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식 이름짓기 표>
국민일보 만평. 박희태국회의장 표정이 재밌다.
인디언식 이름 짓기, 당신의 이름은?
어제 오후부터 느닷없이 ‘인디언식 이름 짓기’라는 생소한 단어가 인터넷 검색어 1위로 떴다. 평소 ‘작명법(作名法)’에 조금 관심이 있어 클릭해봤다. '인디언식 이름 짓기'는 자신의 태어난 년도 끝자리와 생월, 생일만 알면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태어난 년도는 성격을 나타내는 수식어를, 생월은 동물, 식물, 자연 등의 주어를, 생일은 술어를 나타낸다. 이것을 조합하면 인디언식 이름을 알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내용을 보면서 꽤 오래전 봤던 미국 배우 캐빈 코스트너 주연의 ‘늑대와 함께 춤을’이라는 영화제목이 떠올랐다. 이젠 기억에서 거의 사라졌지만 그 영화에서도 인디언들의 이름 짓는 법이 소개됐다. ‘늑대와 함께 춤을’도 그런 ‘인디언 식 작명법’에 의해 붙여진 이름인 것이다.
재밌는 건 영화의 주인공 캐빈 코스트너는 1955년 1월 18일 생으로 그의 인디언식 이름은 “백색 늑대를 죽인 자”다. 자신이 출연한 영화의 제목과 실제 그의 이름에서 공통적으로 ‘늑대’가 나온다는 게 흥미롭다. 이 인디언식 작명법에 따르면 꽤나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문장’의 이름을 가질 수도 있고 좀 섬뜩한 이름을 가질 수도 있다.
1961년 8월4일생인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인디언식 이름은 ‘푸른 달빛’이다. 글재주가 있는 오바마에게 어울리는 문학적인 뉘앙스의 이름이다. 요즘 ‘백악관의 실세’로 알려진 그의 부인 미셸은 64년 1월 17일생으로 ‘웅크린 늑대의 유령’이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1947년 10월 26일생으로 “용감한 돼지의 파수꾼”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경우 46년 8월 19일 생이어서 “지혜로운 달빛은 맨날 잠잔다”라는 이름이 붙여진다. 독일의 여장부 메르켈 총리는 1954년 7월 17일 생으로 “웅크린 나무의 유령”이다. 왠지 그녀의 이미지와 맞는 듯해 보인다.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의 영부인 카를라 브루니는 67년 12월 23일생으로 “용감한 바람은 나의 친구‘로 부를 수 있다. 톱 모델 출신으로 ’화려한 남성편력‘을 자랑하는 브루니에겐 ’안성맞춤‘의 이름 같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백색 늑대와 같은 사나이‘로 나온다. 백색 늑대의 이미지가 어딘지 사르코지와 어울리는 듯하다.
이런 인디언식 작명법을 현실에 대입해 보면 어떨 땐 아름답고 어떨 땐 무시무시하고 꽤나 재밌는 상황이 나온다. 가령 ‘웅크린 불꽃의 파수꾼’같은 건 왠지 장엄하면서도 무언가 역사적인 이미지가 느껴진다.
우리나라나 일본 중국 같은 한자문화권의 아시아에선 획수의 합계를 내 이름의 길흉을 점쳐왔다. 가령 1획은 ‘만물의 기원, 부귀 명예최량의 길상운(吉祥運)’으로 나온다. 이런 식으로 획수마다 거기에 함축된 의미가 있다.
11획은 ‘순조로운 발전과 온화하고 성실한 번영의 수’ 18획은 ‘지모(智謀)가 있고 의지가 강고해 만난을 돌파하고 목적을 달성하는 길운’으로 나온다. 21획은 ‘위대한 두령운(頭領運)으로 존경과 부귀가 따르나 여성은 후처운’이라고 한다. 23획 역시 운기황성하고 영화를 누리는 발달운이나 여성은 고독상(孤獨相)이다.
획수에 담긴 의미를 어떻게 만들어냈는지 알기는 어렵지만 가만 보면 작명법에도 ‘남녀 차별’이 존재했던 것 같다. 대체로 ‘강한 기운의 획수’는 남성에겐 좋아도 여성에겐 고독하거나 후처운이라는 설명이 주조를 이루는 것 같다. 이런 작명법이 꼭 맞는 거라고 백프로 믿기는 어렵지만 은근히 맞는 경향이 있다.
