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증언은 1963년 11월 22일 케네디 대통령이 텍사스 주 댈러스에서 카퍼레이드 중 오스왈드의 저격으로 사망한 지 몇 달 후 하버드대 역사학 교수이자 케네디 대통령의 특보였던 아서 슐레진저와 나눈 대담을 담은 녹음테이프에 담겨 있다.
재클린이 "내가 죽고 나서 50년 뒤에 공개하라"는 조건을 붙였기 때문에 그 동안 미국 보스턴의 케네디도서관 소장고에 밀봉된 채 보관돼 왔다.
‘사후 50년 뒤 공개’라는 ‘약속'을 깨고 30년 앞당겨 공개된 고인(故人)의 생전 증언에는 ’대통령남편‘을 암살한 배후 세력으로 당시 부통령이었던 린든 존슨을 지목한 부분이 눈길을 끈다. ’천하의 바람둥이‘였다던 케네디 대통령의 ’못 말리는 바람기‘와 ’홧김에‘ 자신도 당시의 할리우드톱스타 윌리엄 홀든을 비롯해 이태리 자동차회사 피아트의 창업주 지오반니 아그넬리와 밀애를 즐겼다는 ’고백‘도 들어있다.
현재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 케네디대통령 묘지 바로 옆에서 영면(永眠)을 취하고 있는 ‘영원한 퍼스트레이디’ 재클린 케네디가 30여년이나 앞당겨 적나라한 고백을 담은 테이프가 공개된 사실을 알면 엄청 화를 낼 것 같다. 생전에도 재클린은 워낙 예민하고 선민의식이 강한 성격이어서 사소한 일에도 신경을 곤두세웠다니 이처럼 ‘중대한 약속’을 자신이 지하에서 잠들고 있다고 ‘산자들 마음대로’ 깨버렸다는 사실을 용서하기 어려울 것 같다.
재클린의 육성녹음 테이프가 급히 공개된 것은 유일한 혈육인 딸 캐롤라인 케네디(53)가 케네디가(家)의 비화를 담은 8부작 TV 시리즈 '케네디가(The Kennedys)'를 미 ABC방송이 방영하려 하자, 이를 막는 조건으로 ABC에 녹음테이프를 독점 제공하겠다고 거래를 한 데 따른 것이라고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이 보도했다.
케네디가의 도전과 시련을 그린 이 드라마는 제작비 1000만 파운드가 들었으며 극 중 재키(재클린의 애칭) 역은 케이티 홈스(33·배우 톰 크루즈의 아내)가 맡았다. 딸 캐롤라인은 이 드라마가 방영되지 않길 바랐지만 미국의 다른 케이블 방송과 영국 BBC2를 통해 방영될 예정이라고 데일리메일이 전했다
신대륙 미국이 배출한 ‘최초의 여왕’ 재클린 케네디는 1960년 31세라는 젊은 나이로 백악관에 입성해,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한 1963년 11월22일까지 불과 3년간의 짧은 퍼스트레이디 생활을 했을 뿐이지만 지금까지도 전세계 퍼스트레이디들의 ‘영원한 로망’으로 존재할 정도로 신화적인 인물이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 유럽의 ‘왕실문화’를 늘 부러워해온 미국인들에게 재클린은 ‘여왕’이상의 거의 ‘여신 급’ 존재였다.
배우 부럽지 않은 미모에 탁월한 지성, 우아한 스타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빼어난 패션감각 등 이른바 ‘재키 스타일’로 이름 붙여진 그녀의 모든 것에 미국민은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고상함, 우아함, 단아함, 역사를 보는 고결한 시선 등 온갖 화려한 수식어는 바로 그녀 자체를 상징할 정도였다.
