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단상

나훈아 고백과 바지 쇼 해프닝

스카이뷰2 2008. 1. 26. 15:00
 

 

          나훈아 고백과 ‘바지 쇼 해프닝’


어제 드디어 온 국민 앞에서 나훈아가 고백했다. 요지는 ‘나는 결백하다. 모든 건 언론 탓이다’였다. 위풍당당해 보이는 그 모습에 웬만한 사람들은 공연히 주눅 들 정도로 가수 나훈아는 대단한 쇼맨십을 보여주었다.


가뜩이나 사자 같은 이미지의 이 중년 사내는 기가 펄펄 살아서는 억울하다고 호소했다. 상처를 너무 받았다고 하는데 별로 그렇게 상처받은 듯한 얼굴로 보여 지지 않을 정도로 그는 쌔 보였다. 마치 권력자 같았다. 어느 누가 감히 그런 ‘못된 루머’를 만들어 퍼뜨렸는지 걸리기만 하면 죽었구나 싶을 정도로 강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일부 언론에선 ‘넘치는 카리스마’ ‘탄탄한 몸매 여전’ 등의 제목으로 나훈아를 호의적으로 보도했다. 심지어는 느닷없이 나훈아의 그림솜씨와 서예솜씨가 프로급이라는 기사도 나왔다. 게다가 그의 자녀들이 공부를 잘해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을 졸업했다는 내용도 곁들였다. 이만하면 상찬(賞讚)이 아닐 수 없다. 나훈아가 그 기사를 보고 상당히 흡족해했을 것 같다.


화면에 비친 그의 상반신은 신체적으로 꽤 단련을 많이 한 것처럼 보였다. 중년의 뱃살도 거의 없었고 흰 와이셔츠 밖으로 살짝 비쳐지는 근육에는  청년 기운이 제법 남아 있어 보였다.


환갑 진갑 넘은 ‘노인’이 전혀 아니었다. 유난히 하얀 턱수염만 없었다면 40대 장년의 모습이다. 그런 사람이 1년 이상 ‘잠적’혹은 ‘은둔’했다가 ‘어흥’하고 달려 나온 모습은 가관이었다. 몹시 성난 모습이어서 보는 사람이 괜히 잘못한 것 같아 미안하다고 지레 사과하고 싶을 정도다. 무서운 분위기였다.


물론 그의 말대로 언론이 펜대 하나로 사람을 죽이려 해서 자기 가슴이 다 찢어졌다고 해도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팬들이나 국민들의 궁금증을  ‘외면’한 것은 그리 칭찬 받을 일이 아니지 않는가.


어떤 형태로든 진솔하게 진심으로 국민에게 죄송하다는 얼굴빛이어야 할 텐데 마냥 당당하게 군림하려는 듯해 보이는 ‘황제급(級) 연예인’의 자세에 거부감이 느껴졌다. 저렇게 당당할 것을 왜 진작 힘없는 국민들을 위로해주지 못했나 싶다.


물론 나훈아에게 그렇게 해야 할 ‘절대의무’는 없는 거 아닌가라고 반문하면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팬들의 사랑을 먹어야 그 존재의미가 부여되는 연예인의 자세치고는 그리 바람직해 보이지 않았다. 누구는 한편의 잘 짜여진 ‘모노드라마’같았다고 하는데 그런 컨셉이었다면 이해가 간다.


저녁 9시 뉴스 시간에 잠시 보여준 나훈아는 갑자기 자신 앞에 놓여있던 탁자위에 구둣발로 성큼 뛰어 올라가 혁대를 풀고 바지 지퍼를 내려 하얀 팬티가 보이는 장면을 연출했다. 보면서 꽤 놀랐다. 그야말로 요즘 애들 말로 급 경악! 태어나서 저런 장면은 첨이다. 아마 그 뉴스를 본 모든 대한민국 국민들은 나와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대한민국 건국 이래 인기 가수가 ‘떠돌아다니는 괴소문’으로부터 자신이 결백함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텔레비전 생중계 카메라가 돌아가는, 그야말로 수백만이 보고 있을 중인환시 리에 바지를 내리는 모습은 전무한 일이다. 마치 사무라이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할복하는 모습이 연상될 정도였다.


어쨌거나 그는 그렇게 해야만 직성이 풀렸을지도 모르겠다. 안하무인의 분위기마저 느껴졌다. 물론 좋게 말한다면 ‘길들여지지 않는 야성’이라고 표현해줄 수도 있겠지만 저건 국민에 대한 무례다!

