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변양균과 제레미 아이언스

스카이뷰2 2007. 9. 14. 12:27
 

  

 <제레미 아이언스의 데미지 포스터>

 <모든 걸 잃은 변양균씨의 허탈한 표정>

 <변호사 친구의 손을 꽉 잡고 있는 변양균씨의 옆모습에 회한이 서려있다> 

  

   

    변양균과 제레미 아이언스


오늘 조간신문 1면에 크게 실린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얼굴사진을 보는 순간 제레미 아이언스라는 영국 배우가 떠올랐습니다.

영화 ‘데미지’에서 제레미 아이언스가 짓던 라스트 신의 허탈해하는 표정이바로 오늘 이 사진 속 변양균씨와 어쩌면 그리도 닮았는지요.


모든 것을 갖고 있던 ‘멋있는 50대 후반 남성’에서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인생의 종점에 다다른 듯한 저 표정! 이제 이 남자에게는 ‘빈손’으로 떠나가야 할 운명만 남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 남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저렇게 절절한 표정으로 변했을 것입니다.


‘30년 반듯하게 공무원 생활을 해왔다’라고 자부했던 남자입니다. 저는  그의 그 말을 고스란히 믿습니다. 그랬을 겁니다. 행정고시를 패스한 뒤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면서 30년간은  ‘한눈’ 한번 팔지 않았을 겁니다.

‘화가 지망생’이었지만 집안 어른들의 반대로 ‘꿈’을 이루진 못한 대신 고위직 국가 공무원으로서 출세가도를 달려오기까지 그는 오로지 ‘일’밖에 몰랐을 것입니다.


주변의 고위관료들의 생활을 보면 그 자신은 물론 가족들의 희생이 꼭 따라다니는 걸 목격해왔습니다. 그야말로 ‘성실과 희생’으로 국가를 위해서 ‘개인’을 버리는 자세였고 거기에 ‘운’이 따라 주면 저렇게 장관도 하고 청와대도 들어가는 겁니다. 그냥 허투루 대충해서는 어림없는 일이지요.


그렇게 ‘30년’을 바쳐왔는데 어느 날 ‘달콤한 악마’가 사랑이라는 가면을 쓰고 접근해왔고, 그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고 ‘운명의 덫’에 가차 없이 걸려든 겁니다. 어쩌면 그것이 이 남자의 예정된 운명의 시간표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콧날이 반듯한 잘 생긴 한 남자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파란을 예감하지 못하고 한 젊은 여자와 물불 안 가린 사랑에 빠졌고 그것이 그를 파국으로 몰아넣은 겁니다. 그런데 대부분 이런 드라마에서 그렇듯 소위 ‘팜므 파탈’형의 이 젊은 여자에겐 수많은 다른 ‘연인들’이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하지만 ‘30년 반듯한 공무원’이었던 이 남자는 30년 만에 찾아온 ‘눈부신 사랑’ 앞에 단정했던 옷깃을 풀어헤쳤을 겁니다. ‘너는 내 운명’의 경지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사랑의 깊이를 타인들이 어찌 감히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런 장면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 남자는 어쩌면  그녀를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순간에도 자신의 내면에 또아리 틀고 있는 ‘파멸’의 예감을 완전히 지워버릴 수는 없었을 겁니다.

오래전 일본 열도를 뒤집어 놓았던 와타나베 준이치의 ‘실락원’이라는 소설이 떠오릅니다.


50대 남자와 30대 여자가 주인공입니다. 두 사람은 유부녀 유부남. 뒤늦게 불타오른 ‘사랑의 유혹’에서 빠져나오지 못하지만 그들은 속삭입니다. “이 대로 지옥으로 떨어집시다”라고. 자신들의 파국적 운명을 예감한 거죠.


