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없는 청소년 76명이 목숨을 잃은 노르웨이의 숲 우토야 섬.(연합사진)
‘노르웨이의 숲’대학살,부모의 이혼과 결손가정 소년의 상처가 원인
끔찍한 ‘노르웨이 대학살’사건이 터졌다는 소식을 듣던 순간, 무라카미 하루키가 생각났다.
우리나라에선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소개돼 100만부 이상이 팔린 하루키의 출세작 의 원 제목이 바로 ‘노르웨이의 숲’이다. 하루키는 이번 사건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자신의 소설제목의 장소였던 ‘그곳’에서 이런 대학살이 이뤄졌다는 것을 ‘예민한 A형 남자’하루키가 그냥 모른 체 넘어갈 수는 없을 텐데...
비틀즈의 노래로도 널리 알려진 이 ‘노르웨이의 숲’은 평화롭고 아름다운 북유럽 풍경의 이미지를 선사한다. 아마 숲이 주는 ‘넉넉함’과 아울러 불안한 현대인에게 ‘순백한 영혼’이 주는 평안함의 이미지로 다가오기에 ‘노르웨이의 숲’은 마치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를 느끼게 해준다. 시원하고 상쾌한 바람이 부는 숲 속을 맨발로 천천히 걸어 다니는 환상 속에 노르웨이의 숲은 ‘치유의 힘’마저 갖고 있는 영험한 수풀인 듯하다.
그런 ‘노르웨이의 숲’ 우토야 섬에서 말로 옮기기에도 끔찍한 ‘狂氣의 대학살’이 벌어졌다는 건 너무 슬프고도 참혹하다. 아침신문1면에 크게 실린 최악의 흉악범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빅이 짓고 있는 ‘악마의 미소’를 보며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멀쩡하게 생겼다. 뭘 잘했는지 아주 당당한 표정이다. 소름이 끼친다. 아주 옛날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살인마로 나오는 안소니 홉킨스의 섬뜩한 표정과 너무 닮았다.
이 살인마는 자신은 범죄를 저지른게 아니라 ‘사회혁명가’로서 거사를 한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광기가 이 정도라면 인간에게 거는 최소한의 희망마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이 ‘금요일의 대학살’로 노벨상 평화상 시상장소로 해마다 12월이면 전 세계에서 ‘평화’를 위해 애쓴 사람에게 상을 줘왔던 ‘노벨상 시상위원회’는 무척 당황할 것이다.
인구 470여만 명의 노르웨이 국민들은 크나큰 슬픔에 빠졌지만 이내 ‘증오를 사랑’으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이 대학살이 주는 끔찍한 상황을 극복하려고 애쓴다는 외신보도도 방금 전 나왔다. 아무 죄 없이 멋모르고 흉탄에 스러져간 청소년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의 대성당 앞 광장에 모인 수십 만 명의 시민들은 저마다 장미꽃 한 송이씩을 영전에 바치며 그들의 넋을 애도하며 서로를 위로하고 있다고 한다.
마침 한국을 방문했다가 오늘 다시 노르웨이로 떠난 한국출신 사업가 이철호(74)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세계인들을 놀라게 한 노르웨이 테러 사건에 대해 "너무 슬프다"고 말했다. 노르웨이에서 '라면 왕'으로 불리는 이씨는 노르웨이의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유명하다.
한국전쟁 때 전쟁고아로 참전했던 한 병사의 도움으로 노르웨이에 건너간 그는 천신만고 끝에 '미스터 리'라는 브랜드로 한국 라면을 만들어 노르웨이 라면시장을 장악하며 큰 성공을 거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이번 테러범이 다문화주의를 비판한 것과 관련, "노르웨이에 사는 동안 소수민족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은 기억이 없다"며 "돈을 많이 벌수록 세금도 많이 내야 하기 때문에 외국 출신이 사업에 성공한다고 질투하는 경우도 없다"고 전했다. 그는 "테러범처럼 비뚤어진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번 사태가 곧 진정될 것"이라며 "자유로운 노르웨이의 분위기가 경색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연쇄 테러 사건이 터진 직후 오늘까지 전 세계 매스컴에서는 주로 ‘이슬람 다문화주의’에 반대하는 극우세력이 자행한 테러로 진단하며 최근 유럽 전역에서 빠르게 번져가는 극우주의를 보여준 사례이며 이런 추세는 점점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 섞인 보도를 내놓고 있다.
