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예술가의 밥은 누가 책임지나"작가 김영하 인터넷 절필 선언

스카이뷰2 2011. 2. 15. 13:58

 

                                                                                                                         조선일보 자료사진.

 

      

 

   "예술가의 밥은 누가 책임지나"작가 김영하 인터넷 절필 선언

 

 

 

요새야 덜 그렇겠지만 예전엔 예술가하면 곧 백수의 다른 이름으로 통할 정도로 무릇 ‘예술하는’ 사람들은 ‘배고픈 삶’을 살아야 하는 ‘비운의

 

주인공’이 많았다. 그런데 얼마전 젊은 여성시나리오 작가 겸  감독이 '아사'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추운 겨울날씨에 핫이슈가 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예술하는’ 사람들은 아주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늘 생계마저 위협당하는 삶에 쫓기면서도 ‘예술’이라

 

는 마력적인 분야의 ‘마수(魔手)’를 뿌리치지 못하고 ‘천형(天刑)’의 삶을 살아야 했다.

 

 

언뜻 생각나는 작가 중엔 도스토예프스키를 꼽을 수 있다. 21세기 ‘문청(文靑)’들에게도 여전히 ‘문학적 스승’으로 통하고 있을 러시아의 대문

 

호 도스토예프스키 역시 간질이라는 지병에 시달리며 빚을 갚기 위해 늘 허덕이는 삶을 살아야했다. 비단 그 뿐 아니다. 고흐를 비롯한 화가

 

들, 작곡가들 등 이른반 예술가들의 ‘팔자’는 세속적인 부(富)와 거리가 멀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가령 박수근화백 같은 경우 살아생전엔 물감사기도 빠듯한 형편이었지만 작고한 뒤 수십 년이 흐른 오늘날 그의 그림 한 점은

 

수 십 억원을 호가하는 아이러니한 세태가 되버렸다. 이중섭의 경우는 어떤가! 나이 마흔에 사랑하는 가족은 현해탄저편에 두고 길거리에서

 

객사할 때까지 그의 삶은 하루끼니를 걱정해야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 ‘빈약한 기억력’에 의존하다보니 불과 몇몇 예술가들만 거론했지만 좀 과장되게 말하자면 유사 이래 ‘밥걱정’을 해야

 

하는 예술인들은 수 없이 많았고, 앞으로도 ‘예술가적 생활’은 그리 녹록치 않을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느닷없이 예술과 인생이라는 제법 거창한 주제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은 며칠전 요절한 어느 젊은 여성영화감독의 삶에 대해 젊은

 

예술가들과 그들의 스승 뻘인 40대 ‘인기작가’간에 논쟁이 벌어졌고, 그 40대 작가가 어제(14일) 그 동안 논쟁을 벌여온 평론가, 작가에게 ‘사

 

과’하고 죽은 감독에게 용서를 구한다며 자신의 ‘블로그를 닫고 트위터를 그만두겠다는 ‘온 라인 절필 선언‘을 했다는 소식을 들어서였다.

 

 

김씨는 "그동안 논쟁을 해 온 평론가 소조, 작가 김사과에게 사과하고 죽은 고은이에게 용서를 구한다"면서 "블로그를 닫고 트위터를 그만두

 

겠다. 앞으로는 사랑하는 책상 앞으로 돌아가 글만 쓰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트위터 팔로어만 3만여 명을 거느리고 있다는 40대 작가 김영하는 개인적으론 전혀 모르지만 국내 최고 지명도를 가진 작가 중 한 사람이라고

 

한다. 더구나 그는 그 요절한 여성감독을 가르쳤던 한예종 교수인데다 그녀에 관련한 ‘글’을 발표한 이후 ‘공격의 대상’이 되어왔다.

 

 

김영하는 제자였던 그 여성감독의 죽음을 애통해하면서도 매스컴에서 그녀가 아사(餓死)했다며 너무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게 못마땅하다고

 

지적하는 글을 썼다. 사실 젊은 여감독의 안타까운 죽음을 보면서 당시 나도 여러 가지 의구심이 들었다.

 

어떻게 31세 젊은이가 굶어죽을 때까지 가만히 있을 수 있었단 말인가. 하다못해 119에라도 신고를 했어야 하지 않나, 가족이나 친구들에게라

 

도 연락했어야지, 등등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그렇게 탄식 했었다.

 

 

아마도 이런 생각을 한 사람들은 나 말고도 꽤 많을 것이다. 도저히 ‘아사’에 이르기까지의 그 과정이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제 와서 그

 

녀의 사인에 대해 왈가왈부하자는 게 아니다. 단지 ‘추정보도’를 진실인양 받아들이는 풍토가 걱정됐다.

