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오바마, 미국을 접수한 '케냐의 아들'

스카이뷰2 2008. 11. 5. 12:01

 

 

 

 

  오바마, 미국을 접수한 ‘케냐의 아들’


철모르는 열 살짜리 곱슬머리 흑인 소년이 인도네시아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미국 대통령이 될 꿈을 갖고 있었다는 장면을 상상해 보시라. 아무리 철부지라지만  머나먼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에서 미국대통령이 되겠다는 글을 썼다는 건 대단하지 않은가!


오늘 아침 신문에는 오바마가 다녔던 인도네시아의 멘뗑 초등학교에 대한 기사가 나왔다. 오바마가 초등 3년 시절 작문시간 “나의 꿈은 미국 대통령”이라고 썼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당시 오바마를가르쳤던 작문선생님은 꼬마 오바마를 회상하면서 대견해했다.

그 열 살짜리 흑인 소년의  꿈이 이제 현실로 다가오는 기적같은 순간을 맞았다.


오바마는 21세기 ‘최고의 배우’로 전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어떤 영화나 소설의 주인공이 오바마만큼 인기를 누리겠는가.

 

텔레비전이 보급된 세계 어느 곳에서든  오바마는 ‘주연 남우’로서 대단한 명성을 누리고 있다. 그가 대통령이 되든 안 되든 이미 그는 ‘미국의 대통령’, ‘세계의 대통령’으로서 대접을 받고 있다.


첨단미디어가 판을 치는 이 21세기에 ‘오바마 이야기’는 새로운 전설로 온 세계 사람들의 눈과 귀를 붙잡아 두고 있다. 그것도 흥미진진한 그의 인생이야기 자체가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다.


오바마의 라이프 스토리는 한편의 동화다. ‘남자 신데렐라’처럼 등장한 오바마는 금융위기의 공포에 떨고 있는 전 세계 시민들에게 오아시스처럼 다가왔다. 미국은 물론 전 세계 젊은이들의 ‘닮고 싶은 모델’로 떠오른 오바마는 그야말로 이 시대에는 그렇게도 힘들다는 ‘자수성가’의 표본으로 더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부시나 고어, 맥케인 마저 '번듯한 아버지의 위세'를 업고 정치판에서 황태자 대우를 받아왔지만 오바마 그는 다 알다시피 흑인 유학생 아버지마저 일찌기 그의 곁을 떠났고, 조손가정에서 할머니의 뒷바라지로 버텨왔다. 아무런 백도 없었지만 오히려 그런 그에겐 '소액주주들'로 표현되는 서민 후원자들이야말로 진정한 백이 되었던 것이다. 선거자금도 그들 자발적인 후원자들의 5불 10불이 모여 상대후보보다 훨씬 많은 정치자금을 끌어쓸 수 있었다. 


정치판에 뛰어든 지 10년 남짓밖에 안 되는 초선의원 주제에 화려한 영부인출신 힐러리 클린턴을 극적으로 물리치고 민주당 후보로 나선 것만해도 대단한데 여론조사 상으론 이미 노련한 공화당 매케인 후보를 한참 따돌렸다.  

지금 저렇게 미국대통령이 될 순간만 기다리고 있는 ‘오바마 스토리’는 전 세계인에게 정서적 만족감을 충족시키는 매력적인 요소로 가득 차 있다. 맨손의 정치인인 오바마에겐 배우 부럽잖은 환한 웃음이 크나큰 자산이었다. 선한 협상자로서의 지혜를 타고난 것도 그를 대통령의 자리로 이끌었다.   


세계 최강국 미국에 맨주먹으로 도전한 오바마의 모습에서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구촌 사람들은 새로운 영웅의 모습을 발견하고 열광하는 것이다.

슈퍼스타처럼 나타난 그를 보면서 미국 국민은 물론이고 제 3세계의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마저 환호와 박수를 보내고 있다. 오바마에게서 잃어버린 희망을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유달리 강렬한 눈빛과 멋진 목소리를 가졌던  아프리카 케냐의 청년과 순진한 18세 미국처녀의 사랑으로 태어난 오바마는 그 출생 스토리부터 대중에게 어필한다. 하와이 초등학교를 다니던 오바마는 하와이로 찾아온 아빠와 단 열흘 함께 있었던 게 전부다.

 

어린 오바마는 아빠가 자신이 다니는 초등학교의 '1일교사'에 나선 것에 몹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어린 눈에도 흑인 아빠의 모습은 그리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아빠는 하버드 출신답게 능숙한 솜씨로 어린꼬마들을 사로잡았고 어린 오바마는 한 시름 놓았다. 아빠와의 추억은 이게 전부지만 나중에 그의 첫저서 제목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꿈'이라고 지을 정도로 강렬하고 소중했다. 케냐의 정치지도자를 꿈꿨던 아버지에게서 오바마는 '정치적 기질'을 물려받은 것 같다.


오바마가 태어난 1961년 무렵만 해도 흑인청년과 백인처녀의 사랑은 절대금기사항이었다. 사랑 앞에 국경이 없다지만 대중식당 앞에 ‘흑인과 개는 출입금지’라는 팻말을 버젓이 붙여놓던 시절, 머나먼 아프리카 케냐에서 유학온 가난한 흑인 청년에게 ‘필’이 꽂힌 미국인 백인 처녀의 설레는 마음은 그 누구도 말릴 수 없었다. ‘오바마 드라마’의 시작은 그렇게 순수한 사랑에서 출발했다.


