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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 아들 정조의 어린 시절 한글 편지들과 국화도

스카이뷰2 2019. 1. 19. 19:07



 

 

 ‘ 문안 알외옵고 몸과 마음 무사하신 문안 알고져 하오며 이 버선은 나한테는 작으니 수대(외사촌으로 추정) 신기옵소서. 조카.’ 5~6세 무렵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이 편지에는 자기 버선이 작으니 외사촌에게 주라는 얘기가 들어 있다./ 국립한글 박물관

 

                                                                      

           정조대왕이 즉위후 그린 국화도.거의 프로 급이다. !!!   

 

 


'비운의 왕자' 사도세자를 아버지로 둔 정조 임금(1752~1800)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애잔하다. 아버지가 할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어갈 때 "아버지를 살려주옵소서"라며 할아버지에게 눈물로 하소연한 열살짜리 어린 왕자가 입은 정신적 충격은 치유되기 어려운 트라우마였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즉위하자마자 첫 일성으로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고 외쳤겠는가. 하지만 '선왕께서 과인을 효장세자의 아들로 입적하셨으므로 그 뜻을 따라야 한다. '고 덧붙여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던 친부의 원수를 갚겠다는게 아니라는 걸 천명했다고 한다.  그 상황을 생각하면 21세기 평범한 시민인 나도 눈물이 날 정도다. 


자신도 아버지처럼 비극적 죽임을 당할까 염려한 어린 왕자가 밤에 자객이 들까 두려운 나머지 밤잠을 안 자며 책읽기에 몰두했다는 이야기, 그탓에 시력이 나빠져 조선의 왕으로선 최초로 '안경잡이'가 되었다는 이야기 등등은 마흔 아홉에 세상뜬 '단명했던' 정조의 애틋한 개인사로 두고두고 회자되어 왔다.  

 

그런 정조임금이 대 여섯살 '원손시절'쓴 한글 서찰이 공개됐다. 국립한글박물관이 2014년 공개한 정조국문어필첩은 정조가 만 3~4세경부터 46세인 정조 22년(1798년)까지 큰외숙모 여흥민씨(驪興閔氏·큰외숙부 홍낙인의 처)에게 보낸 편지 16점을 모아 만든 어필첩이다. 예필(睿筆·세자나 세손 시절 쓴 글씨) 2점, 예찰(睿札·세자나 세손 시절 쓴 편지) 7점, 어찰(御札·왕 즉위 후 쓴 편지) 7점으로 구성돼 있다.

 

사도세자의 부인 혜경궁 홍씨는 1805년 정순왕후 사망으로 벽파가 몰락한 뒤 자신의 집안에 있는 정조

어찰을 일괄적으로 정리하는 사업을 실시했다.  당시 2000여통에 이르는 편지를 58첩으로 묶었는데 그중 하나가 경매에 나온 것이다. 임금인 시아버지 눈밖에 난 젊은 남편이 비명횡사하는 걸 지켜봐야했던 혜경궁 홍씨의 파란만장한 인생의 한 페이지에 '가문의 영광'을 기록으로 남기려  요즘 말로 '기록물 출간'을 시도했다는 대목에서 왕실 여인들의 강건한 역사의식을 엿볼 수 있는 것 같다.

 

정조의 한글 편지가 많지 않은 데다, 7세 이전 아주 어린 나이에 쓴 한글 편지가 들어 있어 사료적 가치가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굳이 그런 전문적 설명을 듣지 않더라도 250여년 전 삐뚤 빼뚤 써내려간 어린 왕자의 한글 서한은 '역사적 감동'으로 다가온다.    

자신의 외숙모에게 한글 편지를 보내면서 편지 말미에 '질(姪)'이나 '원손(元孫)'이라고 쓰고 있는 1759년, 일곱살배기 왕자의 자신에 대한 '존재 인식'이 영특해 보인다. 아무래도 엄한 '왕실 교육' 덕분이겠지만 다섯살때부터 자신의 의사를 편지로 써서 보냈다는 사실은 '왕재'로서의 자격이 충분한 듯하다.

