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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노벨상 상금을 이혼 위자료로 몽땅 주기로한 아인슈타인

스카이뷰2 2009. 10. 23. 11:41

 

 

 노벨상 상금을 이혼 위자료로 몽땅 주기로한 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은 밀레바와 두 아들들을 떠나보낸 뒤 엘자와 그 딸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 근처로 이사했다. 그렇다고 금세 엘자와 결혼할 마음은 없었다. 시도 때도 없이 연구에 매달린 탓인지 1917년 초 아인슈타인의 건강이 극도로 나빠졌다. 처음엔 담석증에 시달렸고, 십이지장궤양까지 겹쳤다.

 

가족문제로 인한 스트레스와 불규칙적인 연구생활, 좋지 않은 식습관 등이 건강을 해치는 주원인이었다. 본인은 아내가 없는 생활이 천국이라 했지만 막중한 연구에 시달리는 주제에 챙겨주는 사람 없이 의식주를 해결한다는 건 그리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의사는 아인슈타인에게 엄격한 식이요법을 처방했고, 엘자는 모처럼 아인슈타인을 자연스럽게 돌봐주기 위해 자신의 아파트 근처로 이사 오라고 했다. 한 해 동안 무려 25kg나 줄었지만 엘자의 정성어린 보살핌으로 회복되었다.

 

아인슈타인이 옆집으로 이사 오자 엘자는 좋지 않은 소문이 돌 것 같아 걱정이 컸다. 말 타면 견마 잡히고 싶다는 말도 있듯이 그녀는 딸들의 장래를 생각해서라도 하루 빨리 아인슈타인이 이혼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아인슈타인은 별거 중인 밀레바와의 이혼문제를 매듭짓기 위해 그녀에게 정식으로 이혼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밀레바가 심한 경련을 일으키고 발작하는 바람에 그녀는 병원에 입원하고 말았다. 41세밖에 안되었는데 팍삭 늙어버린 모습이었다. 아인슈타인이 더 이상 이혼 얘기를 꺼내지 않겠다고 하니 그녀의 병세는 금방 완화되었다. 가여운 밀레바!

 

정신적 스트레스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알 수 있는 경우다. 그녀의 이런 반응에 아인슈타인의 모친을 비롯한 친척들은 그녀를 동정하기는커녕 ‘머리에 병이 있는 이상한 여자’라고 백안시했다. 애초에 세르비아 여자라고 얼마나 무시했던 그들인가. 특히 아인슈타인의 모친은 그녀를 끝내 며느리로 인정해주지 않았다. 아인슈타인 부부는 이번에는 막역한 친구 베소를 중재자로 삼고 서로의 의사를 교환했다.

 

밀레바는 베소의 설득을 받아들여 이제 결혼생활이 정말 끝이 났다는 걸 받아들이기로 했다. 1914년에 일어난 제1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때 시작한 그들의 이혼 과정은 세계대전보다 더 오래 끌었다. 끈질긴 악연은 1919년 2월 14일 완전히 소멸됐다.

 

파격적인 이혼 조건이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아인슈타인이 노벨상을 타면 메달은 아인슈타인이 갖지만 상금은 밀레바에게 모두 주기로 두 사람은 합의했다.  탈지 못 탈지도 모를 노벨상 상금을 이혼위자료로 제시했고 그를 받아들인 아내 밀레바 두 사람 모두 제정신은 아닌듯 싶다. 그야말로 부창부수라고나 할까. 어쨌든 그들은 노벨 물리학상이 자신들의 수중에 곧 들어올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갖고 있었던 것같다.

 

이에 대해 항간에선 이러한 배려는 밀레바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일부나마 공헌한 덕이라는 소문도 떠돌았다. 그러나 상대성 이론에 그녀가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고 수학적 계산을 돕는 등 극히 보조적인 역할이었다는 것이 물리학계의 정설로 자리 잡고 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