결국 ‘실락원’의 남녀는 ‘동반자살’로 ‘깨끗이’ 마무리 합니다. 지금 ‘변양균·신정아  불륜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깨끗한 마무리’를 할 타이밍은 놓쳐버린 것 같네요. 특히 ‘파워’를 이용해 직위와 돈을 끌어와 ‘젊은 연인’에게 바쳤다는 건 ‘직권 남용죄’로 이 남자를 영어의 몸으로 만들지도 모릅니다. 


청와대 ‘넘버 투 맨’으로 국무총리보다 더 막강한 파워가 있었다는 이 남자는 이젠 ‘하얀 손’이 되어 자신의 친구인 변호사 사무실로 찾아 갑니다.

풀어헤쳐진 셔츠 바람으로 모든 걸 체념한 슬프면서도 한 서린 표정으로 저렇게 서 있습니다.  


어쩌면 변양균 씨는 바로 자신의 일이기에 세계 정상급 남자배우인 제레미 아이언스의 ‘표정연기’보다 더 탁월하게 우리의 심금을 울려주는 ‘얼굴’을 보여주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두 남자는 동갑내기네요.^^


요즘 대한민국은 나라 전체가 극장으로 변한 느낌입니다.

국민들은 ‘혈세’라는 비싼 입장료를 내고 실시간으로 상영되는 ‘변·신의 불륜 드라마’를 재미 반 분노 반의 복잡한 감정으로 구경하고 있는 겁니다.


이 ‘변·신 불륜 드라마’는 그렇다고 단순한 ‘불륜’만이 소재가 아닌 것 같습니다. 스케일이 아주 크고 스토리 구성이 매우 복잡한 ‘각본 없는’ 그야말로 ‘천의무봉’의 대하드라마입니다. 제 아무리 최고의 작가라 해도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사건의 ‘재미와 충격’을 따라잡기 어려운 듯합니다.   


할리우드 흥행 3대 요소라는 ‘파워· 머니· 크라임’을 적절히 배합한 이 ‘청와대 표’ 대하드라마를 보면서 우리 국민들은 ‘대한민국 상류사회’의 적나라한뒷 모습에 경악하고 있습니다.


‘에르메스의 여인’ 이라든지, 한 달 숙박료만 500만원 이상 하는 ‘레지던스형 호텔’이라든지 ‘경희궁의 아침’이라는 오피스텔의 우아한 이름 앞에서 우리 국민들은 이제까지 모르던 권력 상층부의 ‘신세계’를 본의 아니게 알게 되었고, 그들의 흥청망청한 씀씀이에 그저 놀랄 뿐입니다.


개인적으론 소위 ‘청와대 로열패밀리’들에 대해서 비교적 잘 알고 있지만 ‘청와대 넘버 투 맨’ 같은 고위 공직자들이 이렇게나 ‘끗발’이 센지는 정말 몰랐습니다. 제가 아는 로열패밀리들은 ‘수수하고’ 전혀 ‘파워’를 부리는 스타일은 아니었거든요.


그러니 저 같은 사람은 ‘파워의 세계’의 막강함을 가늠하지 못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렇게 ‘돈’을 펑펑 쓸 수 있고, 그 힘들다는 ‘대학교수 자리’를 학위도 없는 사기꾼 여자에게 손쉽게 줄 수 있다는 건 정말이지 상상할 수도 없었던 ‘사건’이지요.   


사건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지 이제 겨우 열흘 남짓하지만 한 열 달은 흐른 것 같다는 소리를 주변에서 심심찮게 듣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이런 사건은 처음이라는 얘기도 여기저기서 나옵니다.


하기야 이 정부 들어서 청와대 행정관이 ‘사련’에 눈멀어 제 부인을 목졸라 죽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사람들은 너무 놀란 나머지 ‘이럴 수가!’하면서 탄식만 했을 뿐입니다.

그리고는 지금 저렇게 ‘청와대 넘버 투 맨’의 ‘비이성적 일탈’에 대해 ‘순한 백성’들인 우리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누구누구를 비난하고 싶진 않습니다.

