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후의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을까? 3남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김정일.(chosun.com사진)
김정일 사망과 대한민국 국민으로 산다는 것
긴 하루였다. 불과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아주 많은 시간이 흘러간 것 같다. 자신이 무슨 ‘역사적 주인공’이 된 착각까지 겹쳐져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갖은 상념이 얽히고 있다. 무언가 가만있으면 안 될 것 같은 초조함마저 느껴진다. 그만큼 ‘김정일 사망’뉴스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국민의 한 사람인 내게 갑자기 어려운 숙제처럼 다가왔다.
실향민 집안출신인 내겐 ‘북한 문제’는 남의 일이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반공 교육’에 ‘실향민 향수’까지 전수(傳受)하며 성장해온 탓에 나의 정서는 거의 북한주민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 아기들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는 뉴스화면에 나오는 퀭한 아기들의 표정은 가뜩이나 마음 약한 나를 힘들 게 한다.
‘탈북자’들 이야기나 북한과 중국 국경의 장마당을 떠돌며 땅바닥에 떨어진 음식부스러기를 주워 먹으며 연명한다는 ‘꽃제비’들 소식도 내겐 스트레스로 다가올 정도다. 그런 뉴스를 보면 하루 종일 가슴이 아프다. 그런 만큼 ‘북한 관련 특별뉴스’는 당연히 주요 관심사다.
어제(19일) 오전, 매일 그렇듯 인터넷 작업을 하고 있었다. 포털 뉴스사이트에 북한 조선방송이 정오에 ‘특별 뉴스’를 내보낸다는 예고기사가 뜬 걸 본 순간 괜히 가슴이 철렁했다.
또 무슨 해괴한 소식이 날아오려나 싶었다.
TV를 켜 놓은 채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웬 ‘귀신 울음’소리 같은 소리가 들렸다. 놀라 TV가 있는 곳으로 나갔더니 ‘김정일 위원장 사망’이 TV화면 하단에 큼지막하게 자막으로 떴다. 검은 저고리를 입은 늙은 여자아나운서는 계속 흐느끼면서 뉴스를 ‘낭독’했다. 순간 그야말로 올 것이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1994년 부친인 김일성 사망이후 ‘절대 독재자’로 17년간 북한을 통치해온 김정일이 69세라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급사(急死)’했다는 뉴스는 17년전 ‘김일성 급사’만큼 ‘철렁 뉴스’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해 자신의 3남 정은을 ‘후계자’로 등극시키면서 그의 ‘여명(餘命)’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예언’들이 공공연하게 매스컴에 떠돌았던 걸 감안하면 그리 놀랄 뉴스는 아니건만 그래도 워낙 ‘번개’처럼 들이닥친 김정일 사망뉴스는 대한민국 뿐 아니라 전 세계의 ‘톱뉴스’로 떴다. 그야말로 ‘난리가 난 것이다’.
세계 유일의 ‘3대 세습’에, 지구에 남은 최후의 사회주의 국가에, ‘핵무장’을 무기 삼아 대한민국은 물론 세계 최강국 미국마저 쥐고 흔들어온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국방위원장 김정일의 급사는 저물어가는 2011년 12월 전세계를 뒤흔든 말 그대로 빅뉴스가 된 것이다.
가뜩이나 이집트에서 시작돼 중동 전역에 유행처럼 번진 ‘자스민 혁명’의 여파로 ‘독재자 친구’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있는 ‘역사의 격랑’속에 드디어 ‘마지막 독재자’ 김정일이 헤엄쳐 나오지 못하고 ‘익사’한 건 그 상징적 의미가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TV를 보면서 나의 머릿속엔 온갖 ‘시추에이션’이 복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역사학자도 사회학자도 정치학자도 아닌 그저 일개 블로거에 불과하지만 ‘김정일 사망’ 뉴스는 내게 굉장한 ‘미션’을 부여했다는 기분이 든 것이다.