‘대통령 남편’이 46세라는 젊은 나이에 암살당하는 순간 재클린은 바로 그 옆에서 ‘최악의 순간’을 목격해야하는 ‘붕성지통(崩城之痛)’의 비극을 겪어야 했다. 미국민 뿐 아니라 온세계인이 경악했던 ‘케네디 암살사건’은 범인으로 잡혔던 오스왈드가 암살당하고 그를 죽인 암살범도 또 암살당하는 등 미스터리가 연속되면서 결국 ‘진범’이 누구인지를 가려내지 못한 채 미궁에 빠지고 말았다. 그 이후 온갖 ‘음모론’이 떠돌았지만 구체적 증거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번에 공개된 재클린의 ‘증언’에서 그녀는 남편을 보좌했던 린든 존슨 부통령을 ‘배후’로 확신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고 보니 댈러스에서 워싱턴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내에서 죽은 남편을 대신해 대통령선서를 하는 존슨 옆에 서있는 재클린의 표정은 뭐라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고 초라해 보였다.
왜 아니겠는가. 이제 서른 넷 밖에 안된 나이에 그것도 여염집 남편이 아닌 ‘미국 대통령’이라는 세계 최고의 권력자 남편이 총맞아 죽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억장이 무너졌을 텐데 평소 탐탁지 않게 여겨오던 어물쩡한 표정의 부통령이라는 남자가 대통령이 되겠다고 손을 펴들고 선서를 하니 얼마나 기막히겠는가.
재클린은 이 녹음대담에서 남편 암살 사건의 배후 인물 중 하나로 린든 존슨(1908~73) 당시 부통령을 지목했다. 존슨은 텍사스 출신 6선 상원의원으로, 민주당 대선 후보 지명전에서 케네디에게 패한 뒤 부통령으로 발탁됐다. 그는 미국 석유산업과 군수산업의 아성인 텍사스주의 이해관계를 대변해 온 거물 정치인으로, 1963년 케네디 대통령 암살 후 대통령직을 승계해 이듬해 통킹만 미국 구축함 침몰 사건을 계기로 베트남전쟁 전면 확전을 결정한 인물이다.
케네디 대통령이 베트남전 철군 계획을 세우고 소련과의 화해 무드를 조성하는 등 미국 군수산업의 이익을 침해하려 하자, 존슨을 포함한 텍사스 도당들이 암살사건을 기획했다는 것이 재클린의 주장이다. 케네디 암살 사건 후 이런 음모설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당시 대통령 부인도 그런 의심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 당사자의 육성으로 증언된 게 밝혀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케네디 암살사건을 다룬 영화 ‘JFK'에서도 ’배후‘로 재클린의 이번 증언과 비슷한 스토리를 다루고 있다. 암살의 배후는 아무래도 드러내놓고 말하기 곤란한 사안이니만큼 그저 ’이심전심‘으로 넘어갔다는 얘기다. 전 세계를 이끌어나가는 대표적 ’정의(正義)로운 국가‘답지 않은 역사적 상황인 것 같다. 36세에 의문사한 마릴린 먼로의 사인이 여전히 밝혀지지 않고 있듯이 케네디 암살사건의 배후도 영원한 미궁에 빠질 것 같다.
그동안 재클린에 대해선 이런저런 전기서적이나 매스컴에서 생전의 그녀가 알려지기를 꺼려하던 ‘사생활’이 조금씩 ‘폭로’되어왔다. 연예주간지 글로브는 재클린이 시동생인 로버트 케네디, 배우인 윌리엄 홀든과도 비밀스러운 사랑을 나눴다고 폭로했다.
그녀는 남편이 죽기 전에 이미 오나시스와 연정을 나눴고, 시동생 로버트와는 케네디 전 대통령이 죽게 되면서 자연스레 더욱 가까워졌다고 보도했다. 로버트 또한 형이 죽기 전부터 오랫동안 그를 흠모해왔다고 글로브는 주장했다.
글로브지에 따르면 케네디대통령 일가와 오나시스의 관계는 1950년 6.25전쟁 때 시작됐다. 오나시스가 불법으로 기름을 선적하면서 막대한 부를 이루자 케네디 형제가 정치적으로 그를 조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1963년 케네디 전 대통령과 재클린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패트릭이 생후 이틀 만에 죽은 뒤, 오나시스는 ‘위로명목’으로 재클린을 지중해에 있는 자신의 요트인 크리스티나 호에 초대했다.
