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단상

조승희 누나 선경씨에게 보내는 편지

스카이뷰2 2007. 4. 20. 16:55
 

   조승희 누나 선경 씨에게 보내는 편지


선경 씨!

이 편지를 그대가 직접 볼 수 있게 될 날이 올 것이라고 믿고 몇 자 적습니다.

오늘 아침 신문에 나온 선경씨의 이름을 보고 처음엔 왜 이름을 밝혔는지 좀 화가 났었죠. 하지만  생각해보니 선경씨는 이번 사건에 아무 죄가 없고, 이름을 언제까지나 감출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오히려 그대의 소중한 존재를 크게 쓰실 하나님의 뜻이 계시기에  하루빨리 이 엄청난 상처를 딛고  일어서야 합니다. 그리고 조선경이라는 이름 석자를 내걸고  세상의 힘든 사람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할 수있는 계기가 이루어지기를 기원합니다. 아마도 그 날은 생각보다 더 빨리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보다도 동생을 아끼고 늘 동생을 걱정했다는 착한 누나 선경씨!

저는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 사건에 대한 국내 매스컴들의 보도 태도에 대해 크게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볼 때 국내 매스컴들은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말초적이고 흥미 위주의 보도를 하는 것 같아 문득 저라도 이렇게 선경 씨와 부모님에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위로의 편지를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제 친구와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저는 누구보다도 선경 씨가 걱정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선경 씨나 부모님이 겪고 있을 슬픔과 충격에 경중을 가릴 수는 없을 겁니다. 자식이 엄청난 사건의 주인공이 되었고, 세상마저 떠났다면 그 이중의 슬픔은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일일 겁니다.


특히 어머니의 슬픔은 아마도 같은 슬픔을 겪은 사람들 이외에는 알기 어려울 지도 모릅니다. 아버님이 겪으신 고통 역시 아마 어머니보다 못하지 않을 겁니다.


언젠가 들은 얘깁니다만 국내의 한 유명한 지도층 인사가 자식을 잃었답니다. 아주 유복한 가정환경에 그 자신도 명문 학교를 다니고 있어서 아무런 근심도 없어 보였던 그 딸은 어느 날 갑자기 자살로 부모 곁을 떠났답니다.


자식의 장례에 부모는 참석지 않는다는 관례대로 부모님은 그냥 가슴만 치고 있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며칠을 대성통곡했지만 아버지는 한마디 말씀도 하지 않은 채 계셨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딸의 장례가 끝난 지 1주일도 안 돼, 치아가 모두 흔들리고 백발이 되어 주변을 놀라게 했답니다. 그 만큼 자식을 먼저 보낸 고통은 엄청난 것입니다. 


우리 말 속담에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쩌면 이 말은 이 세상의 모든 부모들에게 해당하는 말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엄청난 고통이라는 얘기이겠지요.    


지난 4월 16일 일어난 그 사건으로 아마 선경 씨와 부모님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참담한 심경이실 겁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무슨 위로의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어쩌면 선경 씨나 부모님이나 아마도 죽고 싶다는 생각 밖에는 다른 생각은 없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런 말도 하고 싶지도 않고 아무런 말도 듣고 싶지도 않을 겁니다. 잠도 아마 못 이루고 있을 겁니다. 하루 세끼 식사를 해야 한다는 게 너무 구차스럽고 한심하게 여겨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이야 인생을 어느 정도 살아오신 분들이고 이제 살아갈 날들이 살아온 날들보다는 많지 않은 60세 근처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 분들의 비통한 심정은 아무리 아무리 말을 해도 모자라시겠지만 그래도 그 분들은 이제 인생의 황혼 무렵에 들어서신 분들이기에 그저 남은 나날들을 기도로써 보내셔도 되겠지요.


그런데 선경 씨는 이제 스물여섯! 한창 피어날 꽃다운 아가씨입니다.

더구나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선경 씨는 미국에서도 천하의 수재들이나 겨우 갈 수 있다는 최고의 명문 프린스턴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그야말로 앞길이 구만리 같은 재원입니다.


