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다 나쓰코. (마이니치 사진.)
日本 최고권위 신인문학상 아쿠타가와賞
구로다 나쓰코 , '75세 문학소녀' 품으로
아침 신문에서 이런 제목의 기사를 보는 순간 찡한 마음이 들었다. 뭉클한 감동과 함께 ‘인생은 슬프고도 아름다운 거’라는 조금은 센티멘털한 감상에 휩싸였다. 올해 75세된 구로다 나쓰코(黑田夏子·사진)라는 호호 할머니가 일본 최고권위 신인문학상인 아쿠타가와賞을 받았다는 기사는 오늘 아침 나에게 그렇게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우선 이 할머니 나이가 일본 나이로 75세라니 우리 나이로는 77세다. 그런데도 눈빛이 아직도 형형하다. 살짝 웃을듯 말듯한 수줍은 기운이 감도는 입매무새도 로맨틱한 기운이 감돈다. 게다가 그 연세 정도면 주로 원색 패션을 좋아할 법한데 잿빛 터틀넥 스웨터를 입은 품새가 예사롭지가 않다. 헤어스타일도 '아가씨 風'이다. 그야말로 문학소녀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일본 아쿠타가와(芥川)상 선정위원회는 16일 구로다 나쓰코 씨의 소설 'ab산고'를 148회 수상작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아쿠타가와상은 일본 순수문학 신인 작가의 작품에 주는 최고의 상이다. 20세기 초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라는 요절한 천재작가를 기리기 위해 제정된 상으로 상금은 100만엔. 그렇게 많지 않은 액수지만 어떤 상징성이 느껴진다. 우리에게도 낯익은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도 스물셋에 이 상을 받고 작가로서 탄탄대로를 걷다가 드디어 노벨상까지 탄 것이다.
재일 동포 작가들도 이 상을 받고 일본 문학계에서 ‘주류’로 활동한 사람들이 몇 명 있다. 1970년대 초반 ‘다듬이질 하는 여인’이라는 단편으로 수상한 이회성이나 90년대 ‘그늘 집’으로 상을 받은 현월 등이 소위 ‘자이니치(在日)’ 문인들이다.
대체로 통념상 ‘신인문학상’이라면 20대 초 중반의 앳된 문학청년들이 받는 걸로 알려져 있기에 이번 구로다 할머니의 수상은 ‘역사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쩌면 ‘노년층의 반란’이라는 새로운 사회흐름의 한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아닌게 아니라 구로다 할머니는 자신보다 55년이나 어린 손녀뻘의 최연소 경쟁자 다카오 나가라(高尾長良·20) 등 다른 후보 4명을 물리치고 아쿠타가와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는 점에서 더 주목을 받고 있는 중이다. 와세다 대학 교육학부 출신인 구로다 는 지난해 이 작품으로 와세다문학 신인상을 받았다.
구로다씨는 "젊은이들에게 미안한 생각도 들지만, 오랜 창작 활동을 하면서도 주목받지 못했던 작품과 작가가 평가를 받은 것은 나름대로 역할을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구로다씨는 아쿠타가와상 역대 수상자 중 최고령자이며, 종전 최고령 기록은 1974년 61세에 수상한 모리 아쓰시(森敦·1912~1989)씨가 갖고 있었다.
그러니까 요즘은 자신의 나이에서 ‘마이너스 15’를 해야 ‘실제 나이’가 나오는 거라는 우스갯소리가 가히 틀린 것 같지는 않는 듯하다. 아무래도 신인문학상이다 보니 아쿠타가와상 수상자는 그간 20~ 30대가 많았다. 구로다씨는 와세다대를 졸업한 뒤 중학교 교사·사무원 등을 하며 글쓰기를 해왔다. 본격적인 소설 도전은 은퇴 후 일이었다.
이 할머니의 이런 ‘은퇴 후’ 더 빛나는 삶의 이력서는 아무래도 수많은 ‘우울한 노년층’에겐 하나의 ‘등대’같은 구실을 할 듯도 싶어 보인다. 이번에 상을 받은 구로다씨의 수상작 'ab산고'는 이름 대신 'a씨' 'b씨'라는 호칭을 사용해 1970~80년대 일본의 한 핵가족이 새로 가정부를 들인 뒤 소중한 일상을 잃어가는 모습을 그려냈다. 고유명사와 대명사를 쓰지 않는 등 실험성이 강한 작품으로, 나이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나이가 느껴지지 않는 문장력’이라는 대목이 부럽다.
77세 나이에 ‘신인 등용문’의 최고 권위라는 아쿠타가와 상을 받은 구로다 할머니를 보면서
‘백발 청춘’이라는 이미지가 느껴진다. 본인 스스로 ‘젊은이들에게 미안하긴 하지만’이라는 단서를 붙이면서도 ‘작가’로서 인정받은 게 기쁘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는 것에서 흔히 우리가 느끼고 있는 ‘초라한 노년’이라는 말을 보기 좋게 걷어차 버린 듯해서 유쾌한 반란의 기미마저 읽을 수 있다.
구로다 할머니는 사실 ‘반짝 스타’는 아니다. 물론 연세도 높기에 그런 단어는 아예 어울리지 않겠지만 그는 작품 구상과 집필에 10년 이상이 걸렸으며 표현을 고치고 또 고쳤다고 한다. 심사위원들은 "소재와 기법이 매우 균형이 잡혔으며 세련되고 아름다운 작품이다. 작가의 나이와 상관없이 매우 신선하고 훌륭하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 정도 되면 ‘봐주기 식’ 상이 아니라는 걸 입증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노인대국' 일본에서는 젊은 층이 소설을 외면하는 반면, 직장 생활 또는 가족 부양 의무 때문에 묻었던 문학청년의 꿈을 다시 펼치는 노년 은퇴 세대의 글쓰기가 붐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일본에선 2차 대전 후 1947~1949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團塊) 세대가 최근 은퇴 시기를 맞아 본격적인 글쓰기에 도전해 '노년 신예 작가'의 등장이 줄을 잇고 있는 추세다.
지난해 74세에 '군조(群像)신인문학상' 우수상을 받은 후지사키 가즈오(藤崎和男), 73세에 '신의 라면'이라는 난센스 단편소설집을 출간한 다키 히카루(多紀ヒカル)씨 등이 대표적 ‘노인’신인 작가이다.
아마 이런 현상은 비단 일본에만 국한되는 현상은 아닐 것이다. 일본을 약 25년 간격으로 추격하고 있는 우리 한국에서도 점점 ‘인구 고령화문제’가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고 있다.
노인인구가 급증하면서 자신이 노인이라는 걸 미처 실감하지 못하는 ‘건강한 노년세대’들은 저렇게 일본 구로다 할머니처럼 무언가 ‘사회적 성취’를 계속 이루려고 하는 경향도 있을 것 같다. 이런 추세라면 우리나라에서도 ‘늙으면 뒷방 신세’라는 말이 폐기처분 될 날도 머지않을 듯싶다. 요즘 나이 60은 예전의 45와 맞먹는다는 말도 나돈다.
이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말장난만은 아니라는 걸 증명해주는 ‘실력파 노인’들이 대거 몰려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싶다.
어쨌거나 77세로 아쿠타가와 상을 거머쥔 구로다 할머니에게 축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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