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대통령의 책사랑은 유별난 것 같다. 휴가지에서도 책방에 들르는 오바마는 이번엔 두 딸 말리아(16)ㆍ사샤(13)와 함께 서점에 들러 좋아하는 소설 책을 비롯해 17권이나 샀다. 워싱턴 시내에 있는 ‘폴리틱스 & 프로즈(Politics & Prose)’라는 이 책방은 워싱턴포스트 전직 기자와 전 국무부 출신 아내가 운영하는 곳이다. 오바마와 딸들은 지난해 같은 시기에도 이 서점을 방문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보여주지 못한 부러운 풍경이다.
오바마는 추수감사절과 맞물린 세일 기간인 블랙 프라이데이에 대형 유통업체만 이득을 보는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골목상권과 중소 상공인을 보호하는 ‘스몰 비즈니스 새터데이’를 맞아 딸들과 함께 '문화행사'겸 자연스럽게 책방 나들이를 한 거다.
3주 전 중간선거 참패 후 지지율도 떨어져 울적한 심경이겠지만 오바마 특유의 재치 있는 입담으로 책방을 들른 고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고 한다. 대통령인지 뻔히 알면서도 책방 직원이 “다른 지역에서 오셨나요”라고 농담하는 직원에게 오바마는 대뜸 “그럼 할인되냐”고 되물었고 직원은 곧 “(백악관이니)이웃 할인을 해드리겠다”는 말해 한바탕 웃음꽃이 폈다고 한다.
오바마는 자신의 신용카드를 건네며 “승인이 잘 되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지난 9월 뉴욕의 식당에서 카드 승인이 거절됐던 것을 의식해서다. 대통령의 카드가 승인 거절됐다는 것도 미국다운 얘기다. 우리같으면 대통령이 이런 식의 자연스런 문화행사는 하지도 못할 뿐더러 카드사용이 거절됐다는 개그콘서트 같은 얘기도 아예 나올 수 없다는 점에서 미국과 한국의 '문화적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딸바보로 유명한 오바마는 계산대에 꽂힌 신간 『이방인: 백악관의 오바마』를 보고는 딸 말리아에게 “아빠가 외로워 보이는 사진을 표지로 썼다”고 하자 아빠만큼 키가 큰 맏딸 말리아는 “책 내용이 슬플 것 같다”며 아빠를 놀렸다고 한다.
책방에 온 고객이 “관타나모 수용소를 폐쇄했으면 좋겠다”고 건의하자 “관련 작업을 진행 중”이라며 “다른 궁금증은 없느냐”고 되물었다는 보도도 웃음을 유발한다. 다른 고객의 아기와 셀카를 찍은 후엔 직원에게 “얘도 할인되냐”고 물어 좌중의 웃음을 자아냈다고 한다. 대통령의 이런 자연스런 행보야말로 선진국 미국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 같다.
이날 오바마 대통령이 구입한 책들은 꽤 다채롭다. 사주간지 뉴요커의 중국 특파원이 쓴 중국 분석서 『야망의 시대(Age of Ambition)』와 조셉 콘래드의 고전 『암흑의 핵심(Heart of Darkness)』, 청소년 판타지 소설 『레드월』 등이 포함됐다. 『야망의 시대』는 평범한 중국인들이 현대 중국 발전을 이끈다는 내용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책 일부는 크리스마스 선물용”이라고 밝혔다. 아마 딸들에게 청소년 판타지 소설을 선물할 것 같다. 어쨌거나 부러운 미국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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