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단상

태안 바닷가에 사는 11세 소녀의 눈물

스카이뷰2 2008. 2. 1. 11:54
 

 <아빠와 함께 기름을 닦아내는11세소녀(사진 왼쪽)>

   

  

    태안 바닷가에 사는 11세 소녀의 눈물


언제 들어도 눈물 나는 노래가 하나 있습니다. 미국민요 ‘클레멘타인’입니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있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아비 혼자 두고 영영 어디 갔느냐.


이 노래는 19세기 말 캘리포니아 광산에 금캐러 왔던 광부들이 불렀던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로 유명한 소설가 박태원이 우리 정서에 맞게 번안한 것이라고 합니다.

나라 잃은 설움에 조선 백성들 입에서 입으로 퍼지면서 이 ‘슬픈 노래’는 전국 방방곡곡에 울려 퍼졌다고 합니다.


저는 바닷가에 살아본 일은 없지만 이상하게도 아코디언 선율을 타고 들려오는 이 노래를 들으면 마치 제가 ‘철모르는 딸 클레멘타인’도 되었다가 ‘늙은 아비’도 되었다가 하면서 울컥해집니다.

어젯밤 늦게 KBS TV에서 우연히 보게 된 현장 르포 ‘동행’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문득 이 슬픈 ‘클레멘타인’이 떠올랐습니다.


그래도 텔레비전에 나온 ‘클레멘타인 소녀’는 늙은 아비를 눈물짓게 만드는 철부지가 아닌 온 가족의 태양 같은 구심점으로 그 가족은 물론  시청자인 저에게까지 힘을 주는 ‘마법의 소녀’였습니다.


아주 예쁘고 의젓하게 생긴 이 11세 소녀 정해의 일상과 그 아이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저를 울리면서 또 기운 나게 만들더군요. 어린 소녀는 태안 기름 유출 사건이 어떤 건지 아느냐는 PD의 질문에 “아빠가 일하시는 바다에 기름이 쏟아져서 고기를 못 잡으러 나가고 우리 식구들이 모두 힘든 거”라고 눈물을 주루룩 흘리면서도 또박또박하게 말했습니다.


아무리 누선이 튼튼한 어른이라도 저 어린 소녀가 저렇게 걱정하며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면서 뭉클해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저는 그 순간 대한민국의 위정자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빨리 저 태안 소녀의 눈물을 닦아주러 내려 가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어 몰입교육 문제도 '너무(?)' 중요하지만 저 어린 것이 저렇게 울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 아닐까요?

소녀는 어른들의 절박함을 다 알아듣고 자기도 힘을 보태려 방한복을 입고 바닷가로 달려가 기름 닦는 작업에 동참했습니다. 어린 고사리 손으로 시커먼 기름때를 씻어내는 모습에 숙연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참 이상한 존재여서 고난의 순간에도 우리 어른들에게 ‘마법의 힘’을 선사합니다. 저 고사리 손이 기름을 닦아내봐야 얼마나 닦겠습니까마는 해맑은 표정으로 영차영차 하면서 ‘못된 기름덩이’를 닦는 모습을 보니 안쓰럽게 보이면서도 기운이 생기더군요. 그래서 아마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시가 탄생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작년 12월 충남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 사건의 후유증을 다룬 이 프로를 보면서 산다는 것의 신산함을 다시한번 뼛속 깊이 느꼈습니다. 듣자하니 이 사고를 일으킨 대기업에선 나 몰라라 하는 자세로 계속 버팅기고 있다고 하니 더 화가 솟구칩니다.


있는 사람이 더 무섭다고나 해야 할지. 아니면 대기업 특유의 ‘대마불사’ 정신이 엉뚱한 곳에서 발휘되고 있는 것인지 모르나 적어도 21세기엔 그런 식의 기업마인드로는 버텨내기 어렵다는 걸 경고하고 싶습니다. 


매스컴에서 거의 매일 ‘태안 문제’를 다루고 한 달여 동안 전국의 자원봉사자 130여만명이 태안으로 내려가는 모습을 보며 전 세계가 놀라고 있다고 합니다. 정치인들이나 연예인들이 내려가 봉사한다는 소식도 간간히 들려왔습니다.


어떤 연예인은 남모르게 봉사하는 모습이 ‘들켜서’ 보도되기도 하는 해프닝도 있었지요. 어쨌거나 이렇게 범국민적으로 봉사하는 모습에서 인정 많은 우리 한국 사람들의 ‘옛정’이 되살아나는 듯해 흐뭇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태안의 위기는 계속 중입니다. 한 어린 소녀가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한 채 또박또박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니 다른 어떤 메시지보다도 사태의 심각성이 절박하게 다가옵니다.