조금 전 나온 보도를 보니까 선경 씨가 모교인 프린스턴대학 기독교 모임을 이끌고 있는 한국계 데이비드 김 목사님께 전화연락을 해왔다고 하는군요.

선경씨는 목사님께 동생의 행동이 불러온 결과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있고 그 일로 인해 프린스턴대학 내 한국인들이 받았을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사과했다지요.


저는 이 기사를 본 순간 선경 씨에게 위로의 편지를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이렇게 바로 컴퓨터를 열었습니다.


아까 말씀 드렸듯이 어제 저는 친구에게 선경씨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하나 밖에 없는 남동생이 그런 엄청난 사건을 저질렀고 본인도 자살로 생을 마감해버렸으니 그 비통한 심정이야 말이 필요 없을 겁니다.

 

하지만 너무 자책하진 마세요. 물론 당분간은 엄청난 죄책감과 수치심 허무함 등 온갖 나쁜 감정들이 선경씨를 괴롭힐 겁니다. 그 감정들은 어쩌면 마음만 괴롭히는 게 아니라 건강마저 위협하고 있을 겁니다.


당사자가 아닌 제가 이런 말을 아무리 한들 지금이야 별 도움은 안 되겠지요. 하지만 그대보다 인생을 좀 더 오래 살아온 사람으로서 저는 선경씨에게 지금 필요한 건 ‘자기 앞의 생’을 굳건히 유지해나가는 길이라고 봅니다.


어쩌면 선경씨는 지금 만의 하나,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마저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동생에 의해 스러져간 32명의 고인과 그들 가족들에게 말할 수 없는 죄책감을 느낀 나머지 ‘차라리 이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을 것을’ 하며 비탄에 빠져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에도 그런 구절들이 나오지요. 욥이 그랬던가요, 이 세상에 내가 왜 태어나서 이런 수모와 고통을 당해야 하나를 한탄하고 통탄했지요.

우리 인생살이는 우리 의지로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듯이 의지대로 되지 않는 법이랍니다. 아직 어린 선경씨에게 이런 말을 한다는 건 가혹한 일인지도 모르겠지만요, 어쩌면 우리가 겪고 있는 이 고통에도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오늘 조간신문에 보니 선경 씨는 지금까지 ‘부모님의 자랑거리 딸’로 살아오셨더군요. 그렇잖아도 어제 텔레비전 뉴스에서도 선경씨 어머니께서는 딸 자랑을  참 많이 했다고 어머니와 같이 일하시는 어떤 아주머니의 코멘트를 방영하더군요. 왜 아니겠어요.  신문에 나온 선경씨의 프린스턴 시절 활동 상황을 보니까 저 같아도 하루 종일 ‘우리 딸 자랑’만 했을 것 같네요.


미국  ABC 방송은 “선경씨는 누가 봐도 훌륭한 젊은이”라고 평가하며, 남동생의 범행이 부모와 누이에게 얼마나 큰 충격을 줬을 지 짐작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고 합니다.


선경씨는 미국 학생들도 전 미국 상위 5% 이내라야 들어갈까 말까 한다는 그 어려운 프린스턴대학에 당당히 입학했습니다. 게다가 사회과학 중엔 제일 어렵다는 경제학을 전공했다지요. 정말 대단한 수재입니다.

 

하바드대학보다 더 알아준다는 프린스턴대학은 제가 좋아하는 일본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극찬을 한 적이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수필집 '슬픈 외국어'에서 자신이 프린스턴에 교환교수로 있었던 시절의 이야기를 쓰면서 '프린스턴 적(的)'인 것이 미국의 진정한 상류인 것 같다는 이야기도 했지요.

 

그의 영향을 받아선지 저도 왠지 프린스턴대학에 대해선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어요. 선경씨의 어머니께서 '우리 딸 자랑'을 그렇게 하셨다는 걸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대는 대학시절 학교의 해외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가한 경험담을 교내 신문 ‘프린스턴 위클리 불리틴’을 통해 전했다지요?

