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1월5일자 만화.
작년 12월 한달 내내 '정윤회 문건'과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이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할 때 어디 있는지도 모르게 조용했던 김기춘 비서실장이 해가 바뀌고 처음 열린 청와대 시무식 자리에서 '파부침주 (破釜沈舟)라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살벌하고 패기넘치는 고사성어를 들먹이며 존재감을 알리면서 화려하게 매스컴을 탔다.
알려진대로 파부침주는 솥을 깨뜨리고 배를 가라앉히며 살아 돌아갈 기약을 하지 않고 죽을 각오로 싸우겠다는 굳은 결의를 비유하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새해 77세가 된 노신하 김비서실장으로선 다소 힘에 부치는 '과격한 혁명적 용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런데도 새해 시무식 자리에서 그런 전투적이고 혁명적인 고사성어까지 동원해 비장한 결기마저 보여준 김비서실장의 '속내'에 대해 오늘 각 종편에선 하루종일 교대해가며 그 속내가 뭔지에 대해 그 얼굴이 그 얼굴인 시사평론가들을 동원해 저마다의 '관전평'을 내보냈다.
그 소리가 그 소리로 요점은 아무래도 박대통령이 비서실장을 그냥 계속 그 자리에 눌러 앉힐 모양이라는 거다. '대통령비서실장'은 말 그대로 대통령의 비서이니까 그를 쓰던 버리던 그건 오로지 대통령 몫이기에 '민초'들이야 전혀 상관할바가 아니지만 '정윤회와 문고리 3인방'에 밀려 꼼짝 못한다던 '루머' 속에 조용했던 나이든 비서실장이 별안간 새해 벽두부터 솥단지를 깨고 배를 가라앉히겠다며 목청을 드높이는 모습이 영 어색해 보인다.
비서실장이 워낙 고령이다 보니 젊은이들이 잘 모르는 고사성어에 익숙한 것이라고 좋게 해석할 수도 있지만
용어자체가 거부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김실장이 청와대 직원들에게 "충(忠)이 무언가, 한자로 쓰면 중심이다. 중심을 확실히 잡아야 한다"며 "돌이켜보면 우리 나름대로 노력한다고 하지만 여러 가지 불충한 일들이 있어 위로는 대통령께, 나아가서는 국민과 나라에 많은 걱정을 끼치는 일들이 있었다"고 언급했다는 대목에선 실소마저 나온다. 요즘같은 21세기에 '충(忠)'이라는 잘 쓰지 않는 한자어까지 동원해 '윗분'인 대통령에게 불충했다고 고백한다는 건 별로 좋게 보이질 않는다는 게 여론이다.
또 "올해에는 모두가 가슴에 손을 얹고 자기 자신을 반성해야 하고, 이곳에 일한다는 영광이 자기 자신을 위한다는 이심(異心)을 품어서는 안 된다"면서 "그런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여기 근무할 자격이 없다"고 주문했다는 것 역시 우리네 일반 국민이 볼 때는 설득력이 약해보인다.
그렇게 말하기 전 김비서실장은 작년에 온 나라를 그토록 시끄럽게했고 한 사람의 아까운 생명이 자살로 세상을 등지게 만든 '정윤회 문건유출사건'에 대해 진즉 국민에게 사과하고 자신의 거취를 분명히 했어야 한다고 본다. 여성대통령 입에서 찌라시라는 '천한 단어'가 튀어나오게 한 자체만으로도 비서실장은 '직무유기'했다는 점을 명심했어야한다는 말이다.
이번 시무식 이야기는 비서실장 자신이 직접 말한 것도 아니고 '대통령의 입'이라는 청와대 대변인을 시켜 매스컴에 보도하게 했다는 것도 석연치 않다. 시중평론가들은 저마다 비서실장의 이런 '거창한 신년시무식 강연'내용이 매스컴에 보도됐다는 건 이미 '대통령의 윤허'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으로 아무래도 '비서실장 교체설'은 물건너 갔다고 저마다 입을 모아 말하고 있다.
77세 김실장이 늙으막에 '화려하고 강건한 관운'이 뒷받침되어 대통령비서실장이라는 그 '고귀한 자리'를 굳건히 지킬 수 있는 건 그야말로 '고용주'인 대통령의 마음이기에 일반국민이 뭐라 말할 건 없겠지만 정초부터 나이든 양반이 파부침주(破釜沈舟)네 불충(不忠)이네 이심(異心)이네 해가며 국민앞에서 목청을 높이고 있는 모양새가 그리 좋아보이진 않는다. 어째 올해도 청와대쪽에선 그리 아름다운 이야기는 들려오질 않을 것 같다. 모든 건 그저 하늘의 뜻이라고 굳게 믿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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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꼭 1년전 1월 3일 우리 블로그에 제가 쓴 글입니다.
