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카페 산책
사교와 놀이 그리고 담론의 멋스러운 풍경
단돈 ‘1만 6천원’으로 유럽 곳곳에 있는 카페를 행복하게 순례했다면 여러분은 믿지 않으시겠죠. 하지만 에누리 없는 진실이랍니다.
여러분도 제가 일러드리는 대로 하신다면 유럽 최고의 예술인들이 ‘사랑방’처럼 드나들었던 카페에 들러서 그들의 예술과 인생을 함께 나누며 모처럼
‘순수한 영혼의 행복’을 누리실 수 있을 겁니다.
일단 서울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에서 ‘유럽 카페 산책’을 할 수 있는 ‘티켓’ 값 1만 6천원을 지불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명문장가(名文章家)’로 유명한 인제대학 명예교수 이광주 선생님이 쓴 ‘유럽 카페 산책’을 일단 손에 넣으시면 그때부터 ‘신나고 행복하고 환상적인’ 유럽 카페 산책을 하실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사람마다 글에 대한 취향이 다르기에 ‘100%장담’은 못하지만 최소한 저는 이 ‘유럽 카페 산책’을 하는 동안 아주 오랜만에 ‘글 읽는 기쁨’에 빠져 지루한 일상을 ‘아까워하면서’ 보냈답니다. ‘산책’이 끝나는 게 너무 아쉬워 일부러 ‘아껴가면서’ 페이지를 천천히 넘길 정도였으니까요.
무슨 고3 수험생인양 밑줄까지 그어가면서 저자인 이광주 선생님의 현란한 문장력에 존경과 탄식을 함께 보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맛있게’ 또 ‘멋있게’ 그리고 낭만적이면서 아련한 슬픔마저 맛 볼 정도로 ‘대단한 문장력’을 보여주는지 저자가 마냥 부러웠답니다.
세상 살아가면서 그냥 ‘글자를 읽을 줄 아는’ 것만으로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갖게 해준다는 건 저자의 대단한 재주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저의 ‘유럽 카페 산책’은 우연히 이뤄졌습니다. 교보문고에 진열돼 있던 ‘유럽 카페 산책’을 우연히 발견했고, 책날개를 펼치는 순간 이런 시구와 맞닥뜨렸습니다.
“고민이 있으면 카페로 가자.
그녀가 이유도 없이 만나러 오지 않으면 카페로 가자.
장화가 찢어지면 카페로 가자.
월급이 400크로네인데 500크로네 쓰면 카페로 가자.
바르고 얌전하게 살고 있는 자신이
용서되지 않으면 카페로 가자.
좋은 사람을 찾지 못하면 카페로 가자.
언제나 자살하고 싶다고 생각하면 카페로 가자.
사람을 경멸하지만 사람이 없어
견디지 못하면 카페로 가자.
이제 어디서도 외상을 안 해주면 카페로 가자.”
이런 시 구절을 보니까 ‘젊은 날의 감수성’이 꽃처럼 피어나는 것 같더군요.
몇 페이지를 넘기니까 또 이런 구절들이 나왔습니다.
“나의 집과 카페의 관계는 결혼과 연애의 관계와 같다.”
“카페는 나의 집의 장점을 모두 갖추고 단점을 모두 치워낸 우리 집이다. 즐겨 찾아가서는 좀처럼 떠나기가 어렵다.”
“카페는 무엇이든 거의 할 수 있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좋은 자유의 터전이다.”
“카페는 오스트리아 빈 사람들의 악덕이다. 집에는 도저히 초대할 수 없을 만큼 재미있는 사람들과 만나는 장소. 가정으로부터 도망하고 여자로 부 터 피신하면서 여인을 찾아가는 곳이다.”
“카페, 진정한 천국이라는 곳에 있는 기분.”
이쯤 되면 ‘유럽 카페 산책’을 거부할 이유가 전혀 없게 되는 셈이지요. 목차를 보니까 파리· 베네치아· 로마· 런던· 빈· 베를린· 프라하· 부다페스트 순서로 유명 카페들이 나와 있었습니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현지 카페의 칼라 사진이 거의 매 페이지 마다 실려 있는데 그냥 이것만 봐도 유럽 카페에 다녀온 기분이 드는 것도 마음에 들더군요. 유럽 여행을 주마간산 식으로 하긴 했지만 그때보다 더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튼 ‘유럽 카페 산책’을 하는 동안 하찮은 자신의 존재는 선반위에 올려놓은 채 자기가 무슨 예술가라도 되는 듯한 ‘행복한 착각’에 빠질 수 있었던 것도 요 근래 느끼기 어려웠던 소중한 체험이었습니다. 이게 모두 저자인 이광주 선생님의 ‘빼어난 글 솜씨’ 덕분이었지요.
1686년 프랑스에서 최초로 등장한 카페 프로코프는 소르본느 대학이 있는 지식인의 거리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까마득한 옛날이지요. 출입하는 손님들 대부분은 부르주아 출신의 지식인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서양사 시간에 들어봤던 저명한 시인·문인· 철학자들이 단골손님으로 ‘등록’했답니다.
