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단상

존박이라는 가수와 유희열과 요즘 30대 남자들

스카이뷰2 2011. 11. 19. 14:07

 

  

 

                 

                  존박이라는 가수와 유희열과 요즘 30대 남자들

 

 

 

오랜만에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보면서 ‘감성의 평준화’라는 단어를 만들어봤다.

얼마 전 선거 때 2040세대들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보도가 있었다. 매스컴에선 그들에 대해 ‘이해하기 힘든 세대’라는 데 대체적인 ‘합의’를 본 것 같다. 이제 2040세대들의 ‘표심’을 얻어야 ‘대권’을 잡을 수 있다는 게 여야를 막론한 정치인들의 일치된 시각이라고들 한다.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그러한 보도들을 볼 때 마다 꼭 그렇지만은 않을 텐데라는 생각을 혼자 해본다.  

 

'정신만은 신세대'라고 자부하고 있는 내가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시간될 때마다 즐겨 보는 건 ‘젊은 그들’과의 ‘상식적 소통’을 할 수 있어서다. 예리한 눈매의 카메라맨들이 족집게처럼 줌인해서 잡아내는 ‘젊은 그들’의 신선한 이마나 놀라워하는 입매를 보면서 그들의 ‘속내’를 짐작할 수 있는 좋은 순간이다.

 

어젯밤 아니 오늘 새벽 한시 넘어 본 ‘스케치북’에서도 그러한 ‘귀한 순간’을 포착했다. 요즘 30대 남자들의 ‘심리’의 일면을 엿볼 수 있었던 것이다. 순간포착으로 한 세대의 새로운 ‘감성세계’를 만난다는 건 드문 기회다.

 

사연은 이렇다. 사회자 유희열이 아이 둘 둔 30대 중반 주부의 괴로운 사연을 읽어주는 ‘팬레터’ 낭독 시간이었다. 아이 키우랴 살림하랴 힘들기만한 이 주부는 남편이 계속 겉돌기만한 게 영 불만이었다. 아무래도 바람이 났다고 짐작했는데 어느날 남편이 자기 방에서 혼자 노래부르는 모습을 목격하고 아연실색한 것이다.

 

 30대 후반인 남편은 존박이라는 가수의 열혈팬으로 인터넷 상의 존박 팬 카페 활동을 비롯해 ‘집안일’보다 훨씬 열성을 받쳐 존박을 열렬히 좋아해 ‘고민’이라는 것이다.

세상에! 우리 나이로 서른아홉 살 된 한 가정의 가장이 스물 세 살 청년가수를 너무 좋아하는 나머지 살림에 치여 힘들어하는 아내와 가정을 돌보는 것보다 한 가수의 팬카페활동을 더 열심히 한다는 사실에 대해 5060세대들은 아마 열이면 일고여덟 사람은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야말로 요즘 30대 남자들의 ‘정서’라고 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자기세계’를 가정보다 더 소중히 여길 수도 있다는 게 요즘 젊은 남자들의 심리상태인 것이다.

‘문제의 남편’은 아내와 함께 스케치북 콘서트 장에 참석했다.

 

이제까지 스케치북은 20대 초반이나 많아야 20대 중반 젊은이들의 주무대로 알아왔던 나의‘고정관념’은 이렇게 깨졌다. 존박에 열광하는 그 39세 남자는 외모로 보면 터프한 권투선수 스타일이었다. 그런 그가 존박을 위해 이적이라는 가수의 ‘다행이다’를 개사해 무대 위에 앉아있는 존박을 향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수줍어하는 시골 아가씨 분위기였다. 목소리도 얼굴과는 영 딴판으로 부드러운 미성(美聲)이었다.

 

'존박을 만나고 존박의 멋진 꿈을 응원할 수 있어서. '갓블존' 만나서 존박의 사랑함께 나눌 수가 있어서. 뮤직팜 만나서 소망대로 꿈을 펼칠 수가 있어서 다행이다. 존박이란 아름다운 청년이 여기 있어줘서'라고 직접 개사한 가사는 객석을 초토화 시켰다.

 

사회자 유희열은 존박이 "한 가정을 파탄으로 몰고 갔다“고 말하자 객석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야말로 ‘감성의 평준화’가 이뤄진 순간이라고나 할까. 유희열은 "아내분 눈가가 촉촉해지셨다. 이미 뺏겼구나라는.."이라고 말해 다시한번 객석을 웃겼다. 그 젊은 남편은 마지막으로 존박에게 "얼마 안 있으면 발매될 첫 음반 너무 기대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메시지를 전하는 가수가 되겠다는 꿈 꼭 이루셨으면 좋겠다"고 응원 메시지를 전했다.

 

요즘 세상이 바로 이런 세상이다. 기성세대는 상상도 못할 만큼 ‘자유로운 영혼’과 ‘소녀같은 감성’을 젊은 세대들은 당당히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돌가수들을 좋아하는 것이 더 이상 부끄러운 일이 아닌 세상이 된 것이다. ‘소녀시대’를 ‘삼촌팬’들이 더 좋아한다는 말이 괜한 말은 아니었다. 그러니 다른 분야에서도 거의 다 마찬가지로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예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세계가 출현한 것이다.

 

2040세대들은 더 이상 ‘이상한 아이들’이 아니라 그들 방식대로 감정을 자유롭게 표출하고 자신을 어디에서나 당당히 내세우는 그런 세대들인 것이다.

정치하는 분들 특히 2040세대들에게 외면당해 고민당하는 여당은 이런 점을 잘 연구해보면 그들과 소통하는데 큰 지장이 없을 것이다.

 

 반면 지금 안철수바람이네 뭐네 하면서 젊은 세대들의 표가 마치 자신들 것인양 착각하고 있는 야당도 너무 좋아만 할 현상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2040세대들은 유연한 감성과 함께 아직까지 최소한의 ‘정의감’을 가지고 있는 세대로 보인다.

 

대부분의 기성세대들에겐 아스라이 잊혀져가는 '감성'이나 사회적 정의감이나 자유로운 영혼 이런 ‘비현실적 단어’들을 2040세대들은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39세 가장이 자기가 좋아하는 어린 남자가수를 위해 자신의 노래를 ‘헌정(獻呈)’하는 그런 세대인 것이다. 그러니 2040세대들과는 조금만 마음을 열고 이야기하다 보면 소통은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닌 것이다.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태산만 높다하네”라는 옛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