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단상

'버지니아 공대 사건'과 '대한민국 사용후기'라는 책

스카이뷰2 2007. 4. 18. 16:14
 

 

    <한국 때리기를 강력히 시도한 '대한민국 사용후기' 책표지 앞면>

   

 

  '버지니아 공대 사건'과 '대한민국 사용후기'라는 책


어제 하루는 ‘미국 발(發) 쇼크’로 무척이나 우울했습니다. 아침식탁에서 ‘버지니아 공대 사건’의 용의자가 아시아계라는 소리를 듣고 우리 가족은 ‘중국계’일거라고 동시에 말했습니다.


왠지 그런 끔찍한 사건은 한국인의 정서와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오후 뉴스에 ‘한국계 학생’이 범인이라는 뉴스가 나오면서부터 한동안은 멍한 느낌이었습니다. 그 충격은 오늘 아침까지 이어져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것도 힘이 들 정도였습니다.


조간신문들은 몇 페이지에 걸쳐 ‘특집’으로 그 사건을 상세히 보도했습니다. 그 기사를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챙겨 읽고 나서 저는 “이번 사건의 본질은 ‘한국계 학생’이 아니다”라고 외치고 싶더군요.


물론 범행을 저지른 그 학생을 옹호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신문들이 너무나 ‘한국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해 보여 화가 났던 겁니다. 저는 이번 사건발발의 핵심은 ‘미국의 총기 소유 허용 문화’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총기소유’는 미국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고 하니 어쩔 수 없는데다가 총기제조업자들의 막강한 커넥션이 정치인들의 자금줄을 좌지우지하면서 어쩔 수 없이 그냥 이날 이때까지 수많은 ‘총기사고’에 휘둘려 오면서도 어정쩡하게 ‘총기소유’를 허용하고 있는 실정이라니까 냉정하게 말한다면 미국인들이 화를 자초한 일이라고 말할 수 도 있을 겁니다.


제 기억에도 무슨 고등학교에서까지 총기사고로 수십 명이 숨진 사건이 얼마 전에도 일어난 곳이 바로 미국 아닙니까! 그런 사고 이후에도 어떤 확실한 예방책도 세우지 않았고, 어제 사건도 어디서 많이 들었던 소리인 ‘경찰의 늑장대처’가 화를 불렀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실소마저 나오더군요.


어쨌든 32명의 아무 죄 없는 생명들이 단지 학교에 공부하러 갔거나 혹은 학생들을 가르치러 강단에 섰다가 한 ‘정신이상자’의 총기난사로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에 고인들의 명복을 진심으로 빕니다. 아울러 그 가족들에게도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제가 쓰고 싶은 이야기는 ‘버지니아 공대사건’은 아닙니다.     

그 사건보다 저는 어제 조간신문에 났던 한 미국인에 관련한 기사를 보고 화가 좀 나있는 상태였습니다.


평소 ‘친미주의’쪽에 가까웠던 저는 한 미국인이 최근에 썼다는 ‘대한민국 사용후기(使用後記)’라는 제목의 책을 소개한 어제 신문기사에 큰 불쾌감을 느꼈습니다. 

조금은 거만해 보이는 표정의 한 미국남자의 전신사진이 어른 손바닥보다 더 크게 실렸고, 제 엄지손톱만한 크기로 “한국엔 천박한 민족주의 넘친다”라는 제목이 보였습니다.


게다가 “탈북자에겐 도도하면서 축구시합 땐 한민족 수호자나 된 듯 편파판정 땐 해외사이트 마비까지” “도시 95%가 콘크리트· 유리로 떡칠이 된 차갑고 추한 쓰레기장으로 변모해도 외면”이 부제로 크게 나와 있었습니다.


저는 애국자는 못되지만 이런 투의 ‘한국을 멸시하는 기사’에는 어김없이 거부감을 느낍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나라’를 비웃는 내용도 참기 어렵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남의 나라’를 비웃는 내용의 글에도 동일한 거부감을 느낍니다.


서로 문화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타국의 소소한 부분을 침소봉대해 비꼬는 식의 책들은 그래서 좋아하지 않습니다. 예전에 무슨 ‘일본은 없다’ 식의 책이 한창 화제를 불러일으켰을 때 좀 심란한 마음이 들었었지요. 그런 책들이 나오니까 또 일본 쪽에서는 ‘냄새나는 한국인’ 식의 반격하는 책들도 쏟아져 나왔습니다.


