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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닛 비보이, 감동적인 비보이들의 월드컵 '배틀 오브 더 이어'

스카이뷰2 2009. 10. 18. 13:24

 

 

 플래닛 비보이, 감동적인 비보이들의 월드컵 '배틀 오브 더 이어'

 

‘플래닛 비보이(PLANET B-BOY)’라는 다소 생소한 제목의 영화를 극장에서 만난 건 올해 내가 본 영화중 최대의 수확이었다. 재밌고 감동적이라면 좀 진부한 표현이지만 그래도 그 ‘재미와 감동’이 이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고난 축약된 소감이다. ‘올해 최고의 영화’ 타이틀을 수여하고 싶다.  

전 세계 젊은 비 보이들의 영혼의 외침과 그들의 고뇌 그리고 그들의 ‘모든 것’이 녹아있는 비 보이 댄스를 극장에서 편안히 볼 수 있다는 건 꽤 괜찮은 일 같다.

 

사실 ‘플래닛 비보이’라는 영화를 하는지 조차 모르고 있었다. 주말에 뭐 볼 영화가 없나 싶어 이리저리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행성(planet)’이었다고나 할까. 영화를 오랜 세월 봐 온 ‘광팬’의 한 사람으로 왠지 ‘이거다 싶은’ 육감이 들었다. 결과는 나의 육감의 승리!

올해 본 어떤 영화보다도 순수한 기쁨을 내게 선사했다. 세계 어디에 살든 비보이와 그들 가족 그리고 그들이 속한 사회의 시선 등을 충실한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아주 소박하게 그려냈다.

 

대한민국을 비롯해 비보이의 원조국가인 미국이나 프랑스 일본의 ‘막강 비보이’들은 물론 전세계 18개 나라의 젊은 춤꾼들의 공통된 고뇌와 그들만이 느낄 수 있는 삶의 환희 등을 정직한 시선으로 가감 없이 보여준 게 이 영화의 큰 미덕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권위있는 신문이라는 뉴욕타임스가 ‘스릴 넘치고 섬세한 개성으로 가득하다’는 영화평을 실은 것을 비롯해 ‘브레이크댄스의 불씨를 댕기다(월스트리트저널)’ ‘이야기가 감동적이고 그들의 움직임은 스릴 넘친다(뉴욕데일리 뉴스)’등의 극찬을 했다. 미국 25개 도시에서 연장상영을 결정했을 만큼 관객들의 반응은 대단했다고 한다.

 

한국계 미국인 벤슨 리라는 무명의 감독이 10년간의 관찰과 3년간의 제작기간을 거쳐 내놓은 이 영화는 천만관객을 동원한 한국의 어떤 영화들 못지 않은 진한 감동과 신나고 편안한 행복감마저 느끼게 해준다.

 성세대로부터 소외당한 ‘마지날 맨(marginal man)’들이라 할 수 있는 젊은 춤꾼들과의 러닝타임 ‘90분간의 여행’은 오랜만에 신선하면서 정서적인 충만감을 갖게 했다.

 

‘비보이 춤’이라면 그냥 흔들거리거나 거리를 청소하고 다니는 걸로만 아는 기성세대들에게 전 세계의 젊은 비보이 춤꾼들은 자신들의 존재감을 오로지 춤으로만 알리려고 한다.

쿵푸와 기계체조, 요가와 모던 댄스들을 합쳐 놓은 듯한 기기묘묘한 비보이의 춤사위와 비보이들의 세련되고 정제된 동작들은 보는 사람들에게 정서적인 위안과 함께 캠퍼 주사를 맞은 것처럼 기운을 솟아나게 한다.

 

‘돈을 벌기 위해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춤을 추기 위해 돈을 번다’는 한국 비보이의 간절한 외침이 세계 비보이들의 ‘정서’를 대변해주는 것 같다.

국가는 달라도 방황하는 젊은 영혼들의 고뇌는 비슷한 법이어서 전 세계 비보이들은 동병상련의 아픔을 한 바탕 춤으로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비보이 자신들의 고뇌나 비보이의 ‘부모님들’의 고뇌도 세계적으로 공통적인 것 같다. 그러니까 사람 사는 모습은 어디를 가나 비슷한 것이다. 일본 오사카 변두리 녹차가게 집 아들 카츠는 ‘대학에 진학하라’는 부친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험난한 비보이의 길을 사수한다.

 

끝내 병으로 세상을 떠난 부친 대신 그의 모친은 비보이 아들보다 더 비보이의 매력에 심취해 세계 대회에 나가는 아들을 격려해준다. 우승에 집착하지 말고 춤을 즐기라고 말하는 모친을  바라보는 춤꾼 아들의 섬세한 표정변화가 재밌다.