‘김씨 왕조’ 66년 통치의 종지부를 찍은 김정일은 북측 보도가 사실이라면 거의 ‘영화 같은’
라스트 신을 맞이한 것 같다. 호화판 전용열차에서 오전 8시 30분에 급성 심근경색으로 죽은 절대 독재자의 ‘사망 직전 직후’의 장면들은 상상만으로도 긴박감이 넘친다.
생전의 김정일은 ‘영화예술’을 사랑한 독재자였다. 대한민국의 톱스타였던 최은희부부를 ‘납치’해갈 정도로 그의 영화사랑은 각별했다고 한다. 그러니 그가 전용열차에서 맞은 최후 몇 분간은 권력자의 신분을 떠난 한 인간으로서도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극적 최후’였다고 할 수 있겠다.
제아무리 떵떵거리는 최고 권력자였지만 ‘죽음’의 호출 앞에선 감히 항거할 수 없었던 것이다. 최고의 의료진이 수십명 수행하고 있었다지만 김정일에게 다가온 사신(死神)을 막을 수는 없었다는 건 그 상징성이 꽤나 오묘하다. ‘죽음’앞에서 인간은 평등한 존재인 것이다.
자, 이제 급사한 독재자의 사후 북한은 물론 대한민국 그리고 전 세계 관련 국가에서 벌어질 갖가지 상황들이 우리를 얼마나 웃길지 혹은 화가 나게 만들지도 역시 ‘죽음’을 관장하는 신만의 영역인 것이다. 우리는 그저 ‘각본 없는 시나리오’에 따라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을 좌시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인간들인 것이다.
세기의 ‘빅 뉴스’가 쓰나미처럼 인터넷을 강타하면서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엑스트라 급 배우들의 작은 날갯짓이 우리를 웃게 만들었다. 그 일성은 진중권이 터뜨렸다.
진보진영 지식인이라지만 가끔 보수쪽 비슷하게 사고(思考)하는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다.
“사람 죽었다고 축하하는 건 인간의 도리가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조의를 표하자니 그 자가 한 짓이 꽤씸하고, 그래서 심심한 조의는 닭 쫓던 개 신세가 된 남조선 수구꼴통님들께 표하렵니다. 이제 뭐 먹고 사냐?”라며 김정일의 죽음이 조의를 표할 일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고 한다. ‘김정일 사망’관련 온라인 뉴스에서 제일 먼저 나를 웃게한 코멘트였다. 진중권답게 샤프한 트윗을 날린 것 같다.
그 다음 웃긴 건 한나라당 국회의원 원희룡이다. 지난 번 서울시장 한나라당 경선 때 서울법대 동기동창이라는 나경원에게 고배를 마신 원희룡은 ‘상황’에 맞지 않은 소리를 가끔해 주목을 받더니 이번에도 좀 ‘아닌’소리를 올려 네티즌들의 ‘뭇매’를 맞았다.
보도에 따르면 원희룡은 이 와중에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에 조의를 표합니다. 정부도 정중하고 예의 갖춘 조의 표명이 필요합니다”라는 트윗을 날렸다가 십자 포화를 맞았다. 네티즌 @Jaehyu******는 “주적의 독재자가 죽었는데 그 죽음을 슬퍼하다니요”라는 글을 남겼고, @peter***는 “정말 실망이다. 실망 원희룡. 천안함과 연평도 전사자의 눈물을 잊어버렸군”이라고 비판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벌써 ‘국론 분열’이 시작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렇지 않아도 ‘조문’을 하러 가야한다는 쪽과 조문은 무슨 얼어죽을 조문이냐며 ‘김정일의 사망은 낭보’라고 주장하는 쪽의 대립이 서서히 각을 세우고 있는 듯하다.
