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류승완 감독, "신이여, 제가 만들긴 만들었는데 이상한 것 같아요"
평소 영화감독들의 인터뷰 기사를 꼼꼼히 보는 버릇이 있다. 이 감독들이란 존재는 그야말로 ‘자존심의 결정체’라고나 할까. 자신의 작품에 대해 무한한 애정과 자부심을 갖고 있는 그들의 ‘육성 인터뷰’는 보다보면 우습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다. 게다가 대부분의 영화감독들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꽤 괜찮게 생긴 얼굴의 소유자가 많은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특히 일본의 내로라하는 영화감독들은 대부분이 카리스마 넘치는 얼굴표정이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곤 한다. 얼마 전 타계한 ‘감각의 제국’의 감독 오시마 나기사 감독이나 일본의 ‘영원한 전설적 문화상품’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등도 그런 부류다.
우리나라 감독들도 웬만큼 ‘수준 있는 용모’의 소유자가 꽤 많다. 박찬욱이나 봉준호 감독도 그런대로 괜찮은 ‘용모’를 자랑한다. 학력 콤플렉스가 많다고 스스로 말하는 김기덕 감독도 그렇게 못생긴 얼굴이 아니다. 그밖에 지금 얼핏 이름들은 떠오르지 않지만 한국 영화감독들도 대부분 '좀 생긴' 부류들이 많다.
이번에 ‘베를린’으로 아무래도 ‘1000만 관객’을 끌어모을 것 같다고 하는 류승완 감독도 ‘고졸’의 ‘호남형’ 마스크를 소유한 감독이라 그의 인터뷰는 늘 눈여겨보곤 한다. 언젠가 류승완은 무슨 영화제 시상식장에 나와 조금은 ‘진보적 정치 성향’을 드러내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해 내게는 더 주목 받는 감독이 된 것 같다.
올해 갓 마흔을 넘긴 류승완감독은 며칠 전 한 방송사 인터뷰에서 꽤 재치있는 발언을 했다. 자신이 대학을 ‘안 간 게’ 아니라 공부를 못해서 ‘못 간 것’이라는 고백을 당당히 한 것이다.
그런 그가 이번에 108억원이라는 엄청난 제작비용(그래봤자 할리우드 영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을 들여 만든 첩보 액션 영화 ‘베를린’을 개봉하고 홍보활동차원인지 여기저기 얼굴을 비추면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가만 보니 이 젊은 감독 역시 자부심이 대단한 듯하다.
류승완 감독은 한 라디오 시사프로에 출연해 자신이 만든 ‘베를린’에 대한 생각을 재치 있게 말했다. "'베를린'은 신이여 제가 만들긴 만든 것 같은데 이상한 것 같아요, 뭐 이런"이라고 한 것이다.
이 말은 1950년대 고전 명화 ‘벤허’를 만든 윌리엄 와일러 감독이 스스로에게 도취돼 "신이여 과연 이 작품을 제가 만들었습니까?“라고 말한 것을 패러디 한 것이다.
이제까지 몇 몇 영화감독들을 직접 만나본 적이 있지만 그들은 열이면 열 모두 자신이 만든 작품에 대해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자랑’스러워 하는 분위기를 감추지 못하는 경향이 있었다. 류승완 감독은 아직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방송 인터뷰에서 이 정도로 ‘겸양의 언사’를 했다는 것만해도 꽤 겸손한 축에 속하는 감독 같아 보인다.
또 류승완 감독은 한석규 하정우 전지현 류승범 등 쟁쟁한 스타들을 캐스팅하게 된 것을 언급하며 "저야 그냥 배우들한테 숟가락 하나 얹어서 가는 느낌으로"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그러자 사회자가 과거 황정민의 수상소감을 우회적으로 언급하면서 "영화계는 숟가락 얹는 분들이 많이 계신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자 류 감독은 "그래서 숟가락이 넘쳐납니다"라고 순발력 넘치는 특유의 유머감각을 발휘하기도 했다.