11세 어린 소녀는 청각장애와 언어장애를 앓고 있는 두 살 위 오빠를 위해 의사가 되고 싶다는 소망도 말합니다. 어릴 때부터 오빠의 입노릇 귀 노릇을 해온 이 소녀는 빨리 커서 의사가 되어 오빠를 고쳐주고 싶다고 합니다.


당장 먹을 쌀이 없어서 엄마는 이웃에 쌀을 꾸러 다녀오고 말 못하는 오빠가 엄마 속을 썩이지 않게 하려고 소녀는 앞치마를 걸쳐 입고 서툰 솜씨로 계란 후라이를 만들어 오빠에게 한 입 한 입 떠 넣어주면서 스스로도 기분이 좋은지 환하게 웃습니다. 이렇게 오빠를 달래줘야 오빠가 떼 부리면서 엄마를 때리지 않는다는군요. 엄마는 속 깊은 딸아이를 보면서 시름을 잠시 잊는 모습입니다.


지금 태안에 사는 주민들은 그야말로 준전시상태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답니다. 생업의 현장인 바다만 바라보고 살아왔는데 유조선이라는 괴물이 어부의 목숨이 걸린 삶의 터전에 시커먼 기름덩어리들을 쏟아냈으니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이야기겠지요.


가을걷이로 식량을 비축해놓을 수 있는 농부들과 달리 어부들은 그날그날 생업의 현장에서 캐온 해산물을 시장에 내놓아 왔는데 일을 못하게 되니 그야말로 손가락만 빨고 있는 형편이라고 합니다.


이런 엄청난 사건으로 시름을 견디지 못한 어부 몇 명은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는 비보도 들려왔습니다. 그분들이 그런 비장한 선택을 하기까지 우리 위정자들은 무얼 하고 있었는지 그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11세 소녀의 아버지 어부 정영수씨의 심경도 더 이상 참담할 수 없다고 합니다. 1억 원이 넘는 거금을 들여 배를 샀고, 매달 백만 원이 넘는 이자를 갚아나가야 하는데 저렇게 생명의 바다가 죽음의 바다로 변해버렸으니 어떻게 해야 할 지 하늘만 바라볼 뿐입니다.


정영수씨가 이렇게 무리를 해서 배를 장만한 건 선천적 장애를 지니고 태어난 아들을 치료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저렇게 생업을 할 수 없는 횡액을 당했으니 그 다급하고 쓰라린 심정은 아마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이들의 엄마 역시 눈물만 짓고 있습니다. 착하디착해 보이는 엄마는 아들이 장애아인 것도 서러울 텐데 당장 끼니를 이을 쌀을 꾸러 이웃에 가야하는 현실이 원망스럽기만 할 것입니다. 쌀 꾸러 간 그 집도 쌀이 그리 넉넉지 않아 보였습니다. 아낙네들은 하도 기막히니까 그냥 서로 보고 웃더군요.


그래도 엄마는 아이들을 위해 꿋꿋해지려고 합니다. 아들의 언어 치료를 위해 왕복 네 시간 넘게 걸리는 읍내에 나갔다 오면 녹초가 돼 꼼짝 못한     다고 힘없게 웃어 보이는 엄마의 눈에 눈물이 맺혔습니다.


태안 기름 유출사고 이후 거의 모든 태안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방제작업에 매달려 하루를 보냅니다. 오전 7시에서 저녁 7시까지 하는 방제작업 일당은 고작 7만원. 그것도 제 때 지급이 안 돼 바다를 일터로 살아온 어부들의 쌀독은 저렇게 텅 비었다는군요.


엊그제부턴가 관청에서 태안주민들에게 생계비를 지급하기 시작했다지만 여러 가지 문제점이 많다는 소리도 터져 나옵니다.  보상비 문제로 화가 나 관청에 달려간 한 어민은 자기 손가락을 스스로 절단해버리는 무시무시한 자해소동을 벌였다고도 합니다. 그만큼 그들의 생계가 절박하다는 얘기겠지요.

 

이렇게 고달픈 와중이지만 어린 소녀 정해는 엄마 아빠 손을 잡고 힘차게 다시 바닷가로 달려 나갑니다. 못된 기름덩이를 한 개라도 빨리 거둬내야지 아빠가 다시 고기를 잡을 수 있으니까요.


제발 위정자들은 더 이상 저 어린 것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지 않도록 해줘야 할 겁니다. 어린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야말로 정치의 본질 아니겠습니까? 속 보이는 쇼맨십은 이제 필요치 않습니다. 진정어린 겸허한자세로 태안 주민들의 고통을 하루 속히 제거해주기를 위정자들에게 강력히 촉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