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혐오하는 남자, 아인슈타인
아무래도 아인슈타인은 결혼에는 어울리지 않는 남자였다. 그가 '결혼'에 대해 남긴 어록들을 보면 얼마나 결혼이라는 제도를 혐오했는지를 알 것 같다.
“모든 결혼은 위험하다. 결혼은 우발적인 어떤 사건을 끝까지 성공적으로 끌고 나가기 위한 헛된 시도이다. 결혼은 단지 문화적인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어진 노예제도에 지나지 않는다. 결혼은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를 더 이상 자유로운 인간이 아니라 서로의 소유물로 여기도록 한다.”
그렇게 오만방자하고 상대를 멸시하는 문건을 작성한 아인슈타인이라는 남자 역시 이해하기 어려운 정신세계의 소유자였다. 부창부수라는 말은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그녀에게 “내가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건 아이들을 잃고 싶지 않아서지 우리가 예전 같은 동지관계를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단서조항을 덧붙였다. 아내의 가슴에 아예 대못을 확실히 박는 모진 발언이다. 이만하면 그 부부는 이제 끝난 것이다.
부부의 세계는 부부만의 어떤 오묘함이 존재하는 것인지, 일반적으로 도저히 용납하기 어려운 그런 굴욕문서를 받고도 밀레바가 다시 결혼생활을 잠시 이어갔다는 건 어처구니가 없다고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토록 괴팍한 아인슈타인의 비위를 어떻게 맞추겠는가. 결국 그해 7월 24일 그들은 살림을 따로 났다. 아인슈타인은 밀레바에게 1년에 5600마르크(7000스위스 프랑)을 지급하기로 했다.
결혼생활의 대미를 장식하는 이별식은 베를린의 기차역에서 ‘거행’했다. 아인슈타인은 어린 두 아들에게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장문의 편지를 써서 주었다. 최소한의 애틋한 부정의 정표였다고나 할까. 그래도 아직 법적으론 부부였다. 부부야 돌아서면 남이지만 자식이야 천륜인데 어쩌겠는가.
아들들을 떠나보낸 후 아인슈타인은 한참 통곡했다. 그는 밀레바가 아들들에게 아버지를 미워하게 만들 것이라고 엘자에게 말했다. 그렇잖아도 큰 아들 한스는 벌써부터 아버지에게 적대감을 드러냈고 그런 감정은 두 아들이 성장하면서 정서적으로 매우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세상의 어느 아들들이 자신의 친 엄마를 버리려는 아버지를 좋아하겠는가. 이 문제는 두고두고 아인슈타인을 괴롭혔다. 그날 이후 한스는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내지 않았다. 훗날 한스는 자신의 딸 에벌린에게 “어린 시절이 행복한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단다”라는 쓴 소리를 했다.
이미 8세 무렵부터 부모의 갈등에 마음의 상처를 입은 소년으로 자라기 시작한 한스로서는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인생사의 조기교육치고는 너무 적나라한 얘기다. 에벌린은 이런 교육을 받고 자랐으니 의붓할머니 엘자에게 신분상승을 노리는 여자라는 직격탄을 날리는 당돌함을 보여주었을 것이다.
아들들이 등돌리는 게 두려웠다고 하면서도 아인슈타인은 일단 밀레바와 별거에 들어간 후엔 아주 시원한 기분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그만큼 시달렸다는 얘기겠지. 그는 친구에게 “아내가 없이 살아보니 새로 태어난 느낌이야. 10년 간의 감옥생활을 마치고 나온 듯해.” 이렇게 자유를 만끽하고 있으니 아무리 엘자를 좋아한다 해도 그로서는 재혼을 서두르고 싶지 않은 건 아주 자연스런 일이었을 것이다. 독신남의 자유를 만끽하겠다는 심사였겠지.(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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