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워도 다시한번-1960년대 한국영화 최고 관객 동원

스카이뷰2 2013. 9. 2. 14:07

 

 

 

'미워도 다시 한번'! 1968년 7월 16일 서울 국도극장에서 개봉, 64일 동안 36만 여명이라는 전설적인 관객 동원으로  방화 사상 최고의 흥행 신기록을 세운 멜로드라마다. 당시 서울인구가  380만에 불과한 걸 감안하면 엄청난 대박을 터뜨린 한국영화다. 서울사람 열명에 한명은 이 영화를 봤다는 얘기다. 당시엔 인터넷은 물론 없었고, TV보급도 미미한 상황인데다 국민생활수준도 매우 낮은 시절이었다. 그런 시절에 서울에서만 불과 두 달 사이에 그토록 많은 관객몰이에 성공했다는 건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요즘처럼 다관개봉 시스탬에선 웬만하면 몇 백만 명 관객동원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 걸 감안해 보면  아마 한국영화사상 최고 흥행작은 <미워도 다시한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1960년대 후반 당시에는 개봉극장에서 첫 테이프를 끊은 영화는 변두리 극장에서 상영하기까지 개봉관-재개봉관 이후 3탕 4탕 5탕까지 내려가는 상영시스템이어서 서울에서만 1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걸로 보도되고 있다. 

 

이런 '전설의 멜로 드라마 미워도 다시한번'을 어젯밤(9월1일) EBS한국영화극장에서 봤다. 영화스토리는 지극히 단순하고 따분하다. 아마 요즘 이런 스토리로 영화를 만든다면 극장가에 간판조차 못 올릴 진부한 내용이다. 배우도 몇 명 나오지 않고 제작비도 별로 들지 않았을 성 싶다. 그럼에도 '흥행대박 신화'를 기록했다는 건 요즘 영화에 '꿈'을 두고 있는 감독지망생을 비롯한 모든 영화계 인사, 아니 '창조경제'를 부르짖고 있는 현 정부인사들도 유심히 봐둬야할 영화같다.  

 

당시 인기 배우였던 신영균 문희 전계현과 '조연'으로 꼭 한몫을 하던 박암 그리고 '아역스타' 김정훈 이 정도의 몇 안되는 배우가 나와서 93분동안 '열연'한다.  스토리는 매우 간단하다.

 

<유치원 교사  전혜영(문희)은 강신호(신영균)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다. 혜영은 하숙하는 신호를 여러 가지로 돌보아주며 행복한 미래를 꿈꾼다. 하지만 두 아이를 데리고 신호의 아내(전계현)가 신호를 찾아오고 그가 유부남인 것을 알고 충격에 빠진 혜영은 종적을 감춘다. 8년의 세월이 흘렀고 신호는 사업가로 성공하여 남부러울 것 없는 가정을 꾸리고 있다. 그런 그에게 혜영이 그의 아들 영신(김정훈)을 데리고 나타난다.

학교에 갈 나이가 된 아들이 아버지를 그리워 하자 혜영은 아이를 아버지에게 보낸다.

아버지 집에서 살게된 아이는 이복 형 누나에게 시달리고 엄마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엄마를 찾아가겠다고 나섰다가  폭우 쏟아지는 한 밤중에 거리를 배회하다 집으로 돌아오지만 화가 난 아버지에게 맞고, 이를 먼 발치서 보고 있던 엄마는 결국 아들을  데려가기로 결심하고 다음 날 신호의 가족들이 배웅하는 가운데, 모자는 기차를 타고 떠난다.>

 

이게 '미워도 다시한번' 스토리의 전부다.  그야말로 밋밋하고 아무 '재미 없는', 21세기 관객의 눈으로 보면 '영화도 아닌 영화'다. 하지만 저렇게 '뻔한 스토리'의 영화가 1960년대 후반 이후 지금까지 한국 영화계의 '전설'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듯 싶다.

 

이 영화는 요즘 관점에서 보면 60년대 당시 지금보다는 경제적으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못살던 시절 대한민국 국민의 팍팍한 세상살이를 '힐링'해주는 치유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이야 일일드라마니 주중드라마니 주말드라마니 해서 온통 드라마세상이지만 당시만해도 1년에 두어번 설이나 추석 명절에 영화관 나들이가 '여가 선용'의 대세였다. 그만큼 '영화관의 임팩트'는 굉장한 시절이었다. 말하자면 '현실의 힐링 캠프'였다고나 할까.

 

이 영화는 요새 드라마에 나오는 '막장요소'의 기본인 '불륜' 혼외자식' '삼각관계'등이 바탕을 이루긴 하지만 등장인물은 하나같이 '착하다'. 거의 비현실적으로 착한 등장인물 덕분에 아마 이 영화의 주요 관객이었던 '아줌마 부대'는 하염없이 손수건을 적셨을 것이다.  

 

영화의 주제가 가사처럼 '이 생명 다 바쳐서 죽도록 사랑하고'라는 필링에서 비롯한 남녀간의 애정문제는 급기야 '자식 양육'이라는 걸림돌에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 '내 자식은 내가 키우겠다'는 일념으로 바닷가에서 힘든 막노동을 불사하고 아이를 키워가는 미혼모의 '바른 생활자세'도 관객들의 심금을 울렸을 거다.

'바깥에서 데려온 자식'을 친 자식처럼 보살피는 계모의 착한 심성도 관객의 마음에 '안심'을 선사했을 것이다.

 

그 무렵 대한민국은 국민 대부분이 살아가기가 몹시 힘든 '가난한 나라'였다. 그래서 모두들 아직은 '개발도상국'의 고단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영원한 테마'인 남녀 간, 부모자식 간의 '사랑'을 바탕으로  '따스한 인간미'가 전편을 흐르는 한 편의 '진부하지만 가슴 적시는 스토리'의 멜로드라마에 1960년대 대한민국 관객은 열광과 환호를 보냈을 지도 모르겠다.

 

영화계 원로로 여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두 차례나 지낸 '성공한 인생'의 신영균이 맡은 영화속 남자 주인공 이름이 강신호며 직업이 사업가라는 것도 눈길을 끈다. 몇년 전 '황혼이혼'을 택해 화제가 된  동아제약 명예회장과 같은 이름에 같은 직업이라는 게 공교롭다. 

 

주연배우 신영균은 서울치대 동문으로 이 영화에서 조연으로 나온 박암과  함께 1928년생 동갑내기들로 서울의대 출신인 '현실 속' 강신호회장과 비슷한 연배의 서울대 동문이다. 어쩌면 주인공 이름을 '현실'에서 힌트받아 따왔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 스물한살 풋풋한 신인 여배우 문희의 깊은 눈매도 매력적이다. 한국일보 집안으로 시집간 문희는 '언해피한 결혼생활'을 끝낸 지금, 67세 황혼의 여배우로 현역에선 은퇴했다. 세월무상이다.   

 

불륜에서 비롯된 가슴아픈 스토리지만 그래도 스크린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모두 '선한 심성'을 갖고 자기 앞의 '인생'을 살아내려고 애쓰는 모습에서 관객들은 등장인물에 공감하고 치유(힐링)받았을 듯 싶다.

2013년 TV화면을 통해 본 '미워도 다시한번'에선 1960년대 '가난한 서울'도 추억이 서린 '매력적인 장면'으로 다가온다. 대한민국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실감하게 해준다. 마치 '영화'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를 구경다녀온 듯한 기분이 들게 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