훗날 인류학자가 된 18세 처녀는 ‘조건 따지지 않고’ 흑인청년과 겁 없이 살림을 차렸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오바마가 지금 저렇게 세계를 흔들고 있는 것이다. 만약 그 백인처녀가 이목이 두려워 사랑하는 사람을 아프리카로 보냈더라면 오늘 오바마라는 인물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바마 부모의 러브 스토리를 보며 60년대 미국을 뒤흔들었던 영화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떠오른다. 역시 흑인 청년과 백인 처녀의 금단의 사랑을 테마로 다룬 영화였다. 바로 그 무렵 오바마 부모의 러브 스토리는 현실적인 열매를 맺은 것이다. 


아프리카로부터의 ‘노예사냥’으로 미국 땅에 발을 디딘 흑인들은 200년 넘는 세월동안 참혹한 인종차별을 당해왔다. 그들의 서러운 ‘타국살이’는 개화된 미국 땅에서 소설로 드라마로 영화로 만들어졌다.


‘인권 탄압’은 고상한 표현이었고 사람으로서 대접해주지 않았던 흑인 노예들의 이야기는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  전세계 어린이들의 필독서처럼 자리잡은 '엉클 톰스 캐빈'은 흑인노예의 참담함을 잘 보여준 대표적 소설 로 꼽히고 있다.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소설 '앵무새 죽이기'도 흑백간의 갈등을 감동적으로 다뤄 전세계인들의 갈채를 받은 작품이다.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텔레비전 드라마 ‘뿌리’나 영화 ‘컬러 퍼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우정 있는 설복’ 등등 일일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작품에서 ‘흑인들의 슬픈 이야기’가 휴머니즘적 관점에서 끊임없이 다뤄져왔다.


“나에겐 꿈이 있어요”라는 말로 흑인뿐 아니라 전세계 젊은이들에게 ‘꿈’의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었던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된 지 꼭 40년. 그의 죽음 이후 수많은 흑인 지도자들이 인종차별 철폐를 위해 몸바쳐왔다.


그런 흑인 지도자들의 영향아래 오바마는 자신의 정체성을 ‘흑인’으로 규정하고 하버드 법대를 수석으로 졸업하자마자 흑인 빈민굴에 뛰어들었다.

온갖 역경을 물리치고 ‘케냐의 아들’ 오바마는 이제 44대 미국 대통령 이라는 막중한 자리에 오를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며칠 전 텔레비전 화면에는 케냐의 젊은이들이 오바마를 연호하는 장면이 나왔다. 케냐 사람들로서는 ‘케냐의 아들’ 오바마의 입신양명은 바로 자신의 영광일 것이다. 미국 성조기와 케냐기를 양손에 들고 열광하는 케냐 젊은이들을 보면서 오바마는 ‘미국 대통령이 안 되면 안 될 사람’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떠올랐다.


오바마는 초등학교 시절 백인 친구들에게 자기가 ‘아프리카 작은 나라의 왕자’이며 왕인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왕이 될 것이라는 ‘하얀 거짓말’로 백인 꼬마들의 호기심을 끌었다고 한다. 어린 오바마의 ‘생존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미국 대통령’을 꿈꿨던 어린 소년의 ‘대단한 야망’을 눈여겨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오바마는 어린 시절부터 ‘말재주’가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그 타고난  말재주에 하버드 법대를 수석으로 졸업할 정도의 실력이야말로 ‘맨발의 청춘’에 불과했던 그를 초선의원 출신 미국대통령으로 밀어올린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다 알려졌다시피 오바마는 외할머니 손에 키워진 아이였다. 어제 세상을 떠난 외할머니는 오늘의 오바마가 있게 한 결정적 은인이었다. 오바마는 “어머니가 세계를 보는 눈을 키워준 날개역할을 했다면 외할머니는 바위같은 안정감과 미국인으로서의 뿌리를 심어준 사람이다.”고 말했다.


‘정신적 지주’였던 외할머니의 부음에 오바마는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할머니는 미국 전역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조용한 영웅 중 하나였다. 이름이 신문에 나지는 않았지만 매일의 일상 속에서 열심히 살아왔고, 손자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사람이었다.”


‘애처가’ 오바마의 면모도 미국인에게 어필했다. 그는 “모르는 것이 있으면 아내에게 물어 본다”라는 말로 아내 사랑과 자랑을 은근히 늘어놓았다.

하버드 법대 동창인 그의 아내 미셸 역시 엘리트 변호사로 이번 선거 막바지에 ‘준비된 영부인’으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검은 재클린’이라는 별칭을 들을 정도로 그녀 역시 매력적이다.


오늘의 오바마는 결국 세 명의 여인들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겠다.

순수한 열정을 지닌 낭만적 방랑자로서 오바마에게 ‘열린 생각’을 갖게 한 인류학자 엄마와 한국할머니 못지않은 지극정성으로 외손자를 돌봐온 외할머니, 그리고 아는 게 많아 오바마의 ‘꾀주머니 역할’을 하고 있는 현모양처 미셸. "남편은 악세서리이고 딸들이 나의 전부"라고 말하는 미셸의 당당함은 역대 여느 퍼스트레이디들 못지 않은 권위를 갖추고 있다.


이 3 명의 여인 덕분에 케냐의 아들 오바마는 미국을 접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결국 남자는 여자 복이 많아야 하는 것 같다.^^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든 안 되든 오바마는 이미 미국을, 아니 전 세계를 접수했다.


케냐의 아들로 18세 어린 엄마의 아들로 오바마는 이제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꿈은 이루어진다’는 전설을 현실로 일궈낸 새로운 ‘21세기형 전사’로 우뚝 섰다. ‘젊은이들의 멘터’ 오바마는 21세기 신화를 새로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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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쓴 한 시간 뒤 오바마는 미국의 제44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오바마씨 축하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