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고등학교 시절 수학여행. 가운데 안경 쓴 학생이 김문수.
김문수 “대한민국이 희망이 없는 나라? 저는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밥 한끼 먹고 싶은 게 꿈이었던 한 소년”
저는 어릴 때 꿈이 부모님이 양말 하나 사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면서 명절을 보냈다. 오늘 이곳에 길양말 사장님 오셔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또 어릴 적 꿈이 밥을 한번 실컷 먹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죽 세끼도 못 먹을 때가 많아 밥을 먹는 건 명절날 제삿날에 차린 걸 조금 먹을 수 있었다.
이제 꿈을 이뤘다 밥도 먹고 양말도 두고 신는다. 아침에도 골라서 양말을 신고 왔다. 언론에서 묻길 당신 꿈이 뭐냐 하시는데, 어릴 때부터 밥이나 실컷 먹는 건데 요즘 다이어트도 한다. 판자집 초가집에서 살아서 전깃불이 안 들어오고 호롱불 아래 밥상 하나에서 몇 형제가 공부도 했다.
형제들끼리 공부하다 호롱불 기름이 책에 엎어져서 다음날 학교가서 냄새 때문에 창피했다. 제가 28살에 우리 집에 처음 전기가 들어왔다. 책에서 들은 게 아니라 우리 이 시대가 겪은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대한민국 여성들은 예부터 중국 양귀비를 생각하면서 최고의 미인이 되고자 했다. 그런데 요즘엔 중국에서 누군가 예뻐져서 나타나면, 너 한국 갔다왔냐고 묻는다더라. 이제 양귀비는 다 잊어버리고 소녀시대만 있다고 한다.
한국여성들처럼 예뻐지고 싶다고 말하는 시대가 왔다고 한다. 여기 길양말 사장님과 옆에 앉아서 함께 밥을 먹을지 꿈도 꾸지 못했다. 대한민국은 꿈 꾸던 것보다 이미 더 많은 것을 성취했다.
밥 한끼 먹고 싶은 게 꿈이었던 한 소년이 이제 다이어트를 하는 시대가 됐다. 이 과정을 살아오면서 우리 역사가 너무 빠르게 변화한다고 느끼는 게 고등학교 3학년때 박정희 대통령 3선개헌 주도했다는 이유로 무기정학을 받았다. 대학에서 제적을 2번 당하고 졸업을 25년만에 졸업했다. 그 중간에 감옥을 2년6개월을 있었고 공장 생활 7년을 했다.
“자유를 갈망했던 청년 김문수”
감옥에서도 가장 중벌을 받는 구금실 중구금실에서 생활도 했다. 밥 책 그 무엇도 주지 않는 곳까지 갔다. 혀를 깨물지 못하게 하는 도구를 입에 묶기도 했다. 빨리 죽고 싶어도 못 죽게 해 죽을 수도 없었다. 목포교도소에서 창밖을 내다보면 염소가 풀을 뜯고 있었는데 염소가 부러웠다.
교도소에 구더기가 돌아다니고 화장실도 함께 있는 시설이었다. 87년 대통령 선거를 감옥에서 맞이 했는데 김대중 대통령만 당선되면 나는 석방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떨어져서 나도 나갈 수 없었다. 석방 생각 자체만으로도 잠을 못 잘 정도였는데 안 됐다.
제 개인적 꿈은 자유 민주주의 밥 양말이었는데 다 이뤘다. 다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처럼 우리 통일은 아직 못 이뤘다. 지금 국내 형편은 어떠나 세계에서 자살률 1위, 10대 사망원인 중 절반이 자살이다. 제가 희망을 이야기 하면, 이 더러운 세상 그런말 하지 말라 한다.
이혼율은 세계 2위, 도저히 이 남자와는 못 살겠다, 이 여자와는 못 살겠다 한다. 또 젊은 사람들 만나보면, 우리 딸도 지난해 29세에 시집 갔는데 내가 시집 장가 가란 소리 자체를 하는 것이 표 떨어지는 소리라 하더라. 못 가겠는데 어떻게 가냐 한다. 아파트 없어서 일자리 없어서 결혼 못한다 하더라. 남녀가 불꽃같은 사랑으로 결혼하는 것 아닌가.
우리 어머님은 16살에 시집을 오셨다. 저는 일곱 번째 아이로 태어났는데, 지금은 늦은 나이에도 아이를 안 가지시더라. 출산율이 조금씩 올라가고 있지만 세계에서 200등도 아직 안 되고 있다. 명절이 돼 세뱃돈 좀 주려고 하면 어른이 10명이면 애가 5명이 안 된다. 해마다 아이는 줄고 어른은 늘어난다.
