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모메(かもめ )식당을 다녀와서
저는 오늘 핀란드 헬싱키에 있는 ‘카모메 식당’에 다녀왔습니다.
북유럽의 매력적인 항구도시 한 모퉁이에 자리 잡은 이 식당의 주인은
아주 단아한 현모양처형의 사치에라는 일본인 여성이었습니다.
평균적인 일본인 여성보다는 훨씬 뛰어난 미모여서 그녀가 만들어 내놓은
음식은 더욱더 맛있어 보였습니다. 미인은 요리솜씨도 뛰어나나 봅니다.^^
102분 동안 그녀의 인생철학과 요리솜씨, 그리고 따스한 휴머니즘과 함께 하고나니 그녀와 헤어지는 순간엔 눈가가 뜨거워지더군요.
그래선지 ‘카모메 식당’은 다시 또 가보고 싶은, 아니 단골로 삼고 싶은 아담하고 정이 가는 일본 식당이었습니다. 벌써 핀란드인 단골들로 식당은 북적댄다고 합니다.
어쩌면 웬만한 여성들의 로망은 바로 저 ‘카모메 식당’같은 깨끗하고 기품 있는 식당을 운영하는 여주인이 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하자면 여성으로선 좀처럼 되기 어려운 ‘오너’로서 자신의 사회적 존재감을 확인하면서 자신의 ‘일’이 있다는 것! 이것이 요즘 대부분 우리나라 여성들의 꿈이자 희망사항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런 ‘우아한 식당’에 대한 로망은 한국여성에게만 해당하는 건 아닌가봅니다. 그러니 그렇게 자그마하고 세상풍파에 여리기만 해 보이는 사치에 같은 일본여성도 그 머나먼 핀란드에까지 진출해 ‘일본 여성의 솜씨’를 여봐란듯이 보여주는 것이겠지요.^^
‘카모메 식당’에서 사치에는 음식만 파는 것이 아닙니다. 핀란드 사람들에게 일본인의 ‘소울 푸드’를 공급해 준다는 무한한 자부심을 갖고 일하더군요.
어쩌면 ‘카모메 식당’이라는 좁은 공간은 고향을 상실한 현대인의 마음의 고향 같은 역할도 단단히 해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영혼이 쉬어갈 수 있는 ‘안식처’로서의 ‘카모메 식당’은 그러기에 현대인의 마지막 쉼터 같은 곳이기도 하지요.
동서양을 막론하고 상처받은 영혼들이 한 곳에 모여 서로를 보듬어주고, 말은 통하지 않아도 따스한 눈빛만으로 상대방의 아픈 상처를 위로해줄 수 있는 그런 공간! 아마도 여성 뿐 아니라 남성들에게도 절실한 공간일 겁니다.^^
며칠 전부터 서울 종로의 스폰지하우스라는 영화관에선 ‘제 2회 일본 인디필름페스티벌’이 열리고 있습니다. 이번 영화제에는 모두 12편의 일본 최신 영화가 소개되고 있는데요, 제가 오늘 본 ‘카모메 식당’도 바로 그 중 하나입니다.
요 근래 계속 일본영화만을 잇달아 올리는 바람에 자칫하면 우리 스카이뷰의 블로그는 ‘친일파’적이라는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어 글을 올리는 게 조금은 부담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작품’으로 평가한다는 ‘엄정한 심사 방침’에 따라 오늘 다녀온 ‘카모메 식당’을 일본 영화지만 올렸습니다.
‘카모메 식당’에 앉아 있는 동안 내내 행복했습니다. 관객에게 ‘행복감’을 선사하는 것이야말로 영화가 해야 할 ‘지상최대의 과제’라는 게 저의 개인적 생각입니다. 어쩌면 영화뿐만 아니라 무릇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예술의 궁극적 목표는 바로 그것을 향유하는 인간에게 안식과 행복을 제공해 주어야한다고 봅니다. 너무 실용주의적인 생각인진 모르겠지만.
