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영, 메종 드 히미코 중 오다기리 조와 시바사키의 군무 장면>
<저를 느닷없이 슬프게 했던 졸저 스카이뷰의 블로그속 세상읽기 표지사진>
세상을 바꾸는 힘 - 블로그의 힘
아래 노래는 일본에서 지난 1971년 최고의 히트곡으로 전일본열도를 휩쓸었던 곡입니다.
다시 만날 날을 소망하는, 그래서 마지막 말만큼은 하지 않는 두 연인의 애틋한 심경을 묘사한 노래인데요, 요즘 제가 아주 즐겨듣고 있습니다.
이 노래와 며칠전 발간한 저의 책을 둘러싸고 제가 느꼈던 <세상을 바꾸는 힘-블로그의 힘>에 대해 글을 올렸습니다.
<また あう 日 まで(마타 아우 히 마데)>
また逢う日まで逢える時まで
다시 만날 날까지 만나게 될 그때까지
別れのそのわけは話したくない
헤어지는 이유는 말하고 싶지 않아
なぜかさみしいだけ
왠지 모르게 쓸쓸해서
なぜかむなしいだけ
왠지 모르게 마음이 허전해서
たがいに傷つきすべてをなくすから
서로 상처를 주고 모든 걸 잃고 마니까
ふたりでドアをしめて
둘이서 문 걸어 잠그고
ふたりで名前 消して
둘이서 이름을 지우고
その時 心は何かを話すだろう
그때 마음으로는 무슨 말을 할까
また逢う日まで逢える時まで
다시 만나는 날까지 만나게 될 그때까지
あなたは何処にいて何をしてるの
그대는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할까
それは知りたくない
그런 건 알고 싶지도 않아
それはききたくない
그런 건 듣고 싶지도 않아
たがいに気づかい昨日にもどるから
둘 다 안쓰러워 하다가 어제로 돌아가고 말겠지
ふたりでドアをしめて
둘이서 문 걸어 잠그고
ふたりで名前 消して
둘이서 이름을 지우고
その時 心は何かを話すだろう
그때 마음으로는 무슨 말을 할까
ふたりでドアをしめて
둘이서 문 걸어 잠그고
ふたりで名前 消して
둘이서 이름을 지우고
その時 心は何かを話すだろう
그때 마음으로는 무슨 말을 할까
(오자키 키요히코의 밀레니엄 히트곡)
요 며칠 저는 좀 거창하게 말씀드리자면 ‘격동의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부족하나마 에세이집을 하나 내느라 한 여름을 그런대로 정신없이 보냈고, 지난 10월 초 ‘스카이뷰의 블로그 속 세상읽기’라는 제목의 에세이집을 세상에 내보냈습니다.
서울 광화문의 교보문고나 종로의 영풍문고 바로 그 옆집인 반디 앤 루니스 라는 대형 서점 신간 코너에 기라성 같은 저명인사들의 신간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전시되어있는 저의 왠지 초라해 보이는 책들을 보는 순간 왜 갑자기 눈물이 핑 도는지요.
워낙에 ‘울보’여서 뭐 그리 새삼스러운 얘긴 아닙니다만 내로라하는 저자들의 책들 옆에 다소곳이 있는 저의 책들을 보니까 마치 어린 아가들을 허허벌판에 내놓은 듯한 안쓰러운 기분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저 어린 것들을 쟁쟁한 책들이 서로 뽐내고 있는 대형 책방에 선을 보인다는 자체가 뭐랄까요, 영 애틋한 기분이었습니다.
우리가 길거리에서 아니면 뜻하지 않은 낯선 곳에서 가족을 우연히 만났을 때 드는 그 기분과도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암튼 책을 내서 기쁜 것 보다는 조금은 슬프고 울적한 심경이 되었습니다.
책을 낸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예전에 책을 냈을 때는 씩씩해지고 자신이 만만해져 우렁찬 기분이 들었는데 아무래도 제가 나이가 들었나봅니다. 제 책을 보면서 안쓰럽고 애틋해져서 눈물마저 핑 돌게 될 줄은 저 자신도 전혀 예측 못했던 감정변화였습니다. 늦둥이를 본 심정이라고나 할까요. 아니면 애지중지 키운 딸을 시집보내는 부모의 심정이라고나 할까요.