아마  그 자리에 취재차 몰려든 내외신 기자들과 나훈아 팬들 모두 엄청 놀랐을 것 같다. 뉴스 화면을 통해서도 여기저기서 ‘놀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중에 연예전문 재방송에서 보니 그는 “영어에 씨잉 이즈 빌리빙(Seeing is believing)이란 말이 있다.”라는 서두를 꺼내면서 그런 돌출행동을 시작했다. “여러분 중에 한 분에게 5분간 직접 보여드리겠다. 아니면 그냥 믿으시겠습니까”라고 무슨 교주처럼 외쳤다.


얼굴은 보여주지 않았지만 중년 여성인 듯 다소 떨리는 음성이 “나훈아 님을 믿습니다”라고 몇 차례 응답하는 걸 듣고 나서야 그는 겨우 화가 풀렸다는 듯이 탁자에서 내려가 의자에 앉더니 다시 그 탁자에 손을 올려놓고 이야기를 계속해 나갔다.


믿으시겠습니까! 라고 외치는 그의 모습에선 거의 ‘교주’같은 강렬한 이미지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헤어스타일마저 교주스러웠다. 장발에 뒷꽁지를 조그맣게 잡아맨 스타일이었다. 그런 그를 보니 웃음이 나왔다. 귀여운 이미지마저 읽혀졌다. 어쩌면 고도의 연출력이 솜씨를 발휘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그런 해프닝을 보며 10여 년 전 일본열도를 들썩거리게 했던 옴진리교사건의 아사하라 교주가 떠올랐다. 그 교주도 나훈아처럼 굽슬 거리는 머리를 어깨까지 풀어 내렸다.


장님으로 알려진 그 교주는 휘하에 동경대학이나 와세다 대학 게이오 대학 등 소위 일본의 최고 명문대 졸업생들을 부하로 거느리며 재벌 회장 같은 호화생활을 하면서 일본을 평정하겠노라고 호언장담했다고 한다. 굉장한 달변가여서 어느 누구도 그 앞에선 반론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어제 나훈아의 ‘연설’이 꼭 그런 식으로 비쳐졌다. 명목상으론 ‘기자회견’이었지만 기자들의 질문은 일절 받지 않고 그냥 자기 하고 싶은 말만 줄줄 쏟아낸 다음 저렇게 바지까지 벗어 내리는 해프닝 끝에 결론은 ‘언론 니네 정신 차려라!’ 였다.


물론 언론도 잘한 것은 없지만 이런 상황까지 오게 한 원인제공의 장본인으로 나훈아 역시 책임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쨌든 나훈아의 달변은 요새 최고 인기를 끌고 있다는 장경동 목사가 주는 거칠 것 없는 이미지와도 비슷했다.


그 목사님도 워낙 아시는 게 많아 그야말로 자유자재로 신도들을 쥐었다 놓았다 하면서 강연한다. 그 목사님의 설교를 텔레비전을 통해서 듣다 보면 언제 시간이 다 갔나 싶을 정도다. 재작년인가 ‘줄기세포 사건’으로 온 국민 앞에 서야했던 황우석씨의 모습도 겹쳐 떠올랐다. 황씨도 나훈아 못지않게 당당했었다. 과연 무슨 할 말이 있을까 걱정될 정도였지만 황씨는 그답게  달변가로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황씨는 과학자로서야 신뢰를 잃었지만 국회의원 나오면 잘할 것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나훈아를 위시해 아사하라 교주나 장경동 목사나 황우석씨나 모두 달변가로서의 DNA를 갖고 있는 남자들 같다. 현 대통령도 달변의 DNA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분일 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이런 범주에 들 것이다.
나훈아도 한때는 정계로부터 러브콜을 수 차례 받았다고 하니 서로를 알아보는 '눈'이 있나보다.  


나훈아는 회견이 끝난 뒤  점심식사 도중 55분 동안 말했다는 주변의 말을 듣고 한 10분 한 줄 알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만큼 스스로도 자아 도취되었을 것이다. 세상엔 말 잘하는 사람이 참 많다. 특히 텔레비전에 얼굴 비추는 사람들 치고 말 못하는 사람을 못 봤다. 나훈아도 바로 그런 케이스다.


