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대선당선 직후 관계요인들이 참석한 자리. 박당선자가 돌아서서 박수치는 성완종의원을 향해 웃고 있다.
사후 발견된 '성완종 리스트' 김기춘 10만불 밑에 가필된 문구가 이채롭다. 이런 메모는 정부수립이후 처음이다.
성완종 리스트와 옹색한 변명하는 이완구 홍준표 김기춘 등에 대한 국민여론
천 원짜리 한 장 들고 혈혈단신 상경한 12세 소년이 연 매출 2조원 건설회사 회장이 됐고 국회의원까지 올랐다가 북한산에서 스스로 목을 매 생을 마감해버렸다는 '성완종 스토리'는 그 끝이 너무 슬프다. 오늘 오전 종편 TV에 생중계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발인장면은 슬픈 영화의 엔딩신 보다 더 애처롭다. 그의 죽음에 대한 지난 5일간의 보도를 보면서 한편의 슬픈 영화를 본 것 같다.
전,현직 대통령비서실장 현직 국무총리 시장 도지사 등 현 정권 최고 실세 거물급 정객들이 총 등장하는 ‘성완종 리스트’ 는 한 점 가감 없는 실화(實話)여서 국민들의 관심을 더 끌어 모으고 있다. 어떤 드라마나 영화가 이 리스트보다 더 재미를 주겠는가.
깨끗하고 사심 없는 분이라며 ‘순수한 여성대통령’의 신임을 듬뿍 받았다던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비웃기라도 하듯 “vip모시고 해외 나간다기에 10만 불을 바꿔서 롯데 헬스클럽에서 드렸죠”라고 죽기 직전 핸드폰을 통해 말하는 망자의 생전 인터뷰는 숙연함과 실소를 동시에 자아내게 한다.
그렇게 근엄했던 김기춘 옹이지만 죽어가는 사람이 외친 그 처절한 절규에 초연해할 수만은 없었던지 ‘별 볼 일 없는 종편방송’에까지 등장해 목청 높여 억울함을 호소할 만큼 성완종 리스트는 ‘괴력’을 발휘하고 있는 중이다.
아마도 건국 이래 이런 ‘초호화 부패 뇌물 스토리’는 거의 최초인 것 같다. 여성대통령을 최단 거리에서 보좌하고 있다는 전 현직 대통령 비서실장이 나란히 ‘리스트’에 올라간 건 속단하긴 어렵지만 ‘전무후무’라는 멍청한 수식어를 동원해도 별로 이상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아마 이렇게 ‘대통령 사람들’이 동시에 ‘초호화판 뇌물 스캔들’에 이름을 올린 이상한 모양새는 일찌기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보기 어려운 풍경일 지도 모르겠다는 말이다.
경남 어린이들에게 유상급식을 하겠다는 정치이슈를 던지며 대선후보로 급부상했던 경남지사 홍준표는 미국 골프에 이어 ‘잘 나가려던 순간’ 낙마의 수순을 밟고 있는 모양새다. 아랫사람의 심기를 건드렸던지 ‘배달부’ 부하는 언론을 향해 ‘1억을 받았고 지사도 잘 알고 있을 거’라는 폭탄선언으로 홍준표를 곤란에 빠뜨려 버렸다. 사람은 잘 나갈 때 조심해야한다는 ‘속설’이 그럴싸하게 들린다. TV 화면에 비친 홍준표 얼굴에선 그 기고만장했던 기(氣)가 놀랄 만큼 싹 빠져 버려 보였다. 그만큼 심적 타격을 크게 받았다는 증표다.
불과 얼마 전 총리청문회 때 그토록 수모를 당하면서 머리를 조아리던 국무총리 이완구는 예상했던 대로 자신의 고향인 충남 태안 군의 전,현직 의원들에게 “내가 총리다”를 두번이나 외치며 새벽댓바람부터 1분 간격으로 무려 15차례나 ‘고압적인 전화질’을 했다는 특종보도는 개그 콘서트보다 더 웃긴다. 이완구는 뭐가 그리 다급해서 스마트폰을 그토록 두드렸을까?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충청도 군 의원이라는 어떤 남자는 조금 전 이완구를 가리켜“정치적으로 페어플레이를 하지 않고 남을 모함하는 극악한 그런 사람이다”라는 목소리를 채널 A TV를 통해 고스란히 들려주기도 했다. 이런 일은 처음 본다. 행여 그 힘없는 지방 정치인이 ‘국무총리 명예훼손죄’로 감방신세를 지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세상인심은 대체로 ‘죽은 자’보다는 쩌렁쩌렁하는 실세 국무총리 쪽에 줄을 서게 마련인데 어찌된 일인지 충청도 지역정치인들은 이완구 편보다는 성완종 편에 서서 ‘억울한 자살’을 한 옛 동료에게 충성을 바치고 있는 모양새다. 퍽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망자(亡者)’가 현세에 쌓아놓은 공적이 귀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기야 사업하면서 어린 고향후배 2만5천여 명에게 장학금으로 3백억 원 넘게 지급했다는 건 ‘큰 공’으로 칠만할 것이다. 그래선지 자신의 아들들에겐 집 한 채 사주지 못했다는 건 2조 매출 기업회장에게선 전대미문의 ‘미담’인 것 같다. 부자 망해도 3년은 간다했는데 말이다. 그가 아들들에게 국민주택 규모의 집 한 채 만 사줄 거라는 ‘소박한 소망’을 말하는 인터뷰도 나왔다.
어쨌거나 현직 대통령 비서실장과 국무총리 국회의원 부산시장 인천시장 등 자타가 공인하고 있는 박근혜 정권 최측근 거물급 인사들이 ‘성완종 리스트’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하나만으로도 이 정권의 정치적 생명은 치명상을 입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황이 이렇게 급박하게 돌아가선지 대통령은 “법과 원칙에 따라 성역 없이 엄정히 대처하라”는 ‘엄명’을 내렸다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국민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국민들은 이미 “너희들은 유죄야. 쓸데없는 변명 하지마”라고 외치는 것 같다. 그만큼 여론은 극도로 악화된 상황이다.
더군다나 자살로 생을 마감한 성완종이 죽기 직전에 5백원 짜리 목장갑을 끼고 있었던 걸 애통해하며 좀 좋은 장갑을 사드렸어야 하는데 라고 울먹이는 아들의 목소리나 비서들 월급 좀 잘 챙겨주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미담 성 기사’들이 속속 보도되면서 이제 검찰이 제아무리 공정수사를 맹세하고 나선다한들 국민들은 이번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친박 실세’들과 대통령에 대한 신뢰를 거둬들일 수밖에는 없을 것 같다.
서울대 로스쿨 교수가 “종국엔 그들이 무혐의 처분‘을 받을 거라는 ’예언‘을 트위터에 올렸다는 건 현재 국민정서가 어떻다는 걸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고 본다. 심지어 한 신문에선 ’사기꾼은 자살하지 않는다”라는 칼럼을 내보낼 정도로 국민여론은 고인(故人)에게 우호적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어쩌면 대한민국 국민들 사이에선 이번 성완종 리스트를 보면서 “정치하는 놈들은 모두 도둑놈들이야”라는 공감대가 형성될 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성완종 전 회장과는 일면식도 없었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 ‘기독교 장로’를 두둔하거나 옹호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빈손’으로 최정상까지 올랐다가 하루아침에 '빈손'으로 세상을 등질 수밖에 없었던 63세 한 남자의 인생 스토리가 어떤 영화보다 더 슬프기에 그의 명복을 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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