제 마음자리가 그렇게 약해지니까 책방에 진열된 저의 책들을 두고 책방을 떠나는 게 무슨 연인과 이별이라도 하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지요.
그리곤 잘도 흘러가는 세월 아니랄까봐 금세 또 며칠이 훌쩍 흘러가버렸습니다. 그 사이 저는 자질구레한 일들로 마음이 언짢아졌고, 우울한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제가 친구에게 이런 저의 심정을 말했더니 그 친구 말이 재미있더군요.
그게 바로 ‘산후 우울증’과 비슷한 거 아니겠냐고요. 가만 생각했더니 그럴싸한 ‘유권해석’같았습니다. 왜 이렇게 마음이 허전하고 울적한가 싶었는데 바로 그 친구 분석이 상당히 설득력있게 다가왔습니다.
이럴 때 무엇엔가 위로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겠지요.
하지만 사람에게서 위로받기 어려운 복잡 미묘한 자신의 감정 변화를 다스리기위해선 때때로 유행가에서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혼자 좋아하는 유행가를 흥얼거리거나 모차르트를 크게 틀어놓고 듣다 보면
마음이 진정되곤 하거든요.
요즘 저의 걷잡을 수없이 수시로 변하는 이 감정의 변화에 대해선 스스로가 컨트롤 하는 수밖에 없다는 진단아래, 그냥 아무 말 없이 음악을 듣는 게 꽤나 효과가 있더군요.
가족을 포함한 타인에게 일일이 자기감정 상태를 말하면서 위로받으려 하는 건 이제 나이가 들어선지 때때로 구차스럽게 여겨집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큰소리로 유행가를 부르면서 자기를 잊어버리는 ‘작업’을 하게 됩니다.
앞에서 느닷없이 일본 유행가를 길게 늘어놓는 바람에 놀라신 분들이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이 노래가 요즘 저를 위로해주는 ‘1등 공신’이어서 다소 길긴 하지만 원 가사를 다 소개한 겁니다.
이 노래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작년 2월 22일 저는 상암 CGV라는 영화관에서 ‘메종 드 히미코’라는 일본영화를 보고 와서 우리 스카이뷰의 블로그에 그 감상문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늙은 게이들의 요양원’을 무대로 한 이 영화는 제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일본영화의 힘을 느껴볼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특히 수려한 미남 배우 오다기리 조와 여주인공 시바사키 코우가 요양원의 늙은 게이들과 나이트 클럽에가서 군무를 함께 추는 장면에서 저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물론 그 장면을 보고 운다는 것에 이해를 못하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 ‘소외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일종의 ‘해방공간’이라고도 할 수 있는 클럽에서 그렇게 힘차게 함께 춤을 추는 모습에서 생명의 고귀함과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연민 그리고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인간적인 희열 같은 것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지면서 그야말로 ‘뜨거운 눈물’이 흐르는 것을 주체하기 어려웠던 겁니다.
그 때 그 군무의 배경음악이 바로 위에 인용한 <また あう 日 まで(마타 아우 히 마데)>라는 일본유행가입니다.
그 노래는 이상하게 사람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일본말 가사를 좀 알아듣는 편이어서 그 가사내용이 그렇게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말하자면 ‘연인들’의 세심한 감정의 줄다리기를 그린 노래인데요, 멜로디도 귀에 착 달라붙었습니다.
그 이후 저는 동숭동에 있는 일본식 퓨전 요리점에 가면 ‘신청곡’으로 들었고, 인터넷 검색창을 통해 ‘메종 드 히미코의 군무장면’을 클릭해서 듣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9월 22일 제가 자주 들르는 멜론님의 블로그에 ‘신청곡’으로 이 노래를 부탁하게 된 것입니다. 일본 동경에 사시는 멜론님의 블로그는 아주 매력적인 블로그로서 특히 일본 노래를 탁월한 가사해석과 함께 종종 실어왔기에 큰 맘 먹고 옛날에 음악다방에서 DJ에게 곡을 신청하듯 그렇게 했던 겁니다.
