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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54>사촌누나의 청혼에 아인슈타인 왈 "아내는 해고하기 어려운 직원같은 존재

스카이뷰2 2009. 10. 4. 10:55

 

 

 사촌누나의 청혼에 아인슈타인 왈 "아내는 해고하기 어려운 직원같은 존재"

 

1913년 7월 아인슈타인은 엘자에게 ‘기쁜 소리’를 들려주었다. 독일의 저명 물리학자 플랑크와 네른스트가 아인슈타인에게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프러시안 아카데미 회원 자격과 베를린 대학 연구 교수직을 제안해왔다.

 

연구교수직이 무엇보다도 구미에 당겼다. 학생들을 가르치지 않고 자유롭게 연구에 전념할 수 있다는 건 생각만 해도 뿌듯한 조건이었다. 더구나 새 연인 엘자가 있는 곳이니 금상첨화였다.

훗날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베를린 행을 결단한 가장 큰 이유는 엘자때문이었다고 회상했다. ‘사랑의 힘’이 막강한 흡인력을 발휘한 것이다.

 

상대적으로 밀레바는 베를린에 가고 싶지 않았다. 그곳은 밀레바를 경원하는 아인슈타인의 모친을 비롯한 아인슈타인의 친척들이 모여살고 있어 그녀에게 좋을 일이 하나도 없었다. 이 무렵 엘자는 아인슈타인에게 노골적으로 이혼을 종용하면서 자신과 재혼해줄 것을 요구해 왔다.

 

이종 사촌누나임에도 그렇게 청혼을 한다는 게 우리네 상식으론 이해가 되지 않지만 사랑은 쟁취하는 것이라는 말대로 그녀는 이제 물불 가리지 않고 아인슈타인박사를 자기 옆에 세워두려고 안달이 난 것 같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인슈타인은 이혼만은 피하려 했던 것 같다. 그는 엘자에게 “아내는 내가 함부로 해고 할 수 없는 직원이나 마찬가지오. 우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각방을 쓰고 있소. 웬만하면 그녀와 부딪치지 않으려고 피해 다니고 있소. ”

 

참 질긴 게 사람의 인연이어선지 밀레바와 아인슈타인은 그냥 한집에 따로 살면서도 여전히 이혼만은 애써 피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해 부활절날 아인슈타인과 밀레바는 아이들을 데리고 모처럼 파리로 갔다. 아인슈타인이 프랑스 물리학회에서 광화학과 열역학에 대해 강연하기로 했다. 서툴지만 불어로 하는 강연이어서 준비를 많이 해야했다.

 

처음 파리에 가본 사람들이 일단 그 도시의 화려함에 감탄하듯이 아인슈타인도 굉장한 문화적 쇼크를 받았었나보다. “영예로운 도시에 압도되어 거의 부끄러워 죽을 지경이었다.” 아인슈타인 가족은 파리에서 마리 퀴리의 집에 머물렀다.

 

세르비아 출신 밀레바는 같은 동유럽계통인 폴란드 인 마담 퀴리와 금세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학문적으로 대성한 퀴리에 대한 밀레바의 존경심도 가세했을 것이다. 낭만의 도시 파리에서 당대 최고 물리학자들이 담소를 나누는 풍경이 눈에 선하다.

 

두 가족은 다음 휴가 때 알프스에 도보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물론 이 도보 여행은 약속한 대로 이루어졌다. 나중에 아인슈타인은 마담 퀴리 집에서 식객으로 신세진 데 대해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당신의 집에서는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 보였습니다. 마치 예술품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어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