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구준표 신드롬과 꽃보다 남자

스카이뷰2 2009. 2. 2. 13:27

 

       구준표 신드롬


또 나타났다. 백마 탄 왕자님이. 늘 그래왔듯이 그 ‘왕자님’은 아직 초등학교에 다니는 유소녀들은 물론이고 한창 꿈 많을 10대 청소녀들 그리고 20대 아가씨들과 30대의 완숙한 처자들에, 심지어는 사윗감 걱정하는 50대 어머니들의 메마른 마음에까지 불을 질렀다.

 

시청률 25.9%로 드라마 1위 자리를 꿰찼다는 ‘꽃보다 남자’는 지금 하찮은 시청률 따위와는 상관없이 대한민국 ‘여심’에 이미 ‘그분’으로 자리 잡았다. 어제 재방송까지 겨우 8회 방송했는데 이미 ‘구준표 바이러스’가 전국적으로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고 있다.  

 

여자들 몇 명만 모이면 나이가 많든 적든 어김없이 여기저기서 ‘구준표’를 숙덕인다. 그야말로 ‘구준표 신드롬’이 단단히 확산되고 있는 모양새다.

다 알다시피 원작은 15년 전 출간된 일본 만화 ‘꽃보다 남자’ 제목 그대로다.

 

이미 일본과 중국을 휩쓸고 드디어 대한민국에 상륙하자마자 저렇게 ‘구준표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면서 신인배우 이민호를 ‘꿈에 그리던 백마탄 왕자님’으로 등극시켜버렸다. 일본의 ‘그분’과 중국의 ‘그분’에 비교한 한국의 ‘그분’ 구준표가 훨씬 멋있다는 예리한 비교분석 ‘논문’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찬물 끼얹자는 얘긴 아니지만 사실 ‘태양아래 새것 없다’고 이 ‘구준표 신드롬’은 유사 이래 인류가 늘 꿈꿔왔던 ‘그 분’의 새로운 버전에 다름 아니다.

백설 공주를 구해준 왕자님! 신데렐라와 멋진 춤을 춰준 왕자님!

 

여자들은 늘 그런 ‘구원의 왕자님’에 환호와 경배를 바쳐왔다. 그 왕자님들은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는 ‘완벽한 남자’로 마음씨마저 착해 ‘가난한 신데렐라’를 ‘위기에 빠진 공주님’을 따스하게 보듬어준다.

 

거의 모든 여자들은 믿고 싶어 한다. 자신들은 ‘위기에 빠진 공주님’이거나 가난한 ‘신데렐라’지만 머지않아 백마 탄 왕자님이 한달음에 달려와 그녀들을 번쩍 안아 말에 태운 채 멋진 나라로 함께 갈 것이라는 믿음.

비록 지금 당장 오시진 않았지만 언젠가는 꼭 나타날 ‘그분’은 지금 저기 서 있는 ‘구준표 도령’과 같이 나무랄 데가 없는 완벽한 남자라는 걸 철썩같이 믿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그런 ‘달콤한 믿음’이 그녀들을 심야 텔레비전 앞으로 불러 모으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구준표 신드롬’이다.

아무 가진 것 없는 신데렐라를 자상하게 보살펴 주는 현대판 왕자님들은  브라운관에 어느 날 혜성처럼 나타나 뭇 처자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놓는다. 

 

구준표는 몇 해 전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궁’의 왕자님 주지훈과 비슷하다. 황실이 건재한 일본이나 영국의 왕자님들이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를 떠올린다면 여자들이 왜 왕자님에 목을 매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현대판 왕자님인 대재벌의 후계자는 다름 아닌 왕조시대의 프린스인 것이다. ‘돈’으로 모든 것이 가능한 그 왕자님이 황송하게도 ‘순정’까지 겸비한 ‘착한 남자’라면 더 이상 바랄게 무엇이겠는가.

가난한 세탁소집 딸 금잔디를 ‘그야말로 무조건’사랑하는 ‘준표 도령’은 터프한듯하지만 자상하기 그지없다. 못생기고 키도 작고 누구하나 거들떠보질 않았던 세탁소집 딸을 향한 준표 도령의 ‘이해하기 어려운’ 가없는 사랑.

 

현실에선 이런 '눈먼 사랑'이 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한 여름 밤의 꿈’같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걸 알면 알수록 ‘구준표 신드롬’은 활화산처럼 번져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원래 대중은 그런 ‘환상’에 목말라 하고 박수를 보낸다. 그것이야말로 ‘현대인의 문화적 DNA’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어린여자아이들이나 나이지긋한 여인들이나 준표도령 앞에 다가가 앉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재벌 후계자 소년이 가난한 세탁소집 딸과 그 가족에게 보내는  ‘맹목적 으로 착한 사랑’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준표 도령으로부터 분수에 넘치는 일식집의 맛있고 비싼 참치를 얻어먹은 소녀는 먹고 남은 ‘아까운 참치’를 집에 싸가지고 가려 한다. 

 

이런 사실을 알아낸 왕자님은 그 소녀집에 아예 주방장을 파견해 ‘비싼 참치요리’를 대접한다. 이쯤 되면 환상이 현실이고 현실이 환상이 되면서 소녀들의 환호성은 절정에 다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어려운 경제대란 시절인데도 왕자님은 턱짓 하나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

 

이런 호쾌한 ‘왕자님’의 이미지는 ‘경제해결사의 이미지’와도 겹쳐지면서 메마른 아주머니들의 정서마저 흔들어 놓고 있다. 이것이 ‘구준표 신드롬’의 본질이다. 가슴으로나마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것. 그 누가 이런 그녀들의 준표도령을 향한 은밀한 호감을 말리겠는가. 

하지만 그런 왕자님과의 만남이란  현실에선 이루어질 수없는 환상이라는 걸 알기에 처자들의 마음은 더 애틋해지는 것이다.

 

어쨌든 브라운관의 저 멋진 준표도령을 만날 ‘행운’이 아주 없지는 않기에 우리의 소녀들은 오늘도 혹시나 하며 ‘구준표 신드롬’을 앓고 있는 것이다. 누가 감히 알겠는가. 어느 날 그분이 낮은데로 강림하실지. 

오늘 밤 우리의 ‘준표 도령’은 또 어떤 기행으로 소녀들의 탄성을 자아낼까.

‘구준표 신드롬’이 지속되는 한 방송국 관계자는 시청률 걱정은 안해도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