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단상

이문세, 변진섭의 신세계 백화점 공연을 보고

스카이뷰2 2007. 6. 20. 10:21
 

     

 

      <이문세· 변진섭의 신세계백화점 공연을 보고> 


어제(19일) 저는 운 좋게 아주 재미있는 공연을 하나 봤습니다.

이문세와 변진섭이라는 두 남자 가수가 서울 충무로에 있는 신세계백화점 본점 문화홀에서 ‘100일 연가, 이문세& 변진섭’이라는 타이틀로 연 콘서트였습니다.


‘라이브 공연’인데다, 한때는 인기 정상을 달렸고, 지금도 꽤 지명도 높은 남자가수들의 한낮 백화점 공연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고 생동감 있었습니다.


주로 아주머니와 할머니 관객들이 참석했던 공연장의 분위기는  젊은 록 가수 공연장의 열기와 거의 비슷했습니다. 모두들 한 20년은 젊어진 듯 상기된 표정들로 좋아했습니다. 이문세의 마지막 앵콜 송은 젊은 애들이 좋아한다는 ‘스탠딩’으로 진행되었는데 박수와 괴성이 난무하는 거의 ‘열광의 도가니’였습니다. ^^


자 ! 지금부터 백화점 문화홀 공연 관람 전말기를 이야기해드릴게요.^^  


한 1주일 전쯤 신세계 백화점 회원인 저에게 ‘본점 그랜드 오픈 100일 축하! 문화홀 공연 접수 교환권’이라는 것이 날아왔습니다.

신세계 카드를 쓰고 있는 사람들에겐 백화점에서 매달 자질구레한 행사나 당일 1만 원 이상 구입고객에겐 장바구니를 드린다는 안내 팸플릿은 자주 왔지만 이렇게 ‘공연 교환권’ 이 온건 처음이었습니다.


교환권 뒷면을 보니 6월16일부터 18일,19일, 20일과 27일의 공연명이 나와있더군요.

‘멜론과 함께 하는 영 콘서트’ ‘뮤지컬 넌센스’ ‘장호일의 브런치 데이트 홍경민’ ‘개그 클래식 콘서트’ 이런 레퍼토리 중엔 그래도 ‘이문세와 변진섭’이 그중 제일 낯익어서  오늘 하는 이문세, 변진섭 공연을 보기로 했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열혈 팬은 아니구요, 그저 한낮에 백화점 문화홀이라는 곳에서 진행되는 공연의 분위기는 어떤지, 아무래도 중년여성들이 많이 몰려올 텐데 그들은 이런 공연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등이 궁금해져서 취재 겸 가보기로 했던 겁니다.


그런데 이 일 저 일에 치여 살다보니까 오늘이 바로 공연일이라는 걸 공연 시작 3시간 전에야 문득 생각이 나더군요. 교환권에는 15일부터 선착순 접수라고 명기되어 있었습니다. 선착순! 이라는 말에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백화점 카드 고객이 엄청 많을 텐데 선착순이라면 구경은 글렀다는 비관(?)적인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스카이뷰의 블로그 독자들에게 우리 시대의 한 트렌드를 생생히 전해드리고 싶다는 사명감에 불타는 저로서는 그냥 물러설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우선 문화홀 안내데스크에 ‘표’가 있는지 문의전화를 했습니다. 명약관화죠.

벌써 15일 하루에 동이 났다는 겁니다. ‘표’가 없으면 못 들어가냐는 ‘우문’에 당연히 그렇다는 ‘현답’이 날아왔습니다.


전화를 끊고 곰곰 생각하다가 이번엔 목소리를 좀 바꿔서 홍보 안내 담당자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취재 협조’ 요청을 해봤습니다. 그랬더니 젊은 목소리의 남자 담당자 얘기가 걸작이었습니다. “이문세씨나 변진섭씨는 취재나 촬영을 원하지 않습니다”라고 하더군요. 이거야 참.


그래서 이쪽의 ‘선의’를 간곡히 전달해봤지만 막무가내로 ‘불가’하다는 겁니다. 사실 이쯤 되면 뭐 그리 썩 좋아하는 가수들도 아니니까 그냥 포기해 버려도 좋으련만, 일단 취재 계획을 세웠던 ‘건’에 대해선 거의 병적으로 집착하는 저의 미욱한 성격이 저를 가만 놔두질 않았습니다.


