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캐서린 제타 존스의 '사랑의 레시피'

스카이뷰2 2007. 9. 10. 10:42
 

 

       

      ‘사랑의 레시피’


300g의 완벽주의-절대 빈틈을 보이지 않는다.

100g의 자존심-나이가 많다, but 눈은 높다.

1cup의 책임감-아이가 싫다 but 같이 살아야 한다.

2Ts의 야망-최고의 요리사가 되고 싶다 but 까칠한 성격 탓에 쉽지 않다.

한 웅큼의 의지-모든 일은 혼자서 한다. but 때로 너무 외롭다.


초가을  휴일 저녁, 이런 카피에 끌려 영화 한편을 봤습니다.

할리우드 대표 여배우라는  캐서린 제타 존스가 요리사로 나온다는 소리에 솔깃해진데다가 전혀 기다리지 않고 바로 볼 수 있다는 ‘타이밍이 맞아’ 그런 영화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상태였지만 바로 티켓을 끊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가을 타는 분들’께는 그런대로 훈훈함을 선사하는 무난한 영화였습니다. 물론 영화평론가들이나 예전의 저였다면 좀 아쉽다는 평점을 내릴만한 ‘수수한 영화’였습니다만 ‘계절과 나이’탓에 점수를 후하게 준 영화였습니다. 

 

예전엔 영화하면 '아트'에 가깝냐 아니냐로 까다롭게 판정을 내렸던 시절도 있었지만 요샌 웬만하면 그 감독의 '눈물겨운 노력'같은 것도 감안해 좀 후한 점수를 매깁니다. 말하자면 '인간적인 배려'를 해준다는 거죠.

그리고 사실 영화평론가들이 보는 "예리한 안목'같은 건 일반인들이 영화볼 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우린 많이 목격해오지 않았습니까!


‘사랑의 레시피’는 ‘샤인’을 연출한 스콧 힉스 감독 작품입니다.

이 감독이 몇 살 정도인지 전혀 몰랐는데요, 영화를 보다보니까 저의 ‘감독 나이 알아맞히기’ 호기심이 발동했습니다.

‘50대 감독’일거라는 느낌이 딱 들었습니다.


집에 와서 인터넷 검색창을 열어보니, 와우! 스콧 힉스감독은 저의 예상대로 1953년생이더군요.^^

감독의 연령대를 어떻게 맞췄냐구요? 영화 전편에 흐르는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그런 감독의 성실한 마음가짐에서 눈치 챘답니다.


영화의 무대는 미국 뉴욕 최고 번화가라는 맨하탄의 고급 레스토랑.

주방장으로 일하는 케이트(캐서린 제타 존스)는 날선 자존심으로 무장한 캐리어 우먼입니다. 그녀는 ‘주방이 바로 나의 생명, 나의 인생’이라고 공공연하게 큰 소리로 외칩니다.


성격이 까탈스러워 레스토랑 여사장도 그녀의 눈치를 슬금슬금 봅니다.

그녀가 만든 음식에 1g이라도 불평을 하는 손님은 ‘퇴장’을 명령하는 무서운 주방장입니다. 그만큼 자신의 ‘요리 세계’에 무한 자존심을 갖고 있는 프로인 셈입니다.


뉴욕의 최고 레스토랑의 수석 주방장이니 그 자존심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손님들도 제 돈 내고 먹는 음식이면서도 ‘아부 수준’의 찬사를 그녀에게 바칩니다. ‘한 까칠’ 하는 성격의 저라면 절대 그런 건방지고 비싼 식당엔 안가지만 서울이나 뉴욕이나 돈 있고, 멋있는 상류층 사람들은 그런 ‘안하무인 주방장 식당’에 가는 것도 ‘멋’으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그녀, 콧대 높은 주방장님은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오로지 ‘최고의 요리’만들기에 시간을 쏟습니다. 이 점은 별 다섯 개를 주고 싶네요!

아무리 시시한 일이라도 자기 일에 대해 무한한 자부심과 애정을 갖고 최고의 노력을 쏟아 붓는다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멋있는 일 아닙니까!  


독신의 그녀가 새벽 어시장에 달려가 싱싱한 활어들을 예약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지만 1주일에 한 차례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을 받는 장면도 기억에 남습니다. 외로운 도시의 사냥꾼이라고나 할까요. 언제나 ‘일’만 생각하다보니 그녀는 흉금을 털어놓을 사람이 그리웠던 거겠죠.


‘대장금’과 ‘삼순이’가 생각났습니다. 서릿발 같은 캐서린 제타 존스의 표정연기에선 대장금의 이영애가, 자신의 조카를 향한 따스한 모습에선 정 많은 삼순이가 오버랩 되었습니다.


‘일 중독자’였던 그녀는 어느 날 자신을 찾아오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숨진 언니 대신 조카를 떠맡게 됩니다.

이 조카 또한 이모를 닮아선지 영 까다로운 소녀입니다. 물론 엄마가 운전하는 차가 사고를 당해 간신히 혼자만 살아남은 어린 아이에겐 아마도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도 심할 수밖에 없겠지요.


졸지에 ‘이모엄마’ 노릇을 하게 되는 주방장 케이트는 평소 그녀의 까다로운성격과는 달리 엄마 같은 인내심으로 보채는 어린 조카를 보살핍니다.

이 와중에 장차 그녀의 ‘백기사’가 될 남자 요리사가 그녀의 레스토랑에 입성하면서 영화는 흔히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스토리로 전개됩니다.


미국 감독이 만든 영화인데도 꼭 한국 드라마 비슷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독일의 여성 감독이 7년 전 만든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그래선지 상당히 여성취향의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가슴 한 구석이 허전해질 수도 있는 이 가을, 영화는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를 ‘훈훈하게’ 펼쳐 나갑니다.


예전에 읽었던 일본 소설 ‘박사가 사랑한 수식’에 ‘공부’밖에 모르는 수학박사님이 자신을 보살펴주는 가정부의 어린 아들에게 언제나 ‘최고의 음식’을 주라고 말하는 대목이 얼핏 떠올랐습니다.


미국은 이기주의가 팽배한 나라라는 소릴 들은 적이 있지만 뉴욕 최고 레스토랑의 이 주방장과 그 주변 사람들이 고아가 된 ‘꼬마 숙녀’에게 쏟는 애정을 보면서 미국이든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은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귀에 익은 오페라 아리아들이 풍성하게 화면을 채워주는 것도 이 영화의 미덕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탁월한 영화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가족들끼리 연인들끼리 함께 보러 가면 그런대로 ‘따스한 마음’을 갖게 만드는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