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 쿤스 홈페이지.
경매에서 178억원에 팔린 핑크팬더 도자기(AP-다음뉴스)
자신감 넘치는 포즈의 제프 쿤스(AP-다음)
쿤스의 대표작중 하나인 풍선개(신세계-다음)
쿤스의 세이크리드 하트를 본떠 만든 풍선과 관련상품 (신세계백화점 본점)
홍라의 이명희 삼성 사모님들이 좋아하는 제프 쿤스의 아트 마케팅과 백남준의 예술론
조금 전 아주 ‘재밌는’ 남자 스토리를 읽었다. 그의 간단한 신상명세서는 이렇다.
▲이름-제프 쿤스▲국적-미국 ▲나이-1955년생(64세)▲직업-아트 마케터(본인은 철학적 아티스트라고 함),
제프 쿤스 유한책임회사 CEO ▲출신학교-시카고 예술대학 졸업▲기록-지난 5년간 세계최고경매가 두 번 갱신.2008년 ‘풍선꽃(Ballon Flower) 2570만 달러(280억원) 낙찰.
▲용모-준수함. 배우 급(꽃미남 계열,CF모델출연경력).▲한국과의 인연-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세이크리드(Sacred,성스러운) 하트’ 300억 원에 구입, 홍라희 리움 미술관장 ‘리본 묶은 매끄러운 달걀(Smooth Egg with Bow) 구입.
위에 적힌 이력만으로도 대강 어떤 스타일의 남자인지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미국 남자로선 분위기가 꽤 동양적이면서 잘 생긴 이 남자 제프 쿤스는 일단 자신의 용모와 자신이 거쳐 온 인생에 대해 자부심이 엄청난 것 같다. 말끝마다 ‘예술’의 의미와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자신을 향해 ‘아트 마케팅’이라는 용어를 쓰면서 질문하면 질색을 한다는 것이다.
‘마케팅’ 보다는 ‘비즈니스’라는 단어를 써야 청산유수처럼 말이 쏟아져 나온다고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1980년대 초, 그가 제작한 ‘후버 컨버터블’이라는 작품 값은 900달러에 지나지 않았지만 30년 후, 2011년 현재 그의 작품은 생존 작가 중 세계 최고가(價)를 받고 있다. 예술가에게 있어 그의 작품 판매가를 바로 인품이나 실력에 결부시키는 건 작가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하지만 2011년 3월 이명희 신세계 백화점 회장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흔한 조형물 한 점을 300억 원대에 사들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제프 쿤스는 눈길을 끌만한 남자가 됐다. 그냥 진보랏빛 심장모양의 조각품이 30억 원도 아닌, 300억 원이나 한다는 건 그쪽 세계를 잘 모르던 문외한들에겐 깜짝 놀랄만한 일이라고 본다.
일각에선 그런 ‘어처구니없는 가격’을 승인해 줄 수 없다는 얘기들도 한다. 그 비싼 걸 신세계백화점에 들여놓았으니 그 백화점 물건 값이 얼마나 더 비싸질까 걱정하는 시선들도 있다. 소비자 측에서 보자면 ‘물건값 상승’을 걱정하게 되지만 백화점 주인 입장에선 매출액이 전년도에 비해 훨씬 많아졌다는 사실에 흐뭇해 할 것이다.
게다가 이명희 회장뿐 아니라 그녀의 올케 홍라희 리움 미술관장도 손위 시누이인 이회장 보다 한 발 앞서서 지난 2008년 달걀모양의 조형물을 ‘고가’에 사들여 전시했다. 시누 올케 사이에 제프 쿤스를 놓고 ‘묘한 경쟁’관계가 형성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두 여성은 각각 이화여대와 서울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고, 선친이자 시아버지인 고 이병철회장으로부터 미술품 보는 안목을 배운 '프로급'이다.
이렇듯 대한민국에서 최상류층 ‘재벌 사모님’들이라고 할 수 있는 이회장과 홍관장이 관심을 두는 ‘예술가’라면 아무래도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 화랑가에선 이 ‘재벌 사모님들’이 제프 쿤스 작품을 사들였다는 게 큰 화제가 되면서 다른 재벌급 집안의 안방마님들도 앞 다퉈 그의 작품을 구입하겠다는 의사를 나타냈다고 한다. 재벌 동네쪽에선 최상류층 사모님들의 문화적 감각이 대단한다는 소문이 좍 퍼져 있다고 한다.
