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평화비(平和碑), 애틋한 맨발의 소녀상에 모자·목도리-일본은 그 입 다물라!

스카이뷰2 2011. 12. 16. 13:02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평화비소녀상. (chosun.com)

 

      

       평화비(平和碑), 애틋한 맨발의 소녀상에 모자·목도리

       -일본은 그 입 다물라!

 

 

한 장의 사진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맨발의 소녀상(像)에 분홍무늬 털모자와 감귤 빛 목도리가 둘러져 있는 모습이다. 엊그제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이 단발머리 소녀좌상은 어리디 어린 나이에 멋모른 채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조선의 소녀들’을 추모하기 위한 동상이다.

끌려갈 당시 입었던 ‘치마저고리 차림’에 맨발이 보는 이의 가슴을 엔다.

 

갑자기 몰아닥친 한파 속 묵묵히 앉아 있는 이 소녀상이 딱해 보였는지 이름모를 시민들이 털모자도 씌워주고 목도리를 친친 감아 ‘삭풍’을 견디게 해줬다. 맨발에도 목도리를 둘러쳐줬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이 ‘가여운 소녀 좌상’앞을 그냥 지나치기 어려울 듯하다. 마음속으로 묵념이라도 드릴 것 같다. 진작 세워졌어야할 동상이다. 만시지탄이다.

 

‘수요평화 집회’는 1992년 1월 8일 수요일 첫 모임을 가졌다.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다. 그 이후 매주 수요일마다 한 주일도 빼놓지 않고 ‘위안부출신 할머니들’과 그들을 돕는 사람들이 일본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어왔다. 지난 12월 14일 1000번째! 수요집회를 열면서 할머니들은 시민 성금으로 만든 '평화비(平和碑)'를 대사관 맞은편에 세웠다. 손을 무릎에 모은 채 의자에 앉아 있는 단발머리 소녀 동상이다.

 

소녀상이 맨발인 것은 당시 전쟁 때 찍은 사진에서 신발을 신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가끔 TV화면에 나오는 당시 ‘위안부 소녀’들은 한결같이 맨발이었다. 그렇게 가여워보일 수가 없다. 모두 겁에 질린 표정들이다. 어떤 소녀는 그 어린 나이에 ‘만삭’의 배를 부여잡고 있어서 더 불쌍하다.

 

아무리 세월이 지났어도 그 소녀들을 그렇게 만든 일본국의 만행은 ‘절대로’ 잊혀질 수가 없다.

그럼에도 일본은 어물어물 넘어가려 한다. 한 술 더 떠 적반하장으로 일본 정부는 평화비 철거를 요구하고 있다. ‘뭐한 놈이 뭐한다더니’ 딱 그 짝이다. 얻다 대고 감히 철거하라마라 하는 지 어처구니가 없다.

 

'서울특파원'으로 30년 넘게 서울에서 우리들의 눈과 귀를 괴롭히고 있는 구로다(黑田)라는 일본 언론인은 한국인 위안부들은 가난한 집 딸들이라 ‘자발적으로 간 것’이라는 망언을 여러차례 했다.

도저히 그냥 넘어가기 어려운 발언이다. 이런 '못된 일본인'이 서울에서 수십년가 활개치고 살아가고 있는데는 우리나라 몇몇 언론인들의 '부조'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한심한 일본인과 ‘친하게’ 지내는 한국 언론인들은 더 한심하다. 이런 철면피한 일본인들은 서울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럼에도 어떤 꽤 알려진 출판사에선 이런 인간의 책을 내주기도 했다. ‘구로다의 한국 맛 기행’이라나 뭐라나.

 

이러니 구로다를 비롯한 일본인들이 우리를 우습게 여기는 것이다. 지금이야 안 그러겠지만 예전의 ‘구태 정치인들’중에는 ‘일본 언론인’들을 한국 기자들보다 더 좋아하기도 했다. 이런 행태들을 보면서 일본언론을 비롯한 일본인들은 한국을 만만한 나라로 본 것이다.

 

만시지탄이지만 서울 한 복판 일본대사관 앞에 저렇게 ‘위안부 소녀 평화비’가 세워진 것은 다행한 일이다. 평화비의 돌바닥엔 한국어와 영어·일본어 비문이 이렇게 새겨져 있다.

