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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요시모토 바나나 그리고 젊은 시인들과 마음 힐링

스카이뷰2 2018. 8. 21. 14:58




무라카미 하루키                    요시모토 바나나



무라카미 하루키· 요시모토 바나나 그리고 젊은 시인들이 주는 힐링  




여러분은 마음이 외로워 질 때 어떻게 하셔요? 십인십색이라고 아마도 굉장히 다채로운 ‘처방전’과 ‘치료법’이 나올 것 같군요. 어떤 사람은 ‘초콜릿을 먹는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무지하게 매운 비빔냉면을 먹는다’고 하더군요. 신록(新綠)을 한없이 쳐다본다는 사람도 있구요.

 

또 어떤 이는 무작정 영화관에 들어가서 영화를 본다는 답을 내놓았고, ‘아무 생각 없이 잠을 자버린다’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좀 특이한 대답으론 ‘물구나무 서기’를 하고 명상을 시도해본다는 ‘철학자스러운’ 응답도 있습니다. 욕조에 더운 물을 가득 채워놓고 그 안에 들어가 유행가를 흥얼거린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도대체 ‘마음이 외로워진다는 건’ 뭘까요? 고독이라든지 우울증이라든지 이런 일반적으로 정형화된 단계 이전의 뭐랄까 내밀한 ‘혼자만의 마음의 감기 증세’라고나 할까요. 아무튼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다가 어느 순간 불현듯 누군가로부터 혹은 무엇인가로부터 ‘위로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게 바로 ‘마음이 외로워진 증거’라고 제 나름대로 정의를 한번 내려 봅니다.      


느닷없이 웬 ‘외로움 타령’이냐구요? 맑은 초가을 주말 제가 갑자기 마음이 외로워졌었거든요. 요즘 몰두하고 있던 어떤 ‘주제’를 위해 관련 서적도 좀 읽고 그에 대해 글도 쓰고 하면서 나름대로 굉장히 바쁜 주말을 보내고 있는데 해질 무렵 갑자기 그 ‘마음’이 외로워지더라구요.


 

그동안 이런 예기치 않은 순간들을 가끔 겪어오면서 저는 ‘마음에 바이러스’가 침투했다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현대인은 ‘군중 속에서도 고독을 느낀다’는 사회심리학자의 주장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린 정말 이상한 순간에 마음이 외로워져 쩔쩔 맬 때가 있지 않나요?

 

처음 가보는 골목길에 행인은 아무도 없고 나 혼자 터벅터벅 걸어갈 때도 마음은 외로워지고, 친구들과 서너 시간 카페에서 아주 즐겁게  웃으면서 수다 떨고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서도 갑자기 마음 한 켠이 서늘해지면서 그런 증세를 느끼곤 하지요. 이렇게 느닷없이 ‘외로워지는 마음’이란 요물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길들여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마치 감기를 영구히 안 걸리게 해주는 ‘약’이 아직 지구상에는 존재하지 않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때그때 제 나름의 ‘대증요법’을 쓰곤 합니다. 어제 제가 내린 처방전과 치료법을 들으시면 아마도 여러분들은 ‘유치하다’거나 ‘어이없다’고 느끼실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 ‘외로움’이 다행히 ‘빠른 시간’안에 ‘회복’이 되었기에 소개해드리고 싶군요. 

  

무슨 대단한 ‘비책’은 아니랍니다. 우선 예전에 재밌게 읽었던 소설책이나 에세이집 혹은 시집 등 몇 권을 들고 단골 카페로 갑니다. 그곳에서 시원·쌉쓰름한 자몽주스를 한잔 시킵니다. 이 자몽주스는 다른 주스보다 좀 비싸서 그런지 ‘외로워진 마음’을 치유하는 ‘효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밑줄까지 그어가며 여러 번 읽어서 외울 정도가 된 좋아했던 문장을 찾아서 읽고, 그 다음 처음 페이지부터 천천히 읽어 내려갑니다.  어제 제가 카페에 가져가 ‘회복약’으로 복용한 책은(이러니까 무슨 책버러지같군요^^)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집 ‘키친’과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 ‘슬픈 외국어’ 그리고 그 전날 책방에서 새로 구입한 핑크빛 표지의 ‘2006 젊은 시’였습니다. 

