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만추에서의 현빈, 도발적인 눈빛 연기가 그럴싸해 보인다.
롯데백화점 본점 앞 현빈 사인회에 몰려든 여성팬들 (라네즈 사진제공)
'현빈 뜬다' 소식에 명동마비 된 '현빈 현상'
‘현빈’ 때문에 난리가 난 모양이다. 아침 신문에 보니 지난 22일 롯데백화점 본점은 영업이 마비될 정도로 아수라장이 됐다고 한다. 남성 화장품 모델 현빈의 사인회가 그날 오후 2시에 열린다는 사실을 안 대한민국의 ‘현빈 앓이’에 빠진 열혈 여성팬들로 인해 이 추운 겨울 날인데도 명동 근처는 ‘사우나 탕’같은 열기로 가득 찼다는 것이다.
백화점 측이 ‘소동’이 날 것을 예측하고 사인회 소식을 외부에는 알리지 않았는데도 귀신같이 눈치 챈 열혈 팬들은 전날부터 백화점 주변은 물론이고 인접한 호텔 로비와 백화점으로 연결되는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지하도에도 진을 쳤다고 한다.
기사에 따르면 팬들은 전날인 21일 저녁부터 몰려들었다. 일부는 기온이 영하로 치닫는 추운 날씨와 싸우며 지하도에서 밤을 새웠다.
일정이 불과 2주 전에 잡힌 데다 엄청난 사람이 모여들 것을 고려해 사인회는 비공개로 진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며칠 후부터 현빈의 팬클럽 및 카페 홈페이지에 '현빈이 비공개로 사인회를 한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이 회사측으로 사인회에 대한 문의가 빗발쳤다는 것이다.
아침 신문에 실린 "현빈 뜬다" 소식에 명동이 마비“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면서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그 ‘열혈팬’들의 현빈에 대한 이런 극한의 반응을 신문은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백화점이 문을 여는 오전 10시 30분이 가까워지자 규모는 더욱 불어났다. 백화점 입구의 문을 열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결국 백화점 측에서는 사람들이 대기할 수 있는 장소를 따로 마련했다. 하교한 중·고등학생들도 모여들었다. 일본 관광객들도 대거 나타났다. 이들은 현빈의 사인회 소식을 듣고 일본에서 날아와 전날 백화점 옆 호텔에 투숙했다.
정오가 되자 번호표가 분배됐다. 110번까지 준비돼 있던 번호표는 순식간에 동났다. 표를 받지 못한 팬들 중 일부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현빈은 사인회가 예정된 오후 2시 정각 행사장에 나타났다. 주말인데다 백화점 세일 기간과 겹쳐 혼잡이 극에 달했다. 쇼핑객과 팬들이 뒤엉켰다. 이날 행사에는 라네즈 옴므측 경호원 20명과 현빈측 경호원 5명, 백화점 경호 인력 전원이 투입됐다. 사인회는 55분 동안 진행됐다. 이 브랜드 VIP 고객 20여명을 포함해 130여명이 사인을 받았다. 행사 진행 담당자는 "현빈의 인기가 급격히 치솟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큰 사고 없이 행사를 마무리한 것이 신기할 정도"라고 말했다.>
그동안 아이돌 연예인을 비롯해 ‘그때그때’마다 극성팬들의 ‘남주인공’사랑은 항상 뜨거웠다.
얼핏 생각나는 연예인들만 해도 꽤 된다. 예전에 ‘내 이름은 김삼순’ 드라마에 나왔던 미국인 다니엘 헤니를 비롯해 소위 ‘한류 스타들’ 과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박태환이나 '영원한 오빠'박지성등등.
그런데 이번 ‘현빈 현상’은 거의 ‘사회적 현상’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것 같다. 더구나 현빈이 해병대에 자원했다는 소식까지 겹쳐 메이저 신문에서까지 '현빈 예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심지어는 병무청장까지 현빈에게 사의를 표했다니 그야말로 대한민국 전체가 현빈사랑에 목을 매고 있는 듯하다. 개인적으론 현빈을 별로로 여겨, 지금 ‘현빈 현상’의 진원지라는 그 유명한 ‘시크릿 가든’도 한 번도 안 봤다. 여기서 현빈, 저기서 현빈, ‘난리’들을 쳤지만 ‘관심 밖 대상’에 대해선 워낙 ‘냉정’한 편이라 그냥 그러나 보다 했다.
듣기로 ‘시, 가’에서 현빈은 재벌집 아들로 성격마저 까칠한 ‘까도남(까다로운 도시 남자)인데 ’한미(寒微)한‘ 집안 출신의 하지원과 사랑에 빠지는 ’백마 탄 왕자‘역으로 주가(株價)를 올린 모양이다. 거기에 약방의 감초 격으로 현빈의 극성모친이 등장해 아들의 ’없는 집 여자‘와의 사랑을 결사반대하고 어쩌고저쩌고 하는, 지금까지 ’백만 번‘도 넘게 TV드라마의 최고단골메뉴인 식상한 스토리다. 그런데도 저렇게 야단법석의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건 ’주목‘할 만한 현상이라고 본다.
