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단상

9세 어린 상주(喪主) 손잡은 ‘개념 총리' 김황식

스카이뷰2 2011. 12. 6. 12:41

 

어린상주를 위로하고 있는 김황식총리(연합뉴스사진)

 

 

      9세 어린 상주(喪主) 손잡은 ‘개념 총리’ 김황식

 

 

 

아침신문에 실린 한 장의 사진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지난 4일 평택가구전시장 화재로 순직한 소방관들 빈소를 조문한 김황식 국무총리가 침통한 표정의 앳된 소년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고 있는 사진이다.

 

보도에 따르면 김 총리는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 주변 교회에서 예배를 마친 뒤 근처 식당에서 수행비서, 경호원 2명과 함께 된장찌개를 먹었다. 점심을 마친 김 총리는 "평택의 소방관 빈소로 가자"며 차에 올라탔다. 급작스런 총리의 지시에 당황한 경호원들이 총리실 의전관과 경호팀에 이 사실을 알리려 하자 김 총리는 "알리지 마라. 조용히 조문(弔問)하고 싶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총리가 움직이면 으레 총리실 고위 간부들과 의전관이 수행하고, 경호차량도 3~4대 따라붙는다. 통상 10 여명의 ‘부하직원들’이 우르르 총리의 나들이를 따르는 것이 관례다.

김 총리는 4일 오전 이재만(39) 소방위와 한상윤(31) 소방장이 평택 서정동 가구전시장 화재를 진압하다 숨진 사건을 보고받자마자 곧바로 수행비서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평택에 다녀오려 한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마라. 조용히 혼자 가고 싶다"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오후 2시쯤 평택 장당동의 합동분향소에 도착한 김 총리는 유족들의 손을 붙잡고 위로했다. 故 이재만 소방위의 아홉 살짜리 어린 상주에게 "아버지가 뭐 하시는 분이신지 아니?"라고 물었다. 소년이 "소방관"이라고 답하자 주변에서 일제히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고, 김 총리도 눈시울을 붉혔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국무총리의 예고 없는 빈소방문에 유족들은 그나마 작은 위로를 받았을 것 같다.

 

총리실 간부들은 김 총리의 '잠행'을 다음날인 5일에야 알았다. 총리실 관계자는 "출근해서 총리실 관련 언론 보도를 살펴보다가 일요일에 빈소에서 찍힌 총리님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총리를 수행하는 의전실에서도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총리실 간부들이 '왜 그리 조용히 가셨느냐'고 묻자 김 총리는 '조문 가는데 다 따라갔으면 유족들이 불편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사실 곰곰 생각해 보면 김황식 국무총리의 ‘잠행(潛行)’은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상식 있는, 요즘 유행어로는 ‘개념 있는’ 총리라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공복(公僕)’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면 ‘국민’을 상전으로 모셔야 하는 게 기본자세 아니겠는가.

하지만 요즘은 시절이 하수상한 탓인지 국무총리의 이런 ‘상식적인 미담’이 고맙고 흐뭇한 공감을 자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잖아도 김황식총리는 지난 11월 23일 대전 현충원에서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로 숨진 전사자의 1주기 추모식이 열렸을 때 추모식 40분 내내 장대비를 맞았다. 경호팀장이 우산을 받쳐주려 하자 "됐다, 치우라"고 말했다고 한다. 양복이 빗물로 흠뻑 젖은 채 희생 장병의 묘역을 찾아 비석을 어루만지며 눈시울을 붉혔다는 보도에 적잖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기도 했다. .

 

국무총리가 우산을 받지 않고 장대비를 맞아가며 추모식에 참석한 모습 그 자체가 유족들에겐 어떤 추모사보다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젊은 병사들의 안타까운 희생을 비를 맞아가며 어루만져준 총리의 자세야말로 ‘공복의 표상’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하기야 그 아깝디 아까운 ‘청춘’을 조국을 위해 바친 병사들에 비한다면 몇 십분 비 맞는 것쯤이야 아무 것도 아니다. 제대로된 ‘공복의 마인드’를 소유한 총리라면 당연히 우산을 치우라 명한 것이 오히려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에게 다가왔던 적잖은 고위공직자나 정치지도자들이 표리부동(表裏不同)한 자세로 우리를 실망시켰기에 ‘사소한 마음’에도 우리는 감격하는 것이다.

 

김황식 총리는 며칠 전 대학생들과의 만남에서 “존재감이 없는 게 내가 목표하는 바”라면서 “국민들은 나를 잘 모르지만 내가 일한 게 쌓여서 그게 국민에게 돌아가면 그게 더 좋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어 “이슬비 같은 총리가 되겠다. 조용히 내리지만 땅속에 스며들어서…”라고 덧붙였다는 것이다. 그는 “조용히 일하겠다”면서 “컬러가 없는 게 내 컬러”라는 말도 했다.

 

지금 대한민국에선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자천타천의 ‘애국자’들이 많이 출현하고 있다. 그 중엔 톱스타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면서 당장 청와대주인이 될 것 같아 보이는 정치인들도 등장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아직 신뢰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물론 젊은 세대들에겐 '열화와 같은 지지와 성원'을 받는다지만 그 사람의 '정체성'도 자세히 모른 채 표면적인 것에 '홀릴' 세대는 아니기에 걱정이다.

 

이른바 나 같은 '올드세대'들은 ‘콘텐츠는 없는데 거품 비슷한 인기’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타나는 사람들보다는 김황식총리처럼 장대비를 맞아가며 순국용사들의 묘비를 어루만져주거나 아홉 살 어린 상주의 손을 두 손으로 맞잡고 조용히 눈시울을 붉히는 그런 ‘진정성’ 있고 진실한 사람을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옛말이 생각난다.

그나저나  아홉 살 저 어리디 어린상주를 보면서 그저 마음이 먹먹해지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