이렇게 재벌마님들로부터 인기가 좋은 제프 쿤스 스토리를 읽으면서 문득 몇 해 전 작고한 비디오아트의 창시자 백남준과 1960년대 미국영화 ‘엘마 겐트리’ 그리고 대동강 물을 팔아먹었다는 봉이 김선달이 떠올랐다. 웬만한 분들이라면 버트 랭카스터가 사기성 농후한 전도사로 열연한 엘마 켄트리와 봉이 김선달 이름을 함께 조합하면 어떤 이미지가 형성되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한국인 아티스트로는 처음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백남준까지 더하면 이‘한량들’에게서 풍기는 ‘사기성 냄새’를 금세 맡을 수 있을 것 같다.
1984년 백남준은 KBS TV에 출연해 예술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예술? 그건 사기야! 고등사기!”. 그는 또 예술가에 대해선 “익은 밥 먹고 선 소리하는 존재”라고 시니컬하게 말했다. 일반인들이 어렵고 골치 아프게 여기기 쉬운 예술과 예술가에 대해 ‘촌철살인(寸鐵殺人)격의로 이렇게 시원하게 일갈한 사람은 그때까지 본 적이 없었다. 백남준의 이 ’사기론‘은 그후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백남준은 이런 말도 했다.“예술이라는 게 사실은 사고파는 문제와 다름이 없는데, 예술은 맹그는 놈은 4백만 명이 만들고 있는데, 그것을 사는 놈은 4명도 안 되거든, 그런데 텔레비는 4개 회사가 4백만 대를 만들고, 또 사는 놈도 몇 백만이나 된다. 예술이라는 게 본래 생활이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정신이 많이 진보되면 보통 오락으로는 성에 안차니, 그때부터 고도의 물건을 찾는 것이지, 취미의 고급이 예술 시장인 셈이야.”
이 ‘취미의 고급이 예술시장’이라는 인식은 어쩌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과 예술인이 위치하고 있는 현주소를 적확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본다. 백남준의 이런 예술론에선 ‘천재의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반면 제프 쿤스는 실제 ‘마케팅’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그 용어를 기피하며 ‘비즈니스’라는 고상한(?) 용어를 고집하는 것부터 어딘지 좀 어색하다.
제프 쿤스는 세상의 모든 일은 비즈니스 위에서 돌아간다, 비즈니스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만나는 흥미로운 플랫폼이다, 예술, 사회적 책임이 한 자리에서 만나는 마술 같은 공간이 바로 비즈니스라고 정의했다. 그러니까 예술을 하찮게 여기는 듯 들리는 백남준에 비해 제프 쿤스의 ‘비즈니스’ 정의는 되레 그의 인식 수준이 어느 정도라는 걸 느끼게 해준다. 외모에서도 진지한 예술가적 분위기보다는 모델이나 배우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제프 쿤스는 말을 예쁘게 꾸며서 말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는 “예술이란 결국 사람과 소통하고 교류하는 것이잖아요? 저는 제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뿐입니다.”는 듣기에 아주 평범한 ‘예술관’을 말했다. 백남준과는 급(級)이 한참 다른 부류 같다.
처음부터 제프 쿤스의 작품이 고가를 받은 건 아니다. 지금은 세계 최고 예술품 브랜드로 통하지만 한때는 그도 ‘망할뻔한 적’이 있을 만큼 고통도 겪었다고 한다.
1990년대 중반까지 파산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다. 하지만 2000년을 목전에 두고 그 앞에 운명처럼 ‘귀인(貴人)이 출현한 것이다. 미국 출판사 재벌 피터 브랜트(Brant)가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쿤스의 도자기 조각 ’핑크 팬더‘를 180만 달러(20억 원)에 사들이면서 사세(社勢), 가세(家勢)가 모두 활짝 폈다. 그 때 이후 쿤스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미국 현대미술사에 거의 독보적인 존재로 최고가 기록 갱신을 해오면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중이다.
동양, 한국에서뿐 아니라 미국이라는 문화 선진국에서조차 어떤 ‘운명적 계기’나 ‘귀인’이 등장해 한 예술가의 운명을 바꿔놓는다는 게 참 신기하다. 이런 쿤스에 대해 대놓고 차가운 비평을 하는 미술평론가도 있다. 예술가 쪽에서 보면 평론가처럼 ‘얄미운 존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예술세계가 확립되기 위해선 그런 ‘소금’같은 역할을 하는 존재는 필요하다고 본다.
미술평론가 로버트 휴스(Hughes)는 쿤스에 대해 이렇게 야유를 보낸다. “스스로를 미켈란젤로라고 말하고 다니고 있고, 그의 작품을 가진 컬렉터들도 그가 미켈란젤로라고 믿고 있다.” 이명희, 홍라희 두 ‘사모님’이 들으시면 좀 언짢아할 소리 같다. 하지만 듣는 이의 입장에선 그런 품평에 한 표를 보내고 싶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 같다.