옛날엔 세뱃돈 받아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지금은 세뱃돈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는 시대가 됐다. 저는 결혼해서 단칸셋방에 살면서 딸 아이 하나만 낳았다. 젊은 시절 혁명을 생각했지 아이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대한민국이 희망이 없는 나라? 저는 동의할 수가 없다”
방이 다 얼고 손이 다 얼었던 방에서 살았는데, 그래도 지금은 국회의원 3번 도지사 2번을 했다. 최장수 관찰사라 할 수 있다. 내가 당시 어려웠던 시절 이 더러운 세상에서 무슨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나 생각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고문도 많이 당했다. 전기고문 고춧가루고문 물고문 안 당한 고문이 없다. 지금은 건강검진 받으면 아주 건강하단다. 죽겠단 소리, 못 살겠단 소리, 결혼 못하겠다, 절망스럽다는 이야기 등이 어떻게 이렇게 쉽게 나오게 됐나.
대통령 욕하고, 대한민국 욕하고, 절망을 이야기 하고, 마구 욕설을 하면 매우 인기가 있고, 바른 소리하면 인기 없고 표떨어지니 그만 하라는 이야기, 이런 시대가 왜 오게됐는지 모르겠다.
제가 미국 출장을 가보니 뉴욕에서 최고 좋은 왈도프호텔에서 보면 밤에 인터넷으로 일을 좀 해야 하는데 이메일 자체가 너무 느리다. 돈은 25달러인데 인터넷이 열리질 않으니 시간이 늦다. 우린 지방에 모텔만 가도 인터넷이나 시설이 매우 빠르다. 결국 세계에서 가장 좋은 호텔보다 우리 모텔이 더 편리하다는 거다.
삼성 하나만 해도 일본 소니 파나소닉 등 7개 전자회사 순익을 합친 것보다 더 많다고 한다. 우리가 일본 전자 조선을 앞설줄 누가 알았나. 김연아가 군포 수리고 출신인데, 지금은 워낙 잘나가서 서울로 이사를 갔는데, 스케이트장 하나 없는 군포에서 어떻게 세계 최고의 선수가 나왔을까. 우리 장미란 선수도 마찬가지다. 소련 선수만 역도선수가 있는 줄 알았다. 골프 세계 일등도 마찬가지고 노래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 나가면 지금은 세계 1등이다. 이태리 교수들이 이야기 하길 앞으로 성악을 하려면 한국에 가야 할 것이라고 한단다. 목소리 성량도 좋고 발음도 좋단다. 노래방도 세계에서 가장 많고 춤도 세계 최고다.
대한민국 인권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렇게 잘 살게 됐는데 어떻게 절망이 이렇게 심한가. 카이스트 교수 학생 자살 자살이다. 어떻게 된 거냐. 우리는 식민지를 벗어나 분단된 가운데서 또 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자원이라는 건 기름 한방울 없는 척박한 땅에서, 피와 땀과 눈물로 모든 걸 이뤘다. 희망이 없는 나라라는데 저는 동의할 수가 없다.
전세계에서 대한민국을 배우자고 한다. 남미 아르헨티나 출신 이베로 아메리카협회의 사무총장이 얼마전 우리나라에 와서 이야기 나눴다. 꼭 부에노스아이레스와 경기도가 자매결연 맺자고 하더라. 저를 초청하는데 제가 36시간 비행기 타고 오가기가 쉽지 않다고 말씀 드렸더니 무조건 결연 맺어야 한다 하더라.
아르헨티나는 미국도 독일도 일본도 아니고 꼭 한국을 배우고 싶다 하더라. 이유를 들어보니 옛날 한국인 농업 이민인들이 몰려와서 코리안 타운이 형편없었는데, 갑자기 핸드폰 가전 컴퓨터 모든 분야에서 일본을 누르고 올라왔다더라. 짧은 그 시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묻더라. 그 짧은 시간에 그 못 살던 코리안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계속 묻는다.
미시건주 방문했을 때도 자동차로 유명한 디트로이트에서 작은 납품건이 있었는데 주지사 등 모두 나왔더라. 결국 제가 말하길 미국 자동차산업이 일어설 수 있는 길이 한국과 손 잡는 일 밖에 더 있겠냐고 했더니, 몇 달만에 바로 미시건 주지사가 경기도를 방문해 협약을 맺었다. 기브 미 초콜릿 외치던 나라가 지금은 미국 자동차를 도와야 하는 나라가 된 거다. 제가 미시건 주지사에게 말했다. 대한민국 국민은 어떤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도 기적을 이룰 수 있는 정신과 혼이 있다.
경기도가 세계선인장 시장의 70%를 수출하고 있다는 얘기에도 깜짝 놀라더라. 어떻게 사막 한평 없는 나라에서 그럴 수 있냐 놀란다. 우린 사막 대신 수경재배를 이용해 이쁘고 값싸고 없어서 못 팔 정도다. 사막 한평도 없어도 이렇게 가능하다. 제조업도 마찬가지고, 미용 산업도 마찬가지다. 양귀비라는 말이 퇴색해 사라지고 소녀시대의 시대가 온 거다.