분석하기 좋아하는 사회학자들은 아마도 극심한 빈부격차로 인한 우리 사회의 ‘계층 갈등’을 원인으로 꼽을 것 같다. 거기에 가난한 집 딸에게 더 매력을 느낄 수도 있을 법한 ‘도련님 정서’와 그걸 팔 걷어 부치고 만류하는 ‘만고불변’의 모성애가 낳은 ‘세대갈등’도 원인 중에 하나로 내놓을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또 어떨까? 심리학에 대해 아는 게 없는 나로선 전문가들의 진단을 예단할 능력은 없지만 ‘인간’이라는 상식적 범주에서 본다면 그런 현상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것이라고 말할 것 같다.
집안 좋고, 돈 많고, 잘 생기고, 뭐 하나 빠지지 않는 남성이 ‘하찮은 나’를 사랑해 그 사랑을 허락지 않는 모친을 향해 “이 여자는 내게 전도연이고 김태희”라고 울부짖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이건 뭐 더 이상 부연 설명이 필요치 않는 ‘꿈의 경지’가 아니겠는가.
비록 TV 드라마이긴 하지만 그렇게 ‘맞춤한 스토리’는 ‘헐벗은 나의 영혼’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는 데 그런 ‘주인공 남성’을 어떻게 외면한단 말인가. 안다, 무심코 보기만 해도 가슴뛰게 만드는 그 ‘강렬한 눈빛’의 소유자 현빈에겐 이미 송혜교라는 유명탤런트가 애인으로 존재하고 있어 이미 ‘품절남’이고, ‘나같이 평범한 여자’와는 죽어도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걸 너무도 잘 안단 말이다,
그래도 그를 만날 수 있는 ‘레알 타임’이 현실에서 제공된다면 그 ‘머무르고 싶은 순간’을 어떻게 외면한단 말인가! 제아무리 영하의 겨울날씨가 심술부려도 내게 허락된 ‘팬 사인회’라는 공식 데이트 장소에 어찌 안 가본단 말인가. 비록 ‘그와의 만남’은 단 몇 초에 불과하고, 현빈은 나라는 존재에 대해 전혀 관심 없다는 것조차 잘 알고 있지만 ‘순간에서 영원으로’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그 ‘어메이징한 남자’와의 ‘어메이징한 순간’이 허락된다면야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곳’에 달려가고 말테야.
아마도 그날, 명동 일대를 가득 메웠다는 ‘아가씨들’은 아마도 이런 심정이 아니었을까. 이해한다. 아니 공감한다. 아직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그녀들의 ‘현빈 앓이’ ‘현빈 현상’을. 뭐, 너그러운 척 하려고 그러는 건 아니다. 나이 좀 먹었다고 세상이치 다 터득한 도사인 양 그러는 건 더더욱 아니다. 아무리 내가 기성세대기로서니 그 애틋한 심정을 왜 모르겠는가. 나도 한때는 피끓는 신세대였다!
감히 말하고 싶다, 그 어느 누구라도 그런 그녀들을 향해 비난의 눈길을 보내거나, 쯧쯧거리며 혀를 찰 자격은 없다고 말이다.
그 아가씨들이 그 열혈 팬들이 현빈을 만나기 위해 ‘그곳’에 달려간 것은 순수한 그녀들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하지만, 그 엄동설한에 그 수많은 여성 팬들이 그런 식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었던 ‘저변의 상황’은 그냥 허투루 지나쳐 버리기엔 문제가 좀 있는 듯싶다.
공부가 짧아 학문적이고 깊이 있는 예리한 분석을 할 실력은 없다. 그렇지만 우리의 어린, 젊은 애기씨들이 그렇게 열렬하게 ‘사모하는 남자’가 현실의 현빈이기 이전에 드라마 ‘시 가’ 속 최고의 매력남 김주원이라는 존재였다는 건 어쩐지 좀 공허하다.
현실에선 있을 수 없는 ‘꿈속의 사랑’에 대한 애틋함이 현실의 현빈에게 투사돼, 엄동설한인데도 번화한 도시의 한 복판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는 건 그만큼 그들의 ‘외로운 영혼’이 무언가로부터 위로받고 싶었다는 반증이 아닐까.
여기서 외롭다는 건 단순한 외로움이 아니다. 그건 아마도 현실적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정신적 허기’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하지만 그 어린 아가씨들은 자기들의 영혼이 그런 ‘정신적 갈증’에 시달려서 그런다는 건 모를 것이다. 아직 그걸 알기엔 그들은 너무 어리고 순수한 탓이 크다. 현빈이 그냥 좋은 것이다. 그렇기에 ‘꿈속의 현빈’을 만나러 혹독한 영하의 명동거리로 몰려간 것이리라.
현빈은 그녀들의 이런 심리를 알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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