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프레지던트와 최수종과 시청률-아주 좋은 드라마인데...

스카이뷰2 2011. 1. 27. 12:38

 

 

        프레지던트와 최수종과 시청률-아주 좋은 드라마인데...

 

 

어제 밤 KBS2 수목 드라마 ‘프레지던트’를 아주 재밌게 봤다. 요 근래 어떤 드라마보다 재밌다. 주인공 역을 맡은 최수종의 열연이 다른 어느 때보다 빛났다. 물론 기본적으로 극본이 좋아서겠지만 최수종이 아니었다면 그만큼 그 역을 소화해낼 탤런트는 없을 것 같다. 집권여당 대통령경선에 뛰어든 젊은 정치인 장일준 역은 최수종을 만나서 ‘실제상황’처럼 긴박감과 함께 캐릭터의 매력이 살아났다.

 

현재 경선 출마자 가운데 지지율 최하위인 장일준의 ‘고군분투(孤軍奮鬪)’는 정치를 업으로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벤치마킹을 해도 좋을 만큼 ‘모범답안’같은 해법을 제시해주고 있다. 이 드라마는 일본 만화가 카와구치 카이지의 ‘이글(Eagle)'을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시청자들에게 한국 정치의 뒷이야기를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도 큰 미덕으로 꼽을 수 있다. 정치인들의 ’표리부동‘한 처신이나 ’배신‘을 능사로 치부하는 모습 등에선 현실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하다.

 

어제 장일준은 자신을 배척하는 농민들과 함께 막걸리 잔을 기울이면서 왜 우리가 중국과 FTA를 해야만 하는지, 지금 우리 농촌의 구조적인 문제점은 무엇인지를 조목조목 차분하게 말해 끝내 농민들의 지지를 끌어낸다.

 

전국을 돌며 ‘막걸리 토론회’를 열고 싶다는 말을 하는 장일준을 보면서 우리 정치인 중 누군가는 저 대목을 따라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언젠가 장일준이 ‘무상의료’라는 파격카드를 제시하자 바로 그 다음날 민주당 대표라는 사람이 ‘무상의료’카드를 들고 나왔다. 오비이락이라고 하겠지만 주인공이 ‘무상’을 외칠 때 나는 조만간 저 모습을 따라하는 정치꾼들이 나올 거야라고 ‘예언’까지 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요즘 우리 사회에선 ‘무상 복지~’시리즈가 사회를 혼탁하게 하고 있지 않는가.

 

그만큼 이 드라마의 ‘영향력이 막강하다고나 할까. 그런데 오늘아침 온라인 뉴스 서핑을 하다보니까 이런 제목의 기사가 눈에 들어온다. '프레지던트' 시청률이 왜 낮은 거야? 이유 좀 알려줘! 기사에 따르면 어제 프레지던트는 같은 시간대 다른 드라마보다 시청률이 훨씬 낮았다는 것이다.

 

시청률 높다는 다른 드라마를 폄하하고 싶진 않지만 김태희 송승헌이 주연이라는 ‘마이 프린세스’나 박신양이 나온다는 ‘싸인’ 같은 드라마들 보다는 프레지던트가 한 수 위의 ‘진정한 드라마’라고 생각하는데 시청률에서 뒤진다는 게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아니 이해해주고 싶지도 않다. ‘마프’와 ‘싸인’ 정도의 드라마가 시청률에서 비록 앞선다고 해도 ‘프레지던트’의 작품성이 훼손되는 건 아니니까. ‘너는 너 나는 나다’ 뭐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그만이겠지만 그래도 시청률을 ‘시금석(試金石)’으로 생각하는 풍토에서 아무래도 좀 찜찜하다.

 

언젠가 마흔아홉이라는 아까운 나이에 간암으로 요절한 조소혜라는 여성드라마 작가는 “암의 고통보다 시청률이 더 무서웠다”는 한 맺힌 절규를 했다. 그 작가는 최수종 주연의 ‘첫사랑’이라는 드라마로 64%라는 경이적 기록으로 역대 최고시청률을 아직도 갖고 있다.  그러나 늘 ‘시청률 최고’를 유지하기란 불가능한 일이기에 언제나 초조하고 긴장하면서 살아왔다는 고백을 하기도 했다. 결국 그 작가를 죽음으로 몰고 간 건 ‘시청률 스트레스’라고 해도 가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이렇게 작가나 PD나 시청률에 ‘예속’돼 있다 보니 ‘양질’의 드라마를 기대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경제이론이 드라마에까지 적용되는 듯해 씁쓸하다. 어쨌거나 내 주변에선 ‘프레지던트’의 광팬들이 상당히 많다. 어떻게 이런 재미난 드라마를 안 볼 수 있지“라고 어이없는 표정으로 반문하는 사람까지 있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라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좋아해야 하는 건 아니다. 사람마다 다 취향이 다른 만큼 각자 자기 보고 싶은 걸 보면 그만이다. 그래도 어쩐지 서운하다. 꼭 배신당한 기분이라고나 할까. 이런 우거지 기분이 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예전부터 ‘대중적 기호’를 웬만큼은 알고 있다는 알량한 ‘자부심(自負心)을 갖고 있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이건 히트할 것 같군”이라고 생각하는 대중가요나 드라마 영화 등등 대중문화 인기도에 나름의 ’직감‘을 갖고 있었다.

자기자랑 같지만 일종의 ’원초적 후각‘ 비슷한 게 있다고 자부해 왔다. 그래도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내가 쓴 책들은 번번이(?) 흥행에는 실패했다.^^* ’여우의 신포도‘처럼 그 때 마다 “돈 벌러 만든 책이 아니다. 그러니 대중성이 약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어쨌든 대중문화 히트예감은 좀 있는 편이었는데 그게 이번 드라마 ’프레지던트‘에서 한참 빗나갔으니 ’존심(尊心)‘이 좀 상한 것이다. 내가 프레지던트의 제작진은 아니지만 제작진의 애타는 심정을 알 것만 같다. 그들에게 격려와 위로를 보내고 싶다.

 

세상일 맘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건 애초에 알고 있지만 살다보니 별거 아닌 이런 드라마까지 사람 속을 뒤집어 놓는다. 하지만 이 ‘프레지던트’만큼은 양보(?)하고 싶지 않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내가 무슨 ‘프레지던트 홍보요원’같다는 생각이 들어 좀 우습다. 어제 장일준(최수종)은 이렇게 ‘열변’을 토했다.

 

“자네 화국이란 말을 아나? 흑과 백이 비긴 것을 뜻하지. 우리 형은 그런 나라를 꿈꿨어. 흑과 백이 공존하는 나라 그래서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나라 말이지” 이런 대사를 하는 최수종의 어제 연기는 ‘압권’이었다. 마치 현실에서 대통령이 될 정치인처럼 진정성 어린 연기로 감동을 주었다.

 

일부에선 고현정이 출연했던 ‘대물’의 후속 정치드라마로 여겨져 ‘식상’한 시청자들이 외면하는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천만의 말씀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대물’이 중학생 수준이라면 ‘프레지던트’는 대학원생 수준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비교가 안 된다. 그만큼 ‘프레지던트’가 탁월하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시청률’이 잘 안 나온다면 그건 뭐 도리 없다고나 해야 할까. 어쩔 수 없는 일이 많은 게 세상사니까. 그래도 우리 블로그를 방문하신 네티즌여러분에겐 꼭 보시라고 권하고 싶은 드라마다. 프레지던트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