멜론님은 지난 10월 10일 드디어 제가 신청했던 <また あう 日 まで(마타 아우 히 마데)>를 훌륭한 번역 솜씨로 자상하게 가사를 소개했고 거기에 덧붙여 그 노래를 부른 오자키 키요히코라는 남자가수가 쇼와 52년(1977년)에 불렀던 동영상도 올려놓았습니다.
30대의 혈기 방장한 청년의 노래는 ‘힘’이 넘쳐 듣는 사람에게도 어떤 힘찬 기운 같은 것을 불어넣어 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 오자키라는 가수의 노래부르는 모습은 제가 멜론님의 ‘특별 허락’을 받고 스크랩해서 제 블로그에 조금 전 올려놓았습니다.
우리 스카이뷰의 블로그 역사상 ‘타인의 블로그’를 스크랩해 올린 것은 오늘이 처음입니다.
저는 그 30년 전의 ‘미남 가수’를 보면서 ‘After 30Years'인 오늘날의 그의 모습이 너무도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또 DJ멜론님에게 신청을 했습니다.
‘그가 살아있다면 그의 오늘을 보여주세요’라고. 어찌 보면 좀 짓궂기도 하고 잔인한 가학취미 같기도 하죠? 아니면 자연스러운 인간적 호기심....
‘친절한 멜론님’은 신속하게 30년 후인 오늘의 오자키 ‘근황’을 또 동영상까지 곁들여 소개해주었습니다.
오! 30대의 청년에서 60대 중반의 노년으로 변한 오자키 키요히코라는 한 남자가수의 동영상을 보면서 저는 ‘인생공부’ 참 많이 했습니다.
‘이것이 인생이다’라는 다큐멘터리 영화 한편을 보는 듯했습니다.
오자키 상이 부른 그 노래는 쇼와46년(1971년) 전(全)일본 최고의 히트곡으로 멜론님 표현에 의하면 ‘밀레니엄 히트곡’이었다고 합니다.
‘메종 드 히미코’의 군무장면의 사운드트랙으로 나오는 곡은 오자키가 부른 게 아니라 리메이크해서 젊은 가수가 빠른 템포로 부른 곡입니다.
어쨌거나 그 노랠 첨 부르던 36년 전 당시 오자키는 아마도 우리나라의 남진이나 나훈아, 혹은 조용필보다 훨씬 유명한 가수였을 겁니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그 이후 지금까지도 그는 일본에선 ‘유명 가수’이자 ‘원로가수’로서 대접받고 있는가봅니다. 젊었을 때도 잘 생긴 얼굴이지만 노년에 들어선 요즘도 ‘로맨스 그레이’ 스타일로 아직도 미남 기운이 남아있는 멋진 할아버지로 변했더군요.
그 30여년 세월 속에 인기 절정의 젊은 미남가수의 인생에는 얼마나 다채롭고 파란만장한 ‘사연들’이 있었겠습니까! (뭇 여성 팬들이 가만 놔두질 않았을 걸요. 그래선지 두 번의 이혼경력이 있더군요.)
30대 때의 오자키 노래에는 힘이 있고 박력이 넘쳤고, 카리스마가 있어보였습니다. 천하의 여인들을 다스리기라도 할 것 같은 매력이 있는 듯했습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당시 일본 여성들 그 오자키 때문에 ‘잠 못이루는 밤’을 보냈을지도 모르겠네요.^^
‘이제는 거울 앞에 돌아온 내 누님’처럼 그 오자키도 서리 내린 머리에 흰 턱수염을 날리면서 다시 그 노래를 부르긴 하지만 그야말로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조금은 슬픔이 깃든 음색으로 변했더군요.
하지만 이제 인생의 신산을 다 겪은 그의 목소리에는 부드러움과 서러움, 그러면서도 감미로운 정조가 깃들여 있어서 제겐 오히려 더 섹시하게 들려왔습니다. 한없이 위로해줄 것만 같은 그런 자상함이 그의 흰 수염에 숨어있기라도 한 것 같았습니다. 아가야! 너무 슬퍼 마렴. 이런 말을 해줄 것만 같은 인자함도 느껴졌습니다.