1970년대 박정희유신시절 중앙정보부에 끌려갔다가 ‘의문사’한 서울법대의 최아무개 교수의 한자이름을 신문에서 우연히 본 적이 있다. 호기심에 그 죽은 교수의 한자이름의 획수를 계산해보니까 34획으로 ‘파란 멸망의 대흉수난(大凶受難)의 수로 단명(短命)을 암시’한다고 나와서 섬뜩했다.
‘민주화 열풍’이 불면서 그 교수의 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교수 가족은 승소했다. 중앙정보부에 의한 ‘억울한 죽음’이라는 판결이 나왔던 것이다. 요즘은 대개 그런 '불상사'엔 익명 처리를 하지만 당시 신문엔 그 교수의 부인 이름도 한자로 실렸다. 내친 김에 이름의 획수를 살펴보니 ‘고독상이어서 일찍 홀로 된다’는 의미의 획수였다. 그 부인은 개업의사로 생활엔 걱정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30대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는 ‘쓰라린 고통’을 당해야 했다.
이런 게 미신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아주 틀린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그 교수내외의 이름 획수를 보면서 놀란 이후로 ‘이름의 길흉’을 따지는 ‘취미활동’은 중단하고 말았다. 왠지 사위스러운 느낌이 들어서였다. 그러다가 어제 마침 ‘인디언식 이름짓기’가 인터넷에 떠다니는 걸 보고 ‘옛 취미’가 되살아나 흥미롭게 관련기사를 읽어봤다.
제일 웃긴 건 요즘 돈봉투 사건으로 ‘시련’을 겪고 있는 박희태국회의장에 대한 국민일보의 만평이었다. 그림엔 비서가 “요즘 인디언식 이름 짓기‘가 유행이라는데요” 라면서 박의장의 생년월일을 ’인디언식‘에 대입해보는 장면이 나온다. 1938년 8월9일 생인 박의장의 인디언식 이름은 “날카로운 달빛 아래에서”로 나온다.
’철없는 비서‘는 멋있다고 호들갑을 떨지만 정작 박희태의장 본인은 “그닥”이라면서 탐탁지 않아하는 표정이다. ’날카로운 달빛‘이라는 대목에서 그는 초승달 모양의 검(劍)을 오버랩시킨 것이다. 왠지 조짐이 안 좋은 연상이라고나 할까. 가뜩이나 ’검찰‘이 벼르고 있다니 말이다.
매스컴에선 이렇게 이 인디언식 이름 짓기를 재빨리 ‘정치적 활용’에 쓰고 있다. 그 보도를 보면서 웃음이 나왔다.
가령 1952년 2월 2일생인 박근혜 한나라당비대위원장은 '‘적색 태양의 기상’이다. 지난해 가을부터 급부상한 안철수교수는 '빨간 태양의 파수꾼'(1962년 2월 26일)이다. 일부 매스컴에선 이런 해석을 내리고 있다. 기상 높은 빨간 태양 박근혜를 끊임없이 지켜보는' 파수꾼' 안철수라는 것이다. 글쎄 해석이야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일 수 있는 것이어서 안방과 부엌의 소리가 다를 수도 있는 법이다.
며칠 전부터 느닷없는 ‘봉투론’을 발설해 구설에 오르내리는 고승덕의 경우도 재밌다. 보도에 따르면 1957년 11월 12일 생인 고의원은 '용감한 하늘 그림자'다. 해석하기 따라서 ' 빨간 태양이 용감하게 떠있는 하늘을 덮고만 그림자'일 수도 있고 '하늘이 내린 용감한 그림자'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적색 태양의 기상'을 떨치려는 박근혜 위원장이 먼저 떨쳐내야 할 그림자를 드리운 것이 '하늘 그림자' 고승덕의원이라는 해석이다.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처럼 지금 ‘비상사태’인 한나라당으로선 ‘좋은 쪽’으로 ‘유권해석을 내리고 싶어할 것 같다.
수 백년전부터 미국 대륙에 살아오던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해당 인물의 성격이나 행동, 태어날 때의 상황 등과 같은 특성을 조합해 이런 ‘작명법’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어쩌면 ‘문명 이전’의 삶의 지혜가 깃들인 작명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워낙 달라진 만큼 허황한 ‘작명법’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그저 재미삼아 한번 자신의 ‘인디언 이름’을 알아보고 웃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건강에 좋은 웃음치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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