노르웨이는 물론이고 덴마크 스웨덴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영국 등지에서도 극우세력의 조직화가 두드러지고 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2차 대전 후 사라졌던 이런 극우주의자들의 극단적인 외국인 혐오증은 유럽 각국의 실업률 증가와 각종 사회문제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다시 도지기 시작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번 노르웨이의 ‘극악무도한 집단학살’사건의 주범 안데르스 브레이빅의 경우는 이런 ‘사회적인 영향’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유소년 시절 ‘결손 가정’의 비극을 겪으면서 성장한 사람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비뚤어진 심성 탓이 더 컸다고 본다. 그러니까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이혼을 겪어야 했고,
복잡해진 ‘가계도’ 속에 ‘롤 모델’로 삼을 만한 부모와 그 주변 성인들의 방탕한 행적이 성장기의 아이에게 엄청난 독소를 뿜어낸 결과물이라고 볼수 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정신적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아온 탓에 결국은 정신이 온전치 못하게 된 케이스다. 광란의 정신병자에게 무슨 이념 어쩌구를 따진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본다. 진작 정신병원에 갔어야할 인간을 사회가 그대로 방치한 결과 저런 참극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이 흉악범은 어린 시절까지만 해도 아주 평범한 소년이었다고 한다.
'마마보이'로 불릴 정도로 양처럼 온순했다는 것이다. 32세인 범인이 그토록 냉혹한 살인마가 된 것은 기구했던 가족사 탓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의 범죄를 동정하는 것은 아니다.
주영(駐英) 외교관 출신 아버지는 런던과 파리 주재 노르웨이대사관의 상무관이었다. 그의 부모는 각각 첫 결혼에 실패, 아버지는 세 아이를 데리고 첫 결혼에서 딸 하나를 둔 어머니외 재혼해 낳은 아이가 브레이빅이었다. 부모는 그가 한살 때 헤어졌다고 한다.
아버지는 런던에 계속 살았고, 간호사였던 어머니와 브레이빅은 노르웨이로 돌아가 임대아파트에 살았다. 그 무렵부터 2009년까지 이 흉악범은 30년간 모친과 함께 살아왔다고 한다. 어머니는 한때 노르웨이 육군 소장과 다시 결혼했다가 바로 헤어졌다는 것이다. 아들로서 모친의 이런 ‘기구한 운명’을 지켜보며 아마도 인간에 대한 ‘적개심’을 키워왔을지도 모르겠다.
흉악범의 아버지는 런던에서 대사관 동료 직원과 결혼했다. 그들은 어머니를 상대로 브레이빅 양육권 다툼을 벌였지만 패소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후에도 브레이빅은 가끔 런던과 파리로 아버지를 찾아갔다. 아버지의 새 부인과도 원만하게 지냈다. 그러나 그들도 브레이빅이 열두살 때 갈라섰다.
12세 소년의 영혼은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됐고 참담한 정서적 혼란을 겪었을 것이다. 부모의 파란만장한 애정사가 한 아이의 성장에 얼마나 독소 역할을 했는지를 충분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이 흉악범의 악행이 정상을 참작해줄만하다는 얘기는 아니라는 걸 분명하게 밝혀둔다. 우리도 그 범죄의 본질적 원인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는 말이다.
브레이빅이 아버지와 완전히 결별한 것은 15세 때였다. 공공장소 벽에 스프레이를 뿌리고 다니다가 경찰에 입건된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가 아들과 인연을 끊겠다며 만나주지 않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마 부친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은 소년에겐 엄청난 상처가 됐을 것이다. 이번 사건 5년 전, 브레이빅이 마지막으로 한 번만 만나달라고 간청했지만, 아버지는 매정하게 거절해버렸다고 한다.
