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만찬(晩餐) 한 끼 6인분 6천만 원’ 롯데호텔 설 선물세트
▲'6인분 6천만원짜리' 만찬을 요리할 피에르 가니에르.
▲ 이번 설 6인분6천만원하는 만찬 파티가 열리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피에르 가니에르 프랑스 식당 홈피.
▲ 신라호텔의 100만원짜리 ‘프리미엄 한우 명품 세트(3㎏).
소고기 한 근에 20만원. 청보리만 먹여 키운 한우랍니다.^^
‘슬픔의 요소’는 전혀 가미되지 않은 이야기다. 오히려 호화의 극을 달하는 스토리여서 어쩌면 한편의 화려하고도 비현실적인 SF 같은 스토리다. 그런데도 사람을 슬프게 한다. 뭐 역설적인 화법으로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순수하게 슬프다. 아주 오랜만에 인간의 본원적인 슬픔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좀전 온라인 뉴스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특급 호텔 초호화 설 선물 세트’ 기사를 보면서 그런 ‘슬픔’을 느낀 것이다.
예전 같으면 그런 류의 이야기를 보면 비분강개했을 텐데 나이 탓인가보다. 그냥 슬픈 기분이 들 뿐이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분들은 과장법이 심하다고 말할 지도 모르겠지만 ‘슬픔’이 느껴졌다는 말에 공감하는 분들도 적지 않을 것 같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감정의 각도’가 다 다른 법이어서 내용을 읽다보면 뭐가 슬픈 이야기야,
화나고 짜증스럽고 한심해서 욕이 저절로 나오는 이야기네라고 말하는 분도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경우엔 그냥 잠시동안 슬픔이 북받쳐 올랐다는 게 솔직한 감정고백이다.
한 치의 위선이나 과장을 섞지 않은 본심이라는 걸 미리 밝히면서 나를 슬프게 만든 특급호텔 초호화선물세트 이야기를 소개한다.
기사의 제목은 <특급호텔 초호화 선물세트 "불황은 없다">였다. 이런 류의 기사는 해마다 명절 때면 볼 수 있는 것이어서 식상할 지경이다. 젊은 사람들은 이런 초호화 선물 이야기에 솔깃하고 행여 부러워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웬만큼 세상살아온 사람들은 이런 내용엔 그저 ‘남의 이야기’일 뿐이어서 무덤덤하고 무감각한 소리로 넘긴다. 나도 후자에 속한다. 하지만 오늘 본 특급호텔 설 선물세트는 ‘믿거나말거나’ 스타일의 도를 넘어선 듯하다. 제일 놀라게 한 건 롯데호텔 선물세트다.
기사에 따르면 이렇다.
“롯데호텔 서울은 올해 최고가 설 선물세트로 준비한 6000만원짜리 ‘라 메이에르 가스트로미’ 패키지는 와인애호가들의 문의가 쇄도하면서 경합을 벌이기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선물세트는 프랑스의 유명 셰프, 피에르 가니에르가 직접 방한해 만찬을 마련하는 6인 식사권과 2007년산 로마네콩티 와인 세트가 포함됐다.”
한 번 읽어선 금세 이해하기 어려운 기사다. 그러니까. ‘일금’ 6천만원하는 선물세트 초대장을 누군가가 구입해서 누군가에게 이번 설 선물로 보낸다는데 그 내용이 참 가관이라는 얘기다.
프랑스에서 유명한 요리사라는 피에르 가니에르를 서울에 오게 해, 그가 직접 만든 요리를 '여섯 분의 귀빈’의 만찬을 준비하게 한다는 것이다. (롯데호텔서울엔 이미 피에르가니에르라는 이름의 프랑스 요리 식당이 있다.)
그 만찬 테이블엔 한 병에 2천만원 쯤한다는 2007년산 로마네콩티 와인 세트를 올려놓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와인 값을 뺀 ‘순수 식비’는 1인당 7백만원 꼴이다. 누가 누구에게 선물한 것인지는 ‘극비사항’이라지만 아무튼 준 사람이 있고, 받은 사람이 엄연히 이 서울하늘에 살고 있는 것이다.
‘순수 실화(實話)’다.