 

결국 국과수 부검결과 그녀의 사인은 ‘지병(持病)’으로 인한 쇼크사였다고 밝혀져 ‘아사’로 단정 짓고 신파조의 기사를 썼던 신문은 모양새가

 

우스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일단 영화계에서 장래를 촉망받던 ‘재원(才媛)’이 영화계의 구조적 병폐에 의해 생활고와 병고에 시달리다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는

 

점에서는 이런저런 영화계 시스템상의 부조리에 대해 조목조목 따져봐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앞으로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 개선안을 마련하려고 노력하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본다.

 

 

그간 작가·평론가와 트위터·블로그로 논쟁을 벌여온 김영하는 '예술가 밥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안타깝지만 사회가 그렇다'는 쪽이었고, 반

 

대론자들은 '사회 구조를 먼저 개혁해야 한다'는 쪽이었다고 한다.

 

이런 논쟁은 사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문제냐 만큼 선뜻 답을 내놓기 어려운 문제다. ‘예술가의 밥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쪽은 어느 정도

 

’세상을 아는 기성세대‘로서 체득한 일종의 체념 비슷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반면 ‘사회구조’ 개혁이 우선해야한다는 ‘젊은 그들’의 주장은 ‘세상 물정 모르는 순수한 젊은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말해야할 ‘모범답안’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게 아마도 ‘세대갈등’의 한 요소이기도 할 것이다.

 

당초 신춘문예 등단제도를 둘러싸고 작가 지망생을 응원하기 위해 시작했던 글은 '작가의 정체성'에 관한 문학논쟁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시나리오 작가 겸 감독이던 여성이 ‘'굶어 죽었다'고 알려지면서 "예술가의 생존을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의 현실적 논쟁으로 확대된 것이다.

 

여기에 고인(故人)과 함께 한예종 수업을 들었던 김사과라는 소설가)가 엊그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글에서 "예술의 순수성을 과잉해서 옹

 

호하는 것도 왜곡"이라는 취지로 스승 김영하의 입장을 비판하면서 논쟁은 더 뜨거워졌다.

 

 

그러니까 작가 김영하의 입장은 예술가 개인이 냉철하게 스스로 살아가야 한다는 쪽이었고, 논쟁 상대편인 소조라는 문학평론가는 '예술은 인

 

생보다 짧다'는 쪽이었다.

 

논쟁 상대편으로부터 '낭만적 예술지상주의자'로 낙인찍혔지만, 김영하는 현실을 직시했다고나 할까.

 

 

그는 문학·영화·음악계는 원래 소수가 부를 독점하는 영역이라고 진단했다. "소수가 부를 독점하는 곳에 진입 장벽까지 낮으면 지원자는 끊임

 

없이 몰려 든다"며 "당분간은 어려운 경제적, 사회적 처지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쪽이었다고 한다.

 

반면 상대는 이 입장에 대해 "예술은 운동"이라며 "가령 영화계 스스로 불공정한 관행을 고치기 전까지는 절대 한국영화를 보지 말자는 운동

 

이라도 벌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역시 ‘열혈’ 젊은이다운 비장한 결기마저 느껴지는 주장 같다.

 

 

하지만 40대의 김영하는 ‘나잇살’이 있기에 ‘각자 도생’해야 한다는 일견 냉정한 현실인식으로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사실 그의 그런 주장은

 

전혀 틀린 말은 아니라고 본다. (내가 기성세대여선지 모르겠지만). 좀 매정한 얘기지만 ‘예술가의 생존’을 누가 책임져줘야 하는 것이라면 연

 

구비 없어 절절매는 ‘순수 과학도’의 생존도 누군가가 책임져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반론이 나올 수도 있다.

 

 

어찌 보면 기성세대의 시대에 순종하는 ‘때 묻은 사고방식’과 그에 도전하려는 신세대의 ‘열정적이고 신선한 발상’ 역시 끊임없이 갈등을 일으

 

키면서 세상은 점진적으로 발전을 해왔을지도 모르겠다.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고 나가듯이.

 

물론 ‘국가권력’이 ‘예술 지원책’을 현실적으로 입안해 끼니를 얻기 어려운 예술가들을 위해 요즘 유행하는 ‘무상(無償)복지’로써 그들의 ‘최저

 

생계’를 보장해주는 건 필요한 일이라고 본다. 하지만 자존심 높은 예술가들에게 이런 복지정책은 어쩌면 ‘독약’같은 역기능을 할 수도 있는 것

 

이다.

 

 

어차피 어느 분야에서나 ‘최고’는 소수이게 마련이다. 오죽하면 작고한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은 “예술은 사기다”라는 극언을 했겠는가.

 

젊은 여성 감독의 ‘고독한 죽음’은 너무 가슴 아픈 일이지만 현실 인식이 조금은 부족할 수도 있는 젊은 예술인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예술에 앞서 일단은 생존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