일단 신세계로 향해 돌진!

10층에 있다는 문화홀 안내 데스크로 무작정 갔습니다.

비교적 성실해 보이는 어린 여성 안내원에게 저를 소개한 다음, 잠시라도 구경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소연 작전’으로 나갔습니다.


그 아가씨 얘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표가 15일 접수시작하자마다 순식간에  다 매진되었다는 겁니다. 공연장인 문화홀은 400석 규모라니까 2천 명 정도가 몰려들었다는 얘긴데요, 상상만해도 굉장한 광경입니다. 나중에  15일 날 표를 받으러 왔다던 한 아주머니의 말씀을 들으니 줄이 어찌나 길었는지 혼이 날 정도였다는군요.


아무튼 그 젊은 아가씨는 저를 찬찬히 보더니 믿을 만하다는 판정을 내렸는지 “그럼 이따가 2시 반까지 오셔요!”라고 조용히 말하더군요.

이렇게 해서 ‘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오늘 그 공연을 보게 된 겁니다.


공연을 보기 전 이문세와 변진섭이라는 남자가수들에  대해 잠시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문세는 한동안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청소년 대상 심야 프로를 오래한 디스크자키였다는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목소리가 비교적 소프트하고, 인상도 그런대로 괜찮아 이미지가 좋은 남자가수죠. 요즘도 아침에 한 FM라디오의 음악 프로를 진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변진섭하면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자~’로 시작하는 ‘희망사항’이라는 노래로 한때 빅 히트했고, 눈이 새우처럼 가늘고 볼 살이 오동통 귀여운 청년이라는 기억이 떠올랐지만 그게 벌써 십 수년 전이니까 그 이후의 그의 모습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도 아마 마흔은 넘었겠지요.


아까 백화점 홍보담당 청년이 ‘그들이 취재를 원하지 않습니다’라고 했던 말이 귀에 맴돌았습니다.

사실 백화점 문화홀 공연이라는 건 ‘한물 간 가수’들이나 서는 무대라는 인식이 있지 않습니까? 그나마 그런 무대라도 설 수 있는 가수는 그래도 좀 나은 편이겠지요.


문득 작년 가을에 봤던 안성기 박중훈의 ‘라디오 스타’라는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과연 오늘 이 남자 가수들은 어떤 태도로 공연을 할까가 갑자기 너무 궁금해졌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관객들도 거의 대부분 아주머니 아니면 할머니 들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오히려 안심이 되더군요. 그 가수들도 마흔 넘어 쉰 바라보는 처지니 관객과 ‘혼연일체’를 이룰 수 있지 않겠습니까!^^

  


2시 반 쯤 문화홀 앞으로 갔더니 벌써 긴 줄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저는 다시한번 안내 데스크에 ‘표’없이도 들어갈 수 있냐를 확인하고 줄에 합류했습니다. 기다리는 ‘관객’들은 주로 40대 이상 50~60대 아주머니들과 심지어 70대 할머니들까지 보였습니다. 마침 제 옆에 50대 초반 정도의 아주머니 두 분이 이문세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안경 낀 한 아주머니가 “이문세 걔도  아마 50줄에 들어섰지”라고 말하자  다른 아주머니가 “으응 그럴 걸”하고 말을 받았습니다.

한 아주머니는 몇 달 전인가 잠실 롯데 백화점에서 VIP고객들만 초대했던 공연에서 이문세를 봤는데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고 말하더군요.


그 아주머니는 VIP고객으로 선정된 그 달에 무려 5백만 원어치!의 물건을 롯데백화점에서 샀다고 말했습니다.

안경 낀 아주머니는 자기는 이문세가 맘에 드는데 스무 살 먹은 아들은 이문세가  잘난 척 하는 것 같아 싫어한다는 말도 하더군요.