평론가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쿤스의 ‘작품’은 세계 거부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그는 우리 시대 최고로 ‘돈 잘 버는 작가’로 꼽힌다. 물론 대한민국의 재벌 마님들로부터도 각별한 총애를 받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그는 돈에 대해선 초연하게 말한다. “돈이요? 제 작업을 지속하고 내 가족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플랫폼에 불과하죠. 그 나머지는 의미가 없습니다. 전 21세기 예술을 이끌어가고 싶을 뿐이에요.”
그의 작품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다. “현대사회의 불안을 치유한다.” “비싼 가격 때문에 유명해진 키치(kitch,싸구려 취향)에 불과하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쿤스 작품에 대해 평론가들의 의견일치를 보여주는 대목도 있다. “쿤스 없이 미국 현대 미술을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무시할 수 없는 존재’라는 얘기다. 그것은 아마도 상상을 초월하는 초고가(超高價), 최고가의 기록을 갖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도 한 몫을 거들고 있는 듯하다. 자본주의사회에선 ‘돈’이 말해주는 부분이 적잖다.
사실, 그의 작업 방식을 듣다 보면 “예술가 맞아?”라는 의문이 든다. 그는 “내가 직접 작품을 만드는 게 아니다. 나는 아이디어만 제공할 뿐이다. 사실 내게는 그럴 능력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작업을 할 때는 최고 수준의 인력을 고용해 작업한다.”
그래서 280억 원에 팔린 그의 작품 ‘풍선꽃’은 스테인리스로 만든 2.7m의 높이로 실제 제작은 ‘독일계 건설 기계 부품 제작회사 ’아르놀드‘이다. 쿤스는 조수와 하도급 업자에게 영감과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감독한다는 것이다. 좀 이상하지 않은가. 아마 대한민국에서 이런 식으로 작업하고 있다는 조각가가 있다면 아마도 ’구설‘을 면치 못할 텐데...
하지만 쿤스는 이런 작업방식에 자부심마저 갖고 있는 듯 보인다. 예술가는 고달프다는 선입견을 가진 분들이 들을 때는 얼른 수긍하기 어려운 이야기 같다. 어쨌든 50대 후반의 이 미국인 ‘예술가’는 21세기 들어 그 ‘존재감’을 더 강하게 발휘하고 있는 중이다.
제프 쿤스는 특이한 결혼 경력이 있다. 1991년 이탈리아의 유명 포르노 배우 출신으로 훗날 국회의원이 된 치치올리나와 결혼했다가 1년 만에 이혼했다. 눈썰미 있는 분 중에는 이 포르노배우의 국회의원 당선사실이 당시 우리나라 매스컴에서도 ‘해외토픽’으로 보도했던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이 여배우는 ‘모성애’가 유별나게 강하다는 이탈리아 여성답게 갓 태어난 아들을 데리고 보따리를 싸 친정인 ‘로마’로 돌아갔다. ‘부성애’가 남달랐던 쿤스는 ‘납치’라며 전처를 상대로 10년 넘게 양육건 소송을 벌이다가 패소하고 말았다고 한다. 무슨 ‘신파 극장’에서나 볼 듯한 이런 장면을 보면 사람사는 데는 어디나 비슷하다는 말이 생각난다. 미국이나 이탈리아같이 '부부가 세련되게 헤어질 것 같은 나라’에서,그것도 최상류 부부들의 이런 해괴한 해프닝들은 인생극장의 별미처럼 보인다.
이런 ‘쓰라린 이별’을 계기로 쿤스는 ‘지금도 납치, 학대 아동을 돕는 ’국제 미아착취 아동센터‘의 이사로 참여하고 있다. 개인적 아픔을 ’승화‘시켜 이런 좋은 일을 하는 건 일단은 바람직한 현상같다.
아무튼 이제는 ‘재벌’ 부럽지 않은 이 네오 팝 아티스트 제프 쿤스는 ‘최고의 미디어 맨’ ‘이 시대의 문제적 아티스트’ ‘꿈의 공장장’ 같은 ‘듣기 좋은 소리’도 많이 들으며 ‘한 세월’을 누리고 있다.
이 남자를 둘러싼 미술동네 바깥 사람들의 가장 큰 ‘호기심’은 아무래도 그의 ‘공장 제품’들이 세계 대부호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엄청난 값에 팔려나가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하지만 쿤스는 쿨한 분위기를 잃지 않으며 이런 말을 싸늘하게 던지고 있다.
“추상과 사치는 상류층을 지키는 경비견이다.” “타락은 부르주아에게 자유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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