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단상

청와대에서 생긴 일

스카이뷰2 2007. 5. 5. 14:33
 

  

 

<나라위해 아들들을 바친 부모들이 대통령내외와 함께 오찬장에 앉았다.>

 

        청와대에서 생긴 일


사흘 전인 5월 2일 정오, 청와대 본관 충무실에선 느닷없는 통곡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대통령내외와 함께하는 오찬장이 이렇게 눈물과 한숨으로 가득 찬 경우는 거의 드문 일이지요.


아무리 인기 없는 노대통령이라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적잖은 대한민국 국민들이라면 대통령으로부터 식사초대를 받고 청와대에 가서 대통령내외와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은 꽤 ‘멋진 일’로 여긴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날 오찬자리는 비록 청와대 주인내외의 초청이었지만 그렇게 즐거울 수만은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날 오찬은 생때같은 아들들을 혹은 동생이나 남편의 ‘목숨’을 조국수호를 위해 받친 그 유가족들의 모임이어서 오찬 시작 전부터 여느 ‘대통령주재 오찬’과는 달리 침통한 분위기였습니다.


초청받은 이들은 얼마 전 아프가니스탄에서 폭탄 테러로 숨진 윤장호하사의 부모를 비롯, 2002년 서해교전 전사 장병 부모 10명과 동티모르 상록수부대 순직자 유가족 10명 등 모두 22명이었습니다.


‘연설의 달인’이란 소리를 듣는 대통령이었지만 유가족들의 비장한 분위기에 압도돼 “여러분에게 위로도 좀 드리고 말씀을 들어보려고 초청했는데 분위기가 너무 엄숙해서 말을 못 하겠다”며 ‘짤막한 인사말씀’만 했다고 하는군요.


대통령의 말씀이 끝나고 참석자 대표로 2002년 서해교전 때 전사한 윤영하 소령의 부친 윤두호씨가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그는 “2002년에는 국군장병 여러분과 애국시민들이 많이 성원해주셨다”며 감사의 인사를 역시 짧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매스컴을 통해 다 알고 있듯이 사실 서해교전 전사 장병에 대한 그간의 정부 처사는 원성을 듣고도 남을 정도로 형편없었습니다.

우리 스카이뷰의 블로그는 06년 6월 7일치 ‘외로운 영혼들을 위한 정치’에서 북한눈치 보느라 조국을 위해 목숨 바친 그 장병들과 유가족의 예후를 소홀히 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만 02년 6월 29일은 월드컵 4강전을 치루는 날이어서 거의 온 국민의 관심사는 월드컵에 쏠려있었지요. 공교롭게도 그날 백령도 함상에서 조국수호를 위해 복무 중인 윤영하 소령과 그 부하장병들이 텔레비전에 등장해 해안 경비를 철통같이 하고 있지만 월드컵도 기다려집니다! 라고  우렁차게 외치던 모습을 저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귀공자풍의 윤 소령은 깔끔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굳센 ‘바다 사나이’로서의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기억에 그는 영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와 해군 통역 장교로도 두각을 나타냈다고 합니다. 그의 부친도 해사 출신으로 ‘부자 동문’으로서 조국 수호를 위해 헌신한다는 프라이드가 대단했던 것 같았습니다.


어느 아들인들 소중하지 않겠습니까! 그날 순직한 병사들도 모두 하나같이 효자에, 대학을 다니다 군복무를 위해 해군을 지원한 ‘대한의 아들들’이었습니다. 누구하나 애처롭지 않은 사연을 가지지 않은 병사는 없었지요.


작년에 그 사병 중 한명인 한상국 중사의 아내는 “이런 나라에서 과연 어떤  병사가 전쟁터에서 목숨을 던지겠느냐. 위로받을 수 없는 한국에서 일이 없다.”라는 한 맺힌 절규를 뒤로 하고 미국으로 떠났다고 합니다.


남편을 조국에 받친 젊은 여인이 더 이상 한국에선 살수 없어 아무 연고도 없는 미국으로 떠날 때의 그 심경은 어땠을까요?

정치가 뭔지는 모르지만 저렇게 남편 잃고 피눈물 흘리며 조국을 등지려는 가여운 여인의 외로운 영혼을 달래주고 보듬어 안아주는 거 아니겠습니까!


서해교전 순직 장병들의 장례식에는 당시 대통령은 물론, 군 수뇌부들 모두 몰라라 한 가운데 비통한 유족들의 오열 속에 치러졌습니다.