루소· 몽테스키외· 디드로· 라퐁텐· 보마르셰 등등의 단골들이 북적대던 1790년대 무렵을 상상해 보세요. 참 대단하죠. 그때 볼테르는 한 사나이를 평하면서 “그는 극장과 프로코프에 출입하는 것으로 자신을 상당한 인물이라고 여긴다”고 비꼬았다는 군요.
‘파리의 진정한 신문’으로 일컬어진 카페 프로코프는 유토피아와 모반의 터전이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프랑스 혁명사를 배우면서 들었던 적이 있는 마라· 당통· 로베스피에로· 미라보 등이 밤이면 모여 앉아 정보를 교환하고 혁명작전을 모의했답니다.
21세기 한국에서도 ‘도청’ 때문에 시끄럽지만 그때는 ‘기계적 도청’은 못했지만 스파이를 카페의 도처에 투입시켜, 지식인들을 감시했습니다. 지식인들은 그들을 ‘파리떼’라고 부르며 경계해 주로 ‘은어’로 말을 주고받았습니다. 예를 들어 종교는 ‘말 많은 여자’ 신(神)은 ‘존재자’ 영혼은 ‘곰보’ 혹은 ‘굴러먹은 여자’로 표현했다니 ‘옛사람들의 유머감각’도 대단하죠?
‘프랑스 혁명의 맏아들’임을 자처하는 나폴레옹도 카페 프로코프의 단골이었습니다. 그는 자주 드나들어 찻값을 지불하지 못할 때는 군모를 두고 갔다고 합니다. 나폴레옹은 파리를 “지난날 존재하고 지금도 존재하는 가장 아름다운 도시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 존재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도시”가 되기를 소망했다니 역시 ‘예사로운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카페 프로코프가 ‘혁명의 산실’에서 ‘문학의 산실’로 그 역할 교대를 하면서 스탕달을 비롯해 발자크· 빅토르 위고· 아나톨 프랑스· 오스카 와일드· 베를렌 등이 수시로 출입했습니다.
멋쟁이 ‘파리지엔느’ 들은 ‘삶의 즐거움을 집보다는 밖에서 찾는 본능’탓에 카페를 제집 드나들듯 했답니다. 그들은 낮과 아침, 밤과 야밤도 가리지 않고 카페 출입을 했는데, “플로르에서 오전 0시에 만나세”라는 약속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정도로 카페를 좋아했다는군요.
그 유명한 스타들인 장 폴 벨 몽드, 알랭 들롱, 로만 폴란스키 감독등과 유명 패션 디자이너들인 아르마니, 카르뎅, 라가펠드 등도 파리의 카페 플로르의 단골이었다지요. 여배우 시몬 시뇨레는 “오늘의 나는 1941년 3월의 어느 날 밤 파리 6구 생 제르망 거리의 카페 드 플로르에서 태어난 사람입니다”라고 말했답니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카페 플로르 2층을 아예 ‘집필실’로 삼고 오전 9시에 출근해 오전 내내 함께 집필하고, 점심 먹고 들어와 지인들과 한· 두 시간 수다 떨다가 오후 내내, 폐점 때까지 집필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들의 방대한 저서들은 모두 ‘메이드 인 플로르’ 였다고 합니다.
재밌는 건 사르트르가 방대한 집필 틈틈이 보부아르의 눈치를 살펴가며 몇 몇 여성들에게 하루 10통이 넘는 ‘연서’들을 몰래 써서 보냈다는 겁니다.
이 플로르에는 ‘야간비행’의 작가 생텍쥐페리가 언제나 부인을 동반하고 나타났다고 합니다. 퍽 애처가였나 봅니다. 다른 문인이나 예술가들이 ‘부인을 피해’ 카페에 모여든 것과는 대조적이죠. 이 카페에는 피카소, 헤밍웨이, 카뮈, 앙드레 말로, 롤랑 바르트로도 끼어있었습니다.
자! 이쯤에서 방문객 여러분의 ‘오롯한 유럽 카페 산책’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카페 소개는 마칠까 합니다.
‘유럽 카페 산책’을 하시다 보면 베네치아의 카페 플로리안, 로마의 카페 그레코, 런던의 커피하우스와 클럽, 빈의 카페 첸트랄, 베를린의 로마니셰스 카페, 유럽 제일의 아름다운 도시 프라하의 카페 우니온과 아르코, 슬라비아. 정념의 도시 부다페스트의 카페 뉴욕과 제르보 등 유럽에선 ‘내로라’하는 카페의 ‘단골고객’이 되고 맙니다.
이런 카페들에 얽힌 보석처럼 빛나는 이야기들을 만나다 보면 여러분은 ‘살아있다는 것의 기쁨’을 새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문장 하나하나에 공을 들이고, 어느 문헌에서 길어 올렸는지 ‘가슴 벅차오르는 ’ 명문들과 함께 하다보면 유럽 카페의 커피향이 온 몸으로 피어오르는 ‘진귀한 경험’을 만끽하게 됩니다.
새순이 돋아나는 이 찬란한 봄날, ‘유럽 카페 산책’ 한번 해보세요. 시끄러운 조국 대한민국을 훌쩍 떠나 한 바퀴 돌다 오면 ‘그래도 인생은 살만 한 것이야’라고 혼잣말을 하시게 될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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