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엘리어트-자식이기는 부모 없다고...
몇 년 전 본 영화 ‘빌리 엘리어트’는 영국인 감독이 만들었는데도 그 정서는 꼭 한국인과 비슷해 모처럼 울고 웃으면서 훈훈해진 마음으로 극장 문을 나설 수 있었다. 어제(21일), EBS 일요명화에서 방영한 ‘빌리 엘리어트’는 두 번 째 보는데도 감동의 울림이 더 깊었다. 아마도 나이 탓일 것이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우리 속담이 머나먼 영국의 가난한 탄광촌 아버지에게 고스란히 적용되고 있어서다. 몇 해 전 영화관에서 볼 때보다 더 아련한 슬픔이 밀려왔다.
1980년대 초, 영국의 ‘더럼’이라는 탄광촌을 배경으로 만든 이 영화는 ‘영국 영화 맞아?’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우리네 정서와 너무도 흡사한 내용이다.
곰곰 헤아려보니 그것은 어쩌면 영국, 한국을 초월해서 범인류적인 보편적 정서의 공감대를 형성하게 하는 내용이라서 그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11세 소년 빌리는 어릴 때 엄마를 잃고, 탄광의 광부로 어렵게
생계를 꾸려가는 편부슬하에서 그래도 밝고 꿋꿋하게 자란다. 어린 아들을 남자답게 키우려고 하는 아빠의 배려로 소년은 방과 후에는 권투도장에 다닌다.
문제는 바로 그 권투도장 안 한쪽 공간을 사용하는 발레 교실 수업을 보면서 시작한다. 어린 소년은 발레의 매력에 끌려 아빠 몰래 발레 레슨을 받기 시작한다. 그러나 빌리가 ‘남자로서는 도저히 허락하기 어려운, 여자애들이나 배우는’ 발레를 배운다는 사실을 알고 아빠는 노발대발하고 어떻게 해서든 아들을 다시 ‘남자의 세계’로 끌어 들이려 한다.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결국 아빠는 빌리의 ‘재능’을 인정하고 몇 푼 안 되는 가산을 팔아서 런던의 ‘왕립 발레학교’로 아들을 유학 보내고 아들은 결국 훌륭한 발레리노로 성장한다는 줄거리다. 여기에 한창 노사갈등을 겪던 영국사회의 어두운 면이 마치 옛
우리나라 이야기를 보는 것 같다. 아마도 어디서 많이 들어본 얘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을 것 같다.
예전에 우리가 없이 살던 시절, 서울에 있는 ‘우골탑’에 애지중지하는 소를 팔아 자식의 학자금을 대던 우리네 부모들 세대에서는 ‘저건 내 얘기로군’하는 정서의 공감대를 쉽사리 이끌어 낼 수 있는 '동병상련'의 얘기라고 할 수도 있다.
이젠 잘 살게 되었다고 거의 잊고 지낸 스토리였지만 다시 경제가 어려워진 요즘에는 그런 ‘복고풍’의 얘기들에서 기운을 얻고 무언가 감정의 순화를 느낄 수도 있는 것 같다.
연극 연출가 출신의 스테판 댈드리(Stephen Daldry)가 연출했으며, 시나리오를 맡은 리 할(Lee Hall)은 70~80년대 영국 북부에서 자라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했다. 부분적으로는 취재 중 만난 로얄 발레단의 댄서 필립 말스덴(Philip Marsden)에게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5백만 달러의 저예산을 들인 이 영화는 미국 내에서 장기간 상영되며 2200만 달러의 대단한 흥행 수입을 거두어 들였다. 미국 개봉시 평론가들로부터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자아내는 매력적인 영화”라는 호평을 받았다. 세상의 거의 모든 부모의 자식을 향한 보편적인 모습에 평론가들도 박수를 보낸 것이다.
“나는 여기저기서 말문이 막혀 버렸다”거나 “(이 영화의) 매 순간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매정한 사람이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최고의 캐스팅이다” 라는 최고의 찬사가 칭찬에 인색한 평론가들로부터 쏟아져 왔다. 그것도 뉴욕 타임스, BBC, 등 내로라하는 매체에 실렸다.
늘 말하지만 ‘영국 영화’답게 빌리 엘리어트는 특별한 ‘스토리’가 아닌 스토리로 솜씨 있게 영화를 빚어내 소박하면서도 맛깔스런 반찬으로 한 상 잘 차려내고 있다. 영국의 시골마을 소년이 런던에 있는 ‘왕립 발레학교’의 오디션을 보러가는 버스 안에서 무섭기만했던 아버지에게 ‘런던에 가본 적이 있느냐’고 질문하는 장면은 찡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내세울 것 하나 없는 탄광촌 광부로 일생을 살아온 아버지는 이번에 처음 런던이라는 영국의 수도에 아들과 함께 가고 있는 참이다. 철부지 아들은 “왜 안 가봤냐”고 다그쳐 묻는다. 아버지는 “왜 가봐야 하나”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그에 대한 아들의 답이 걸작이다. “수도니까요”.
이 장면을 보면서 얼마전 위성TV로 본 NHK 가요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시골에서 처음으로 도쿄에 올라온 촌뜨기 청년이 번화한 도시를 걸으면서 “어머니! 도쿄에요, 도쿄!”라고 소리치는 장면과 흡사한 정서가 느껴지는 듯했다. 시골에 살고 있는 젊은이들이화려한 도회 생활을 선망하는 건 어느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공통적인 모습이다. 우리도 예전엔(지금도) 무조건 서울로, 서울로'상경(上京)'하는 것이 웬만한 농어촌 젊은이들의 꿈이었다. 그 결과 지금 농촌엔 젊은 농업인이 없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것이다.
어쨌거나 우리 집 안방에서 다시 본 이 영국영화 ‘빌리 엘리어트’는 일요일 오후를 풍성하게 마감해 주는 듯해 모처럼 흐뭇한 기분이 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는 어느 시인의 외침처럼 좀 더 삶에 대해 경건해지는 심정마저 든다. 이런 영화는 DVD로 소장할 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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