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두번째로 본 영화 '사랑방손님과 어머니'
국민학교 6학년때 봤던 '청일전쟁과 여걸민비'.민비(최은희)와 대원군(김승호)의 갈등장면이 인상적이다.
영화보다 더 영화적인 여배우 최은희의 삶
여배우는 언제라도 곱다.
오늘 아침 TV에 출연한 여배우 최은희씨는 83세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고와보였다.
노령일수록 깨끗한 멋이 최고라는 걸 잘 알고 있는 듯 노여배우는 아주 심플한 진주 액세서리와 하얀 망사장갑을 끼고 흰 칼라가 단정함을 돋보이게하는 검정 원피스 차림으로 한껏 멋을 냈다.
이 정도라면 국제영화제에 상 받으러 나가도 하나 꿀릴 게 없는 최고의 패션센스에 속할 것 같다.
지금 신세대들이야 최은희라는 ‘할머니 여배우’에 대해 누구?라고 반문하겠지만 중년층이상이라면 그녀의 인기가 얼마나 높았다는 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현재 활동 중인 톱클래스 여배우들보다 훨씬 높았던 거의 ‘독무대’이다 시피 인기를 독점했었다.
한 시간의 방송 동안 그녀는 두 번의 납북과 탈북, 두 번의 이혼과 재혼 등의 개인사까지 차분한 말솜씨로 담담하게 자신의 인생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중언부언하지 않는 화법은 현역 최고령 여배우다운 관록을 보여주었다.
이미 다 알려진 ‘탈북 스토리’ 조차 긴박감이 느껴질 정도로 조리 있게 들려주었다. 그야말로 ‘노익장’의 노련함이 느껴졌다. 비록 강제납북되었지만 북한에 있던 시절 영화제작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게 “지금 생각해보니 참 고마운 일이었다”고 회상하는 노여배우의 경륜이 아름다워 보였다.
내가 태어나서 최초로 본 영화가 바로 최은희주연의 ‘이 생명 다하도록’이었다. 아버지어머니와 함께 초등학교 입학직전 무렵이었다. 그때 아역으로 나왔던 전영선은 나의 동경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 후 초등학교 6학년 때 본 ‘청일 전쟁과 여걸 민비’는 내게 아주 낮은 단계이긴 하지만 ‘정치’라는 것에 대해 어렴풋이 독학하게 된 기회가 되었고 ‘민비’는 어린 나에게 현명한 지략가로서의 ‘롤 모델’로 다가왔다.
중학교 1학년때는 당시 최고의 역사소설가로 꼽혔던 유주현작가의 3권짜리 ‘대원군’을 독파하면서 ‘민비’와 ‘대원군’이라는 존재가 멋진 정치적 이미지로 어린 내게 감동을 주었다. ‘구한말’ 패망해가는
조선왕조의 이야기들은 아마 역사학자뿐 아니라 웬만한 시청자들도 재미있는 텔레비전 사극으로 애시청했던 스토리일 것이다.
아무튼 어린 시절 ‘동경의 대상’이었던 ‘꿈의 여배우’가 이젠 깨끗하게 나이든 ‘할머니배우’로 나와 자신의 인생이야기를 들려주는 모습은 퍽 감동적이었다.
*아주 오래전 그녀에 대해 제가 썼던 글을 우리 블로그에 다시 소개합니다.
<인생 자체가 너무나 영화적인 최은희>
‘영화 같은 인생’이라는 말보다는 ‘인생 같은 영화’라는 말이 더 타당한 것이 아닐까? 60,70년대를 풍미하던 은막의 톱스타 최은희씨의 드라마틱한 생애를 보면 그가 출연했던 영화보다는 그의 인생 자체가 훨씬 더 영화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건국 이후 지금까지 최은희씨만큼 극적인 인생을 살아온 여배우는 없을 것이다. 요즘 신세대 여배우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파란만장한 사연을 간직한 채 요즘은 미국 할리우드의 한 아파트에서 평범한 주부의 삶을 살고 있다.
53년 스물여덟 살 때 부산 피난지에서 무명의 젊은 감독 신상옥과 ‘사랑의 도피행각’에 빠진 일이 있다.
그로부터 40년이 흐른 오늘, 온갖 영욕을 겪은 끝에 바로 그 신감독과 여생을 함께 보내고 있는 것이다.
지금 그가 자신의 인생살이에 대해 어떤 감회를 갖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자신의 지나온 삶의 궤적을 돌아보면서 말할 수 없는 회한에 빠져있거나 아니면 깊은 감사의 마음으로 행복한 만년을 보내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제삼자가 타인의 인생을 유추해보는 것은 위험한 일이지만, ‘왕년의 톱스타’가 머나먼 타국의 아파트에서 자신의 삶을 회상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비극적이면서도 장엄한 영화 한 편을 만들면 할리우드의 아카데미 영화제 외국어영화부문 수상은 문제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그의 인생역정과 그의 회한을 유추해보면서 감히 구상해본다.
