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거미라고 무시 말라! 강철 20배, 방탄복 4배…말미잘은 한 수 위 !

스카이뷰2 2012. 1. 31. 19:23

     ▲ 지난 23일 영국 런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에서 모델이 무당거미의 거미줄로 만든 옷을 선보이고 있다.

        이 옷 한 벌을 만드는 데 8년 동안 120만 마리의 거미가 사용됐다. /PPA 연합뉴스 chosun.com

 

                                  ▲ 무당거미(위 사진)는 꽁무니 분비샘에서 거미 실크(아래 사진 회색 실)를 분비한다.

                                   거미 실크 몇 가닥이 모여 거미줄을 만든다. /인섹트바이오텍·호주CSIRO 제공

 

 

거미라고 무시 말라! 강철 20배, 방탄복 4배…

말미잘은 한 수 위 !

 

꽤 오래 전 그룹 체리필터가 불러 크게 히트했던 '낭만고양이'에는 '거미로 그물 쳐서 물고기 잡으러'라는 가사가 나온다. ‘낭만고양이’는 작사에 재주가 있는 크라잉넛의 한경록이 노랫말 만드는데 관여한 곡으로 감수성과 상상력이 뛰어난 가사로 평가받고 있다. ‘거미로 그물 쳐서’는 한경록의 무한 상상력과 글재간이 만들어낸 센스 넘치는 후렴구로 어쩌면 SF만화에서 힌트를 받아냈을지도 모르겠다.

 

거미줄이 강철보다 스무 배, 방탄복보다 네 배나 질기다는 ‘믿거나말거나’식 과학뉴스를 보면서 문득 이 노랫말이 떠오른다. 거미줄의 강인함은 이제 과학적으로 ‘검증’된 뉴스다.

거미 실크(silk)는 같은 무게의 강철과 비교하면 20배나 질기다고 한다. 듀폰사가 만든 방탄복 소재인 케블라 섬유보다도 4배나 강하다.

 

 그러면서도 잘 휘어지고 50%까지 길이를 늘일 수 있다. 영국에서는 이 거미 실크로 아프가니스탄에 파병한 군인들의 아랫도리를 폭탄으로부터 보호하는 속옷을 만들었을 정도다. 참 놀라운 ‘자연의 힘’이다. 기묘자(奇妙者)의 능력이 아니고선 어떻게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 지 설명하기 어렵다.

 

지난 1월 23일 영국 런던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에서는 거미 실크로 만든 샛노란 '케이프(망토)'를 입고 나온 패션모델이 과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 거미줄은 인체에도 아무런 해를 입히지 않는 자연계 최고의 섬유로 알려져 있다. 과학자들은 이런 성질을 이용해 거미줄로 환자의 눈을 뜨게 하고 휠체어에서 일어서도록 하는 연구를 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몇 년 전 대한민국 국민을 ‘우롱했던’ 황아무개 박사의 줄기세포의 ‘기적’이 생각난다. 그 때 분명 황씨는 휠체어에 앉아서지내야 하는 어린 소년에게 “너를 일으켜 세워 걷게 해주마”라고 약속했다는 뉴스를 보고 슬픈 기분이 들었다.

 

물론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기 전까지만 해도 적잖은 사람들은 이 ’황박사의 기적‘을 철썩같이 믿었던 것 같다. 특히 장애를 가진 자식을 둔 부모들의 ’줄기세포‘에 대한 열망은 대단했었다.

이제는 흘러간 옛 이야기가 되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 ‘거미줄의 기적’ 역시 선뜻 믿어지진 않는다. 자라보고 놀라서 뭐 보고도 놀란다는 속담처럼 이런 SF식 과학이야기는 신비하면서도 확신하기는 어려워진 것이다.

 

그래도 대단힌 정치적이었다는 소리를 듣고 있는 황아무개씨와는 달리 이 '거미 연구 과학자'들은 그저 묵묵히 연구만 하는 골수학자들이라니까 일단 믿음이 간다. 

거미 실크 단백질은 인체에서 면역거부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게 밝혀졌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분해되는 것도 장점이다. 자연 상태보다 많이 약해졌다 해도 다른 생체 물질에 비하면 강하다는 장점도 여전하다.