그러면서 요새 젊은 애들은 연예인들이 잘난척하는 걸 제일 싫어하는 것 같더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아주머니들은 그들이 받을 출연료에 대해서 말할 땐 좀 낮은 목소리가 되었습니다. “한 삼, 사백은 받겠지” “최소 오백은 받지, 얘는”

한 15분을 서 있는 동안 이러저런 말을 주고받던 아주머니들은 “왜 이렇게 안 들여보내는 거냐”고 안내 청년들에게 항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어쨌거나 아주머니들은 모두 아주 고급스러워 보이는 옷차림들이었습니다.

저는 오늘 따라 일을 많이 해야 하는 날이어서 콤비 캐주얼 차림이었거든요. 저의 옷차림이 제일 후진 듯할 정도로 아주머니들은 한결같이 말쑥한 차림이었습니다.


며칠 전 이명박씨가 현대 사장시절부터 아랫사람들에게 “토요일에도 정장 입어라 콤비나 캐주얼 입으면 놀러갈 생각만 나서 안 된다”라고 말했다는 게 떠올라 슬며시 혼자 웃었습니다. 저는 일을 많이 해야 하는 날엔 될수록 가벼운 옷차림으로 의상에 신경을 안 써야지 일이 잘 되는 스타일이거든요.

그러니까 ‘십인십색’이라는 말이 있겠지요.^^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면서 불평이 터져 나올 무렵 드디어 입장이 시작되었습니다. 400석 규모라는 데 그렇게 좁아 보이진 않았습니다.

저는 맨 앞에서 두 번 째 줄에 용케 자리를 잡았습니다. 남자는 몇 명인지 세어 봤더니 부인의 손에 억지로 끌려나온 듯한 나이든 아저씨 3명과 모친의 손을 잡고 온 대학생 풍의 청년 둘, 그리고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성 2명 등 10명이 채  안되었습니다.^^


제 오른 쪽 옆에는 60대 중반과 후반 쯤 되어 보이는 아주 곱게 늙어가는 ‘멋쟁이 할머니’ 둘이 화사한 옷차림으로 앉아 있었습니다. 저의 왼 쪽에는 4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 둘이 앉아 있었습니다.


모두들 나이들은 들어가고 있지만 이런 콘서트에 와 앉아 있다는 것에 들떠 있는 듯해 보였습니다. 저도 그런 여성들을 보면서 왠지 흐뭇하면서도 한켠으론 연한 슬픔 같은 감정이 들었습니다.


어쨌거나 3시 5분 쯤 무대 오른 쪽 끝에서 오늘의 첫 가수 변진섭이 뛰어나왔습니다. 그는 요즘 유행하는 은회색 양복바지에 와이셔츠 비슷한 상의를 입고 나왔습니다. 상의 안에  러닝셔츠를 입었더군요.


요새 어린 가수들 같으면 그냥 속에 아무 것도 안 입었을 텐데, 아무래도 그도 ‘점잖은 나이’에 들어섰나 봅니다. 그는 뛰어나오자마자 댓바람에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객석의 관객들도 민첩하게 그의 노래에 박수로 응원을 보냈습니다. 변진섭은 좀 길어 보이는 파마머리 스타일이었습니다.


무대 벽을 장식한 대형 백스크린에는 변진섭이 부르기 시작한 ‘로라’라는 노래의 가사가 떠올랐습니다. ‘세상 누구도 알 수 없는 곳에/ 야윈 얼굴로 떠나간 너/ 젖은 눈으로 내 손 잡으며 모두 잊으라 했지/ 너의 따뜻한 미소가 자꾸만 눈앞에 어른 거려 언제나 내가 없으면 슬퍼진다고 말하던 너/    


예전에 제 기억 속의 변진섭은 굉장히 천진난만하고 귀여운 청년이었는데 그가 부르는 첫 곡은 너무도 애잔하고 좀 청승맞은 필이 드는 노래였습니다.

‘로라’가 끝나자 그는 또 ‘혼자된다는 것’을 부르더군요. 그 노래 역시 무척이나 슬픈 가사와 멜로디였습니다. 변진섭 노래가 원래 저런 스타일이었나 할 정도였습니다.


