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문으로 들었소. 포스터. 파리 에펠탑(다음 뉴스자료사진)
요즘 SBS TV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가 꽤 화제다. 법조계 최고 명문가의 고교생 아들과 몰락한 중산층 가정의 동갑내기 딸이 '불장난'으로 출산소동까지 벌이며 으리으리한 '신귀족 시집'에 입성해 겪는 시집살이와 정계 '숨은 큰손'인 로펌 대표와 그 주변인물들의 수상한 움직임들을 풍자적으로 그려내 제법 인기를 끌고 있는 모양이다.
신분이 하늘과 땅차이인 두 어린 연인들의 '순수한 사랑'에 대처하는 양가 부모의 시각이 제법 차이가 나는 것도 재밌다. 속물근성에 찌들대로 찌든 상류층 부모의 고상한 척하는 '위선'과 생활고를 겪는 몰락한 중산층 부모의 애틋한 마음이 대조를 이룬다. 이 풍자 드라마를 보면서 '신귀족' 대한민국 상류층 사람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할 지 궁금하다.
*아래는 예전에 제가 썼던 글입니다. 한국과 프랑스의 '개념차'가 재밌습니다.
신귀족의 조건-한국과 프랑스의 차이
당신은 신귀족이십니까? 이런 질문을 받으면 웬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고개를 갸웃둥할 사람이 많을 것 같다. 개명 천지에 웬 귀족타령이냐고 코웃음을 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한 결혼 중매업체가 내건 ‘21세기 신귀족의 조건'은 실소와 함께 거부감을 갖게 한다. 그 내용은 대략 이렇다.
1.국내 명문대 및 주요 의대, 외국의 명문대 출신.
2.의사, 벤처기업가, 펀드 매니저 등 전문직 종사자로 연봉 1억 원 이상.
3.집안 재산이 30억~50억 원 이상 이거나 명문대 출신인 고급 공무원 또는 대기업 임원,
중소기업 사장, 대학교수를 부모로 둔 20대 후반 30대 초 ,중반의 ‘쿨’한 이미지를 주는 남녀
4.귀족 사이트 ID 소유자
5.서울시 강남구 거주.
가장 실소를 금치 못한 부분은 바로 ‘강남구 거주’라는 지역 차별적(?)인 조건이었다. 영호남차별 운운의 ‘촌스런 이야기’만으로도 나라가 시끄러워지는 판에 별로 넓지도 않은 서울시내에서 하필이면 강남구에 사는 처녀 총각들만이 ‘신귀족’에 들어갈 수 있다니...
그러면 강남구를 제외한 서울 시내 거주자나 일산이나 분당 같은 신도시 혹은 전국 방방곡곡에 사는 참한 처녀 총각들은 명함조차 내밀 수 없다는 말씀인데 이게 개명 천지에 통할 법한 말인가!
물론 조그만 결혼중매업체에서 자기들끼리 정해놓은 규약쯤에 열을 올려가면서 시비(是非)를 따지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단지 상류층 일탈을 다룬 드라마 탓인지 그 비슷한 소리들이 떠돌아다니고 있는 세태가 한심하다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다.
이 ‘신귀족 조건’이 나온 비슷한 시기에 약속이나 한 듯 몇몇 주간지에서는 ‘신귀족이 뜨고 있다’라든지 ‘명품으로 휘감은 신귀족’운운의 흥미 거리 기사가 특집으로 나온 일이 있다. 기사에서 소개한 신귀족들의 모습을 거칠게 요약해 보면 결국은 ‘돈의 힘‘으로 멋있게 태어난 젊은이들 얘기가 대종을 이루고 있어서 이 또한 입맛을 씁쓸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소위 ‘골드 칼라’로도 불리는 이들은 앞서 얘기한 결혼회사에서 제시했던 ‘전문직 종사자’들로 남녀를 불문하고 우선 외모를 치장하는데 들이는 ‘노력’이 소시민들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것 같다.
여성들은 가격이 수십만 원에서 백만 원이 거뜬히 넘는 고급상표의 수공예 보석 핀을 ‘얌전히’ 머리에 꼽고, 캘빈클라인 원피스에 구찌나 루이비통 가방, 페라가모 신발, 등등을 ‘기본’으로 소유하는데 물론 ‘진품’인 관계로 그걸 합산하면 수 백만 원에서부터 수 천만 원 이상이 든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굳이 재벌가 영양들의 차림새까지 안가더라도 '신귀족'이 되려면 이 정도의 '금전'이 필요하다는 게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 룰인지도 모르겠다.