 

편지 내용도 상당히  조숙하다.  5~6세 무렵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이 편지에는 자기 버선이 작으니 외사촌에게 주라는 얘기가 들어 있다. '문안 알외옵고 몸과 마음 무사하신 문안 알고져 하오며 이 버선은 나한테는 작으니 수대(외사촌으로 추정) 신기옵소서'라는 내용을 한글로 써내려간  '원손'의 총명함은 지금 21세기의 또래 어린이들보다 훨씬 조숙해 보인다. 당시 왕실의 검소한 생활모습도 엿볼 수 있는 것 같아 흥미롭다. 제대로된 사극 드라마가 없는 요즘 세상에 이런 서한들을 보면서 그 시대를 상상해보는 것도 꽤나재미있는 시간이다.


*사족: 얼마전 읽은 정조임금의 '어록'중 정조가 '잘 생긴 사람들이 벼슬에 오른다면 조정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는 대목이 떠오른다. 그 자신 요즘 '꽃미남 탤런트'들보다 훨씬 출중한 외모를 갖췄던  

다재다능한 정조임금이 '미남'을 좋아했다는 사실이 여러가지 상상을 불러 일으킨다.   

 

    

 어린 정조의 한글 편지 전문.

1. 숙모 여흥 민씨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

숙모님 앞
서릿바람에 기후 평안하신지 문안 알고자 합니다.
(큰외숙모님을) 뵌 지 오래되어 섭섭하고 그리웠는데 어제 편지 보니 든든하고 반갑습니다.
할아버님께서도 평안하시다 하니 기쁘옵니다.
원손(元孫)

2.
국동 홍 참판 댁에 전달하여 바침. 삼가 봉함.

섣달 추위에 기후 평안하신지 문안 알고자 합니다. 내년은 어머님 육순이시니 경사스럽고 다행스러운 심정을 어찌 다 형용하여 아뢰겠습니까.
새해 초 경사 때에 들어오시면 뵐 수 있을까 하여 든든하고 기다려집니다.
세찬(歲饌) 몇 가지는 변변치 않으나 해마다 보내던 것이기에 보내오니 수대로 받으옵소서.
새해가 멀지 아니하였사오니 내내 평안하시기를 바라옵니다.
계축 납월(臘月) 염일(念日)(1793년 12월 20일)

3.
인삼 한 냥, 돈 일백 냥, 쌀 한 섬, 솜 다섯 근, 큰 전복 한 접, 광어 두 마리, 추복 열 접, 생대구 한 마리, 청어 일 급, 살진 꿩 한 마리, 생치(生雉) 세 마리, 곶감 두 접, 새우알 석 되, 꿀 다섯 되, 전약(煎藥) 한 그릇, 민강(?薑) 세 근, 서울산 담뱃대 한 개, 담배설대 다섯 개.
계축 십이월 일

 


		‘오래 편지 못하여 섭섭하더니 엊그제 편지 보고 든든 반갑습니다. 원손.’ 정조가 5~6세 무렵 외숙모에게 보낸 한글 편지. 표현이 꽤 성숙하다. /김미리 기자
 

  ‘오래 편지 못하여 섭섭하더니 엊그제 편지 보고 든든 반갑습니다. 원손.’ 정조가 5~6세 무렵 외숙모에게 보낸 한글 편지.

표현이 꽤 성숙하다. /조선닷컴



정조가 1793년 12월 국동 홍참판에게 보낸 편지

최초로 공개된 정조의 어렸을 때 필체를 비롯해 한글로 쓴 이 편지 묶음 16점은 사료적 가치가 높다. 정조어필한글편지첩 은 애초 3점만 알려졌는데 16점이 공개됐다. 정조의 한글 편지 가운데 실물이 남아 있는 것도 정조어필한글편지첩이 유일하다. 정조의 한글편지 묶음 가운데는 세자 시절 및 왕 즉위 후 쓴 편지가 포함됐다. 정조의 한글 필치 변화상을 그의 나이 변화에 맞춰 볼 수 있고, 왕실 편지의 특성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