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드라마 이산 속 장태우의 쇼를 보고

스카이뷰2 2008. 3. 5. 10:56
 

 

 

   드라마 ‘이산’속 ‘장태우’의 쇼를 보고


30% 넘는 시청률을 자랑한다는 MBC드라마 ‘이산’을 어젯밤 잠시 보고 실소를 금치 못했습니다.

역사적 사실이나 진실에 해박하지 못한 저로서 함부로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니지만 어제 본 드라마 ‘이산’은 거의 코미디 수준이라고 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그동안 여러 네티즌들이 해박한 역사지식과 정확한 문헌적 근거를 바탕으로 사극 ‘이산’ 에 대해 예리한 비평을 하는 것을 간간히 봐왔습니다.


듣기로 ‘이산’은 그 유명한 ‘대장금’을 연출한 사극전문 PD라는 이병훈씨가 총감독을 맡았다는데 그래선지 장면 곳곳에 ‘대장금’을 연상시키는 연출 기법이 고스란히 느껴지더군요. 그런 게 흉은 아닐 겁니다. 드라마적 재미를 가미하지 않으면 채널은 돌아가 버리게 마련이니까 시청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제작진의 입장에서야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역사적 진실과는 너무나 거리가 있다는 지적에도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며 오히려 지적한 쪽을 이상한 부류로 치부해 버리는 기류도 있다고 합니다.

물론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니 까짓 역사적 진실이 좀 틀렸기로 무어 그리  큰 대수겠습니까!


그동안 이산에 대해 쏟아진 비판 중 가장 재미있던 것은 세손 이산을 음해하려는 무리 중 ‘정후겸’이라는 인물이 드라마 속 어떤 사건이 일어나기 1년 전 이미 사약을 받고 저 세상으로 갔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그 사건의 중심인물로 정조를 제거하는 ‘역모’의 중심에 서서 맹활약하는 대목이었습니다.


이쯤 되면 ‘역사 왜곡’이 되거든요. 게다가 극의 전후 과정을 봤을 때 우리같이 역사에 무지한 사람이 봐도 도저히 저래가지고는 살아남기 어려운 데라고 걱정 아닌 걱정을 하게 되니 그만큼 극의 ‘리얼리티’는 떨어지는 것이겠지요.


이런저런 ‘역사적 고증’에 위배되는 여러 정황을 지적해도 꿋꿋이 ‘시청률 1위’근처를 오르내리다 보니 아무래도 제작진은 그 마약 같은 시청률에 휘둘릴 수밖에 없었나봅니다.


어제 제가 ‘이산’을 보면서 한심해 한 건(한심하면 보지 않으면 되지 않겠냐고 하실 분도 있겠지만요) 정조 대왕 앞에 혜성처럼 등장한 노론의 최고 좌장격이라는 전직 좌의정 장태우의 오만방자함을 목격하면서였습니다.

아무리 드라마라 해도 저러면 곤란하거든요.


요새 같이 개명한 세상에서도 대통령 앞에서 ‘도끼눈을 뜨고’ 그건 아니됩니다라고 꼿꼿하게 말하는 고위관료는 단 한명도 없다는 걸 감히 장담합니다.

하물며 조선왕조시대, 아무리 아직 정조가 ‘왕권’을 구축하지 못한 ‘어린 임금’이라 해도 어디 감히 왕의 안전에서 왕을 꼬나보고 노려보면서 거의 협박 수준으로 왕에게 오만방자하게 말하는 신하가 있다는 게 말이 되는 겁니까!


언젠가 서울대학교의 국사전공 교수 한 분이 쓴 칼럼을 보니까 조선시대 신하들은 왕 앞에서 늘 엎드려서 말했다고 나오더군요. 그 교수는 신하가 ‘용안’을 감히 쳐다보고 말한다는 건 불경스러워 상상도 못할 일이라는 겁니다.


물론 드라마의 재미를 감안하기 위해 좀 ‘현대적’ 감각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제작진의 ‘충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어젯밤 MBC드라마 ‘이산’ 에 등장한 노론의 최고 좌장이라는 장태우라는 인물의 방자한 발언태도에는 그저 어이가 없을 뿐입니다. 그만큼 제작진이 무지하다는 얘기겠죠.

게다가 드라마가 끝나자마자 인터넷에는 ‘장태우’의 등장은 시청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끌어 시청률이 확 올랐다는 보도가 떴습니다.


어제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드라속 장태우라는 결기 넘치는 인물은 왕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로 시청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시청률도 올라갔겠지요. 저같이 웬만한 보통 시청자들은 감히 왕 앞에서 겁 없이 거침없이 말하는 저런 신하들이 그저 시원하고 신기할 뿐이거든요.


그렇지만 전국의 유생들을 과거에 응시하지 못하도록 하고 왕 앞에서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독기어린 눈매로 왕을 꼬나보는 그런 무례를 넘어선 방자함에는 그만 웃음이 터져 나왔다는 겁니다. 저런 시추에이션은 조선시대에는 있을 법한 일이 아니거든요.


아무리 어린 왕이라도 왕은 왕이거든요. 그걸 드라마라는 미명 아래 ‘PD 맘대로’ 마구 만들어 버린다는 건 어쩌면 한껏 재주를 부려 오로지 시청률을 올리겠다는 ‘교태’로 밖엔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는 것 같네요.  

사극이란 현대에 걸맞게 각색한 드라마라지만 저 정도로 ‘역사 왜곡’을 한다면 그건 시청자를 우롱하겠다는 이야기가 아닐까요?


당장은 시청자들 구미에 맞게 왕의 권위에 마구 대항하는 옛날 신하들의 신화적인 모습으로 시청자들에게 잠깐 후련함을 선사할지는 모르지만 결국은 사극은 희극에 불과하다는 오명을 벗기는 어려울 겁니다.


또 하나, 정조의 어린 시절 친구로 ‘다모’로 발탁된 송연의 존재도 아무리 허구라지만 그 황당무계한 스토리 전개가 가관인 것 같습니다. 송연을 두고 왕과 ‘연적’ 관계인 대수라는 인물의 ‘독백’도 우스웠구요...


몇 주 전인가 이 드라마 속에서 치매를 앓고 있던 영조대왕 앞에 송연이가 독대해 그림을 그리고 영조 할아버지대왕님을 위로해드리는 장면도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물론 ‘드라마’인데 뭘 그러냐고 하실 분들도 많겠지만 아무리 드라마라 해도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것인데 그렇게 엉터리로 만든다는 건 시청자에 대한 무례라고 봅니다. 시청자를 우습게 보는 거지요.


물론 텔레비전 드라마야 보기 싫으면 안 보면 그만이라는 걸 잘 압니다. 하지만 시청률 30%가 넘는 드라마라면 거의 ‘국민 드라마’반열에 들어간다는 요즘 그렇게 왜곡된 이야기를 드라마라는 이름으로 만들어 시청자 앞에 선보인다는 건 방송사측이 무성의하고 무례하다는 걸 말하고 싶네요.

시청자 우습게 여겼다간 큰 코 다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