두 곡을 부르고 나자 변진섭은 그 때서야 노래 분위기를 바꿔 보려는 듯 ‘숙녀에게’라는 곡을 부르더군요. 그 노래를 시작하기 전 그는 예전에 젊은 시절의 여러분들이 참 좋아하셨던 노래로 지금 마치 여러분들 모습같은 노래입니다라는 멘트로 청중들에게 ‘덕담’을 보내더군요. 그 말을 하는 모습에서 아직 앳된 분위기를 잃지 않은 듯 해 보이는 젊은 날의 변진섭이 느껴졌습니다.


데뷔한 지 올해로 20년이나 된다니 그도 적어도 마흔은 되었을 텐데 나이를 어디로 먹었는지 모를 정도로 젊어보였습니다. 나중에 검색창에 보니 66년생이더군요.

그는 대부분의 관객들이 ‘중후한 중년 여성들’이라는 걸 의식했는지, “슬림한 몸매보다 슬림한 사고방식, 슬림한 인생이 아름답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습니다.”라고 말해 박수를 받기도 했습니다. 요즘 웬만한 중년여성들의 최고의 관심사는 ‘다이어트’아니겠습니까!


네 번 째 부른 곡이 ‘희망사항’이었습니다. 예전에 이 노래 저도 참 좋아했었지요. 가사가 아주 귀엽고 순수한 느낌이 들었던 노래였지요.

그의 권유로 대부분의 청중들은 함께 그 노래를 따라 불렀습니다. 노래방처럼 스크린에 자막이 나와 따라 부르기 쉽더군요.


변진섭은 조금은 잠긴 목소리로 “제 노래는 쉽지가 않아요. 부르기가 어렵습니다”라고 말하면서 그러니까 자기가 부르는 것 아니겠냐며, 은근슬쩍 자신의 가창력을 자랑하더군요.^^ 그런 그의 모습이 밉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가 ‘새들처럼’인가라는 노래를 부를 때 백스크린에는 ‘20대 청년 변진섭’의 사진이 나왔습니다.


그 순간 저도 모르게 “아유, 귀여워”라는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조용했던 장내는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되었지요. 정말이지 볼살이 오동통한 새우 눈의 앳된 변진섭이 참 귀여워 보이더군요.


변진섭의 순서가 끝나자마자 별안간 앰프에선 굉음같이 요란한 댄스곡이 흘러나오는가 싶더니 남녀 백댄서 4명이 뛰쳐나와 요란한 율동을 선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춤을 추는 동안 이문세가 껑충껑충 스탭을 밟으며 뛰어 나와서 함께 춤을 추며 분위기를 띄우더군요.


59년생이라는 이문세는 그야말로 몇 달 후면 오십 줄인데도 헤어스타일은 요즘 ‘쩐의 전쟁’에 나오는 박신양같은 바람머리 스타일에 비즈가 붙은 청바지! 은 목걸이에 패션 운동화를 신고 나와 뒷모습으로만 보면 20대로 여길 정도였습니다.


오프닝으로 신나는 댄스리듬의 ‘파랑새’를 열창하는 그의 모습에 장내는 그야말로 후끈 달아오르는 듯했습니다. 박자가 들어간 박수를 치면서 관객들은 엔돌핀이 솟아나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이문세는 수줍어하는 듯해 보이던 변진섭에 비해 관객들을 ‘누님’으로 호칭하며 친근감을 과시하는 품이 확실히 ‘나이의 힘’을 발휘하는 듯 능청스러워보였습니다.


그는 자신을 오늘 처음 보는 사람은 박수를 쳐보시라고 유도한 뒤 박수소리가 우레와 같이 커지자, 오늘 이 무대가 아니었으면 우린 평생 서로 모르는 사이로 끝났을 거라며 너스레를 떨더군요.


이문세도 자세히 보니까 얼굴은 나이도망을 못 갔지만 그래도 청년기운은 여전히 남아있었습니다. 청바지를 입은 모습이 그런 기운을 더해주는 듯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오늘 VIP대접 받으면서 와 계시는 ‘누님’들에게 고맙고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개척공간이 많아 늙을 틈이 없어요. 저는 오래 살아남아야 해요, 그래야 가슴에 응어리를 갖고 살아오신 우리 누님들을 어루만져 드릴 수 있지요. 제 노래 들으시면서 눈물 흘리는 누님들도 많아요. 노래에 얽힌 에피소드가 떠올라서겠죠. 옛사랑도 생각나실 테고, 뭐 저런 엉뚱한 인간하고 살고 있나 라고 가슴을 치시는 분들도 계실 테고요.”