아무튼 그런 식으로 ‘남의 나라’ 헐뜯는 책들은 그 저자의 교양과 품성을 의심하게 합니다. 남의 나라에서 살다보면 별별 웃지 못할 일들이 일어나게 마련이지요. 하지만 그걸 무슨 큰 흉이라도 되는 양 비꼬고 비웃고 하는 건 그 나라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한국과 일본, 한국과 미국은 역사적으로 많은 ‘사연’이 있는 나라들이고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쪽으로 가서 많이 살고 있기에 더구나 벼라별 사연들이 많이 들려왔습니다. 지금도 수백만 명의 우리 교민들이 일본과 미국에 살고 있으니 그들의 ‘타국살이’에는 온갖 애환이 있겠지요.


하지만 요샌 대한민국도 세계 경제대국 10위권에 당당히 들고 있는 나라이고 보니 그쪽 사람들도 우리나라에 많이 와서 살고 있지요. 그러다보니 그들도 우리에게 ‘맺힌 게’ 적지 않게 쌓였을 겁니다.


그동안은 주로 일본인들이 우리를 업신여기는 못된 소리를 많이 하더니만 이젠 세계 최고 강국이라는 미국인마저 우리를 비난하는 걸 보면 우리가 크긴 컸나보다 라고 생각하면서도 어제 신문 문화면에 실린 기사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버지니아 공대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잠시 의기소침해졌습니다.

왜냐면 그 신문기사에 소개된 J.스콧 버거슨 이라는 미국남자가 하도 호기롭게 우리를 비난하는 품새를 보면서 “아 우리가 정말 잘못했나봐”라는 착각마저 잠시 하게 되었거든요. 


하지만 그 미국남자가 썼다는 ‘대한민국 사용후기’라는 책을 살펴보면서 그가 ‘개인적인 원한’으로 우리 대한민국을 비방한다는 걸 강하게 느꼈고, 그런 사람이 쓴 책을 보고 행여 우리를 왜곡할지도 모르는 외국인들에게 그의 주장은 ‘편견’에 불과하다는 걸 알리자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더구나 ‘버지니아 공대 사건’이 터지고 나니까 아무래도 세계적으로 대한민국이 ‘이슈의 대상’이 되고 보니 그 미국남자의 주장이 자칫 설득력 있게 먹힐 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들더군요.


한 권의 책을 쓴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저도 예전에 책 한권을 쓴 적이 있는데요, 워낙 능력 모자라는 사람이다 보니 책을 다 쓰고 나니까 몸무게가 꼭 4kg이 줄더군요. 그만큼 에너지 소모가 많았다는 얘기도 되겠지요.

그래서 누가 책을 냈다면 일단 그가 그 책을 집필하는데 드렸을 시간이나 노력과 기타 여러 상황들이 떠올라 그에게 일단 ‘경의’를 표하게 됩니다.


버거슨이라는 그 미국남자도 책을 내기까지 많은 자료수집과 시간을 바친 것 같더군요. 하지만! 10년째 한국에 살면서 한국을 ‘관찰하고 사용했다’는 그는 한국인에 대해 심한 편견과 오만의 관점에서 다가간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좀 심하게 말한다면 그는 ‘혐한파(嫌韓派) 미국인’이라고 볼 수 있더군요.


그의 책을 보면서 이렇게 ‘예의 없이 마구 써 나간 저의가 과연 무얼까’를 계속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책을 비교적 자세히 읽어 내려가다 보니까 그가 왜 그렇게 한국을 ‘씹고 있는 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우선 그가 쓴 책의 일부를 독자들에게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의 책 제목부터가 좀 불쾌하지요. 대한민국이 무슨 물건입니까? 어떻게 남의 나라에 대해 ‘사용후기’라는 제목을 붙일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말하자면 “써 보니까 이렇더라” 뭐  이런 뉘앙스를 풍기려고 그랬겠지요.


책은 제목 장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제목이 중요하다는 얘기일겁니다. 제목이 중요한 게 어디 책 뿐 이겠습니까. 유행가도 그렇고 상품도 그렇고 뭐든 타이틀이 그 이미지를 좌우하지요. ‘대한민국 사용후기’라는 걸 딱 보는 순간 저는 좀 껄끄러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책의 제목이야 어디까지나 저자 마음이니까 뭐라 할 수는 없지만 무례하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아무튼 이 책은 10개의 소제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제목들도 한결같이 도발적이고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야 눈길을 끈다고 생각했겠지요.


