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의표명한 총리 이완구 외교장관으로부터 보고받는 박대통령
이완구 사의 표명과 박근혜 정권 총리들 운명 자정 넘어 오밤중에 ‘몰래 사퇴’한 국무총리 이완구씨에 대한 뉴스는 이제 슬슬 지겨워진다. 세상에 그래도 일국의 '일인지하 만인지상' 총리자리에서 물러선다는 ‘사의표명’을 그런 식으로 했다는 건 일견 ‘이완구스러운’ 모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침신문들은‘대통령 안깨우려 국민을 깨운’ 이완구의 군사쿠데타식 전격적 사의 표명을 질타하고 있다.
한국의 오밤중은 머나먼 남아메리카 페루에서는 아침이어서 그곳에서 ‘맹활약 외교’를 펴고 있다는 대통령이 보고 받기 안성맞춤인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총리로 지명되기 며칠 전 청와대 오찬에서 중인환시리에 ‘대통령 각하’를 만세삼창하듯 세 번씩이나 외쳐댔든 이완구식 기발한 센스가 떠오른다. 국민보다는 임명권자의 심기를 더 생각하는 '각하호칭주의자'의 발상답다.
노회한 JP식 화법을 따르자면 '감수성이 예민한 우리 여성대통령'은 ‘충견처럼’ 각하소리를 세 번 씩이나 우렁차게 외쳤던 이완구의 사의 표명에 ‘안타까운 일이다. 총리의 고뇌를 느낀다’는 알쏭달쏭한 박대통령 특유의 화법으로 이완구의 사퇴를 수리할 의향을 내비쳤다고 한다. 대통령의 안중엔 '이완구 거짓말'로 인해 스트레스 엄청 받은 국민들은 없었나보다는 중앙일간지들의 매운 사설들마저 쏟아져 나왔다. 어쨌거나 자정에 '그 좋은'총리자리를 내던진 이번 이완구 사태는 권선징악을 테마로 하는 한편의 잘 짜여진 사극 드라마를 보는 기분이다. 물론 악역의 남주인공은 이완구다.
사실 이완구씨는 총리에 임명되기 훨씬 전부터 ‘차기 총리’로 여의도에선 소문이 자자했다. 오죽했으면 이완구 총리의 약자라는 ‘투 피엠(2PM)’이라는 닉네임까지 떠돌았을까. 이완구 본인도 손석희 뉴스룸에까지 나와서 스스로가 자랑스럽고 대견한듯 투피엠이라는 별명이 있다는 손석희의 발언에 ‘예비총리’다운 포즈로 점잖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준비된 총리’였다.
하지만 정작 청문회가 임박하면서 그 준비된 총리는 ‘허당’이라는 게 속속 드러났다. 김치찌개를 사주면서 어린 기자들을 협박하려는 듯 “어떤 기자애들은 저 죽는지도 모르고 죽는다”는 명언까지 했던 이완구였다. 아이러니칼하게도 지금 그 명언은 이완구 본인에게 부메랑처럼 고스란히 되돌아간 상황이다. 이번 이완구 사태를 보면서 아무래도 '그놈의 운명’이라는 게 따로 있다는 속설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원래 이완구는 다가오는 5월에 새누리당 원내대표 임기를 마치면 ‘투피엠’으로 총리공관에 입성할 예정이었다. 그렇다면 이완구는 지금 여전히 '투피엠 예비총리' 별칭을 누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유명한 ‘정윤회 문서유출사건’이 터지고 박근혜 대통령이 궁지에 몰리자 ‘자구책’으로 빼든 카드가 이완구였다. 그러니까 5월에 임명됐더라면 이완구는 지금 저런 ‘수모’는 안 당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니 ‘운명’이 따로 있다는 옛말이 맞는 것 같다는 말이다.