이문세가 이렇게 말하자 누님관객들은 큰소리로 웃으면서 박수를 아끼지 않더군요.

특히 이문세가 “누님들 마음 속 나이는 몇 살?”이라고 묻자 여기저기서 “열여덟! 스물! ”이라는 대답이 들려왔습니다. 그 소리들은 조금 코믹하면서도 찡한 느낌이 들게 했습니다. 


이문세는 ‘마음의 나이’를 소중히 간직하면서 살아가자고 누님들을 다독이더군요.

그는 자신의 히트곡인 ‘알 수 없는 인생’ ‘사랑이 지나가면’ ‘난 아직 모르잖아요’등을 잇따라 열창했습니다.


제 오른 쪽 옆에 앉아있던 멋쟁이 할머니들이 스크린에 자막도 없는데 이문세의 노래를 가사 하나 틀리지 않고 꼬박 따라하는 모습을 보고 속으로 엄청 놀랐습니다.^^

노래 막간에 할머니 한분은 동행한 할머니는 물론이고 저에게까지 ‘바둑껌’을 주셔서 저를 좀 당황하게 하셨지요. (전 껌을 별로 안 좋아하지만 할머니 성의를 봐서 할 수없이 받았습니다.^^)


이문세는 자신의 공식 마지막 노래라면서 ‘광화문 연가’를 좀 전과는 달리 아주 조신한 포즈로 불렀습니다. 노랫말이 참 슬프더군요.

그 노래가 끝나자 이문세는 여러분 몸 조심히 안녕히 가세요라고 처량맞게 말하면서 무대 뒤로 사라졌습니다. 그러자 열화와 같이 터져 나오는 앵콜 송 요청 박수와 아우성!


‘마지못해 나온’ 이문세 말이 걸작입니다. 자신이 나왔으면 더 이상 박수는 안 쳐야지 박자가 맞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또 한 바탕 웃었지요.


마지막 곡은 칙칙한 분위기를 벗어던지고 확 뒤집어 놓으라는 팬들의 성화를 받아들였고, 또 튀어나온 백댄서들과 함께 신나는 댄스곡을 부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모두 일어서라고 ‘명령’했습니다.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이리저리 눈치를 보더니 거의 모두 일어섰고, 그 다음은 박수를 치고 발을 구르면서 그의 히트곡‘난 아직 모르잖아요’를 신나게 따라 했습니다. 어떤 열성파 아주머니들은 무대 앞으로 바싹 다가가 이문세와 손을 잡기도 하더군요.


작년에 크라잉 넛의 공연장에 갔을 때가 떠올랐습니다. 그때는 ‘젊은 그들’에 맞춰 관객들도 모두 ‘젊은 그들’이었습니다. 그들 역시 ‘스탠딩’으로 열광했고 오늘 이 아주머니 할머니들도 ‘스탠딩’으로 이문세에게 환호를 보냈습니다. 이래서 나이는 먹어도 마음은 늙지 않는다는 옛말이 진실이라는 게 입증된 셈입니다.^^


자! 이렇게 해서 이문세 ,변진섭의 1시간 동안의 공연은 무사히 끝났습니다.

공연을 마치고 밖에 나와서 하나 둘 나오는 관객들의 표정을 보니 모두들 흡족해 하는 표정이더군요. 한 20년은 젊어진 듯 생기 있는 얼굴들이어서 보기에 좋았습니다.


문 앞에는 신세계 백화점의 간부들로 보이는 중년남자 서 너 명이 서 있는 게 보였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다가갔습니다.

그 중 한 남자에게  이문세 오늘 출연료가 얼마 정도냐고 물었습니다.

그 남자는 저를 흘끔 보더니 안 가르쳐 주려고 하더군요. 재차 제가 물었습니다. 대략 얼마정도냐고.


그 때 그 남자의 입에서 나온 소리가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몇 천 만원! 정도입니다.’


