻인 것 같은데요, 제가 초등학교 6년 시절 재미있게 읽었던 ‘소년 신문’의 연재소설 제목이 ‘푸른 말의 전설’이었거든요. 왠지 그때의 ‘좋았던 기억’이 떠올라 그 이후로 ‘푸른’ 이 들어간 영화나 소설에는 일단 호감을 갖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게다가 아침 신문에 보니까 이 ‘청연’에 대한 기사가 한 면 전체를 장식했더군요. 일부러 그 기사는 보질 않았습니다.
단 영화 광고에는 잠시 눈길을 주었는데요, 광고는 다 그렇지만 ‘진정한 스펙터클 속에 펼쳐지는 감동과 눈물의 120분’이니 ‘관객과 언론을 사로잡은 단 하나의 감동’이니 ‘12월에 가장 기대되는 작품 1위’라는 둥 아무튼 광고 문구가 엄청났습니다.
영화관에 시간을 문의하니까 마침 딱 맞더군요, 이렇게 해서 몇 년 만에 혼자서 동네 영화관을 가게된 겁니다. 한 사람의 관객이 ‘영화’를 보러 가는 ‘문화행위’가 이루어지기까지는 이렇게 복잡한 계산이 맞아떨어져야 움직인다는 점에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고충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서론이 너무 길었지요? 어쨌든 저는 7천원을 다 내고(요즘 신세대들은 무슨무슨 할인혜택으로 몇 천원을 할인한다는데) 영화를 봤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릴게요. 우선 실망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애써서 만든 ‘작품’에 대한 예의가 아닌 걸 너무 잘 알아 조심스럽긴 합니다만, 할 수 없습니다. 뭐랄까요? 허전하다고나 할까요, 엉성하다고나 할까요.
전문적인 영화평론가가 아니라서 함부로 말하기는 미안하지만 그냥 ‘평범한 관객’의 입장에서 볼 때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미스가 있었지 않나 싶습니다. 없어도 될 것같은 장면이 너무 많은 것 같더군요.
내용은 다 알려졌다시피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인 여류비행사의 일대기입니다. 소재가 퍽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01년생인 여주인공 박경원이 ‘창공을 날고 싶다’는 청운의 꿈을 품고 17세에 혈혈단신으로 일본에 건너가 11년만에 비행사 자격을 따고 32세에 모국으로 ‘비행기를 몰고 오다가’ 창공에서 산화하고 만다는 비극적 줄거리입니다.
영화적 스토리로 더 이상 ‘멋질 수’가 없는 조건을 다 갖춘 거라고 봅니다. 이렇게 되면 여주인공에 대한 관객의 ‘성원’에 힘입어 그녀는 ‘최고의 매력적 주인공’이 되는 것은 일도 아니라고 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어쩐지 몰라도 제겐 여주인공이 ‘환상적으로 멋진’ 느낌이 들지 않더군요. 아무래도 감독이 여주인공을 ‘미화’하는 쪽에 역점을 덜 둔 탓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배우의 얼굴도 예뻤는데...(알고보니 미스코리아 출신이었죠.)
아주 국지적인 얘기지만요, 영화 시작 부분에 아역배우로 나오는 여주인공이 색동저고리를 입고 하늘로 나는 환상을 품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거기서 병아리인지 무슨 새인지를 날려 보내는 장면을 딱 보는 순간 이 영화는 ‘아닌가보다’ 라는 감이 왔습니다.
그래도 긴가민가하면서 보고 있는데 여주인공의 ‘대사’가 또 거슬렸습니다. 여주인공이 요즘으로 치면 ‘대리운전’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요, 술 취한 일본 손님이 뒤에서 뭐라고 웅얼거리니까 그녀는 백미러를 흘끔흘끔 보면서 한국말로(아참 이 영화는 95%는 일본말로 진행되더군요) “똥 싸고 있네”라면서 비아냥대는 장면이 나오더군요.
오! 맙소사! ‘천금같은’ 여주인공의 입에서 그런 말이 초장부터 나오면 어떡하라는 얘긴지요. 물론 때에 따라선 그보다 더 거칠고 상스런 말을 여주인공이 뱉어낼 순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독의 기초소양이 부족하다면 너무 야박한 표현일지 몰라도 그런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습니다.
