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단상

김태원 "아들, 마음이 아픈 아이. 말 못하는 아이와 대화하고 싶다"

스카이뷰2 2011. 3. 31. 13:11

 

 

 

     "마음이 아픈 아이, 말 못하는 아이와 대화하고 싶다"

 

 

얼굴을 반쯤 가려주는 선글라스에 검은 후드를 눌러쓰고 아가씨처럼 긴 생머리를 어깨까지 늘어뜨린 남자가 가냘픈 목소리로 말하는 걸 보고 흠칫 놀랐다. 우리네 보통사람의 시각으론 평범한 사람들과는 현격히 다른 ‘괴이한’ 차림새로 안방극장에 버젓이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 일단은 놀랍기도 하고 거부감을 갖게 된다.

 

평소 연예인들이 나와 허접한 수다나 떠는 소위 ‘예능 프로그램’은 전혀 시청하지 않는다. 더구나 저런 식의 이상한 차림새의 남자란..그런데도 어젯밤 채널을 돌리다가 강호동의 ‘무릎팍 도사’를 지켜 봤다. 출연자의 절절한 인생고백이 채널을 고정시킨 것이다. 온라인 뉴스에서 종종 ‘국민 할매’라는 애칭인지 별칭인지로 불린다는 ‘부활’의 리더 김태원이라는 남자의 ‘인생 고백’은 오랜만에 ‘이것이 인생이다’같은 뭉클함을 느끼게 했다.

 

 

 

‘여장남자’스타일로 나와 ‘마음이 아픈 자기 아이’이야기를 차분한 어조로 말하는 ‘로커’아빠의 애수에 찬 모습은 그 자체로도 무슨 드라마 같았다.  “그 아이는 마음이 아픈 아이였어요. 태어난 지 두 해만에 마음에 병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지금 열한 살인데 저는 지금도 그 아이와 대화하는 꿈을 늘 꿉니다.”

 

"아내의 소원은 아들보다 딱 하루 더 사는 것이죠. 단 하루만"이라면서 집게손가락을 쳐든 그의 눈가는 젖어있었다. 자폐증 아이를 키우는 집안의 엄마들 혹은 아빠들은 “저 아이보다 하루만 더 오래 살아야겠다”는 말을 공통적으로 하고 있는 걸 많이 봐 왔다. 김태원과 그 아내도 여느 자폐아 부모처럼 ‘딱 하루를 더 사는 게 “소원이라는 ’피 맺힌 소망‘과 ’아이로부터 엄마, 아빠 소리‘를 듣고 싶다는 간절한 고백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세상에 제일 힘든 일이 ’부모 노릇‘이라는 옛말이 떠올랐다.

 

세상에 태어난 지 11년 된 ‘우현’이라는 소년은 마음이 아파 말을 못하는 아이다. 이른바 ‘자폐증’의 성(城) 안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갖고 있는 아이다. 그런 아이를 보며 ‘음악’하는 아빠는 아들과의 대화를 늘 꿈꾼다는 대목도 영화 속 이야기 같다.

자폐증 아이들은 대부분 준수한 외모를 갖고 있다. 저렇게 잘 생긴, 똘똘하게 생긴 아이들이 왜 ‘말하는 것을 거부’하는 ‘마음의 병’에 걸렸는지 그저 애처로울 뿐이다. 현대의학에선 아직 그 원인이나 확실한 치료법을 발견하진 못했다.

 

그저 기적을 바라면서 ‘침묵하는 아이’를 돌봐야 한다는 건 일종의 천형(天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천하 남도 이런 안타까운 마음인데 친부모야 오죽하겠는가.  특히 그는 "아내가 큰 상처를 받았다, 사람들 때문"이라며 "그게 아내와 아이들이 외국에 살고 있는 이유다. `무릎팍 도사`에서 처음 얘기하는 이유는 주위 시선이 무섭다는, 이런 같은 이유로 밖에 나오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을 거다. 좋은 때가 왔을 때 이 사실을 고백하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TV예능 프로에서 김태원이 출연하는 건 거의 본 적이 없지만 최근 온라인 뉴스를 통해 그가 TV의 건강 프로그램에서 ‘위암’을 진단받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어제 TV에서 그는 수술 3일 만에 팬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무대에서 기타를 쳤다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말했다. 대단하다. 그런 ‘대수술’을 받으면 1주일 이상 누워 있어야하는데 3일 만에 환자복을 벗고 무대 위로 올라갔다는 건 그야말로 ‘프로의식’이 투철한 예술인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노래하다 무대 위에서 쓰러져 죽는 한이 있어도 좋다’는 정신으로 진통제 먹어가면서 올라간 그 무대는 얼마나 ‘슬픈 아름다움’으로 가득 찼었을까. 그 공연을 보러가진 않았지만 아마 그곳에 모인 청중과 로커 김태원은 ‘혼연일체’의 감동적 순간을 서로에게 감사하면서 받아들였을 것 같다. 그야말로 '사람이 꽃보다 더 좋은 순간들'이었을 것이다.

 

언젠가 김태원이 자신의 모교인 어느 고등학교를 찾아간 프로그램을 TV에서 잠깐 본 적이 있다. 그는 아주 어린 후배들에게 “그 때 난 야간 다녔거든 그래도 주간 애들은 치지도 않았어”라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비록 야간을 다니지만 프라이드 하나는 누구도 훼손할 수 없었다는 얘기다. 그 프라이드의 원동력은 바로 기타였다.

 

음악에 몰입해 살아온 인생을 고백하며 마흔 일곱 김태원은 ‘음악’이 없었다면 견디기 어려운 삶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자신의 가족들이 ‘조난당한’사람들처럼 살아왔다는 그의 말을 들으니 대한민국에서 ‘예술’하는 사람들의 ‘생존방식’이 쉽지 않다는 걸 새삼 스럽게 느꼈다.

 

이제 그는 다양한 TV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생활’을 위해 뛰고 있지만 앞으로 ‘마음이 아픈 아이들’을 위한 좋은 노래들을 만들고 그 아이들을 위해 살고 싶다는 말을 해 시청자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주었다. 오랜만에 본 괜찮은 ‘연예인 수다 떨기’프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