류승완 감독은 남북 요원들의 갈등과 국제적 음모를 다룬 이번 영화 '베를린' 취재 과정에서의 에피소드를 말하면서 "저는 미국 친구도 있고 프랑스 친구도 있고 영국 친구도 있는데 북한 친구는 없어요. 그러니까 있을 수 가 없죠. 예전에는 가까우니까 먼 나라라고 하면 일본을 얘기했는데 요즘 세대 친구들은 북한을 하나의 그냥 나라로 인정하고 있고 이게 북한을 다룬다는 것이 참 정말 이제 무슨 판타지의 세계를 다루는 것처럼 돼 버렸구나, 그래서 그 사실감 있게 묘사를 한다라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일이구나 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베를린’은 아무래도 거대한 ‘자본력’이 투입된 영화다 보니 ‘순익 분기점’을 계산하지 않는다면 그건 좀 ‘위선’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류 감독은 의외로 ‘순수한 마인드’의 소유자여선지 ‘1천만 관객’ 동원에 대해서는 선뜻 환영하는 듯한 발언은 자제하는 듯했다.
류승완 감독은 "대표적인 악몽은 촬영장에 모든 게 준비 돼있는데 갑자기 '카메라 배터리가 없어요'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 그런 악몽을 매일 꿨다. 계속 꾸다 안 꿨는데 '베를린'이 일반시사를 통해 공개되고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A4용지가 나한테 쏟아져 종이에 질식하는 꿈을 꾸다가 깼다"고 말해 엄청난 부담감을 느끼고 있음을 솔직히 토로하기도 했다.
류승완 감독은 1월31일 서울 압구정CGV에서 열린 영화 ‘베를린’(감독 류승완) 관객과의 대화에서 "영화가 규모가 있기 때문에, 산업이기 때문에 얼마 이상의 관객이 들어야 하는 것은 분명 맞지만 내 영화가 숫자 일부가 되는 것 같아 싫다"고 밝혔다.
류승완 감독은 "지금 이 객석을 채워주신 분들이 만약 400 분이라면 상영된 이후에는 401개의 '베를린'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아마 각자 보신 '베를린'은 다 다른 '베를린'일 것이다. 그런 것을 어떻게 1,000만이라는 숫자에 얽매이게 하는지 그것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불구하고 1,000만 공약을 말하자면 전화번호를 바꾸고 사람들과 연을 끊을 것이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 정도의‘유머 감각’의 소유자라면 괜찮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어느 정도의 ‘영화적 재주’는 갖춘 듯해 보인다.
사실 한국인 영화감독들에겐 대단히 미안한 소리지만 솔직히 우리 영화들 중 1000만 관객 동원에 성공했다는 ‘기라성’같은 영화들 중에 내 마음에 쏙 드는 영화는 거의 없었다.
그렇기에 이번 ‘베를린’이라는 영화를 볼지 말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고 있다. 더구나 ‘첩보 액션’영화라니 내 개인적취향과는 거리가 멀어서 아마도 안 볼 확률이 좀 더 높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류승완 감독의 인터뷰를 우리 블로그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해맑은 미소’를 짓는 류승완이라는 젊은 감독에게 ‘영화를 만드는 DNA'가 있어 보여서다. 다른 예술도 그렇지만 영화예술도 ’선천적 DNA‘를 소유하고 있지 않고서는 ’대성‘하기 어려운 매우 까다로운 예술 분야다.
그렇다고 ’재주‘만 있다고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모든 인생사가 그렇든 ’운7기3‘ 아니 ’운9기1‘이라는 ’천운‘이 따라주지 않고서는 성공하기 어려운 동네가 바로 영화판이다. 그렇기에 ’고졸‘에 이렇다할 ’배경‘도 없는 젊은 감독 류승완이 100억원이 넘는 첩보 액션을 머나먼 베를린까지 가서 올로케로 만들어냈다는 건 그것 하나만으로도 일단은 축하해줄만한 일인 듯하다.
‘베를린’은 살아서 돌아갈 수 없는 도시 베를린을 배경으로 각자의 목적을 위해 서로가 표적이 된 최고 비밀 요원들의 생존을 향한 사상 초유의 미션을 그린 초대형 액션 프로젝트다. 배우들도 ‘황금라인’이어서 볼 만한 영화인 것 같다. 하정우 한석규 전지현과 류승완의 친동생 류승범 등이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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