아까 공연 시작 전 아주머니들끼리 ‘삼백, 사백, 오백’하며 속삭이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 아주머니들이 들으면 얼마나 놀랄까요!

집에 와서 이문세를 검색창에 쳐보니 그는 지금 수원· 고양시·부산· 울산· 춘천·안양· 인천 순서로 지방 순회 콘서트를 열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입장료는 고양시만 7만7천원이었고, 나머지는 6만 6천원이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오늘 신세계 문화홀에 모인 인원이 4백 명 정도니까, 이문세의 오늘 출연료는 3천만원 정도는 되겠구나 라는 계산이 나왔습니다. -.-;;

뭐 따지고 보면 그리 큰 액수는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가수로서는 자신의 정당한 개런티를 받은 셈이니까요.

그런데 왠지 씁쓸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한 30분 정도, 노래 대 여섯 곡 부르고 몇 천만원은 좀 지나치지 않나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신세계 뿐 아니라 롯데나 현대나 우리나라에 있는 백화점의 가장 큰 흠은 물건 값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점입니다. 제가 철들고 나서 백화점을 단독으로 출입하기 시작한 때부터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는 느낌은 백화점 물건은 너무 비싸다는 겁니다.


옷이며 가방이며 가전제품까지, 백가지 물건이 있다는 백화점은 백가지가 다 시중보다는 너무 비싸서 저의 심기를 늘 불편하게 만들었거든요.

그렇다고 백화점을 안 갈 수도 없고....


그런데 오늘 신세계에서 ‘고객’들을 위해 마련한 ‘문화행사’를 구경하고 나서, 백화점 측이 초청한 대중가수에게 지급하는 개런티가 ‘몇 천만원’이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갑자기 좀 화가 나더군요.


물건 값 비싸게 받고 난 뒤, 미안하니까 고객들에게 ‘사은 잔치’형식으로 이런 알량한 문화행사나 마련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마저도 들었습니다.

글쎄요, 백화점 측은 뭐라 하는지 취재를 하지 않았습니다만 그들의 답변은 뭐 듣고 싶지도 않습니다. 워낙 백화점은 물건 값이 비싼 곳이니까요....

앞으로도 백화점은 이런 문화행사를 계속 하겠지요. 그리고 물건 값도 여전히 비싸겠지요....


아무튼 좀 씁쓰레해진 기분으로 나서는데 간부로 보이는 그들은 무언가 걱정스러워 하는 얼굴들로 뭐가 위험했다는 둥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갑자기 직업정신이 발동해, “뭐가 위험하단 말입니까?”라고 되돌아와서 물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저를 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러더군요.


아까, 이문세가 마지막 곡을 부를 때 수백 명이 ‘스탠딩’으로 그렇게 구르는 바람에 건물이 좀 흔들렸다나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습니다.

10여 년 전 일어났던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이 떠오른 겁니다.


제가 너무 놀란 얼굴이었는지, 그중 한 명이 그러더군요, 고층 건물은 어디나 건축공법 상 다 그러는 거라고....뭐 그렇게 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그러면서도 자기들끼리는 ‘앞으로는 뛰고 그러면 좀 곤란해’라고 수군거리더군요.


글쎄요, 독일 속담에 ‘끝이 좋아야 모든 게 좋다’는 말이 있지요.

오늘 공연은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몇 천만 원 줬다는 가수들의 개런티! 그리고는 ‘건물이 흔들렸다’는 기겁할 수밖에 없는 소리를 듣고 나니 갑자기 마음 한 구석이 휑하니 구멍이 나는 듯 씁쓸해졌습니다.


뭐랄까요, ‘잔치는 끝났다’ 그리고 그 뒤 끝은 언제나 허망했다, 뭐 그런 기분이 들었다고나 할까요.


그래도 한 시간 남짓 박수치고 노래 따라 부른 덕분인지 그런 ‘두 가지 악재’가 제 영혼에 구정물을 튀긴 듯했지만 그래도 감정은 이내 회복이 되었습니다.

이문세· 변진섭씨! 덕분에 즐거웠어요!  앞으로도 좋은 노래 들려주세요.!^^


그리고 백화점은 물건 값 좀 싸게 받으세요! 세일 때도 싸지 않다는 게 여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