케네디 형제는 당연히 오나시스를 싫어했고, 케네디 전 대통령은 오나시스의 대담한 제의에 쇼크를 받고 가지 말 것을 종용했다.그러나 재클린은 보란 듯 제의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재클린이 오나시스를 선택한 이유 중의 하나는 케네디 전 대통령과 배우 마릴린 먼로와의 염문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케네디의 ‘마지막 생일’날 마릴린 먼로는 시스룩 스타일의 드레스 차림으로 케네디 코앞에서 ‘해피버스데이(Happy birthday!)’를 육감적으로 불렀다. 물론 그 자리에 재클린은 참석지 않았다. 케네디와 먼로의 관계가 공공연하게 드러난 사건이다.
케네디 대통령이 1963년 11월 댈러스에서 암살되기 전 10월, 재클린은 이미 오나시스와 지중해에서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는 게 글로브지의 주장이다. 글쎄 연예주간지의 ‘믿거나말거나’식 폭로성 기사의 신뢰도가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재클린 본인이 ‘육성’으로 두 명의 그럴 듯한 톱클래스 남자들과 ‘밀애’를 했다고 고백한 대목은 분명한 사실 같다. 이번 ‘육성테이프’에서도 재클린이 고백한 것과 상당부분 비슷하다.
남편이 열아홉 살짜리 백악관 인턴과 바람을 피우는 등 난봉꾼 행각으로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리자 자신도 할리우드 스타 윌리엄 홀든(1918~81), 이탈리아 자동차회사 피아트의 창업주 지오반니 아그넬리(1921~2003) 등과 맞바람을 피웠다고 고백했다. 문득 1998년 미국을 시끄럽게 했던 클린턴 대통령과 르윈스키라는 백악관 인턴과 의 스캔들이 기억난다. 혹시 미국 대통령들은 백악관 인턴양들을 좋아하는 취향이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재클린은 이 '클린턴 사건'이 터지기 전 타계했기에 미국 대통령들의 공통취향에 대해선 미처 연구할 시간이 없었다.
재클린의 '밀애 상대'였던 윌리엄 홀든은 영화 '콰이강의 다리' '사브리나' '모정(慕情)'에 출연했던 당대 최고 인기 미남 배우로 특히 6·25전쟁 종군기자로 중국인여의사와의 애틋한 사랑을 나눈 영화 ‘모정’은 한국의 젊은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얻기도 했다. 또 6·25전쟁에 참전한 미군 전투기 조종사로 열연했던 '원한의 도곡리 다리'로 국내 영화팬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던 톱스타다. 워낙 훤칠한 미남이어서 당시 내로라하는 여성명사들이 그를 둘러싸고 '쟁탈전'을 벌였다고 한다.
전형적인 이태리 바람둥이 스타일인 지오반니 아그넬리는 유능한 경영자이면서도 미국 남성잡지 에스콰이어가 여러 차례 세계 최고 베스트드레서로 꼽았던 당대 사교계의 스타였다.
항간에는 아그넬리를 밀애 상대로 택한 것도 케네디 대통령이 아그넬리의 부인과 밀애를 나눈 ‘복수의 대가(代價)’였다는 ‘믿을만한 증언’이 나오기도 했다.
‘숨은 권력자-퍼스트레이디’를 쓴 케이티 마튼 이라는 여성 전기작가는 이 젊은 대통령부부의 ‘요란하면서 은밀한 사생활’이 생전에 폭로되지 않은 것은 1960년대식 미디어의 공손함(대통령의 사생활은 보호해준다는)과 지금처럼 인터넷 등 SNS 시스템이 전혀 없던 시절, 순진한 대중의 로열패밀리에 대한 ‘환상’덕분이었다는 따끔한 지적을 하고 있다.
1960년대에는 공적인 행동과 사적인 행동 사이의 경계선이 희미했고, 미국의 신세대 젊은 대통령 부부에 대한 무조건적인 애정어린 지지가 그들을 ‘신화’로 만들어준 덕분이었다는 것이다.
자신이 죽은 뒤 50년 후에 공개하라는 재클린의 '유언'이 깨지면서 미국민의 '영원한 퍼스트레이디 재키'에 대한 환상이 사라진 것은 물론 어쩌면 그녀에 대한 배신감과 환멸을 느낀 미국인도 적잖을 것 같다. 그나저나 다 지나간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