어떤 분들은 변양균씨를 손가락질하고 어떤 분들은 그에 대해 ‘꽃뱀’에게 물린 순둥이 미련 곰탱이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늦바람의 순정’이 신세를 망쳤다는 동정들도 합니다.


저는  변·신 두 ‘연인’의 ‘남녀상열지사’에 대해선 어떤 코멘트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그들을 비웃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만 젊은 연인에게 바치고 싶었던 그 남자의 순정을 무작정 ‘난도질’만 한다는 건 그리 옳은 행태는 아니라고 봅니다. 사랑이 무슨 죄겠습니까!


단지 그의 ‘눈먼 사랑’이 국고를 축냈고, 대학이라는 학문의 전당에 ‘무자격자’를 억지와 불법으로 들여보냄으로써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 ‘결과’에 대해서만은 엄정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 대학 어린학생들이 정말이지 가여워지는군요.


무분별한 어른들의 ‘치정’탓에 잠시라도 상처받은 그 순백한 학생들의 정서는 어떡합니까! 승려들이 운영한다는 그 대학은 제발 학생들의 정서에 해를 끼친 자신들의 행적에 ‘공식사과’를 해야 할 겁니다.


자! 다시 제레미 아이언스로 돌아가 볼까요.

예술가적 분위기가 물씬 감도는 이 보기 좋은 영국인 남자 배우가 출연했던 ‘데미지’는 아주 오래전 본 영화입니다.


영화 속에서 제레미 아이언스는 영국의 보사부 장관으로 나옵니다. 유능한 정치인인 그의 사회적 영향력도 막강합니다. 그에겐 아름답고 현숙한 부인과 엘리트 청년인 아들이 있습니다. 멋있는 대저택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인사차 들른 아들의 약혼녀를 보는 순간 ‘감전’되고 맙니다. 그 다음은 뭐 상상을 뛰어넘는 ‘남녀상열지사’가 화면을 가득 채웁니다.

‘아들의 연인’을 가로 챈 아버지! ‘장관’이라는 정부의 고위관료로서의 자신의 신분도 잊은 채 ‘불행한 사랑 놀음’에 빠집니다.


급기야는 그 아들이 아버지와 자신의 연인의 ‘밀회’현장을 목격하고 뒷걸음치다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죽고 맙니다. 신문에선 이 사건에 대해 대서특필하고, 결국 장관직에서 당연히 물러날 뿐 아니라 사랑하는 아내에게도 갈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한 순간에 모든 걸 잃고 체념의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봅니다.

그때 그 표정이 바로 오늘 조간신문에 난 변양균씨의 표정과 그렇게도 닮았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록 불륜이었지만 ‘그래도 사랑’인데 그마저 잃고, 거기에 자신이 ‘30년간 쌓아온’ 모든 걸 잃은 남자들의 표정이 바로 그런 표정이라는 얘기지요.


지금 세간엔 별의별 루머들이 제멋대로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몸통’은 따로 있다, 깃털만 희생당하고 있다, 성추문으로 몰아간다, 등등 복잡미묘한 ‘가상 시나리오’가 연일 매스컴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변양균씨의 ‘순정’에는 손가락질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놈의 순정’이 왜 국민들의 정서를 불편하게 만들고 혈세를 축내면서까지 몇 년간을 지속되어 왔느냐 하는 대목에선 분노합니다.


‘사랑’이야 어느 누군들 바라지 않겠습니까! 세상 살아가는 원동력이 바로 ‘사랑’인 것을. 그런데 남에게 ‘피해’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사랑에 눈이 멀었다면 참 그거야 뭐라 할 말이 없어지네요. 대통령도 그랬다죠. 할 말이 없다고요.^^


어쨌거나 변양균씨는 이제 모든 걸 잃었습니다. 게다가 그의 ‘젊은 연인’은 미국에서 서울의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와 ‘그 정도의 사랑은 수없이 많았다’는 식으로 그 남자의 가슴에 ‘대못질’을 해댔다는군요. 어쩌면 변양균씨는 ‘변심’한 그녀 때문에 더 그렇게 황폐한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팜므 파탈’의 전형적인 대사 같지요? 그 젊은 여인도 급기야 어제 한 석간신문에 자신의 ‘누드 사진’이 공개되고 마는 ‘횡액’을 당하고 있지요.