 

비보이를 아들로 둔 완고한 표정의 한국인 아버지나 까다롭게 보이는 프랑스 비보이의  젊은 엄마도 일본 녹차가게 엄마와 비슷한 고민을 털어놓는다. 아들이 좀더 멋진 직업을 갖기 바랬지만 결국은  비보이 아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그만큼 비보이들의 ‘진정성’이 기성세대의 완고함을 스르르 녹여준 것이다.

 

그야말로 ‘맨발의 청춘’들인 그들 비보이들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오로지그들 내면의 고뇌를 분출해내는 춤사위로 자신들의 ‘존재의 이유’를 발견함으로써 결국은 가족과 주변인 그리고 전 세계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괴력’을 발휘하고 있다..

 

영화는 비보이의 본고장 미국 크루부터 최근 각광 받고 있는 한국 비보이들, 덴마크와 이스라엘까지 전세계 비보이 크루들의 열정적 공연을 한 눈에 보여준다. 각국 특색이 묻어나는 흥겨운 음악과 화려한 비보잉은 보는 이를 압도하며, 마치 공연장에 와있는 듯한 착각과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미국의 장대한 그랜드캐니언에서 추는 외로운 비보이의 고독한 모습은 곧 전세계 비보이들의 고독을 대변한다. 파리의 에펠탑이나 네덜란드의 풍차를 배경으로 미친 듯 현란한 동작을 보여주는 젊은 춤꾼 비보이들이 쏟아내는 땀과 눈물은 그 자체로 아름다워 보인다.

 

전 세계 비보이들을 놀래켰던 대한민국 비보이 그룹 갬블러즈나 라스트 포 원의 파워 넘치는 테크닉은 ‘정통 비보이 그룹’인 미국이나 유럽 비보이들에게 ‘불가사의한 존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원조 비보이들’은 자신들이 20년 가까이 쌓아온 ‘아성’을 불과 5년 남짓한 짧은 세월에 추월한 코리안 비보이들을 두려워할 정도다.

 

‘비보이들의 월드컵’인 ‘배틀 오브 더 이어’는 해마다 독일의 지방소도시 브라운슈바이크에서 열린다. 전 세계 비보이들에게 ‘배틀 오브 더 이어’는 어쩌면 위대하고도 성스러운 종교의식처럼 고귀한 무대이기도 하다. 바로 오늘(18일) 그곳에선 대한민국 비보이들을 비롯한 전 세계 비보이들이 모여 ‘일합’을 겨루고 있다. 어쩌면 또 좋은 소식이 날아올 지도 모르겠다. (2009년 대회에서도 대한민국 갬블러크루가 또다시 우승을 했다고 한다.)

 

그런 세계적인 무대를 대한민국의 비보이들이 2004년과 05년에 연이어 ‘석권’했다는 ‘쾌거’는 대한민국의 국가위상이 그만큼 상승했다는 한 반증이기도하다. 국력의 뒷받침이 없던 예전엔 엄두도 못낼 일이다.

춤을 통한 용서와 화해를 지향한다는 비보이들의 세계에서도 국가 간의 오랜 편견은 여전히 존재한다. 영화의 라스트를 장식하는 ‘비보이 한일전’은 그래서 더 실감나고 재미를 더 해준다.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비보이들의 현란한 춤사위의 아름다움은 마침내 한일 국경을 초월한다. 그냥 젊은 춤꾼들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자체가 감동으로 다가온다.

‘시골 아이들’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마침내 세계 정상에 오른 대한민국 비보이 그룹 ‘라스트 포 원’의 존재는 마지날 맨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 성취의 아름다움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젊은 그들이 온갖 설움을 딛고 세계에 자신들의 존재를 당당히 알렸다는 사실은 역사적인 쾌거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좋은 영화를 서울에선 광화문의 미로 스페이스 한 곳에만 개봉한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그 비보이들의 춤사위에 매료되어 덩달아 발장단을 맞추며 신나게 영화에 빠져들었던 지난 주말 미로 스페이스의 관객은 불과 10여명!

 

그래도 영화에 출연했던 라스트 포원 멤버들은 영화관의 좁은 무대에서 몇 안 되는 관객들을 위해 짧은 공연을 펼쳤고, 이 영화를 만든 벤슨 리 감독은 미국에서 날아와 관객과의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아무리 다큐멘터리 영화지만 극영화 못지않게 흥행성적에 신경이 쓰여 마음이 불편했을 법한데도 리 감독은 여고생 질문자들에게 최선을 다해 성의 있게 영화제작 경위를 설명해주어 보는 이들을 흐뭇하게 했다.

 

이 영화는 우리 청소년들이 꼭 봤으면 좋겠다. 비보이들의 꿈과 열정 그리고 뼈를 깎는 노력의 시간들은 비단 비보이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꿈많은 청소년’들에게 비보이들의 노력하는 모습은 큰 힘이 될 것 같다. 비단 청소년 뿐 아니라 기성세대들에게도 이 영화는 ‘재미와 감동’을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아무 조건 없는 순수한 기쁨을 느낀다는 건 영화가 주는 가장 큰 덕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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