‘준비된 총리’로 보무도 당당히 청문회장에 나갔지만 다 알다시피 이완구는 청문회 내내 코너에 몰렸고 국회 인준도 아주 간신히 속된 말로 하자면 간당간당한 차이로 통과됐다. 그 무렵 온갖 매스컴이나 국민여론의 대부분은 이완구를 총리시키면 곤란하다는데 모여졌지만 ‘대통령의 간곡한 의지’로 일단 총리계급장은 간신히 달 수 있었다. 그게 2월17일이었다. 불과 두 달전 일인데도 아주 아득하다. 그만큼 지겨웠다는 거다.
결국 대통령 뜻대로 총리로 임명되긴 했지만 영악한 공무원 사회에서 ‘영(令)’이 통 서질 않았고 무슨 군사작전하듯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사정의 칼’을 휘두르려했지만 자살한 성완종이 사후에 매스컴에 ‘목소리출연’해 ‘사정대상 1호는 이완구’라고 절규하듯 외쳐댄 바람에 이완구는 ‘죽은 제갈공명이 산 사마중달을 제압한 것처럼’ 저렇게 망자와의 싸움에서 KO패 당하고 만 것이다.
사후에 이런 말 하면 좀 우습기도 하지만 어쨌든 이번 5월에 총리자리에 앉아야할 사람이 미리 그 자리에 앉는 바람에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혹은 그 높은 자리에 앉지 말아야할 사람이 앉는 바람에 그런 망신을 당한 건지도 모른다. 설상가상으로 대통령이 열이틀이라는 긴긴 시간 남미순방을 떠나면서 나라는 더 혼란에 빠졌고 이완구 입장에선 재수가 없으려니까 하필 국회대정부 질의라는 ‘올무’가 이완구의 ‘거짓말 솜씨’를 여봐란듯 옭아매버린 것 같다. 타이밍이 아주 절묘하게 척척 맞아떨어져 돌아가는 것같다.
많은 국민들이 건국이래 이완구처럼 거짓말 잘 둘러대는 국무총리는 처음 본다는 한탄까지 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그만큼 이완구는 금세 들통날 사실도 어떡하든 모면하려고 뻔한 거짓말을 했고 매스컴은 가감 없이 아니 더 부풀려서 ‘이완구 말바꾸기’를 실시간으로 보도해댔다. 종편TV의 위력이 모처럼 빛났다.
‘이완구사태’는 일단락 되어가고 있는 모양새지만 적잖은 국민들은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면서 유독 국무총리들이 낙마를 거듭하고 있는 것에 걱정들을 많이 하고 있다. 모든 매스컴이 약속이나 한듯 ‘박근혜 정부 총리 잔혹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심지어 '박근혜 데쓰 노트'라는 흉칙한 별칭까지 기사로 내보냈다.
이 정권 들어 초대 총리가 될뻔 했다가 낙마한 김용준부터 안대희 문창극까지 청문회도 서보지 못하고 사라진 ‘인재들’은 물론 드라마틱하게 총리의자에 앉고나서 63일만에 결국 낙마한 이완구까지 역대 이렇게 총리들이 우르르 낙마한 예는 없었던 것 같다. 난세도 이런 난세가 없다. 한 유력일간지에선 칼럼을 통해 ‘박근혜 정권이 실력이 없어서 그런다’는 뼈아픈 진단까지 내놓고 있다. 평소 대통령 편을 엄청 들어주는 보수 일간지에서 그러니 진보쪽에선 더 말할 것도 없을 지경으로 대통령을 압박하고 있다.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사람보는 눈이 너무 없고 그건 바로 ‘정치실력’이 없어서라는 지적은 듣기 싫은 소리겠지만 대통령으로서도 별로 변명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남미순방중인 대통령은 27일 귀국예정이다. 벌써부터 매스컴에선 ‘차기 총리’에 대한 하마평이 무성하다. 누가 될지 이젠 궁금하지도 않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이론이 맞는다면 대통령의 '인사실력'은 어쩌면 임기가 끝나도록 늘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 생각마저 든다. ‘입속의 혀’처럼 놀아줄 국무총리를 선호하는 것같은 박대통령의 정치적 취향이 이번에도 적용된다면 나랏일은 또 그렇게 어수선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운명이 어찌될지 정말 걱정이다. 걱정해봤자 아무 소용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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