택시의 그 취객(김주혁분)은 나중에 ‘조선인’으로 판명되고 또 주인공인 그녀와 ‘비련의 사랑’에 빠지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비운의 남주인공’이 됩니다. 아무튼 그런 상스런 말을 그 시대에 그렇게 썼는진 몰라도 최소한 영화초장에 그렇게 말한다는 건 ‘관객에 대한 예의’에도 어긋나고 예쁜 여배우에게도 못할 짓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어쨌거나 이렇게 저렇게 영화는 흘러갔는데요, 영화 중반쯤에 일어나는 ‘사건’도 영 어설펐습니다. 이 영화를 보실 분을 위해 더 이상 언급은 하지 않겠습니다만 안타까운 마음이 들더군요.
‘주인공’ 설정은 멋있었지만 ‘시나리오’가 그 여주인공을 받쳐줄 ‘힘’이 없었다고나 할까요. 이 보다 훨씬 멋있는 대사들이 오갈 수 있고, 훨씬 박진감있는 사건으로 장식할 수 있었을텐데.
어차피 남주인공 역은 ‘허구의 인물’이라거든요, 기왕에 허구의 인물을 등장시킨다면 그런 식으로 하지 않는 편이 더 낫지 않았나라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더구나 요즘 '인기있는 남자배우'를 캐스팅했으니까 더 극적이고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로 만들수도 있었을텐데.
영화 속에 등장하는 젊은 남녀들이 하는 대사도 요즘 유행하는 속어들을 그대로 사용해 리얼리티를 떨어뜨리는 것 같았습니다.
집에 온 후 조간신문에 전면으로 나온 여주인공(장진영 분) 인터뷰와 영화 줄거리 소개를 보고 다시한번 깜짝 놀라면서 실망스런 느낌이 더 깊이 들었습니다.
우선 이 영화를 제작하는 데 100억 원의 비용이 투입되었다는 겁니다.
세상에 1백억 원이라니요! 하기야 항공 촬영 신이 워낙 많아 ‘돈은 좀 들었겠다’라고 막연히 느꼈긴 했지만 백억원 씩 들어간 영화라는 게 너무 놀라웠습니다.
신문에선 제목부터 ‘칭찬 일변도’였습니다. ‘이야기 볼거리 조화 이룬 수작’ ‘최후의 고국행 비행장면 뭉클’ 이라는 제목 아래 ‘스펙터클 외에도 로맨스 등 드라마도 탄탄하고 연출력이나 배우들의 연기도 출중하다’고 소개했습니다. 글쎄요, 드라마가 탄탄하다는 것에 전혀 동의할 수 없더군요.
여주인공 장진영은 인터뷰에서 “ 제작준비 기간까지 3년 동안 이 작품 하나만을 위해 살아온 감독님의 열정에 대한 보상이 꼭 이뤄졌으면 해요”라고 말했습니다. 장진영은 하루 10시간씩 360도 회전하는 복엽비행기와 한 몸이 된 상태에서 고통스러운 비행훈련을 했다고 합니다. 엄청 고생한 것 같습니다.
‘요리를 만들기는 어려워도 먹기는 쉽다’는 말도 있는 것처럼 영화 보고 ‘비평하는 일’이야 누워서 떡 먹기보다 쉽겠죠.
영화를 만들어 본 경험은 없지만 영화 제작자들이나 감독들을 인터뷰해본 경험은 있기에 그들이 얼마나 고생하며 마음 졸이는 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겁니다. 이렇게 거대한 ‘자본’이 투입된 영화인만큼 ‘본전’은 회수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 한 번 두 번 아니 수십 번 고쳐 쓰고 회의하고 고민하고 갖은 ‘산고’를 겪어야 ‘작품’이 나오는 법인데.... 그만큼 더 아쉽고 안타깝다는 얘기죠.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오직 신만이 알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엄청난 제작비를 들였으니 제발 성공해야 할 텐데 라는 마음이 진실로 간절히 듭니다.
영화가 끝난 뒤 여고생으로 보이는 학생 두 명에게 영화가 어땠냐고 물어봤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그 여학생들은 “재미있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아무래도 이 영화의 주요 관객층은 젊은 여성세대들일 테니까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결국 이 영화는 흥행에 참패한 채 막을 내렸습니다.)2005년 12월 29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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