 

 

다른사람은 어떨지 몰라도 저는 무라카미 하루키하면 그의 소설보다 오히려 담백하고 솔직한 에세이를 더 선호합니다.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다보면 그가 남자고 일본인인데도 동질감을 느낄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루키 본인이야 그런 걸 염두에 두고 쓰진 않았겠지만 독자들의 '눈치' 를 본 듯 조심스레 토로하는 그의 일상고백은 꽤나 재밌고 공감가는 부분이 많아서 '동류 의식'을 느끼곤 합니다.  

 

요즘 책방에 가보면 어느 대형출판사에서 일본의 여성 소설가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집을 하드카버로 아주 멋있게 만들어 아예 ‘바나나 특설코너’를 준비해 팔고 있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출세작 ‘키친’은 91년에 초판을 발행한 아주 오래되고 볼품없는 표지로 낡을 대로 낡은 책입니다.

 

하도 오래된 일이라 기억도 잘 나질 않지만 당시 대학 후배가 경영하는 출판사 편집실에 놀러갔다가 우연히 집어 들고 와서 단숨에 읽었던 기억이 이 책과 저의 첫 인연입니다. 그 때만해도 국내에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존재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입니다.

 

64년생인 요시모토 바나나는 ‘키친’이라는 짤막한 소설로 일본의 권위 있다는 ‘해연 신인문학상’을 87년 수상했고 그 이후 지금은 거의 ‘세계적인 작가’로 알려져 있지요. 바나나라는 필명에서부터 왠지 좀 당돌한 기운이 느껴지게 하는 그녀의 ‘키친’과 ‘만월’을 보면서 일본 신예들의 ‘반짝거리는 패기’를 느낄 수 있었고 읽는 동안 ‘행복하고 순수한 마음상태’가 되는 괜찮은 경험을 했었습니다. 

 

누군가는 바나나의 문장들은 살아서 퍼덕이며 강을 오르는 한 마리 송어를 연상케 한다는 말을 하더군요. 아무튼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은 요즘 우리 젊은 작가들로부터는 어떤 평을 듣고 있는지 모르지만 저는 ‘바나나를 읽고 있으면 순수하고 착해지는’, 그러니까 착한 동심으로 돌아가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외로워질 때’는 치료제로 종종 ‘키친’을 복용하곤 했습니다. 혹자는 너무 황당하고 만화스럽다는 혹평을 하기도 합니다만.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소를 말한다면, 그곳은 부엌이다”로 시작해 “꿈의 부엌, 나는 몇 개나 그것을 가질 것이다. 마음속에서 혹은 실제로 여행길에서, 혼자서, 여럿이서, 둘만이서, 내가 살아가는 모든 곳에서 틀림없이 나는 많은 부엌을 가질 것이다”로 끝나는 그 소설을 읽고 나면 늘 ‘깨끗한 기분’이 되고 외로워졌던 ‘바보 같은 마음’도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씩씩해지곤 합니다.

 

어느 정도 여유를 되찾은 마음은 이제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 ‘슬픈 외국어’를 펼쳐들고 이미 밑줄이 그어져 있는 부분에 눈길을 보냅니다.  49년생으로 이젠 영락없는 70대 초반 '늙은 아저씨'가 된 무라카미 하루키는 누구나 그러하듯이 ‘마음만은 청춘’이어서 철없는 소리를 늘어놓고 있습니다.

 

“‘사내아이’의 동심을 언제까지나 간직하고 싶다”는 제목의 그의 수필은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사내아이’라는 말에는 아직껏 이상하게 마음이 끌린다는 고백을 하면서 그는 ‘사내아이’의 정의를 이렇게 내리고 있습니다.