그 정도로 그의 인생은 너무나 영화적이다. 어쩌면 금세기 들어 세계 어느 나라의 여배우도 최은희만큼 극적인 삶을 살아온 여배우는 없을 것이다.
이제는 웬만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최은희라는 여배우에 대한 존재는 서서히 잊혀져가고 있을 지도 모른다.
아무리 60,70년대를 주름잡았던 당대 최고의 조선 미인형의 여배우였을지라도 그 이후 은막을 수놓은 후배 여배우들의 얘기조차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판국에 ‘할머니 여배우’에 대한 추억을 강요하는 것은 조금은 무리한 일일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최은희라는 여배우가 겪어야 했던 ‘신산의 삶’이 바로 우리나라의 역사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그를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내가 철부지 시절 영화배우라든지 영화에 대한 강렬한 동경을 갖게 한 최초의 여배우가 바로 최은희씨였다.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바로 직전이었다. 그 무렵 부모님의 손을 잡고 극장에 간 것이 나의 최초의 영화관 출입이었다.
영화는 최은희 주연의 ‘이 생명 다하도록’이었다. 줄거리는 거의 잊어버렸지만, 6,25 때문에 비극을 겪는 가족의 얘기였다는 게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 때 아역배우 전영선도 나왔던 것 같다. 내 또래의 아역배우가 출연하는 영화를 보고 나도 배우가 되겠다고 떼를 썼던 기억이 난다. 게다가 영화라는 게 어떤 것인지도 전혀 모르면서도 막연히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화면에 나오는 배우들의 모습이 너무도 멋있게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본 ‘청일전쟁과 여걸 민비’에서도 민비 역을 맡았던 최은희는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그때 주연을 맡았던 여배우 최은희에 대한 존경심과 아울러 구한말 격동의 역사를 주름답던 명성황후에 대한 역사적 인식이 최초로 각인돼, ‘영화와 정치’를 구별하기에는 아직 어렸지만 민비에 대한 ‘정치적 동경’과 여배우에 대한 최대한의 동경을 동시에 품었던 것이다.
게다가 기억은 아슴푸레하지만 그가 여간첩으로 나온 한 영화를 본 이후 나는 여배우가 되거나 여간첩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모두 여배우 최은희로부터 받은 영향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영화라는 매체의 영향력은 큰 것이다.
1978년 그가 납북되기 직전 TV에 출연해 홍콩에 영화제작 협의차 가게 되었다고 얘기한 장면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리고는 한 이틀 후 피랍됐다는 소식은 나를 너무도 놀라게 한 사건이었다. 비단 나뿐이 아니었을 것이다. 평소 그를 흠모해온 팬들은 아마도 육친이 그런 사고를 당한 것처럼 가슴 아파했을 것이다.
그 후 매스컴에 보도되었던 것처럼 우여곡절 끝에 86년 최은희부부가 자유세계로 극적으로 무사히 탈출하던 날 나는 멋있는 영화를 보고 나올 때 느낄 수 있는 것 같은 진한 카타르시스를 맛보았다.
뭐랄까. 그들이 겪어야 했던 온갖 공포와 고초는 전혀 감안하지 않은 채, 달콤한 로맨스와 스릴 넘치는
첩보영화의 주인공 같은 그들 부부의 스토리가 멋있고 부럽기 조차했다.
국제영화제에 참석한 영화인 부부가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미국대사관으로 뛰어 들어가 망명신청하는 장면을 상상해보시라. 유럽이라는 멋진 무대에 더구나 함께 납북된 최고의 여배우와 실력파 미남 감독이 실제 주인공이라니...
60년대 초반,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 상을 연기해 아시아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따낸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라는 영화에서처럼 그는 항상 인고의 세월을 참아내는 조선여인의 후덕한 미덕을 연기해내는 데 가히 일인자였다고 할 수 있다.
그가 6·25 때 겪었던 회상하고 싶지조차 않은 온갖 수모와 굴욕이나, 20여년 어린 딸같은 후배여배우에게 한때나마 남편을 빼앗겼던 것이나, 그밖에 그를 할퀸 갖은 세상살이의 모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꼿꼿한 자세로 세상을 향해 단아한 웃음을 보낼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젊은 시절부터 도맡아 해냈던 참을성으로만 뭉쳐진 ‘조선의 어머니’역에서 배운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최은희씨는 요즘 행복할 것이다.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는 남편 신상옥감독이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의 스토리를 영화화한 ‘증발’이 서울은 물론 일본과 미국 등지에서도 상영됐고, 자유로운 미국에서 아이들과 함께 외롭지 않은 일상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는 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들 것이다. 그렇지만 아리따웠던 여배우 최은희에게 지난 인생은 한낱 짧은 한바탕의 꿈일는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가 인생에게서 느끼는 것처럼.*(신상옥감독은 2006년 86세로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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