'1992년 1월 8일부터 이곳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 시위가 2011년 12월 14일 1000번째를 맞이함에 그 숭고한 정신과 역사를 잇고자 이 평화비를 세운다.'

 

이 단발머리 소녀동상은 보는 순간 우리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맨발에 치마저고리’를 입고 앉아 있는 저 소녀! 불과 60 여년전 일이다. 상상해 보시라! 귀하게 키운 우리의 여중생 딸들을 ‘일본순사들’이 다짜고짜 끌고가 일본군인의 ‘성노리개’로 삼았다면 어떤 심정일건지.

 

일본인들에게도 묻는다. 당신네들의 귀한 딸들이 어느 날 강제로 끌려가 전쟁의 한 복판에서 병사들의 위로용품으로 소모되었다면 어떻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일본정부는 몇 년 전 고이즈미 총리시절,북한에 의해 자국에서 납치된 불과 몇 명의 남녀들을 귀국시키기 위해 난리법석을 떨었다.

 

그런 나라가 남의 나라의 곱디고운 소녀들 수 만 명을 강제적으로 끌고 가 못된 짓을 했던 그 ‘죄’에 대해 사죄(謝罪)조차 안하고 어물쩍 넘어가려한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되는 일인가 말이다.

19년 11개월이나 수요 집회가 열리는 동안 234명의 할머니 중에 171명이 세상을 뜨고 63명만 남았다. 강산의 두 번 변할 만큼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일본 측의 무성의 아니 무례함은 오만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그 사이 일본에선 고베 지진으로 수천명이 사망했다. 금년 3월 후쿠시마일대엔 강력한 지진과 쓰나미로 수만명이 죽었다. 그 엄청난 ‘자연재해’를 당한 일본인들에게 우리 착한 대한민국 사람들은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순수하게 ‘성금’까지 걷어 줬었다.

 

하지만 일본정부는 우리의 ‘가여운 할머니들’에게 여전히 최소한의 진정한 사죄조차 하지 않고 있다. 도대체 얼마나 ‘천벌’을 더 받아야 정신을 차릴지 모르겠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도리어 ‘평화비 철거’라는 용서하기 어려운 어거지나 부리고 있는 일본인들을 보면 한심하다.

이런 자세로 21세기 국제사회에서 선진국 행세를 하러든다면 전 세계인들은 일본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 정부는 어제(15일) ‘특사’까지 서울에 보내 ‘평화비 철거’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우리 외교부는 "평화비 건립은 일본 정부의 책임 있는 문제 해결과 명예회복을 촉구해온 피해자들의 간절함을 반영한 것"이라며 거절했다고 한다. 우리 정부의 그런 단호한 입장을 보니 다소 안심은 된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아무리 지난 일들이라지만 자기들 조상들이 그런 악독한 죄악을 저지른 걸 보고도 사죄를 하지 않는 건 그들이 조상들의 ‘범죄 DNA’를 물려받았기에 그러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우리네 상식으론 그런 흉악범죄를 저질렀다면 우리 쪽에서 요구하지 않더라도 자진해서 사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오히려 특사까지 파견해 감히 평화비 철거를 요구한다는 건 그들의 심성이 어떤 상태라는 걸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만에 하나 일본 정부가 진정한 사죄를 하더라도 ‘평화비 소녀상’은 ‘절대로’ 철거해선 안된다고 본다. 왜냐고? ‘쓰라린 역사’를 우리 모두가 기억하기 위해서다. 우리에겐 일본인들의 만행을 대대손손 알려야할 막중한 의무가 있다. ‘가혹한 역사’를 잊는다면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그래서 역사를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주한(駐韓) 일본대사관의 대사 이하 일본인 全직원들에게 고한다.

그대들은 대사관 앞에 앉아있는 ‘소녀상 평화비’를 매일 보며 진심으로 사죄하라.

가여운 우리 ‘위안부 할머니’들이 더 이상 수요 집회를 하지 않아도 되게끔  하루 속히  사죄 하라.

 일본정부에 고한다.

'평화비 철거’ 운운의 되지못한 망언은 즉시 중단하라. 일본은 그 입 다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