남의 집 가정사에 이러쿵저러쿵 말할 건 없지만 그 아버지라는 사람은 왜 그렇게 아들을 냉대했을까. 어쩌면 그런 ‘애정 결핍’이 이 범인에게 소외감과 배신감 그리고 인간에 대한 적개심을 갖게 했을 것이다.
현재 프랑스 남부에 사는 테러범의 아버지는 “16년 전부터 아들과 연락하지 않아 아들의 테러 계획을 전혀 몰랐다”고 밝혔다고 한다. 하기야 함께 살았던들 ‘거사 계획’을 말하지는 않았겠지.
아무튼 1945년 이후 노르웨이 역사상 가장 참혹한 이번 대학살은 20년 전 어느 가정에서부터 그 사건의 씨앗을 스멀스멀 배양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가만 생각해보면 괴기 공포영화보다 더 무서운 장면인 것 같다.
“아들을 외면한 아버지는 집권 노동당 지지자였고, 아버지를 빼앗아간 새 부인은 이민자 신청 업무를 다루는 정부 기관에서 일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여성 인권 운운하며 아버지를 떠나버린 페미니스트였고, 누나는 성생활이 문란한 여성이었다. 육군 소장이었던 새 아버지는 퇴역 후 생활을 태국에서 창녀들과 보냈다”
부모의 이혼과 그 후에 그가 본 어른들의 이런 온갖 문란한 애정생활을 목격하면서 성장한 이 소년은 결국 이렇게 끔찍한 괴물로 변한 것이라고 본다. 부모와 그 주변 어떤 인물도 소년을 따스하게 대해주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자기네들 애정문제에만 빠져있었으니 소년은 '나는 혼자'다라는 고약한 기분속에 컸을 것이다.
이번 사건을 저지른 현장 기사를 보니 범인은 ‘예쁜 소녀들’을 골라서 먼저 죽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참 뭐라고 더 이상 말할 기력이 사라지고 있는 듯하다.
결국 ‘다문화 사회’가 원인이기도 하겠지만 이렇게 성장기에 온갖 ‘유해 독소 환경’속에 찢겨진 소년의 ‘말로(末路)’가 이렇게 ‘대참사(大慘事)로 이어졌다는 현실에 소름이 돋는다. 너무 무섭다.
이건 비단 노르웨이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도 급격하게 늘어나는 이혼율과 극심한 취업난, 이주민 노동자들 문제 등등 온갖 사회문제가 노르웨이와 전혀 다를 게 없다.
한 가정의 붕괴가 한 소년의 ‘인간성을 말살’시켜버리는 참혹한 일들이 지금 우리 주변에서도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누구라도 그들을 다독여 주지 않는다면 앞으로 어떤 범죄가 일어날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번 사건을 다룬 언론보도는 읽기만 해도 심장이 쿵쾅거린다. 신문은 영화보다 더 무서운 현실을 목격자의 증언을 통해 이렇게 전하고 있다. 외부와 고립된 섬에서 어린 소년소녀들이 극도의 공포에 떨며 살인마의 총탄에 스러져가는 장면! 소름끼친다.
<살인마는 웃음과 환호성을 터뜨려가며 자동소총과 산탄총을 난사했다. 금발에 차가운 표정을 지닌 그는 나치영화에서 막 튀어나온 사람 같았다. 아이들을 불러 모으고는 천천히 가장 예쁜 소녀들 찾았다. 그리곤 그 소녀부터 차례차례 아이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시체가 쌓이자 그는 웃었다. 주로 자동소총을 쏴 쓰러뜨린 뒤, 산탄총으로 머리에 확인 사살을 하는 식이었다.>
극악무도한 살인마의 총탄에 아깝디 아까운 청소년 76명이 목숨을 잃었다. 머나먼 나라 노르웨이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그 어린 영혼들의 영전에 삼가 고개 숙여 애도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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