‘카모메 식당’은 그곳에 가기 전부터 저를 행복한 기운으로 감싸주었습니다.
우선 이 영화의 여러 이미지만으로도 사람을 기분 좋게 해줍니다.
일단 ‘요리’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저로서는 ‘식당’이 무대인 영화니 제대로 만난 호재인 셈이지요. 게다가 무대는 북유럽 핀란드의 헬싱키!
‘음식’을 ‘유럽’이라는 무대에서 다룬다는 건 완전 환상의 복식조라고나 할까요!^^
더구나 ‘일상(日常)’에 강한 일본인 감독이 만들어낸 ‘성찬’이니 오죽하겠습니까! 거기에 ‘2007키네마 준보(旬報) 일본 영화 베스트 텐’에 선정되었다니 금상첨화 아닙니까.
영화는 첫 장면에 핀란드 헬싱키 해변의 뚱보 갈매기를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옥호인 ‘카모메 식당’의 카모메가 바로 갈매기죠.
얼마나 잘 먹었으면 저리도 뚱보가 되었을까요.
이 ‘카모메’라는 존재는 잘은 모르지만 일본의 엔카에도 수시로 등장하는 일본적 정서에 부합하는 새인 것 같습니다.
‘갈매기’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정서로 다가오지요.
우선 일본인들도 퍽 좋아한다는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도 ‘갈매기만 슬피우네’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그밖에도 적지 않은 유행가에 등장하는 새가 바로 갈매기죠.
70, 80년대 청소년기를 모범적으로 보낸 분들에겐 에릭 시갈이 쓴 ‘갈매기의 꿈’이라는 소설에 등장하는 갈매기 조나단의 존재가 떠오를 겁니다.
거기에 그 유명한 ‘높이 나는 갈매기가 멀리 본다’라는 구절이 등장하지요. 이 문장은 거의 ‘Boys, be ambitious!'와 동급의 명언으로 두고두고 인용되는 문구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 갈매기라는 새의 존재감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렇게 인간의 정서적 공감대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카모메 식당’의 여주인 사치에는 ‘여자 혼자 몸으로’ 머나먼 핀란드 헬싱키에서 핀란드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것 같은 막연한 생각에서 ‘일본 식당’을 개업합니다. 식당에 테이블이라고는 예닐곱 개 정도.
하지만 척 보기만 해도 깨끗하고 상당히 ‘클래스 있어 보이는’ 그런 단아한 기품의 식당입니다.
거기에 ‘독신’의 여주인공이지만 ‘알뜰 주부’의 표준모델처럼 생긴 사치에는 종업원도 두지 않고 ‘카모메 식당’이라는 자신의 무대를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고 또 닦습니다.
하지만 아직 손님은 한 사람도 오지 않는군요. 이국풍 식당이 신기한 듯 뚱보 헬싱키 아줌마 셋이 매일 식당의 쇼윈도를 통해 사치에를 바라보다 갈 뿐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첫 손님! 그것도 일본어를 구사하는 꽃미남 헬싱키 청년이 식당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자! 이제 드디어 개시 손님을 맞은 거죠.
이 청년 일본말만 할 줄 아는 게 아니라 일류(日流)에 푹 빠져 있네요.
대뜸 모든 일본 어린이의 우상이라는 만화영화 ‘독수리 오형제’의 주제가를 정확히 써줄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니까 식당에 밥 먹으러 온 게 아니고 ‘일본 문화’를 배우러 온 겁니다. ‘다레다~ 다레다~’까진 기억해내는데 성공하지만 전체를 기억 못하는 사치에는 좀 당황하지요.
이 첫 손님은 ‘손님1호’라는 공로로 영원히 커피는 공짜라는 대접을 받습니다. 그 이후 토미라는 이 청년은 매일 아침 식당을 자신의 회사로 여기는지 매일 ‘출근 커피’를 마십니다. 공짜로!