대한민국에서 이런 ‘조문논란’이 일어날 걸 걱정해선지 북측은 “외국 조문사절단은 받지 않는다”는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다. 그런데도 오늘 아침까지 조문해야한다 말아야 한다로 시끄러운 정치판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다. 이런 것마저 ‘애정남’의 지혜를 빌려야 하려나? 이런 논란은 극히 사소한 ‘곁가지의 문제’다. 조문하고 싶은 사람은 조용히 하면 된다. 단 많은 국민의 따가운 눈총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정말 엄숙하게 따져야 할 것은 하루하루 먹을거리 걱정하며 근근히 살아가고 있다는 2400만 북한 동포들이 ‘절대 독재자의 사망’ 이후 겪어야할 ‘운명’인 듯하다.
이제 겨우 스물아홉이라는 독재자의 후계자는 우리네 상식으론 도저히 한 나라의 지도자로선 ‘깜’이 될 수가 없다. 그쯤은 급사한 김정일도 생전에 몹시 걱정을 많이 한 눈치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듯 김정일은 ‘후계자 아들’의 안위를 걱정하며 이러저러한 ‘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하지만 ‘권력’이란 길길이 뛰는 맹수같은 속성을 갖고 있기에 아무리 ‘권력자아버지의 자상한 배려가 있었을 지라도 후계자의 능력이 아니다 싶으면 그 맹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애송이 권력자‘를 낙마시켜버리고 말 것이다. 벌써부터 그런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고 있는 듯하다.
일부에선 어린 후계자를 ‘단종’에, 그를 보좌하고 있는 고모부 장성택이라는 사람을 ‘수양’에 비교하며 ‘반정(反政) 시나리오’를 내놓고 있다. ‘틀’이 건사해 보이는 고모부 장성택은 김정일 생전 몇 번 숙청당했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인물이라고 한다. 아마 김정일은 자신의 사후에 장성택이 나이어린 조카를 축출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을 했을 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지금 ‘상중(喪中)’인 북한에선 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투쟁이 어떤 영화보다도 스릴만점으로 진행되고 있을 것 같다. 그 조짐은 ‘김정일 국가장의위원회’명단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장의위원회 명단에 김정일의 장남 정남과 차남 정철 그리고 김정일의 이복 동생 김평일은 제외됐다.
요즘 방영하고 있는 ‘인수대비’라는 사극에서 왕의 임종을 앞두고 ‘수양대군’이 왕을 알현하지 못하게 하는 건 물론 그 일족의 ‘존재’자체를 제거하려는 것과 매우 비슷한 모양새다. 그러고 보니 자유진영 매스컴에 비교적 자주 등장했던 장남 김정남이 사용하던 매끄러운 ‘서울 말씨’가 기억난다.
김정일의 총애를 받다가 하루아침에 눈밖에 난 장남 김정남은 그래도 많이 ‘서구화’한 사고방식의 소유자처럼 보였다. 스위스에서 대학을 다녔고, 마흔이 넘은 김정남이 권력을 잡았다면 지금 현 북한 상황이 그나마 좀 덜 걱정스러웠을 것이라는 하나마나한 생각도 든다.
‘철부지’로 보이는 20대 뚱보청년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룰 수 있다는 건 아무래도 위험한 상황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권력 암투’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건 필연적인 일일 것이다. 미국 정보기관에선 ‘김정은 체제’가 1년을 넘기기 어렵다는 ‘비관적’인 시나리오를 내놓고 있다.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인이 볼 때도 그 정도의 ‘예측’은 가능할 정도로 지금 어린 후계자를 둘러싼 북한의 정국은 권력투쟁의 격랑 속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2011년 12얼 17일 김정일의 급사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상당한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아마 적잖은 국민이 김정일 죽음 이후 벌어질 사태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고 있을 것이라고 본다. 상대가 워낙 베일에 싸인 ‘비밀 집단’이다 보니 대한민국 국민이 느낄 불안은 더 큰 것이다. 이런 상황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며 살아가야하는 건 예삿일은 아니다. 가뜩이나 살기 팍팍한 시절에...
‘장기집권 절대 독재자’ 김정일의 죽음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당분간은 은근한 걱정거리로 자리할 것 같다. ‘김정일 죽음’의 영향은 비단 대한민국과 북한 뿐 아니라 전 세계인들에게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이래서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는 명언이 나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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