“국가의 꿈이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문제는 국가 공동의 목표가 뭔지 합의가 안 되고 있다. 여야도 마찬가지고 합의가 없고 각자 이야기가 다 다르다. 옛날엔 잘 살아보세 한 목소리였다. 지금은 목표가 뭔가. 이것이 사라졌다. 군사독재를 타도하고 멋진 나라를 만들자고 감옥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던 시대였다. 또 고등학교 때도 교과서에 자기 권력을 이어가기 위해 제도를 바꾸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써 있었기에 뜻을 굽히지 않았다. 독재는 안 된다는 합의가 있었고, 배고프기에 잘 살아보세 땀흘렸다. 염색 공장에서 36시간 쉬지 않고 일을 했다. 봉급도 제대로 안 주는데 졸다가 손가락이 잘려도 일을 했다.
우리 집사람과 만날 때도 저는 공돌이 집사람은 공순이었다. 열심히 일해 돈을 모으고 집에 돈을 갖다드리고 살기 위해 애를 썼다. 힘든 일이었지만 참고 36시간 공장작업을 쉬지 않고 한번에 일하기도 했다. 지금은 경기도에서도 기능인들 수상때 보면 공고 출신인들이 매우 훌륭하다.
대한민국 오늘 소녀시대 김연아 화려한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돌이 공순이가 땀을 흘리고 일했는지 생각해야 한다. 개콘도 좋지만 우리 열심히 일하는 제조업 종사자들 이야기도 얼마나 가치있는 것인지 보여줘야 한다. 악조건 속에서도 졸음을 쫒아가면서 일하는 청춘을 왜 비춰주지 않느냐.
왜 공무원만 하려하고 대기업만 들어가길 원하면서도 대기업을 욕하는 시대가 됐나. 젊은 신규공무원들에게 왜 공무원이 됐냐고 물었더니, 음식점 알바를 했는데 그때는 아무리 친절하게 손님을 대해도 별 말이 없었는데, 공무원이 되고 나서 민원이들에게 조금만 상냥하게 해도 어떻게 공무원이 이렇게 친절하냐고 칭찬을 열 번 들었다고 한다. 친절한 공무원이 자신의 목표라고 한다.
국가의 꿈이 있어야 한다.
국민의 위대한 정신과 가치, 북한 주민들이 굶어죽고, 베트남까지 캄보디아까지 우리가 도와야 한다.
사람 인권 이야기 하는데 북한 중국 아프리가가 따로 있나. 강아지도 사랑하고 목욕시켜 주면서 우리 동포가 힘든데 왜 말하지 않는가. 아프리카까지 찾아다니면서 왜 우리 북한 동포를 말하지 않는가. 142cm만 되면 군대로 데려가는 북한의 현실이다.
통일로 가야 한다. 그들이 우리와 같은 동포이고 피를 나눈 사람들인데 최소한의 도움을 줘야 한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세습의 수용소에 갇혀 있는 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 지금도 탈북지 북송반대 운동에 가면 사람들이 별로 없다.
제가 대통령 출마한다고 인사드리고 우리 대통령 묘소 다 들러 인사 드렸다. 김대중 대통령 세계가 인정하는 평화대통령이다.
대통령이 왜 자기 집 강아지만도 못하게 욕을 해야 하나. 나라와 대통령을 이렇게 송두리째 부정하고 욕하는 선진국 본 적 있나. 북한을 보라 28살짜리가 저렇게 하고 있다. 굶겨죽이고 수용소로 보내는 저 지도자도 있는데 왜 우리가 우리 역사와 발전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나.
우리 지성인들도 생각해 봐야 한다. 어릴 때 가졌던 양말 한 켤레, 밥이나 한번 실컷 먹고 싶었던 마음이 지금은 어디갔나. 굶주리고 있는 북의 동포, 우리 고귀한 정신 꿈과 희망을 잊지 말고, 손을 맞잡고, 단결해서 대한민국 위대한 정신을 알리는 게 국가를 살리는 길이다. 고귀한 정신과 역사를 어디서 볼 수 있나. 지금 없다. 어디서도 발견할 수 없다. 이것을 만들어야 한다.
제가 얼마 전 마포에 박정희 기념관을 들러봤다. 대통령은 이야깃꺼리가 무궁무진하고 개도국 가운데서도 교과서중 교과서가 바로 한국이고, 잘 살아보세의 교과서 나라다. 지금은 이걸 욕하고 짓밟고 꼰대라고 욕해서 되겠나. 요즘 젊은이들 머리도 좋고 체격도 좋은데 전세계로 뻗어나가 최선을 다했으면 한다.
[출처] 김문수 블로그 “대한민국이 희망이 없는 나라? 저는 동의할 수가 없다”|작성자 김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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