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출신’ 황교안이 제1 야당 대표가 됐다. 자유한국당 입당 44일만에 ‘당권’을 거머쥐는 행운을 잡았다. 보수우파 진영에선 ‘황교안 대망론’이 슬슬 떠돌고 한국당 의원들 상당수가 벌써부터 황교안을 향해 ‘충성맹세’를 하면서 ‘친황 깃발’ 아래 모여들고 있다고 한다. 의원들이야 내년 총선 뱃지를 달기 위한 자구책이겠지만 그리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친박충성'으로 망한 당이 아닌가 말이다. 이런 '구태'에서 벗어나야 한국당도 살고 황교안도 산다. 오로지 '국민을 위한 충정'을 진정으로 보여줘야할 때다.
어제 한 TV에선 이명박의 장자방이었던 이재오가 출연, 황교안을 향해 ‘늘공 출신’이라며 시큰둥한 표정을 보였다. ‘공무원 출신’으로 대권 반열에서 반짝였다가 맥없이 물먹은 고건이나 반기문을 보라는 얘기다.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 받고 일해온 ‘늘공 출신’들의 한계를 말하는 거다. 일리가 없지는 않다.
노무현 탄핵으로 대통령권한대행까지 지냈던 고건은 장관 3번 서울시장 2번 국무총리 2번이라는 그 화려한 경력과 50%가 넘는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그를 총리로 임명했던 노무현이 ‘인사를 잘못했다’고 한 마디 하자 그만 낙마하고 말았다.
유엔 사상 최초로 사무총장을 연거푸 두 번 씩이나 한 반기문 역시 오아시스처럼 빛나던 높은 지지율이 아침이슬처럼 사라지자 대권 가도에 들어선지 2주만에 ‘낙마선언’을 최측근도 모르는 새 하고 말았다. 반기문을 위해 잘 다니던 신문사까지 그만 뒀다던 대변인은 뒤통수를 맞은 셈이었다.
그러니 이재오가 ‘늘공 출신’이라며 황교안을 가볍게 여기는 듯한 표정을 한 것도 무리는 아닌 것 같다.
황교안이 대권가도에 뛰어들자 적잖은 인사들 역시 ‘늘공의 한계’를 거론하며 대권은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을 내놨다. 이번 한국당대표 선거과정에서도 방송에 이골이난 약삭빠른오세훈이나 태극기부대의 열렬한 지지를 업었던 김진태의 ‘유도신문’에 황교안은 탄핵을 인정하지 않거나 태블릿 PC의 존재를 부정하는 듯한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종편에서 한소리하는 거의 모든 패널들이 이구동성으로 ‘정치신인’의 한계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같은 ‘늘공’이고 눈치없는 정치신인이라도 황교안은 쉽게 낙마했던 ‘고건 반기문 같은 선배들’과는 다른 면모가 있다는 걸 그들은 간과한 듯하다.
스스로를 ‘고물상 집 아들, 흙수저 출신’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들고 나온 황교안은 ‘온유해 보이는’ 두 선배들과는 달리 강단이 있어 보인다. 아무래도 ‘늘공 출신’이어도 행정이나 외교방면에서 쌓아온 온화한 경력과는 달리 주로 범죄자들과 인생을 보내온 검사출신이어선지 황교안은 만만해 보이진 않는다.
황교안은 당대표 당선 첫 발언으로 ‘문재인 정권 국정농단의 뿌리를 뽑겠다. 이 단상을 내려가자마자 문 정권 폭정에 맞서 전투를 시작하겠다’며 기세 좋게 포문을 열었다. 박근혜 정권의 마지막 국무총리와 대통령 권한대행을 지낸 ‘드라마틱한 경력’의 소유자로서 현 정권에 대항하는 강한 이미지를 보여준 셈이다.
마침 어제 한 여론조사에선 황교안은 차기 대선후보 지지도에서 현 국무총리인 이낙연을 누르고 전체 1위를 차지했다. 여권 후보자 전체 지지율보다 야권후보자 전체 지지율도 1% 이상 높게 나왔다. 문재인 정권에 실망한 ‘국민여론’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시운’도 따라주는 듯하다.
57년 생으로 경기고와 성균관대학을 나온 황교안은 검사생활을 하는 동안 ‘부침’을 겪었다지만 어쨌거나 법무장관과 국무총리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역임하는 ‘좋은 관운’덕을 봤다. 그런 요직을 거쳐선지 황교안에게는 ‘권위주의적 분위기’가 강하다는 평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 출세가도를 달려온 인사답게 ‘대접받는 걸 좋아한다’는 게 주변인사들의 전언이다. 황교안에겐 득될게 하나 없는 세평이다.