대학 3학년 때 선경씨는 여름방학을 이용해 태국 방콕 주재 미 대사관 경제부처에서 인턴으로 일하면서 태국의 열악한 노동현장을 돌아보고 “미얀마 출신의 어린 소녀들이 조그만 손으로 옷이며 도자기를 만들고 있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지요?


“태국에서의 인턴 경험이 내 인생에서 가장 경이로운 시간이었다”고 말한 선경씨를 보면서 참 의젓하고 든든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선경씨는 또  대학시절 9·11 테러 공격으로 상처받은 젊은이들의 치유를 돕기 위해 발족된 프린스턴 기구(Princeton Organization)에 참가해 자원봉사 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자! 이렇게 당당하고 장한 선경씨입니다. 그대와는 일면식도 없는 저라도 선경씨 자랑을 하루 종일 하고 다니고 싶네요.


지금은 시련의 시절입니다. 이미 저질러진 일은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습니다. 당분간은 굉장히 아플 겁니다. 영육간에 몰려드는 그 고통으로 아마도 왜 살아있어서 이 고통과 수모를 당해야 하나 비통한 심정만 들 겁니다. 이젠 어쩌면 눈물도 나오지 않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은 그 누구도 그 어떤 위로의 말도 필요치 않을 겁니다.

제가 이렇게 부질없는 줄 알면서도 그대에게 이렇게 편지를 쓰는 것은 조금 시간이 흐르고  나면 어쩌면 선경 씨는 더 마음이 아플지도 모를 것 같아서입니다.


아직은 사건의 한가운데 있다 보니 그 슬픔이나 비통함을 실감하지 못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조금씩 시간이 흘러 치유의 은사를 입게 되는 그 시점에 어쩌면 더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쓰나미처럼 덮쳐 올지도 모릅니다. 그런 시점에 대비해 선경씨에게 미력하나마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이렇게 몇 자 적고 있는 겁니다.


선경씨는 지금까지 아주 훌륭한 젊은이로 성장해 왔습니다. 부모님의 자랑거리일 뿐 아니라 우리 대한민국의 인재로서 앞으로 미국은 물론이고 대한민국을 위해서도 해야 할 일이 많이 기다리고 있는 인재입니다.


지금은 악몽의 시간입니다. 그저 견뎌내야 합니다. 그리고 악령에 씌워 끔찍한 길을 가버린 동생도 사실은 불쌍한 영혼입니다. 하나님께 눈물로서 기도를 해야 할 것 같군요.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일이니까요.  


그렇기에 우선은 기도와 묵상으로서 동생에 의해 희생된 32명의 넋을 기리고, 아울러 죄책감이라는 천길낭떠러지 앞에서 떨고 있는 부모님을 위로해 드리세요. 그 분들 지금 얼마나 외롭고 괴로우시겠어요.


어머님이 세탁소에서 하루 60벌의 바지를 데려야 했다는 뉴스를 들으면서 눈물이 나더군요. 이민자의 그 어려운 삶을 묵묵히 견디시면서 남매를 프린스턴대학과 버지니아공대에 보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부모님은 상을 받으셔야 합니다.


어떻게 하겠어요! 이미 엎질러진 물인 것을... 그러니 너무 자책감에 빠지시지도 말구요, 우선은 묵묵히 견뎌야 합니다. 건강을 지키면서.


그리고는 꿋꿋이 다시 세상을 향해 나가야 합니다. 선경씨처럼 똑똑하고 착한 여성이 ‘미얀마의 어린소녀를 보고 느꼈던 그 사명감’으로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절대 주저앉지 마세요! 아직 그대 앞에 기다리고 있을 삶은 길고, 살아나가면서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을 겁니다. 하나님은 선경씨에게 크나큰 달란트를 주셨다고 봅니다. 그런 만큼 그대는 세상을 위해 해야할 일이 많습니다.


그렇게 해나가다 보면 선경씨의 재능이 미국인은 물론이고 이 세상의 고통받는 모든 이들에게 힘이 될 그 날이 꼭 오리라고 봅니다.

선경씨! 힘내세요!  서울에서 한 블로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