그러니 유족들의 섭섭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겁니다.

오죽하면 작년에 국무총리 초청 오찬에 그 유족들은 모두 불참함으로써 그들의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윤소령의 부친이 인사말에서 유독 ‘국군장병과 애국시민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고 말한 것도 다 이런 맥락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나랏일 하는 높은 양반들은 몰라라 하는 가운데 아들을 그렇게 보내야했던 아버지· 어머니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이렇게 비장하고도 고귀한 사연을 가슴에 품은 채 참석한 유족들이니 얼마나 맺혔던 말들이 많았겠습니까.


비구름이 잔뜩 껴 곧 소나기가 쏟아질 것만 같은 그런 분위기에서 도화선이 된 건 03년 동티모르에 상록수부대원으로 파병되었다가 실종된 동생의 시신을 이날 이때까지 못 찾고 있다며 대통령에게 ‘직소’한 김하중씨의 인사말이었습니다.


김씨는 자신의 동생의 시신을 찾으려 동티모르에 보름간이나 머물며 헤맸지만 결국 시신을 찾지 못했고, 부모님은 명절만 되면 눈물로 밤을 지새우신다고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아직 ‘돌아오지 않는 병사’의 어머니인 장홍여여사가 통곡을 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 바로 옆에 앉았던 송영무 해군참모총장이 일어나 장여사의 눈물을 닦아주며 위로했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유가족들 모두는 한마음이 되어 순국한 아들들을 그리워하며 일제히 눈물을 흘렸다는군요.

김장수 국방장관도 손등으로 연신 눈물을 훔쳤다고 합니다.  


대통령내외도 매우 침통한 표정이었구요, 대통령은 아무 말 없이 김씨의 발언을 세세히 메모한 뒤 그의 발언이 끝나자  국방장관에게 “꼼꼼하게 챙겨보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동티모르에서 실종된 동생 김정중 병장의 시신조차 아직 발견되지 않았는데, 그가 속했던 상록수 부대는 내년엔 해체된다면서 그 형은 “이제 1년에 한 번 열리던 추모회마저 사라지지 않겠냐, 미국은 6·25 전쟁 전사자들 시신을 막대한 돈을 들여 지금도 찾고 있는데 우리 국방부는 비록 시신은 찾지 못하고 있더라도 이렇다 저렇다 말씀이라도 해주셔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했답니다.


정말 천하 남이 듣더라도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어떻게 키운 아들인데 그렇게 시신조차 찾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는 일입니까. 그러니 그 모친이 대통령내외가 참석한 오찬자리였지만 그렇게 통곡을 했다는 데 대해 공감합니다.

저라도 그랬을 것 같네요. 우리가 그저 남의 일이라고 치부하고 말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번에 초청된 유족들은 동티모르 순직 병사들 유족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청와대 오찬은 첨이라고 합니다. 동티모르 유족들은 03년 4월4일 청와대에 초청받아 대통령과 함께 오찬을 했다는군요.


우리 스카이뷰의 블로그에서는 작년 6월7일, 이들 유가족들을 청와대에 초청해 차라도 한 잔 마실 것을 권유했었습니다. 그 무렵 미국 미식축구에서 최고선수로 뽑힌 하인즈 선수가 한국인 모친과 함께 청와대에 가 대통령내외와 환담하는 사진을 보고 좀 서운한 생각이 들었었거든요.


물론 하인즈 선수를 초대한 것이 나쁘단 게 아닙니다. 미국국적의 운동선수도 초대하는 마당에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내놓은 젊은 병사들의 부모를 왜 초청하지 않는 건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고 나서 거의 1년 만에야 청와대측에선 대통령내외와 함께 오찬자리를 마련한 겁니다.


우리가 뭐 청와대에 가서 밥을 먹고 안 먹고가 중요한 게 아니지요. 최고공직자인 대통령이 순국장병들에게 그렇게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아래관리들도 무언가 ‘감’을 잡고 바른 자세로 순국 장병과 그 유가족들을 대우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거 아닙니까!


아무튼 만시지탄의 ‘너무 늦은 위로’의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야 백번 나은 청와대 오찬 행사였습니다.


제발 앞으로 누가 정권을 잡든 대한민국을 위해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바친 ‘젊은 그들’과 죽을 때까지 그들을 가슴에 품고 한 맺힌 삶을 살아가야만 할 그들의 부모님과 가족들을 ‘최우선의 자리’에 모신다는 자세로 정치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나라가 없으면 우리도 존재하기 어려운 거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