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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연못(On Golden Pond)-옛날 영화가 주는 정서적 푸근함과 안정감

스카이뷰2 2012. 12. 31. 00:10

 

 

 

 

황금연못(On Golden Pond)-옛날 영화가 주는 정서적 푸근함과 안정감

 

 

세밑 안방극장에서 우연히 보게 된 옛날 영화 ‘황금연못’은 요즘처럼 각박한 세상에 그야말로 ‘정서적 힐링 영화’로써의 존재감을 당당히 보여줬다. 옛날이라고 해봐야 겨우 30년 세월밖에 흐르지 않았지만 ‘황금연못’에서는 의젓하고 고습스러운 분위기마저 감돈다.

 

‘황금연못’은 21세기 고령화시대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떠오른 ‘노인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이미 30년 전 슬쩍 보여주고 있다. 요즘 평균수명의 연장에 따른 노령인구의 폭발적 증가와 그에 따른 갖가지 예상치 못했던 사회문제들에 대한 호들갑스런 반응은 어쩌면 겉모양만 다를 뿐 이미 오래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인간의 본질적 문제 중의 하나인지도 모르겠다.

 

일찍이 고려시대에 이미 노인을 버리는 풍습인 ‘고려장’이 있었던 것처럼 이 ‘노인 문제’는 인간이 직면해야만 할 ‘운명적인 과제’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영화 ‘황금연못’에서도 이런 노인문제와 함께 부모 자식 간의 갈등, 결손가정 출신의 사춘기 소년들을 치유하는 정서적 대응등을 자상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30년 전 만들어진 ‘황금연못’이라는 이 미국영화는 30년 후 현재를 사는 사람들에게도 호소력 있는 정서적 공감대를 자연스럽게 만들어내 주고 있다. 요즘 영화들처럼 ‘주제의식’을 너무 직설적으로 다뤄 사람을 질리게 만들지 않고 ‘무거운 주제’를 은은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다뤄내는 감독의 솜씨는 지금 영화를 만들고 있는 젊은 감독들이 ‘교과서’로 삼아 보고 배워야할 듯하다.

 

‘황금연못’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특별한 사건도 없다. 그런데도 별로 지루하지도 않다. 아마 이래서 ‘옛날 영화’는 정서적으로 안정감과 푸근함을 주는 것 같다.

영화는 풍광 좋은 미국 뉴잉글랜드의 아름다운 호숫가 별장을 무대로 펼쳐진다.

 

여름이면 해마다 이곳에서 한철을 보내는 노부부 노만 테이어(헨리 폰다)와 에델 테이어(캐서린 헵번)는 금슬 좋은 부부지만 ‘괴팍한 교장선생님’출신인 노만은 나이들어서도 깐깐한 성질을 버리지 못해 곁에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는 스타일이다. 오로지 ‘임시 교사’출신인 노부인 에델만 그의 비위를 맞춰주면서 표면적으론 평온한 노경(老境)의 삶을 보내고 있다.

 

이들 노부부 앞에 한통의 편지가 날아온다. 외동딸 첼시(제인 폰다)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첼시는 외동딸이지만 어려서부터 엄격한 아버지의 훈육방식에 불만을 갖고 성장해 결국 아버지와의 불화로 결별하다시피 살아 왔다. 하나밖에 없는 딸아이와 남편의 불협화음 속에 엄마는 늘 전전긍긍하면서 그들 부녀의 화해를 위해 틈틈이 유머실력을 발휘한다.

 

남자친구 빌과 그의 아들 빌리와 함께 별장에 도착한 첼시는 엄마아빠와 오랜만에 해후를 하지만 여전히 두 부녀는 서로에게 ‘NG'를 연발하는 낯설기만 한 부녀사이임을 확인하고 만다.

만나는 순간부터 티격태격하는 그들 부녀사이에 남자친구인 넉넉한 성품의 치과의사 빌 또한 좌불안석이다. 이상하게 그 아버지는 ‘좋은 말’도 꼭 가시를 넣어 말하는 이상한 언어습관의 소유자인 것 이다. 그러다보니 옆에 있는 사람들은 늘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

 

이들 젊은 커플은 13세 소년을 노부부에게 맡긴 채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버린다.

80세 노인 노만 못지않게 한창 감수성 예민한 나이인 13세 사춘기 소년 빌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엉겁결에 노부부와 함께 지내야 한다는 사실이 영 못마땅하다. 하지만 대자연의 품에서 ‘옹고집 할아버지’ 노만과 낚시를 하면서 닫아뒀던 마음을 점차 열어 간다.

 

늘 싸우기만 할 것 같던 노만과 빌리는 어느새 친할아버지와 친손자처럼 다정한 사이가 되어 함께 보트를 몰고 낚시를 떠났다가 빌리의 실수로 ‘조난’을 당한다. 밤 늦도록 이들이 돌아오지 않자 명랑 쾌활한 할머니 에델은 동네 우체부와 함께 이들을 찾아 나선다. 천신만고 끝에 노만과 빌리는 구조되고 안락한 마루에서 체스게임을 즐기며 소소하지만 ‘행복한 일상’의 즐거움을 다시 누린다.  

 

영화는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편안한 흐름을 타는 가운데 유머러스한 대사와 서로를 ‘치유’해나가는 과정을 소소한 이벤트를 통해 보여준다. 우리네 삶이 뭐 그리 대단하게 경천동지할 사건들의 연속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팔순의 괴팍한 남편이 별안간 심장발작을 일으키자 함께 늙어가는 노처(老妻)는 하나님께 간곡히 기도한다. “이렇게 다 늙어 쓸모없는 인간을 데려다가 뭣에 쓰려고 하세요. 아직은 데려갈 때가 아니랍니다”라고... 눈물 콧물 흘리며 늙은 남편을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기도를 천연덕스럽게 하는 캐서린 헵번의 연기는 압권이다.

 

영화 속에서 80세 노인 역을 맡은 헨리폰다의 당시 실제나이도 76세였고, 수다스런 할머니지만 여전히 기품있는 분위기를 가진 캐서린 헵번도 영화를 찍을 때 74세였다. 이들 ‘노익장’의 주연 남녀배우는 이듬해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남녀 주연배우상을 받으면서 농익은 ‘연기력’을 과시했다. 안타까운 건 헨리 폰다는 영화를 찍은 뒤 얼마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유작(遺作)’으로 주연상을 받았다. 영화 속 아버지와 사이가 나쁜 외동딸로 나오는 제인 폰다가 그의 친딸이다.

 

‘황금연못’처럼 ‘웰 메이드 옛날 영화’가 주는 푸근함과 안정감이야말로 정서적으로 방황하기 쉬운 요즘 같은 어수선한 계절엔 아주 안성맞춤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