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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그랜 토리노

스카이뷰2 2009. 3. 26. 23:35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그랜 토리노


오랜만에 영화보고 울었습니다.

할리우드의 ‘살아있는 전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주연을 맡은 영화 ‘그랜 토리노’는 아주 쉽고 자연스러운 영화여서 모처럼 안락한 기분으로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지만 끝내는 사람을 울리고 마는 그런 영화였습니다.


영화인생 55년차, 팔순의 노장은 이제 숙수(熟手)의 솜씨로 ‘이것이 나의 영화다’라고 속삭이듯 외치듯 자유자재로 관객의 공감을 끌어냈습니다. 미국에서도 처음엔 6개의 개봉관에서만 상영했다가 입소문이 퍼져 한달만에 3천개 가까운 극장에 이 영화의 간판이 붙었다고 합니다. 개봉 5주차엔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을 정도로 호응을 받았다고 합니다.


언제 적 클린트 이스트우드인지... ‘황야의 무법자’로 다가온 그였지만 언제부터인지 그는 점점 생활 속에 녹아드는 그래서 자연스럽고 그래서 더 친밀감이 느껴지는 영화를 우리에게 선사했습니다.


조금은 냉랭한 분위기의 마스크지만 그것이 바로 매력이기도한 그는 젊었을 때나 중년시절 그리고 이제 황혼의 장년기에 접어들어서도 여전히 매력과 카리스마를 뿜어내고 있습니다. 강단 있으면서 반듯해 보이는 인상에서 동양적 분위기도 느껴집니다.


언뜻 기억나는 그의 예전 영화 '용서받지 못한자' ‘사선에서’ ‘앱솔루트 파워’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밀리언달러 베이비’ 등을 거쳐 오면서 나이 들어가는 한 남자 배우의 모습을 지켜봐왔지만 그는 나이 들어가는 배우의 초라함보다는 오히려 당당하면서도 더 다정한 분위기로 스크린을 장악해왔던 것 같습니다.


‘그랜 토리노’는 1972년 미국 포드사가 만든 자동차 이름이고 영화는 이 차를 둘러싼 이야기라는 것만 어렴풋이 알고 영화관에 갔기에 더 큰 감동을 느꼈나봅니다.


팔순 노장은 그랜 토리노를 통해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삶과 죽음, 부모와 자식, 상처받은 사람들의 치유법, 다문화 국가인 미국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점들에 대해 그는 아주 쉬운 화법으로 우리에게 호소하듯 말하고 있습니다.


대체로 한 분야에서 대가의 경지를 이룬 사람들은 그 분야가 어떤 것이든 쉬우면서도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그랜 토리노’ 역시 대가의 솜씨가 빚어낸 작품답게 보는 사람을 안심하게 만들고 하나도 어렵지 않게 말하면서도 진한 울림을 남기고 있습니다.


1955년 영화계에 데뷔한 그는 55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영화판에서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로 ‘영화의 모든 것’을 해봤고 그 영광을 누려왔습니다.

그의 다재다능함은 할리우드의 ‘살아있는 전설’로서 ‘그루’로서 ‘영원한 현역’으로서 여전히 그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습니다.


그는 2008년에도 두 편의 영화를 제작 감독 주연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젊은 영화감독들도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막판 스퍼트’를 내고 있는 듯합니다. 일부에선 ‘그랜 토리노’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지상에서 감독·주연을 맡는 마지막 작품일 것이라는 말도 하고 있습니다. 


그 자신 “이 영화는 내 나이의 이야기이고 나한테 딱 맞는 역할이었다”고 말했듯 ‘그랜 토리노’에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55년 영화인생을 보내면서 터득한 모든 것이 자연스레 녹아있습니다.


1950년 한국전에 참전했던 월트 코왈스키는 자동차회사를 다니다 은퇴하고 아내마저 먼저 보낸 뒤 매사가 못 마땅한, 괴팍한 ‘독거노인’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더구나 그가 살고 있는 주택가는 이제 점점 퇴락해 제3 세계 이민자들이 속속 모여들어 그를 아주 불편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베트남이나 라오스 태국에 살던 ‘몽족’ 일가가 새로운 이웃인 것이 월트는 영 못마땅합니다.

월트는 아들내외나 손자 손녀와도 화목하게 지내질 못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은 홀로된 아버지를 요양원 같은 곳에나 모실 궁리만 하고 있습니다.


내년에 대학생이 되는 손녀는 할아버지가 애지중지하는 그랜 토리노 자동차를 물려달라고 칭얼대기나 합니다. 이러니 월트가 ‘정붙이고’ 살아갈 존재는 그와 함께 늙어온 데이지라는 강아지밖에 없습니다.


옆집은 북적대는 대가족에다가 와글와글 시끄럽습니다. 이것도 월트를 화나게 만듭니다.

그러던 어느 날 월트는 자신의 애장품인 그랜 토리노를 훔치려는 옆집 소년 타오를 발견하고 혼찌검을 내줍니다.


그 사건으로 오히려 타오와 월트 노인은 거의 가족처럼 친해집니다. 오죽하면 노인은 "내 자식보다 이 동양놈들과 더 통하니...'라고 말할 정도가 됩니다.

몽족 불량청소년들은 타오를 끌어들이려다 실패하자 타오와 그 누나를 괴롭힙니다.


월트는 그  몽족 남매를 괴롭히는 불량배들을 영원히 격리 시킬 궁리를 한 끝에 어느 날 밤 행동으로 옮깁니다. 영화를 보실 분들을 위해 여기까지만 이야기하겠습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장엄한 희생, 아름다운 헌신, 위대한 휴머니즘이 어떤 것이라는 걸 우리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합니다.

인류평화 같은 거창한 슬로건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참된 인생이라는 것을 말하려고 합니다.


올해 들어 본 몇 편의 영화 중 제일 마음에 와 닿는 영화였습니다.

아마 저의 ‘올해의 영화 리스트’에 베스트로 꼽힐 것 같습니다. 강추! 강추!


 *조선일보에 실린 크린트이스트우드 만화스크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