더구나 그 사진은 변실장이 찍은게 아니라 다른 남자! 가 찍은 것이라네요.

이 누드 사진을 보는 순간 저도 엄청 놀랐습니다. 그리고 슬퍼졌습니다. 언론의 횡포라는 말로도 부족한 것 같더군요. 이건 인격살인이거든요.


‘사건의 본질’과 설령 관계가 있다 손치더라도 어떻게 그런 천한 발상으로 한 사람의 누드사진을 공개할 수가 있는지 그 신문사 사람들의 수준이 의심스러웠습니다. 지금 사회 각계 특히 여성계에선 그녀의 누드 사진을 공개한 신문사를 폐간 시켜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습니다.


‘폐간’이야 좀 지나친 언사지만 해당신문사는 당사자와 독자들에게 공식사과를 하는게 좋을 것 같군요.

앞으로는 이런 식의 ‘언론 살인’은 어느 언론사든 지양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번 ‘사건’은 단순히 ‘변·신 불륜 드라마’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온갖 문제점들이 한꺼번에 까발려지는 기폭제가 된 것 같습니다.


참, 날이 갈수록 황당한 일들이 연속적으로 터지고 있으니 이제 또 무슨 일이 터질지 단순한 관객의 입장이면서도 조마조마한 심정입니다.

그런데 오늘 신문에 제 눈을 잡아끄는 ‘재밌는 인터뷰’기사가 실렸습니다.

바로 변양균씨의 부인 박미애씨의 ‘애절한 사부곡(思夫曲)’입니다.


그 부인은 권양숙 여사의 초대로 엊그제 청와대에 가서 오찬을 함께 했다고합니다. 여기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은데요, 저는 다른 건 언급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녀는 권여사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눈물밖에 더 나오지 않겠나, 여사님이 휴지를 빼주시고 닦아주시고, 힐러리 보시라고 클린턴섹스 스캔들에 저렇게 대처를 잘 해서 다 무마가 안 됐느냐고 하셨다.”


청와대에 들어가 눈물만 흘렸다는 변양균씨의 부인과 영부인의 대화 모습이 눈에 잡히는 듯합니다.

여기서 가장 주목하고 싶은 것은 그 부인이 자신의 가슴에 ‘대못질’한 남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는 대목입니다.


“우리 남편이, 지금까지 내가 본 남편은 정말 존경스럽고 정말 교과서적으로 살았다. (세상이) 이러고저러고 얘기해도 나는 하나도 안 믿는다. 나는 정말 우리 남편을 믿지 아무 것도 안 믿는다.”

부인의 심정이 이렇게 절절한 이유를 알 것만도 같습니다. 그러니 남편인 변양균씨가 그런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겠지요.


그래도 변양균씨는 ‘데미지’의 제레미 아이언스보다는 ‘행복한 남편’ 같습니다. 이번 ‘사건’이 모두 마무리 되는 시점에 그 남편은 최소한 가정이라는 울타리에선 쫓겨나진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그 남편의 가슴은 더 미어지겠지요. ‘사랑’을 잃고 ‘사랑’을 찾았다고나 할까요? 이제 그는 ‘암 투병 중’이라는 부인 앞에  무릎 꿇고 한없는 참회의 눈물만을 흘릴 것 같군요.


‘청와대 넘버 투 맨’의 이 ‘치명적인 사랑 이야기’에 손가락질 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이 남자의 저 표정을 보면서 적잖은 사람들은 ‘동정표’를 줄지도 모르겠습니다. 

‘30년 반듯하게 교과서’같이 살아왔다는 저 남자가 어쩌다 저렇게 되었을까요? 

사랑이 뭐 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