1)운동화를 신고 다니고

2)한 달에 한번 미장원이 아닌 이발소에 가며

3)일일이 변명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하루키의 ‘사내아이’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깨끗하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작가의 '인생법'을 나타내는 이미지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는 언젠가 다른 수필에서도 ‘영원히 운동화 끈을 조여매고’ 달리고 싶다는 고백을 했듯이 실제 생활에서도 1년에 320일은 운동화를 신고 다닌다고 합니다. (운동화 제조회사에서 굉장히 좋아하겠죠?^^)


‘무라카미 하루키’하면 우리 젊은 작가들에게 ‘절대적 영향력’을 미치는 몇 안 되는 일본 작가 중의 한 사람이죠. 저도 그의 ‘상실의 시대’를 시차를 두고 몇 차례 읽었지만 읽을 때마다 절절한 느낌을 들게 하는 ‘매력적인 장편소설’인 것 같더군요. 하지만 저는 그의 소설들보다 수필들이 훨씬 더 마음에 듭니다.


 

웬만한 하루키의 수필집은 거의 읽었습니다.  집에 지금 있는 것만 해도 대 여섯 권은 넘는 것 같습니다. 한때는 ‘캔 맥주를 마시면서 하루키의 수필을 보는 것’이 저의 최고의 여가 활용법인 적도 있었답니다.^^  돈 안드는 여가활용, 참 쉽죠?^^&   

 

‘영원히 청년 정신’을 잃지 않으려는 그의 다짐도 ‘세월 앞엔 장사 없듯이’ 이젠 그도 영락없는 ‘老신사’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수필집은 아주 오래된 이야기라도 신선한 매력을 풍기는 것 같아, ‘마음이 외로워질 때’ 읽어보면 꽤 도움이 되는 것 같더군요.

 

하루키와 바나나의 책들이 오랜 벗들이라면 얼마전 책방에서 1만원의 ‘현찰’을 주고 구입한 ‘젊은 시’라는 시집은 '신상품'의 매력이 듬뿍 있었습니다. 오! 그들 청년 시인들의 ‘푸른 감수성’이라니!

최근 3년 사이에 한국시단에 이름을 올린 젊은 시인들의 ‘피 같은’ 시들을 보면서 저도 오랜만에 ‘날선 감수성’을 회복한 것 같은 기분이 들더군요.

 

‘후생이 가외’라는 옛말도 있지만 청년시인들이 공들여 쓴 ‘등단작’을 한 편 한 편 읽어나가다 보니 마음이 뿌듯해져 오면서 ‘외로워진 마음’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버렸습니다.^^ 비싼 자몽주스 효과도 있었겠지만 이 믿음직한 젊은 시인들과의 ‘조우’는 ‘외로워진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는 것 같았습니다.

지난 한 주 동안 쌓였던 세속의 먼지도 말끔하게 씻어준 저에겐 가장 큰  ‘정서적 선물’인 셈이었답니다.

 

 이렇게 해서 또 새로운 한 주를 활기차게 맞이한 겁니다. 너무 시시한 이야기를 너무 길게 늘어놓은 것 같군요.^^  여러분 마음이 외로워지시면 즉시 카페로 달려가, '힐링 용 독서'를 해보시길 강추합니다.

현대인의 필수 조건이라는 '우울한 마인드'를 오래 갖고 있으면 몸에 좋지 않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행여 하시는 일이 잘 안 풀려 우울해질 땐 거기에 그냥 함몰되시지 마시고 반나절 안에 풀어 버리세요. 그날의 피로는 그날에 풀어버리자는 무슨 제약회사 약광고도 있듯이 이 우울이나 피로는 누적되면 건강에 적신호를 일으킨다지요.


지금 혹시 우울하신 분들은 일단 '분위기 좋고 커피값 싼' 카페로 가세요. 그리고 아이스 커피나 자몽주스를 마시고(자몽이 싫으면 좋아하시는 걸로^^) 좋아하는 소설들을 보시든지 아니면 카페에 비치되어 있는 여행잡지라도 펴세요. 활자의 세계로 일단 빠져드는 순간 당신은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시는 겁니다. 새로운 순례자의 길을 가는 거죠.  그러다보면 '그 못된 우울이라는 놈'은 눈녹듯 사라져버릴 겁니다. 이제 찌는 듯한 고얀 여름도 며칠 안남았습니다. 여러분 화이팅!!! 굿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