게다가 그는 자칭 타칭 연예계 황제로 군림해온 가수 아닌가. 같은 트롯 장르의 고만고만한 남자가수들을 다 합쳐도 나훈아 하나만 못하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니 그의 언변이나 노래 솜씨는 가히 한국 최고 정상이라고 해도 손색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노래’이외의 문제로 오랜 시간 텔레비전 앞에서 ‘일장 설교’를 했다는 것은 어찌 보면 나훈아 본인에겐 그리 명예스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아무튼 나훈아의 ‘바지 쇼 해프닝’은 로이터 통신을 통해 전세계에 타전되어 세계적인 주목을 끌었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이런 ‘바지 쇼 해프닝’은 딱 한번 있었다고 한다. 영국 인기 가수 톰 존스가 그랬다는 것이다. 자세한 경위는 보도되지 않았지만 톰 존스도 무언가 매우 답답한 일이 있었나보다.


어쨌거나 어제 나훈아 고백 쇼의 하이라이트는 이 ‘바지 쇼 해프닝’이었다고 본다. 그럴 리야 절대 없었겠지만 만약 나훈아가 그 순간 바지를 정말 내렸다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물론 그렇다면 그는 ‘공연음란죄’로 구속되었을 것이다. 하여튼 환·진갑 넘긴 노년의 남자가수가 저런 ‘생 쇼’를 해야만 했던 저간의 사정을 생각하니 아무 관련 없는 나마저 가슴이 답답해졌다.


오죽하면 저랬겠나 싶어 일말의 동정심도 없진 않았지만 그래도 너무했다는 느낌이다. 좀 심하게 말한다면 ‘전 국민을 희롱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물론 나사모 회원들이야 ‘훈 사마’가 마음 고생한 것을 감안하라고 소리치겠지만 ‘바지 쇼 해프닝’은 금도를 넘어선 행위였다고 본다.


그 뉴스를 지켜본 어른들이야 웃어넘길 수 있겠지만 행여 초등학생을 비롯한 청소년들에게 끼칠 악영향에 대해서 나훈아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훈아 본인도 ‘네티즌들’의 영향력을 잘 알고 있다는 식으로 말했듯이 네티즌들의 대다수는 청소년들이다. 지금 대한민국 인터넷 최고 향유자는 바로 청소년들이다.

그런 마당에 한국 최고 가수라는 사람이 아무리 억울한 자신의 괴소문을 해명하기 위해서였다지만 그런 식으로 해프닝을 벌인 것은 두고두고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것이다.


나훈아는 어제 자신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은 김혜수 김선아의 이름을 여러 차례 거명하며 언론이 그녀들에게 진정으로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그의 표현대로 결혼도 안한 ‘후배 처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서였다면 좀더 일찍 커밍아웃을 했어야 할 것을...만시지탄이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긴 하지만 두 여배우에겐 ‘횡액’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깨진 유리그릇처럼 그녀들의 명예회복은 그리 쉽지는 않아 보인다. 그러기에 나훈아의 ‘고백’이 시기를 놓쳤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어쨌거나 어제 55분동안 텔레비전 이 생중계한 ‘나훈아 고백 쇼’는 나훈아 본인에겐 상당한 플러스 효과를 가져다주었을 것이다. 물론 본인이야 꿈을 잃었네 어쩌네 하면서 상당히 비관적 제스추어를 보였지만 ‘손해 본 장사는 아니었다’고 본다.


이런 식의 ‘스캔들’로 대한민국 전체가 들썩거리는 것에 대해 학자들은 ‘집단적 관음증’, ‘미디어 상업주의’라는 분석을 내리고 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앞으로도 연예인들을 둘러싼 이런 ‘엽기적 스토리’는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연예인이 우리 사회에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진 한 증거일 것이다. 그때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는 것을 나훈아가 이번에 ‘모범 답안’으로 보여주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의 대처법이 옳지 않았다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꽤 많다.


환·진갑이 넘은 ‘노가수’ 나훈아 가 젊은 여배우들과 비록 근거 없는 염문설이지만  한때나마 휩싸였다는 것에 대해 대한민국의 적잖은 남성들은 부러운 시선을 보냈을 것이라는 ‘뒷 담화’도 들려온다.


아무튼 나훈아 해프닝은 여러 의미에서 당분간 그 ‘신화적 기록’이 깨지지 않을 것 같다. ‘전무후무’라는 표현은 함부로 쓰기엔 상당히 조심스럽지만 이번 나훈아 고백 쇼는 아마도 ‘전무후무한 해프닝’이 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