<피맛골 대학살> <역사 강간> <천박한 민족주의에 대하여> <미제 침략자의 북한 방문기><어느 386아저씨의 초상><참을 수 없는 생각의 가벼움><국수주의 황소><섹시한류><한국에서 반드시 사라져야할 사람들><한국에서 레즈비언으로 산다는 것> 이렇게 나누어진 소제목 아래 이 미국남자는 그야말로 ‘천의무봉’하게 아무 걸거침 없이 파죽지세로 ‘한국인 때리기’에 나섰습니다.


서문에서 그는 “ 한 물먹은 흰둥이의 관점으로 쓰였다. 만약 이 에세이나 인터뷰가 당신을 화나게 한다면 그건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다. 사실 그게 이 책의 의도다”라고 썼더군요.


그러니까 의도적으로 한국인을 약 올리겠노라고 선전포고를 한 셈이지요. 글쎄요, 이게 상품을 제작해서 판매하는 사람의 진정한 자세인지는 모르겠네요. 소비자를 화나게 해서 그 물건을 팔아보겠다는 건 미국에선 어떨지 몰라도 한국에선 안 통한다는 걸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이 책을 ‘관찰대상’으로 삼았던 것은 그를 다룬 신문기사의 말미에 “한국인 여자 친구와 얼굴에 신발자국을 내며 헤어졌다”는 기상천외한 표현 탓이었습니다.

굉장히 폭력적이고 원색적인 표현 아닙니까? 살벌한 기운마저 느껴지지요.


그래서인지 신문의 문화면 기사의 사진치고는 꽤 크게 나온 그의 전신사진이 더 섬뜩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기사를 쓴 기자는 그런 폭언을 하는 미국인에게 그래도 어느 정도는 호감을 갖고 쓰는 것 같더군요.


인간은 누구나 각자 개인감정이라는 게 있는 것이고 특히 그런 신문에 기사를 쓰는 기자들은 그래도 어느 정도 ‘수준’있는 인재들일 테니까 그 기자가 그렇게 쓴 것 자체는 나무랄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여자 친구와 그런 식으로 헤어졌다는 걸 버젓이 말한다는 건 이쪽을 좀 무시하는 화법이 아닌가 싶네요.

어쨌든 그 미국남자는 <한국에서 사라져야 할 사람들>이라는 챕터에서 ‘한국인의 교사’를 자처하고 나선 것 같습니다. 거의 막말 수준의 욕설까지 해가면서요.


“내가 홍대 앞에서 놀지 않은 지는 한 2년 됐다. 그 동네 거의 모든 것을 증오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무렵이다. 마치 자기가 미국의 어느 빈민촌 흑인 양아치인줄로 착각하는 강남의 중산층 남자애들. 끽해봤자 알콜 중독자인 주제에 진짜 영어선생인양 나대는 외국놈들.  패리스 힐튼(Paris Hilton)의 복제판인 주제에 자기가 진짜 인간인 줄 착각하는 걸레 같은 한국여자애들. 5천년 유구한 문화와 문명을 자랑하는 한국이 고작 이것밖에 안된단 말인가! 병신들! 하도 한심해서 홍대 뿐 아니라 압구정동과 대학로, 이태원, 그 밖에 서울 각지에서 마주치는 병신같은 인간들의 목록을 만들어 보았다.”


“내가 잘못된 건지, 아니면 서울이라는 도시가 더럽게 재수 없고 짜증나는 인간들로 가득 찬 건지 헷갈린다. 이제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이제는 정말이지 그 호래자식들한테 대놓고 있는대로 까발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설령 당신이 내 말투에 기분이 나쁘다거나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해도 상관없다. 왜냐면 당신은 틀렸고 나는 옳으니까!”


“얼굴 좀 뜯어 고쳤고, 아빠한테 받은 돈으로 샤넬이니 돌체 앤 가바나니 마크 제이콥스니 하는 명품을 둘렀다고 하자, 대단하다, 짱이다. 예쁘고 귀엽다! 그런데 이제 그만하면 됐으니까 그 썩어빠진 대가리에 뭘 좀 집어 처넣어라. 하다못해 신문이라도 좀 읽어라. 산소가 아깝다. 한심한 연놈들!”


“좀 더 솔직하게 말해 볼까? 늘씬하게 빠진 다리에 화장품 떡칠한 얼굴을 달고 다닌다고, 해가 당신 똥꼬에서 뜨는 건 아니다.”