아마 기억력 좋은 분들이라면 황교안이 국무총리시절 ‘의전 문제’로 여러번 구설수에 올랐던 걸 기억할 것이다. 뭐 이 자리에서 구구하게 그런 이야기는 더 이상 하고 싶진 않지만 황교안이 앞으로 제1야당 대표로 또 차기 대선후보로 ‘대권’을 쟁취하기 위해선 철저히 버려야할 ‘제1 악습’이 바로 이 권위주의적인 의전 관례라고 본다. 지금이 어느 시절인가 말이다.
철저히 ‘낮은 곳’으로 진정성 있게 내려가야만 살 길이 보인다는 걸 황교안은 명심해야할 것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는 그가 누구보다 더 잘 알 것인데 왜 그런 시시한 ‘의전문제’로 이미지를 나쁘게 해왔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어쨌거나 ‘고물상 집 아들답게’ 못 배운 사람들,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겠다는 ‘진정성’을 체질화해야만 ‘차기 대권’을 넘볼 수 있을 것이다.
당대표 경선이 한창 달아오른 지난 1월 중순 감옥에 있는 박근혜를 유일하게 면회할 ‘권력’이 있다는 50대 남자 변호사가 종편에 나와 황교안을 공격한 적이 있다. 그 내용은 너무 구상유취해서 자세히 말하고 싶지도 않다. 그래도 일국의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의 '하찮은 생각'에 적잖은 국민들이 놀랐다.
그 남자의 말이 사실이라고 전제한다면 대통령까지 지낸 박근혜라는 68세된 여성의 ‘인품’은 허접한 저자거리의 여인만도 못한 것이 되고 말았다. 감방 내에 책걸상을 들여놔주지 않았다고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었던 황교안을 ‘배신자 프레임’으로 몰아넣었다. 시중에선 황교안이 ‘친박’의 눈밖에 나서 대표가 못 될지도 모른다는 어처구니없는 얘기도 떠돌았다. 한편에선 그게 오히려 득이 될거라는 소리도 나왔다.
감방에 갇힌 지 2년 가까운 세월, 침묵한 뒤 처음으로 대변인을 통해 내놓은 ‘옥중심경’이 나라걱정이 아닌 ‘일신상의 걱정’이었다는 점에서 국민들은 많이 실망했었다. 거기에 황교안이 503이라는 수인번호도 몰랐다는 걸 공격하는 그 남자변호사의 구구절절함은 그야말로 한심의 극치였다. 그런 유형의 인간들이 있었기에 대통령탄핵과 수감이라는 비운을 맞았고 보수는 정권을 빼앗겼다는 평가들도 많았다.
어쨌거나 황교안은 배신자로 몰려 박근혜의 눈 밖에 난 것 같지만 내년 총선과 별일 없다면 2022년 대선에서 ‘보수의 승리’를 이끌어내야할 중차대한 사명을 부여받은 셈이다. 그렇기에 그는 첫 일성을 ‘문정권과의 전투선언’으로 내세운 듯하다. 일단 방향은 제대로 잡은 것 같다.
‘똑똑한 사람’이라는 평을 듣는 황교안이 누구보다 잘 알겠지만 그가 할 일은 오직 국민만 보고 국민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언지를 정확히 간파해야할 것이다. 그러려면 이제 ‘역사’가 돼버린 ‘탄핵 정당성’이니 ‘태블릿PC의 존재'니 하는 것들은 가차없이 쓰레기 통으로 버려야할 것이다. 여기에 본인이야 시키지야 않았겠지만 국민정서를 불편케 했던 ’권위주의적 의전‘도 함께 말이다. 시중에서 오죽하면 '의전 교안'이란 비아냥섞인 별칭이 떠돌았던 걸 유념해야할 것이다. 쉬운 얘기지만 쉬운게 어려운 법이다.
구태의연한 말이겠지만 국민을 향한 진정한 겸허함과 자유대한민국을 위한 목숨 건 헌신이야말로 황교안이 명심해야할 최고의 덕목일 것이다. 사법연수원 시절 야간 신학대학원까지 다녔고 ‘전도사 자격’까지 있다는 황교안으로선 구태에서 자유로워져야한다. ‘시시한 의전’따위나 '흘러간 틴핵 이야기'에 연연해선 대사를 그르친다는 얘기다. 스스로 낮추고자하면 높아진다는 옛말씀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더우기 탄핵시비는 이젠 더 이상 매달릴 이슈는 아니다.
자유한국당 대표로서 나라를 ‘종북 좌경화’로 몰아넣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이 정권에 대항하기 위한 ‘큰 그림’을 겸허한 자세로 그려나갈 것을 기대해 본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정신으로 오로지 자유대한민국을 지키는 신념만이 살 길이라는 걸 명심 또 명심해야 할 것이다. 진인사대천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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