 

미 터프스대의 데이비드 카플란(Kaplan) 교수는 2009년 거미 실크로 만든 투명 필름으로 인공 각막을 개발했다고 한다. 2010년에는 뇌 표면에 부착하는 거미 실크 센서도 발표했다. 거미 실크로 손상된 뼈나 근육과 같은 모양의 틀을 만들고, 여기에 줄기세포를 집어넣어 이식용 조직을 만드는 연구도 진행 중이라고 한다. 일단 기대는 된다. 하지만 ‘실험실내의 성과물’에 그칠 수도 있기에 조심스럽다.

 

가장 최근에 발견된 거미 실크의 특성은 전류를 흘리면 끈적끈적한 상태가 됐다가 전류가 끊어지면 마르는 현상이다. 카플란 교수팀은 이를 이용해 응급환자용 드레싱 재료를 연구 중이다. 사고 현장에서 거미 실크 단백질을 뿌리고 전류를 흘려 깁스하듯 상처를 단단히 싸맸다가, 병원에 도착하면 전류를 끊어 상처 부위를 여는 식이라고 한다. 거의 ‘기적’科에 속하는 이야기 같지만 재미는 있다. 어떻게 하든 인류를 위한 것이라면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문제는 원료인 거미 실크를 대량으로 구하는 일이라고 한다. 거미줄을 일일이 걷어 실을 만드는 것은 경제성이 없다.  위의 사진에 모델이 입고 나온 거미 실크 샛노란 망토는 옷을 만드는 데 120만 마리의 황금무당거미의 ‘생명’이 제물로 받쳐졌으며 제작 기간도 무려 8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거미사회에선 그랬겠다. 인간에 의한 ‘거미 대학살’이라는 만행을 규탄한다고^^&

 

인류가 5000년 동안 비단을 만드는 데 사용한 누에와 달리, 거미는 육식성에 주로 혼자 살아 집단 사육도 어렵다. 자연 상태의 거미줄을 풀어서 섬유로 만들면 군데군데 단백질 결합이 깨져 강도도 5분의 1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미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의 세릴 하야시(Hayashi) 교수는 이 문제를 유전자로 해결했다. 하야시 교수는 지난 2007년 ‘검은 과부거미’에서 거미 실크를 만드는 핵심 유전자인 MaSp1, MasP2를 찾아 완전히 해독했다고 한다.

 

이 유전자를 공장 격인 다른 생물의 유전자에 넣어 설계도대로 거미줄을 만들면 된다는 것이다. 일본계로 보이는 이 과학자의 탁월한 연구능력에 경탄한다. 하야시 교수는 담배나 감자 같은 식물에 거미줄 유전자를 넣어 밭에서 거미 실크를 뽑아내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한다. 미 노트르담대의 말콤 프레이저(Fraser) 교수는 최근 거미 실크 유전자를 누에에 넣어 기존 누에 실크보다 훨씬 강한 실크를 얻었다. 말하자면 ‘퓨전 실크’제조법을 발명했다고나 할까.

 

국내에서는 2010년 이상엽 KAIST 특훈교수(생명화학공학)가 박영환 서울대 교수(바이오시스템·소재학부)와 함께 거미 실크 유전자를 대장균에 넣은 실험을 했다. 연구진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만들지 못했던 초고분자량의 거미 실크 단백질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포스텍의 차형준 교수(화학공학) 교수는 아예 새로운 설계도를 찾았다. 연구진은 미국과 유럽 연안에 사는 '스타렛 말미잘'이 수축·팽창할 때 몸길이가 최대 5~10배까지 차이 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거미나 누에처럼 실크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지난해 차 교수는 이렇게 찾은 유전자를 대장균 유전자에 끼워 넣어 거미 실크와 유사한 섬유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차 교수는 "누에에서 나오는 실크는 강도가 약하고, 거미 실크는 강도는 뛰어나지만 서로 잡아먹어 양식이 불가능했다"며 "말미잘 실크 섬유는 대장균을 이용해 만들어 대량생산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더니 이제 누에 위에 거미, 거미 위에 말미잘이라는 속담이 생길 법하다. 어쨌든 대단하다. 한국의 과학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