남성들도 이에 뒤질세라 그 비슷한 ‘멋’으로 ‘품격’을 갖추는데 역시 가격은 여성들과 비슷하거나 웃돈다나. 그러니까 ‘싱싱한 청춘’의 매력이랄 수 있는 내추럴함보다 ‘물신(物神)의 힘으로 치장해야만 그들의 ’진가‘를 평가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신귀족’들만을 상대로 하는 인터넷 서비스업체들의 놀라운 상혼 또한 그야말로 눈부시다. 어떤 사이트는 아예 회원수를 1만 명으로 한정하고, 그들을 위해서는 혼신의 힘을 다해 서비스를 받친다는 것을 자랑으로 내세우고 있다.
가령 고객이 옷을 주문하면 직접 방문해 사이즈를 잰 후 나중에 배달할 때에는 정장차림의 남녀 직원 2명이 그냥 차도 아닌 4천만 원 이상 나가는 클래식 비틀이라는 차에 그 옷을 모시고 고객의 집으로 간다는 것이다.
한편의 블랙 코미디를 보는 듯한 얘기들이 ‘신귀족’들을 둘러싸고 일어나고 있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타고난 귀족’은 존재하지 않고, 그야말로 ‘돈’이 신분을 가르는 바로미터가 되었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니지만 떠도는 얘기들을 듣다 보면 한심한 세태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프랑스에서도 새로운 부르주아를 체크하는 법이 기사로 나온 적이 있다. 그러니까 중세 봉건귀족 시대에 있던 계급사회는 사라졌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계층을 구별하는 방법이 잔존하고 있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자본주의사회에서야 우선은 '돈'이 그 사람의 신분을 말해주는 첫째 조건으로 자리잡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프랑스 정도면 선진국이라서 그런지 ‘신귀족’을 분류하는 방법에도 세련미가 있어 보였다.
‘지식과 이념으로 무장한 새로운 부르주아’의 반열에 끼려면 20여 항목의 ‘제시된 조건’중 8항목 이상에서 점수를 받아야한다는데 몇 가지 눈길을 끄는 재미있는 항목들이 있었다. 경제적 조건에서 만점을 받더라도 종합점수가 8점 이하면 실격이라는 것이다. 경제적 항목은 아무래도 으리으리하다.(일반시민이 보기에는). 예를 들면 가정부, 정원사, 유모 등을 2명 이상 두고 있거나 별장이 있어야 하며 자가용을 2대 상 가지고 있어야 한다.
주식 등 유가 증권이 있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재산세도 물론 내야한다. 여기까지는 우리나라의 웬만한 부자들도 거뜬히 합격할 수 있는 조건이다. 그러나 유니세프나 그린피스 등 국제단체에 매년 15만 원 이상 기부해야 하고, 로마, 뉴욕, 카이로에 모두 가봤어야 한다.
좌파단체에 가입한 적이 있어야 하고, 외국어를 2개 이상 구사해야 한다는 조건쯤에는 우리나라의 신귀족들은 다소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재미있는 것은 프랑스에서도 학벌이나 학위는 소중한 것으로 여기는지, ‘프랑스 최고학부 출신이거나 박사학위가 있다’라는 조건이 눈길을 끈다.
음악, 연극, 무용 ,오페라 공연을 매월 1회 이상 관람해야 하는 것과 아울러 주 2회 이상 외식을 한다 라는 조건도 재미있다. 어쨌든 이들은 부자이면서 부자티를 내지 않는다는 것과 권위적인 의상이나 생활을 싫어하는 것도 내세우고 있다. 그러니까 비행기를 타도 이코노미클래스를 애용한다는 것이다.
프랑스판 신귀족의 조건에서 가장 시선을 끌어당긴 것은 부자티를 내지 않으며,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관심을 갖고 동참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는 대목이다. 이에 반해 값비싼 물건만으로 ‘품격’을 보이고 싶어 하는 우리나라의 자칭‘신귀족’들은 촌스럽게 느껴진다.
이제 대한민국도 세계 경제권 11위 안팎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물질적인 기준보다는 정신문화적인 기준으로 신귀족의 범주를 나눠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고 본다.
굳이 신귀족의 조건을 따지라하면 이런 제안을 하고 싶다. 대한민국에서 명실상부한 ‘신귀족’으로 인정받으려면 우선 무엇보다도 소외받는 계층, 가난한 어린이들과 소년소녀 가장들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마음’을 쓸 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프랑스의 신귀족들처럼 사회적 이슈에 대해선 국내외를 막론하고 ‘발언’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할 것이다.
글로벌 시대인 만큼 아프리카 수단이나 리비아 같은 곳에서 학대받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부를 아낌없이 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밖에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과 자유, 정의 등 추상적이면서도 공기처럼 소중한 말들이 갖는 의미를 깊이 인식할 수 있는 휴머니즘의 소유자라야 신귀족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신귀족’이야말로 우리에게 미래를 열어주는 새로운 계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또 하나, 그런 '신귀족'의 새로운 조건으로는 여러가지 갈등이 켜켜이 쌓여있는 현 시대 상황의 문제점을 직시하고, 사회통합을 위해 자신을 헌신할 수 있는 마음자세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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