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대통령급 영화감상하기- 안녕 쿠로

스카이뷰2 2007. 8. 24. 11:47
 

   

 

     대통령급 영화감상하기, ‘안녕 쿠로’를 보고


어제 저는 참으로 희한한 경험을 했습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오랜만에 작심하고 영화관을 찾았다가 뜻밖에도 ‘대통령급 영화감상하기’의 기회를 가진 것입니다. 그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영화 금단현상’이 있는 저는 영화를 얼마동안 못 보면 목이 마르듯 저절로 우물가(영화관)을 찾곤 합니다.

한창 바쁜 고비를 넘기고 나니까 문득 가슴이 허해지면서 목이 말라왔습니다. 그 ‘목마름’은 아마도 감정의 혹은 영혼의 갈수현상이기도 할 것입니다.


왠지 무언가 ‘2% 부족한 듯’, 허전한 그런 감정이 들 때, 왜 그러나 싶어 가만 헤아려보면 영락없이 ‘영화보기’를 게을리 한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어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전날까지 제 깐에는 제법 ‘큰 일’을 마무리하고 나서 한숨 ‘휴’하고 돌리는데 갑자기 ‘목마름’이 덮쳐왔습니다. 꼭 아기들이 울기 직전 입을 삐죽거리듯, 저의 영혼이 뭔가 자신을 너무 홀대했다는 식으로 감정선을 압박해오는 것이었습니다. 헤아려보니 영화관에 간지가 무려 한 달이 넘었던 겁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영화정보를 서핑하는데 마침 ‘안녕 쿠로’라는 영화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바로 이거다!’했습니다.

일본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이 영화는 ‘쿠로’라는 검둥이 강아지가 주인공이랍니다.


언젠가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길가에서 우연히 마주친 강아지들의 눈망울을 보면서 ‘울컥’하는 심정을 느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강아지들의 눈망울은 왜그렇게 한결같이 슬퍼 보이는 걸까요?


이건희 삼성회장님이 ‘애견가’로서 사람보다 강아지들과  접촉하는 시간이 더 많을 때도 있다는 이야기를 어느 인터뷰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회장님은 ‘사람은 배신을 하지만 개는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명언을 남겼지요.


아주 오래 전이지만 외국의 한 유명 경제 잡지는 이 회장님의 인터뷰 기사를 실으면서 그가 자신의 애견과 함께 먼 곳을 응시하는 사진을 크게 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때 그 사진이 주는 이미지가 저에겐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렇게 대한민국 최고 기업 회장님이 애견과 함께 저런 표정으로 사진을 찍혔다는 게 어쩌면 인간이 원초적으로 외로운 존재라는 걸 여실히 증명해주는 거라는  ‘거창한 생각’마저 했습니다.  


사람과 개에 얽힌 감동적인 스토리는 우리에게 항상 따스한 마음을 갖게 해줍니다. 주인의 목숨을 구하고 자신은 스러져간 ‘착한 강아지들’에 대한 감동 스토리는 언제 들어도 대견하고 가슴 찡해지지요. 시각장애인을 안내하는 맹도견들의 수명이 평범한 강아지들보다 절반이나 짧다는 이야기를 듣고 뭉클해진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목마른 영혼을 위로해주는 데는 강아지가 주인공이라는 이 ‘안녕 쿠로’라는  영화가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게해서 제가 자주 가는 명동의 일본영화 전용관인 CQN을 찾은 겁니다.


요즘 한창 잘나간다는 남성 작가 김훈 씨는 한 인터뷰에서 “어둠침침하고 냄새나서 영화관은 잘 안 간다”라고 말해 저를 좀 놀라게 했습니다.

세상에 ! 어떻게 그런 유명 인기작가라는 분이 ‘영혼의 양식을 제공하는 영화관’을 그런 식으로 홀대할 수 있는지요.


게다가 ‘냄새나서’라는 표현을 쓴 게 영 걸렸습니다. 모름지기 작가라면 그런 편협한 표현은 공개적으로는 쓰지 않는게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식으로 따지면 ‘인생’ 자체가 원래 ‘냄새나는 일’ 투성이 아닙니까!


제가 친구에게 그 작가가 그렇게 얘기했다니까 우리 친구 얘기가 걸작입니다. “우린 병원에서 하루 종일 냄새나는 환자들을 보살피면서 사는데 그 작가 참 배부른 소리 하는구나.” 생명이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작가로선 그렇게 홀대해선 안 된다는 얘기겠죠.


물론 영화관 찾는 일이야 어디까지나 개인의 기호에 불과한 것이니까, 본인이 싫다면 안 갈수 있는 것이고 그런 걸 전혀 비판할 성질의 사안은 아닙니다만 그 작가가 ‘냄새나서 잘 안 간다’라는 표현을 쓴 건 대한민국 ‘1천만 영화팬’들에겐 영 실례되는 표현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전 ‘냄새’가 나거나 말거나 그 어둠침침한 영화관에 가서 ‘좋은 영화’와 만나는 게 친구들과 수다 떠는 일보다 솔직히 더 좋거든요.

그래서 어제 잠시 짬을 내서 그 영화관에 ‘잠입’했던 겁니다.

평일 점심시간이라서 관객은 그리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은 했습니다.