"불통 대통령에 不通 비서실장"...45초간 세문장 읽고 사라진 김기춘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의 1월 2일 기자회견이 정가에 구설(口舌)을 낳고 있다. 어제 이맘때 종편 TV에선 '오후 5시 김기춘 실장 개각관련 특별 브리핑'이라는 자막이 계속 크게 떠있었다. 그 자막위에 앉아있는 소위 정치평론가라는 사람들 4명이 비서실장의 브리핑이 어떤 내용인지를 놓고 설왕설래하는 모습이 마치 개그 콘서트처럼 웃겼다. 그 중 한명이 이렇게 말했다.
"설마 개각이 없다는 브리핑은 아닐겁니다. 그런 말하려고 특별브리핑한다고 하진 않을 테니까요. 만약 그런다면 그거야말로 코미디죠 코미디" 한 5분쯤 후 그의 말대로 블랙 코미디가 45초간 화면에 방송됐다. 75세 나이든 비서실장은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개각은 없다"는 말을 세 문장으로 말한 뒤 바람처럼 사라져버렸다.
젊은 기자들이 '장풍'을 날릴 겨를도 없이 노신하는 무지하게 민첩한 동작으로 기자실을 빠져 나가버렸다. 그리고 오늘 이 시각까지 매스컴과 인터넷에선 비서실장의 태도가 '오만방자'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넘쳐나고 있다. ‘일방통행식’ 브리핑을 한 탓이다.
특히 김비서실장의 이날 기자회견은 비서실장 임명 직후인 지난해 8월 6일 이후 5개월만에 처음이었다. 그래서 정치권에선 지난해 내내 불통(不通) 논란을 빚은 청와대가 새해 첫 브리핑조차 ‘소통(疎通)’에 실패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요는 국민에 대한 '성의 부족'이라는 말일 것이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에 따르면 김기춘 비서실장의 기자 브리핑 계획이 언론에 알려진 것은 2일 오후 4시 20분쯤이었다. 물론 공식 통보는 없었다고 한다. 40분쯤 지난 오후 5시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실로 온 김기춘 실장은 딱 세 문장을 말했다. 세 문장은 이렇다.
“지금은 경제회복의 불씨를 살려서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도모해야 하고 엄중한 안보환경 속에서 국가안보를 공고히 지켜나가야 하는 중대한 시기입니다. 따라서 내각은 추호도 흔들림이 없이 힘을 모아 국정을 수행해야 할 때 입니다. 그러므로 대통령께서는 전혀 개각을 고려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 발언을 하는데 걸린 시간은 단 45초. 퇴장하는 김기춘 실장을 따라가며 기자들이 질문이 이어졌지만, 그는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곧바로 춘추관을 총총히 빠져나가 버린 것이다.
일부 기자들은 “이럴 바에는 왜 비서실장이 기자회견을 했는가”라며 불만을 터뜨린 것으로 전해졌다.
보도에 따르면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한인섭이라는 교수는 트위터에 “‘개각은 없다’는 비서실장의 긴급기자회견. 이런 회견은 대통령, 대변인, 국무총리 중에 누군가 하는 게 맞다. 그런데 왜 비서실장이 하지? 김기춘이어서?”라고 지적했다.
또,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법위원회 부위원장인 이재화라는 변호사도 트위터에 “김기춘 비서실장이 기자회견 한다고 생방송까지 요구해 놓고 세문장의 45초짜리 ‘개각은 없다’는 일방적인 브리핑만 하고 질문도 받지 않고 기자회견을 마쳤다”며 “불통 대통령에 불통 비서실장이구나”라고 꼬집었다.
김기춘실장의 그런 '뻣뻣한 자세'의 기자회견을 보면서 아무래도 청와대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지금 '너무 경직된 자세'로 대통령을 모시고 있지 않나 하는 노파심이 든다. 박대통령도 여유를 잃고 왠지 '무서운 대통령'으로 변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보스'가 그렇게 굳은 자세로 일하다 보니 그 아래 사람들은 눈치만 보면서 설설 기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생긴다. 어쨌거나 어제 김기춘의 브리핑쇼는 그야말로 블랙코미디처럼 우스웠다. 국민에게 자상한 설명을 해주면 어디 덧나는지 원... 그런 식이니까 '유신시대의 부활'이라는 쓴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다. 국민과의 진정한 소통을 하려면 무엇보다도 마음속 깊이 진정으로 겸허한 자세를 갖춰야 한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건성건성'하면 영리한 대한민국 국민은 금세 알아챈다는 걸 알아야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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