자! 이제 사치에 에게는 중차대한 ‘미션’이 생겼습니다. 이 벽안의 첫 손님의 청을 들어주어주어야 합니다. 서점으로 향한 사치에 앞에 한 일본인 여성 관광객이 홀로 책을 읽고 있네요. 대뜸 ‘독수리 오형제’를 아느냐고 묻자, 이 여성은 댓바람에 연필로 꾸욱꾸욱 눌러서 써줍니다. ‘지구를 마지막까지 지켜내겠다!’는 비장한 각오가 담긴 가사더군요....
이렇게 해서 미도리라는 일본인 관광객은 사치에의 ‘카모메 식당’의 멤버로 뛰게 됩니다. 그녀가 핀란드로 여행 온 계기도 참 코믹합니다.
문득 어느 날 떠나고 싶은 바람이 들자, 미도리는 눈을 감고 세계지도의 한 곳을 짚었는데 바로 그 곳이 핀란드였답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저는 미국인 여류작가 앤 타일러의 ‘우연한 여행자’라는 소설이 떠올랐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이 지구라는 행성에 도착한 ‘우연한 여행자’일는지도 모르지요...
‘일’을 함께 할 뿐만 아니라 한 집에서 살게 된 두 여성은 이런저런 인생 이야기를 나눕니다. 여기에서 사치에는 어린 시절부터 배워온 ‘합기도의 무릎 걷기 동작’을 밤마다 하고 잡니다. 매일 매일 무얼 한다는 것! 이것도 보통일은 아니지요. 어쩌면 이렇게 매일 매일 무엇을 해나가는 삶이야말로 우리네 일상에서 아주 중요한 모멘트를 제공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치에의 일상은 아주 건강합니다. 수영과 합기도 그리고 낮엔 식당 여주인으로 손님들에게 정성이 깃든 일본 요리를 식탁에 내놓는 것! 이것이 사치에의 인생이자 일상입니다.
사치에의 식당에 ‘종업원’으로 뛰는 관광객 미도리 역시 무언가 ‘기여’하는 삶이고 싶어 합니다. 식당 메뉴를 나름대로 ‘현지화’해서 내놓자고도하고 ,손님을 끌기 위해 ‘헬싱키 관광안내책자’에 ‘일본인 식당’ 광고를 내자는 아이디어도 냅니다.
하지만 오너인 사치에는 그냥 자연스럽게 ‘동네 장사’를 하겠다고 합니다. ‘입소문’ 전략이 주효해 식당엔 점점 손님들이 북적대기 시작합니다. 무슨 특별한 기교를 부리는 게 아니라 ‘가장 일본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모토를 세운 것이지요.(우리도 이런 소리 가끔 잘 하지요.^^)
우리의 일상이 매일 ‘그날이 그날’인 것처럼 헬싱키 ‘카모메 식당’도 ‘그날이 그날’인 세월을 보냅니다.
그러면서도 ‘세상 어딜 가도 슬픈 것은 슬픈 것이고, 외로운 사람은 외로운 법’이라는 ‘물은 물이요 산은 산’이라는 식의 선문답이 생활 곳곳에서 삐져나옵니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는 ‘생활 철학자’들인지도 모르지요.
자! 이렇게 영화는 무한정 흘러갑니다.
이젠 영화를 보시는 분들을 위해 너무 자세한 이야기는 자제하겠습니다.^^
단지 가슴에 다가오는 대사 몇 마디만 더 소개하고 싶군요.
‘카모메 식당’의 주요 메뉴는 ‘오니기리’ 곧 주먹밥입니다. 사치에가 그러대요, “오니기리는 소울 푸드에요.”
일찍 모친을 여읜 사치에는 어렸을 때부터 집안 살림을 도맡았답니다. 그런데 1년에 두 번 운동회 날과 소풍날엔 아빠가 만들어주시는 ‘오니기리’를 먹었는데 그게 그렇게 꿀맛이었답니다. “주먹밥은 누가 만들어 주는 게 맛있죠”라고 사치에는 회상조로 말합니다.