만찬시간이야 아무리 길어봤자 서 너 시간 정도? 재벌가 사람들이라면 이런 이야기에 크게 놀라지 않을 수도 있겠다. 세 시간 ‘파티 비용’에 6천만원이 뭐가 대수야? 라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녁 밥 한끼 ’먹는데 6인분에 6천만 원이라는 건 좀 심한 이야기 아닐까. 검소하기로 소문난 롯데 신격호회장님은 뭐라 말할지 궁금하다.
더더욱 가관이었던 건 “와인애호가들의 문의가 쇄도하면서 경합을 벌이기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는 대목이다. 세계 경제 12위권이라는 대한민국인만큼 만찬 세트 비용 6천만원 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을 수준의 대부호(大富豪)가 있다는 건 있을 수 있는 얘기다.
하지만 아무리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아무리 비싼 와인을 곁들인 만찬이라도 1인분에 1천만원이나 하는 저녁식사 값은 좀 지나쳐 보인다. 그래서 우리를 슬프게 만든다. 내가 그런 식사를 못해서 배가 아픈 차원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런 초호화 만찬티켓을 놓고 ‘경합’까지 벌일 정도였다는 점이 사람을 더 질리게 한다.
‘6천만 원 짜리 만찬세트’에 비하면 3㎏에 100만원 짜리 신라호텔 ‘프리미엄 한우 명품 세트는 차라리 귀엽고 애교스럽다. 한우에게 전북 정읍의 청보리만 먹이고, 항생제 대신 봉침을 놓아 키웠다나 어쨌다나. 한 근에 20만원이니 대단하긴 대단한 한우다. ’청보리‘라는 단어에서 왠지 슬픔이 묻어난다면 너무 센티멘털한 기분일까.
이건희 삼성회장이 2010년 전경련 회장단 만찬에서 내놓으면서 유명세를 탔다는 414만원짜리
프랑스 와인 그랑크뤼급 ‘샤또 라뚜르’도 순식간에 다 팔렸다고 한다. 이 와인은 2000년 빈티지로 국내 3세트만 수입됐으며 예약판매를 통해 모두 팔려나갔다. 이 밖에 각각 182만원과 170만원인 ‘샤토 라피트 로칠드’는 2001년과 2006년 빈티지도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그랜드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의 최고가 선물세트인 ‘2012년 소믈리에 셀렉션 세트’(1200만원)는 3세트 가운데 2세트가 팔려나갔다. 이런 추세라면 나머지 한 세트도 곧 팔릴 것 같다. 이 선물세트는 샤토 오브리옹(2000년), 샤토 마고(2000년) 등 와인 4병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 병에 3백만원 꼴이니까 신라호텔 것보다는 ‘저렴’하다. 한 모금에 얼마씩 하는지 계산하기 귀찮지만 아무튼 대단한 와인선물세트다.
특급호텔에서 내놓은 설 선물 세트는 ‘비싼 와인’만 있는 건 아니다.
신라호텔은 최고급 건강기능식품이라는 ‘산삼 경옥고(400g)’ 1단지를 330만원에 판매하고 있다. 산양삼과 백복령 등 재료로 만든 한약으로 80세까지 장수한 영조가 복용했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좀 우습다. 요즘 세상엔 그런 거 안 먹어도 80세 정도 사는 건 기본 아닌가.
호텔의 ‘굴비 값’또 사람 놀라게 만든다. 신라호텔 ‘명품 알배기 굴비(31~33㎝)’는 280만원. 신세계 백화점 ’토판저염 명품 재래굴비 특호(100만원)‘보다 세배 가량 비싸고, 10만원대 대형마트보다 무려 28배나 비싸다.
이런 특급호텔의 초호화 마케팅이 소득 계층별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비판이 일면서 특급호텔들은 선물세트 팸플릿을 일반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 신라호텔은 한지로 자체 제작한 팸플릿을 호텔 최고급(VVIP)손님들에게만 따로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숨어서 해야 할 선물’이라면 그건 선물이라기보다 ‘뇌물’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대한민국 최고 재벌그룹인 삼성 이건희회장이라도 한 끼 저녁식사 비용으로 1인당 1천만원을 썼다면 심기가 불편해질 것 같다는 건 나만의 착각이 아닐지 모르겠다. 아무튼 서두에서 말한대로
롯데호텔서울의 ‘6인분 6천만 원 만찬선물세트’ 소리를 듣고 나는 그냥 슬퍼졌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기 싫어졌다. 2012년판 ‘슬픈 설 선물’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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