게다가 명동 CQN은 관객이 한창 몰리는 주말에도 그렇게 북적대지 않는 영화관입니다. 극장 주인으로선 한숨 나올 일이지만 호젓한 걸 좋아하는 ‘연인들’에겐 안성맞춤한 곳이기도 하지요.


예상대로 영화관은 한산했습니다. 매표소 직원이 제게 “고객님이 첫 손님이십니다.”라고 웃으면서 말하더군요. 그곳은 제가 단골로 출입해 직원들은 저를 알아보고 늘 공손히 인사하곤 합니다.


자! 영화가 시작되기 5분 전인데도 극장 안에 관객이라곤 달랑 저 한사람!

얼마 전인가 국무총리를 지낸 한명숙씨가 광주에 내려가 극장을 통째로 전세 내 ‘화려한 휴가’라는 영화를 봤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보고 제가 좀 흥분했던 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국무총리까지 지냈다지만 어떻게 극장을 전세내서 영화를 보는지 선뜻 이해가 안 되었거든요.


그래도 달랑 혼자만 본 게 아니라 전남 도지사니 광주 시장이니 국회의원이니 이런 사람들을 ‘거느리고’ 봤다지요.

그런데 저는 단 돈 7천원을 내고 극장을 통째로 전세내 이렇게 혼자 보게 되었으니 이건 아무래도 국무총리 급이 아닌 ‘대통령급 영화감상하기’의 호사를 누린 셈이라고나 할까요.


그동안 영화관을 수없이 드나들었지만 이렇게 ‘혼자’ 영화관을 독차지하고 영화를 본 건 태어나서 처음 있는 일입니다.

전 사실 이제나 저제나 관객이 들어오겠지 하고 은근히 출입구 쪽에 자주 눈길을 주었습니다만 결국 본 영화가 시작되고 나서도 관객은 저 혼자였습니다. 참 살다 보니까 별 일을 다 겪은 겁니다.


아무튼 그래서 저는 그 큰 스크린을 저 혼자 독차지 하고 ‘대통령처럼’ 우아하게 영화를 봤습니다.

영화는 생각대로 제 취향에 딱 맞는 영화였습니다.


주인이 버리고 간 검둥 강아지 ‘쿠로’가 등굣길 착한 고등학생에게 발견돼 그때부터 학교에서 학생들과 고락을 같이하는 게 영화의 큰 줄거리입니다.

여기에 한창 감수성 예민한 고교생들의 ‘눈꽃처럼’ 청순하면서도 상처받기 쉬운 ‘첫 사랑’의 비극이 강아지 쿠로가 지켜보는 가운데 펼쳐집니다.

 

주연 남자배우는 저번에 우리 블로그에도 소개 되었던 <눈물이 주룩주룩>에서 애늙은이 착한 오빠역을 맡았던 츠마부키 사토시가 나와서 반가왔습니다. 나중에 쿠로가 수술을 받을 때 시골동네 수의사로 나온 배우 역시 셸위댄스, 마츠코의 일생 이런 영화에서 노련한 연기를 보여주었던 배우여서 왠지 안심이 되었습니다. 


역시 늘 제가 말한 대로 ‘일상생활’에 강한 재능 있는 일본 감독이 솜씨있게 강아지 이야기를 순수한 학생들과 연결시켜 잘 풀어간 것이 아주 보기에도 좋았습니다.

일본의 산골마을에서 실제 있었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말은 할 줄 모르지만 학생들의 감정을 잘 읽어내고 그들에게 무언의 위로를 주는 강아지 ‘쿠로’는 10여 년간 장수하면서 4800명의 학생들에게 ‘마음의 안식처’ 역할을 했다는군요.


우리에게도 강아지와 얽힌 아름다운 이야기는 꽤 많지만 이렇게 10년 넘게 한 학교에 살면서 나중엔 그 학교 ‘직원 명부’에 등록되고, 직원회의 시간에도 한 쪽 구석에 의젓하게 앉아서 회의에 참관했다는 강아지 쿠로 이야기는 일본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영화였습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나 홀로 관객’이었기에 마음 놓고 쿨적거리다가 박수치고 웃다가 마치 집에서 텔레비전을 볼 때처럼 아주 편하게 봤습니다.

나중에 극장 문을 나서는데 극장 주인에겐 좀 미안한 마음이 들더군요.

이렇게 좋은 영화가 좀 잘 되어야 할 텐데....


사춘기 예민한 자녀들이나 초등생 자녀분들과 함께 가서 보셔도 좋구요, 어른들끼리 가서 봐도 마음이 정화되고 착해지는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영화 자체는 드라마틱하지도 않고 그저 수수한 일상의 스토리지만 보고나면 마음 한 켠에 환한 등불이 켜지면서 자신의 마음이 착하고 순수해지는 것 같은 기분 좋은 느낌을 선사하는 영화입니다.   

 

극장 홍보요원은 아니지만 ‘좋은 영화’는 여러 사람과 함께 보는 게 좋은 것 같아 우리 블로그 독자 여러분께 강추 합니다!

아무튼 전 난생 처음 영화관에서 ‘나 홀로 관객’으로 그렇게 좋은 영화를 볼 수 있었던 걸 ‘큰 복’으로 여깁니다. 어제 하루 내내 행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