누구는 또 그럽니다. “커피는 누가 타 주는 게 맛있는 법”이라구요.
요는 누가 해주는 밥이나 음식이 맛있다는 소리인데요....^^
그래서 이런 명언도 나왔나봅니다. ‘만들기는 어려워도 먹기는 쉽다’^^
‘일벌레’로 알려진 일본인들도 ‘슬로우 라이프’에 대한 무한한 동경을 갖고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느림의 미학’이 있어 보이는 핀란드로 간 겁니다. 그러고는 거기서 또 ‘소울 푸드’를 만드는 일에 전념합니다. 그것이 그들 일본인들의 인생인 겁니다.
단아하면서도 굳건한 심지를 갖고 있는 식당 주인 사치에에게 마사코라는 중년여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해서 좋겠어요”라고 말하자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단지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뿐이죠”라구요.
‘카모메 식당’에 앉아 있는 동안 저는 헬싱키 부둣가와 풍요로운 분위기가 가득한 노천 시장, 녹색 천지인 핀란드의 숲을 둘러보면서 오랜만에 가슴이 따스해졌습니다.
영화 한 편이 사람을 이렇게 편안하고 여유 있게 해준다는 것에 무한한 감사의 마음이 들더군요.
오래 전 읽었던 일본의 여류작가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이라는 소설의 이미지도 ‘카모메 식당’에 오버랩 되었습니다.
또 오래 전 보았던 ‘달콤쌉쓰름한 초콜릿’이나 ‘음식남녀’ ‘안토니아스 라인’같이 좋았던 영화들도 떠올라 모처럼 흐뭇한 마음이었습니다.
영화를 만든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은 1972년 일본 치바현 태생으로, 미국USC대학원에서 영화를 전공한 신예입니다. 데뷔작인 ‘요시노 이발관’으로 베를린 국제영화제 아동영화부문 특별상을 수상했다고 합니다. 재간이 있는 거죠.
‘카모메 식당’은 이 감독이 각본도 직접 썼다는데요, ‘입소문’이 크게 나는 바람에 일본에서도 2006년 ‘일본 미니시어터’ 최고 흥행작으로 7억 엔의 순수입을 올렸다는군요.
여주인공 사치에로 나온 코바야시 사토미는 65년생이니까 40대 초반의 한창 물오른 여배우죠. 그녀의 ‘존재감’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살아나지 못했을 겁니다. ‘음식 영화’ 혹은 ‘생활영화’에 꼭 어울리는 캐릭터의 여배우입니다.
아무런 사건 사고 없이, 그냥 심드렁한 일상을 이렇게 멋진 ‘성찬’으로 차려낸 일본인 감독의 솜씨가 한없이 부러운 영화였습니다.
얼마나 부러운지 영화가 끝나고 마지막 자막을 보고 일어서려는데 눈물이 핑 돌더군요. 약간의 시샘 성 눈물도 섞여있었겠지요. 쟤네들은 왜 저렇게 시시한 이야기로도 저렇게 근사하게 영화를 만들어내는 거지!
뭐 이런 좀 심술궂은 놀부 심보라고나 할까요. 아니면 자괴감이라고나 할지.
꽤 복잡한 감정이 교차하게 만든 영화였습니다.
아무튼 꼭 한번 관람하시길 강추합니다!(물론 취향에 따라서는 시시하게 보실 수도 있다는 걸 미리 말해둡니다.^^)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캐서린 제타 존스의 '사랑의 레시피' (0) | 2007.09.10 |
---|---|
대통령급 영화감상하기- 안녕 쿠로 (0) | 2007.08.24 |
행복한 전도연, 행복한 고민 (0) | 2007.05.28 |
'눈물이 주룩주룩'을 보고 (0) | 2007.05.21 |
부러웠던 아카데미 시상식장 풍경 (0) | 2007.0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