“한국사회는 가장 저질스러운 고등학교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점점 굳어졌다. 한국은 버릇없는 우물 안 개구리들이 우글거리는 매트릭스다. 한국은 5천년 역사를 들먹이지만 돈이 전통을 짓밟는 순간에는 입을 다물어 버린다. 서울은 개발과 진보라는 이름아래 암매장당한 역사의 공동묘지다. 한국은 천박한 민족주의가 판치는 나라다. 천박한 민족주의 다음은 파시즘이다. 21세기에도 사람들이 이런 똥을 쌀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돈과 욕망을 빼면 한류에서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한류는 한국 섹스 산업의 물결이다. 한류를 한국 홍보와 마케팅 도구로 몇 년 동안 우려먹었던 문화관광부는 한류가 실은 상업화된 한국 섹스의 물결이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정확히 말하면 물결이 아니라 쓰나미다.”


대강 눈에 짚이는 대목 몇 군데를 소개했습니다만 그의 책은 시종 일관 이런 식으로 대한민국을 질타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더군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는 일본에 대해서는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의 ‘교토 사랑’은 거의 교토가 고향인 일본인 못지않은 수준이었습니다.


그는 ‘냄새나는 서울’에 비해 교토는 “지금도 내 기억에는 교토와 그리고 멋있고 세련된 교토 사람들이 좋은 인상으로 남아있다.”고 회상합니다.


“일본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흠잡을 데 없이 깔끔한 거리와 질서정연한 도로위의 자동차들, 예술의 경지에 이른 정중함과 고객 서비스가 몸에 밴 도회지 사람들을 대하며, 늘 정말로 문명화된 나라에 다시 오니 정말 좋군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 일본은 정말 문명화된 곳이야.”


그의 ‘일본사랑’은 교토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닌가 봅니다. 뭐랄까요, 일본 예찬도 이 정도면 오히려 일본 사람들이 부끄러워하지 않을까요?

그가 ‘서울을 냄새나는 지겨운 도시’로 여기는 건 그의 자유니까 뭐라 하고 싶지 않지만 그런 식으로 말하자면 도쿄에서도 ‘냄새’가 나는 걸 모르는 지 묻고 싶네요.


그의 이런 ‘편견’은 비단 일본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더군요. 인도네시아나 중국의 단둥 심지어 ‘아리랑 축전’을 구경 간 평양마저 ‘호의’를 갖고 묘사하면서 유독 서울과 대한민국에 대해선 그리도 야박하게 폄하하는 게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자신이 10년째 밥벌이를 하는 나라에 대해서 뭔가 원한이 크게 맺혔나봅니다.


대한민국은 저의 조국이어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볼 때 ‘점수’를 줄 부분도 많은 나라 아닙니까? 1960년대 초반 세계 최빈국이었던 한국은 불과 반세기만에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습니다. 경제대국이라고 해서 꼭 경제만 성장한 건 아닙니다. ‘정치’만 제외하고는 국가 전반에 걸쳐 수준이 향상된 ‘자수성가에 성공한,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국가’이기도 합니다.


물론 ‘초고속 성장신화’의 그늘엔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건 세상 이치 아니겠습니까. 일본은 안 그렇습니까?

요즘 대한민국은 국내외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건 사실입니다. 경제가 예전 같지 않다보니, 자연히 전반적으로 국가 전체가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려는 그런 위기을 맞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의 ‘성공신화’가 모래성이었다고 매도당할 이유는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1967년생이라는 이 미국 남자가 그런 책을 썼다고 해서 뭐 그리 발끈할 필요는 없지요. 그냥 그런 생각도 있나보다 라고 넘기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오비이락이라고, “한국 때리기”로 한 몫 보려는 듯한 미국인의 이 책이 마침 ‘버지니아 공대 사건’이 일어난 날 아침 유력일간지에 대서특필로 소개된 것을 보니까 아무래도 좋지 않은 생각이 들더군요.


그 미국사람은 그걸 영어로 썼고, 한국 사람이 번역해 한국의 한 출판사에서 내놓은 책이지만, 그 책이 만약 영어권 국가에서 출간된다면 한국의 이미지에는 아주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 같습니다.


그 미국인은 몇 해 전 한국의 ‘젊고 아름답고 총명한 여성’에게 호된 실연을 당했다고 그 책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얼굴에 신발자국을 내며 헤어졌다”는 바로 그 여인인 것 같습니다.


맙소사. 그런 ‘원한’이 그에게 요런 책을 쓰게 한 원동력이 되었나봅니다.  우리 속담에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더니 그 반대의 상황이 벌어진 것 같네요.^^


아무튼 ‘버지니아 공대 사건’의 범인으로 알려진 ‘한국계 학생’도 실연으로 인해 그런 엄청난 사건을 저질렀다고 하니 이젠 ‘여자 조심’이 아니라 ‘남자 조심’을 해야 할 시대가 되었나봅니다. 그 놈의 사랑이 뭐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