그러니까 꼭 젊은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요새 우리 사회에선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젊음만이 대접받는 듯한 추세가 만연해 있질 않습니까!
그런데 사람살이라는 게 꼭 그렇게 힘세고 잘나고 그래야만 행복한 건 아니거든요.
예전엔 저도 40세가 넘으면 인생 끝난 걸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살다보니 그게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감정은 나이 들면 녹슬어버릴 줄 알았지만 오히려 ‘또 다른 모습’으로 신선하게 자신을 긴장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30대와 60대의 오자키가 들려주는 그의 ‘밀레니엄 히트곡’<また あう 日 まで(마타 아우 히 마데)>를 듣고 또 들으면서 참 많은 ‘인생공부’를 한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선지 한권의 책을 냈답시고 ‘산후 우울증’같은 기복 심한 감정변화에 고통스러웠던 제 자신을 덕분에 많이 추스를 수 있었습니다.
오늘 제가 이렇게 두서없이 길게 횡설수설한 것은 바로 ‘세상을 바꾸는 힘, 블로그의 힘’을 말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제가 책을 낸 것은 순전히 블로그 덕분이었습니다.
제가 30여 년 전 일본 최고의 히트곡을 당시 일본텔레비전 화면으로 볼 수 있었던 것도 블로그 덕분이었습니다.
게다가 1970년대로부터 30년이 흐른 21세기 오늘, ‘그 때 그 가수’의 오늘의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 짭짤하게 ‘인생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블로그 덕분이었습니다.
‘Oh My Blog!'
성경말씀에 ‘네 시작은 미미하나 그 끝은 창성하리라’라는 말씀을 저는 참 좋아합니다. 바로 블로그에게 바치고 싶은 헌사라고 생각합니다.
연초에 꽤 유명한 잡지의 청탁을 받고 ‘블로그’에 관련한 에세이를 쓴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저는 ‘세상을 바꾸는 힘 블로그’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그랬더니 편집자가 ‘세상을 바꾸는 힘’이라는 구절을 ‘무단삭제’해버렸더군요.
잡지를 받아본 연후에야 편집자가 ‘임의의 횡포’를 부렸다는 걸 알고 좀 씁쓸해졌습니다. 왜 필자에겐 단 한마디 상의도 없이 멋대로 고치는 건지...
어쩌면 신문사나 잡지사에선 지금 ‘블로그의 힘’이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하지나 않을까 해서 그런 식으로 ‘사전조율’을 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필자로선 지금도 기분이 개운치않습니다.(저는 워낙 꽁한 성격이라서 부당하다 싶은 어떤 일을 당하면 잘 잊어버리지 못하거든요.^^)
그래서 오늘 제가 이렇게 긴 글을 쓰게 된 것도 이제는 ‘세상을 바꾸는 힘, 블로그의 힘’을 아무도 막을 수 없는 게 ‘대세’라는 것을 주장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저의 말에 일리가 있지 않습니까!
어떤 매체가 있어 30여 년 전 최고 인기가수의 노래를 국경을 초월해서 바로 우리집 내 컴퓨터로 ‘배달’해 줄 것이며, 또 30년 후 그 가수의 ‘현재’를 그렇게도 빠른 속도로 보여줄 수 있겠습니까!
이게 다 블로그의 덕분 아닐까요? 저는 기왕에 블로그 덕으로 책까지 냈습니다. 또 블로그 덕에 전 세계의 여러 네티즌들과 ‘실시간’으로 서로의 의견을 거의 ‘빛의 속도’처럼 아주 빠르게 주고받고 있습니다.
비단 저 뿐만아니라 얼마전 일어났던 미얀마의 민주화운동 시위현장도 블로거들이 실시간으로 상황을 블로그에 옮겨 전세계적으로 반향을 일으켰었죠.
이렇게 국제적으로도 손쉽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이 블로그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힘’을 발휘한다는 걸 굳게 믿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앞으로의 세상은 ‘블로그의 힘’이 이끌어나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블로그’ 그대가 있기에 나의 삶은 더 윤택해지고 더 신이 날 것 같네요.^^
I love Blog! Thank you, so mu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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